노래하는 복희
김복희 지음 / 봄날의책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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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하는 평화로운 세상에는 늘 책이 있다. 사자와 양이 한가로이 뛰노는 가운데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 사랑하는 이와 느슨하게 누워 각자 보고 싶은 책을 보다가 누가 먼저 말을 꺼내면,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은 자연스러운 대화를 간헐적으로 주고받는 이미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책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의 이미지.

빛과 고요가 책과 사람 곁에서 부드럽게 머무는 이미지.

- 김복희 <노래하는 복희> 147p


완도, 작은 섬에서 태어나 어쩌면 촌스럽다고 말할지 모르는 이름을 지닌 시인의 글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통통 튀고 개성이 강한 글을 끝까지 잘 읽어나가지 않으려는 못된 버릇이 있다. 나이 든 이들의 글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삶을 살아온 이들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클 거다.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하고 읽어 나가다가 80년대라는 것에 놀라 뒤늦게 시인의 이름은 포털사이트에 새겨 보았다. 그제서야 내가 알던 동요들이 나오고, 그녀의 글에 나는 어느새 스며들고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매 글마다 동요가 나오고, 동요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하나의 실타래처럼 가늘게 뽑아져 나오지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듯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노래로만 흥얼거리고 정작 동요의 제목을 물을 때는 대답 못하던 동요들을 만나는 재미 역시 계속되었다.)

글 속의 그녀는, 분명 솔직하고 사려 깊고 사랑스럽고 다정하다. 자신을 누군가가 부른다면 '복희씨'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글에 이미 내 마음을 온전해 내려놓기 시작했다. 동요를 노래 부르는 시인. 자신이 사랑하는 모습에는 늘 책이 함께 있고, 돌아가며 목소리로 책을 이야기하는 모임에서도 그 목소리들이 돌고 돌아 다시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함께하면서 홀로 일 수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말한다. 시를 쓰자고 말하지 않지만 시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다정하게 건네고 있다.

마음과 능력이 부족해 쓰지 못한 노래가 많고, 지운 말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들 노래 뒤의 노래가 되어 저를 따라다니겠지요. 써버린 노래만큼이나 쓰지 못한 노래도 제 노래입니다. 누락과 손실이 제 재산입니다. 평생을 써도 다 못 쓰고 죽을 만큼의 재산입니다. 제가 많은 돈이 되어서, 무척 좋아하고 있습니다.

- '나가며 노래 뒤의 노래들' 중에서

여전히 쓰지 못한 노래들에 미안함을 안고 살겠다고 말하지만 그 노래들이 언젠가 뒤이어 오다가 손잡고 함께 가게 될지도 모르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어떤 노래들을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그녀의 글에서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서점을 매일 드나들던 여중생을 다시 만났고, 시가 다정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음을 인정하고 시집 모으기에 여념이 없는 엄마인 나도 다시 만났다.

그것으로도 나에게는 의미로운 책이다.

그리고 시를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도 건네고 싶고,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도 망설임없이 손에 쥐여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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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 동화집
실비아 플라스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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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손을 다 보고 나자 정장은 마치 맞춘 옷처럼 맥스에게 꼭 맞았어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 이 옷만 입을 거야." 맥스가 말했어요.

-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플라스 동화집> 중 동화 '이 옷만 입을 거야'

마음이 무겁고 힘들 때가 되어서야 웃을 수 있는 책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아이에게 읽히기 위해 사주는 동화집들을 나는 내가 읽기 위해서 샀고, 주말에 이 책을 읽으면서 웃음을 내내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벨 자>의 작가로 더 알려져 있는 실비아 플라스가 낸 동화집이다. 실제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읽혀 주고 싶어 지은 동화들을 엮었고, '이 옷만 입을 거야', '체리 아줌마의 부엌', '침대 이야기' 세 편의 동화와 원문이 실려 있는 두껍지 않은 책이다.

사실 나는 책을 펼치자마자 나온 글부터 다정하게 이 책을 향해 미소를 짓게 되었다.

"아주 멋져!"

"깃털처럼 가벼워!"

"버터처럼 눈부셔!"

"토스트처럼 따뜻하고!"

"정말 끝내준다!"

*

"와, 드디어 우리 세상이다!"

*

난 가끔 이게 혹시 마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니까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언제 어디에서든 무엇을 하면서도 늘 입을 수 있는 정장을 갖고 싶었던 맥스는 누군가에게 배달되어 온 정장이 자신에게 오기까지 기다린다. 모두에게 맞는 정장이 되기까지 엄마의 손을 거치면 마치 마법처럼 옷은 '맞춤한 것처럼' 꼭 맞았다. 다들 옷이 멋지다고 좋아하면서도 흔히 보이는 시선과 생각들에 사로잡힌 채 다른 동생에게로 계속 양보하다가 맥스에게 오고 만다. 맥스는 모두가 못하리라고 생각한 것을 옷을 입고도 너무나 즐거이 해내고 모든 이웃들이 맥스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옷이 아주 '맞춤'옷처럼 맥스에게 멋지다고 말한다. 아이의 흐뭇하게 미소 짓는 표정과 당당하게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채 서 있는 모습에 웃음이 지어졌다. 이 그림이 표지의 그림으로 되었다는 걸 실비아 플라스가 알았다면 웃음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전래 동화의 '아씨의 일곱 동무'가 떠오르게 하는 '체리 아줌마의 부엌'과 침대 하나를 두고도 꿈꾸며 상상하게 하는 시로 이야기를 지어 낸 '침대 이야기'는 어린아이처럼 나를 순간적으로 웃게 만들었다.

맥스의 기쁨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자신의 일에 만족 못 했던 존재들이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다른 존재들이 또 얼마나 자신의 임무를 잘 해내고 있었는지 깨닫게 했다.

한바탕 침대 이야기로도 구름 위로 여행을 가는 듯하고 유쾌하게 상상을 펼쳐볼 수 있게 하였다.

책을 왜 읽는지, 그리고 내가 앞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 기본 본질을 이 짧은 동화들에서 또 발견했다.

'즐거움'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지만, 강한 의무감과 필요보다 더 진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결국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이 절판되었다는데, 다시 나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나는 오늘 나의 딸과 이 책을 함께 읽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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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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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두꺼운 한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생소한 용어와 문화적인 것들에 어지러워 하면서도 다시 너무나 진하게 연결되는 '연대'로 가는 길을 발견하게 한 듯하다.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이 부제가 전혀 생소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이주민으로써의 삶에서 여전히 토박이, 원주민으로써 지내 온 그들의 부모 세대가 전해 준 지혜를 그리워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식물학자가 전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들에 감사를 표하는 것은 함부로 취하지 않고, 자연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객관적인 자료를 보여 주고, 수업을 해야 하는 그녀의 위치에서 그녀가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과 학생들이 비로소 느끼는 것들을 확인해가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의식을 치르며 땅과 모든 것에 감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 딸이 자라고 아버지의 작아진 등을 바라보며 회상하게 되는 모습은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아빠의 등을 바라보는 듯이 느끼게 하였다.

'어머니 대지'라는 이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잡고 갔고, 내가 이 책을 완독하게 된 힘은 그 대지의 이야기를, 대지에 감사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물론, 함께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더 힘을 내게 하였다.)

이야기는 땅을, 우리와 땅의 관계를 복원하는 가장 효과적인 연장 중 하나다. 우리는 어떤 장소에 살아 있는 옛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새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이야기꾼이 아니라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으며 옛이야기의 실에서 새 이야기가 직조된다.

- <향모를 땋으며> 497P

내가 결국 이 책에서 마지막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은 '이야기의 끈'이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이야기를 한다. 자연, 대지, 감사, 회복, 치유, 양육, 지혜 ... ! 그것을 왜 이야기의 형식으로 해 나갔을까 생각하였고 작가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글에서 확신을 했다. 지금 새롭게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이 글도 1분이 지나면 다시 지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연결된 그 이야기는 향모를 땋듯이, 직조해 나가듯이 이야기 역시 서로의 끈을 받고 이어가며 직조되고 연결되어 간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고, 그 이야기들을 우리는 계속 읽고 듣고 봐 나가야 한다.

가능한 일일까?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여러 두려움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계를 바꾸고 싶은 의지에 타오를지도 모른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하지만 일단은 이야기에서 시작되어야 그 의지가 희미해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모임을 하며 나의 버릇을 갑자기 발견한 것처럼, 문득 내가 의식하지 않은 많은 것들은 결국 내가 나를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나서야 발견되곤 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의 버릇, 나의 말투, 나의 글, 나의 이야기들 모두가 촘촘하게 땋여져가고 있고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 것을 느낀다.

연말만 되면 많은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제는 그저 하나만 남기고도 오히려 더 강하게 나를 세우는 걸 안다. 2022년 나의 단어는, '이야기'이다. "모든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으며 옛이야기의 실에서 새 이야기가 직조된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직조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향모를 두 손으로 천천히 꼼꼼히 땋으면서 그들이 생각했을 감사함, 단단한 믿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야기들을 두 손으로, 쓰며 이야기하며 천천히 직조해 나가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한 명이라도 읽히고 조금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나의 두 손은 가장 큰 의미를 만들어낼 것임을 단단하게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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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에서도
이현석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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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다양한 삶을 그리면서, 우리가 멀리 있다고 느낀 다른 세계의 모습을 이렇게 깊은 속들을 말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언니가 내뿜은 연기가 길 위로 흩날렸지요.

"옳다고 여기는 거랑 말해져야 하는 게 늘 같을 수는 없더라고."

-

나도 언니를 빤히 쳐다봤습니다. 언니가 지어 보인 웃음은 곤란함만 간신히 감출 뿐이었는데,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이 어떠한지 가늠이 되지 않아 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습니다. 뒤이어 언니가 "그러니까 네 생각은 조금 미뤄둘 수 있을까?"라고 묻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도 선명히 떠오르는 것은 "너무 춥다. 어서 가!"라며 흔들던 언니의 손과, 먼발치에서 돌아보니 겨울바람에 휘날리며 은색으로 빛나던 언니의 단발머리.

이 두 가지만큼은 여전히 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57 / 58p

우리가 흔히 바라보는 시선 이면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들을 모은 단편 소설집이다. 성소수자, 낙태, 60년대의 근대화, 북한, 법조계, 노동.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외면받아 왔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들 곁에서 혹은 그들과 거리를 둔 이들과 함께 바라보게 한다. 이런 이야기를 보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 봐달라고 소설로 나왔을 테다.

처연해지는 심정으로 바라본다. 이들이 여전히 지금도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모른척하기도 두 팔 걷고 도움을 주려 나서기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해도 내가 책을 읽는 것에 의미가 있을까?

고전이나 사회 분야의 책을 읽을 때는 꼭 드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읽는 것은 이야기로 계속 이어져야 하는, 우리가 외면하지는 말아야 할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야기로 인식하고 있고 난 뒤에야 우리는 그들을 바라볼 때 색안경을 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완벽한 이해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볼 수 있는 용기를 내게 한다.

언젠가 한 번은 지금은 제목이 생각나지 않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 친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그것을 쉬쉬하며 살아온 한 여인의 이야기를 읽었다. 물론 소설이었다. 그 여성 역시 결혼을 하고 딸을 낳지만 딸의 성조숙증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불편한 감정을 삭히는 것을 그려냈다. 큰 창으로 내보여지는 모습과 안에서 밖을 향해 바라보는 시선에 얽힌 그 불편한 감정에 씁쓸한 뒷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어두운 이야기는 모두 피하고 싶었던 심정이었을 것이다. 좋은 것만 보기에도 너무 짧은 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읽은 후에 들 '책임감'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불편함과 책임감, 연민과 이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가 못나 보였다. 여전히 지금도 나는 모든 것의 앞에 서서 부르짖지는 못할 테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이야기 듣기를 피하지는 않으려 한다. 나의 용기는 이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피해 왔던 수많은 이야기들, 죽음이나 병, 사회, 윤리적인 이슈들을 이야기로 만나고 전하는 것에서 용기를 내어보자고 생각하는 것이 이전보다 한 걸음 더 나갔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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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을유세계문학전집 10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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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에 그녀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당연히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자,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마는 책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행복, 정열, 도취와 같은 말들이 실제 생활에서는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59p

<마담 보바리>를 드디어 읽었다. '드디어'라는 말이 어울리게도 한참 동안 이 책을 읽어야지 싶다가도 계속 다음으로, 다음으로 미루기만 하였다. 많은 작가들이 이 책을 이야기한다. 내용을 다 알면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용은 보바리 부인의 권태로운 결혼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하고 그녀를 이용하는 남자들과의 염문을 이야기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보바리의 삶도 함께 그려져 있음을 모른척할 수 없다. 보바리는 철저히, 그가 그 시대에는 너무나 평범하게 그려온 시간들을 보냈다. 어른들이 지정해 주는 대로,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도 당연시되었던 미래를 향한 길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사랑이라고 믿었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가 아내가 죽은 후가 되어서야 알게 된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습은 연민의 감정을 불러오게 한다. 그는 이야기의 끝 즈음 우연히 아내가 마음을 주었던 로돌프를 만난다.

로돌프는 잠자코 있었다. 샤를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꺼져 가는 목소리로, 무한한 고통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래요,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심지어 그는 대단한 말, 그가 평생 한 말 중 유일하게 대단한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 운명 탓이지요!"

플로베르는 시골 의사의 아내가 외도를 하고 자살을 한 신문 기사를 토대로 이 소설을 써 내려갔다. 실제로 플로베르는 시골 생활의 평범한 요소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5년 동안 관찰과 수정을 거듭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이 책에서 그려지는 시골에서의 생활이 때로는 보바리 부인의 시선으로, 또 한편으로는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께 그려졌을 것이다. 결혼에서의 권태로움에서 비롯되어 사랑이라고 믿는 감정에 빠진 보바리 부인의 감정을 휘몰아치듯이 그려냈다. 스스로의 욕망을 모른척하기 힘들었던 그녀를 그대로 그려냈다. 그녀가 권태로웠다고 믿었던 삶을 보바리는 그 자체로 만족했고 아내의 행동들에서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신의 삶을 잘 지켜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거다.

보바리 부인이 삼류 소설처럼 읽히는 책들이 아닌 조금 더 현명하게 앞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너무나 다르게 삶을 일궈가는 약사 가족의 모습은 철저하게 보바리 가정과 대비됨을 보여주고 있다. 지극히 시대에 맞춰 살아가며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그의 모습은 보바리의 모습에 대비해서 극대화된다. 하지만 인정받는 의사의 명성을 지킬 수 없었던 보바리와 자신의 삶을 내던지게 되고 나서야 후회하는 보바리 부인의 모습이 믿을 수 없다고 해도 누구에게나 숨겨진 욕망을 들여다보게 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완벽히 가정적이고 안전한 삶을 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욕망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동시에 발견할 것이다. 그녀가 생각한 것처럼 누구에게나 내재해 있는 욕망을 말이다.

그녀는 아들을 갖고 싶었다. 튼튼한 갈색 머리의 사내아이를 낳으면, 조르주라고 부르리라. 사내아이를 갖는다는 생각을 하니 과거 자신의 모든 무력감에 대해 앙갚음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느꼈다. 남자는 적어도 자유롭다. 여러 열정과 여러 나라를 두루 섭렵할 수 있고, 장애를 뚫고 나가 가장 멀리 있는 행복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당한다. 무기력한 동시에 유순한 여자는 법률의 구속과 함께 육체적인 나약함이라는 불리한 점을 갖고 있다. 여자의 의지는 끈으로 묶여 있는 모자의 베일과 같아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이는데,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체면이 발목을 잡니다.

-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1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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