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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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반년 전에 선물받은 책을 이제서야 읽어내려갔습니다.

그 당시엔 바로 시험공부를 해야하고, 시험이 끝나고 보리라했는데 막상 시험이 끝나니 바로 교육을 받고.

홍보를 하고 일을 시작하면서 계속 미뤄지기만했습니다.

모두 핑계이지요. 핑계일 따름입니다.


이 책이 계속 눈에 띄더니, 늦었지만 한번 읽어내려가면서 왜 이책이 나에게 왔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물해주신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지요.


책을 선물해주고 선물 받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대부분 신간의 것에 한정되어 있는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그 당시에도 보기에 신간은 아니었지요. 그래도 1년만에 5쇄를 발행했다니. 제가 너무 늦게 읽은 것이 아닌가싶습니다.



이미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분이오나, 그 당시엔 어떠했을지요.


1973년 1월 18일 이오덕 선생님이 일직에 계신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가 뵙고, 그렇게 만난 이후 편지로 소식을 전하고 전해받았던 것을 추려내어 이 책이 나왔습니다. 지금에는 편지라는 것이, 참 정겹고 그리운 것이 되었는데, 이 책의 편지들을 보니 더 그러하더군요.


이오덕 선생님

편지 받았습니다. 왠지 눈시울이 화끈 더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 글월에서 느꼈습니다.

출생지가 남의 나라였던 저는 여지껏 고향조차 없는 외톨박이로 살아왔습니다. 아홉 살 때 찾아온 고국 땅이, 왜 그토록 정이 들지 않았는지요?

나에게 한국이라는 조상의 나라가 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무명 치마폭에서만이 느낄 수 있었을 뿐입니다. 소외당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고국은 나에게 전쟁과 굶주림, 병마만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 위에 몸서리쳐지는 외로움을 ...

제가 쓰는 낙서 한 장까지도 선생님께 맡겨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여태까지 살아온 것이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이었습니다만, 언제나 앞의 일은 어렵기만 합니다. 계획한 대로 되어지기가 힘들다는 것은 경험했으니,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이현주 선생님과 하룻밤 지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아직도 생각나면 입이 벙실거려집니다. 말이 없어 보이면서도 좀 짓궂은 것 같아요. 그게 좋았습니다. 선생님 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서울 다녀와서부터 왠지 선생님 생각하게 되면 이상하게 서글퍼집니다. 빈센트 반 고흐를, 그리고 그의 그림이 좋다고 몇 번 말씀하시던 것이, 어쩌면 선생님의 숙명처럼 느껴집니다.

선생님이 원하시는 길을, 저흰들 어찌 만류할 수 있겠습니까만,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한길밖에 없고, 단 한 번뿐인 인생이지 않습니까.



이미 강아지똥, 몽실언니로도 익히 알려져있고 존경받아온 권정생 선생님의 삶과 생각들, 신념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왔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한결같은 마음도 함께 전해져오구요.


생각이란 것이 인간관계를 이어 주는 모양입니다.

이 한 문장의 글이 꽤나 오랫동안 제 마음에도 남아있고 여전히 생각이 들어, 쉽게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참, 외롭다 외롭다 생각이 들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나 응원을 받으면 다시 힘이 나기도 하구요.

하지만, 요즘은 정말 끈끈한 관계가 어디 있을지 싶기도 합니다.

그냥 편지 한 두장만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아니 그러고 싶은 분이 몇 있지만.

그분들 역시 그런 생각을 하실까요? 제가 보여준 모습이 신뢰를 가져다 드릴까요?

저 스스로 이상하게 참회의 생각으로 이어지게도 하는 글입니다.



여러 가지 바람직스럽지 못한 사태들이 문단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것을 두려워할 것 없고 다만 작가적 양심으로 글을 씀으로써 모든 불순한 것들에 저항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권 선생님 편지 읽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부디 좋은 동화를 계속 쓰시기 바랍니다.


혼자계시고 싶다 했지요? 나도 그래요. 남들과 같이 앉아있거나 여행하는 것 딱 싫어요. 밥 먹고 잠자는 것까지 혼자가 좋아요. 그런데 권 선생의 경우는 안돼요. 몸이 그렇게 돼 있으니 아플 때는 누가 있어야지요. 몸의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연락을 해야 합니다.


이 가을에 권 선생님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빌면서 이만 몇 자 적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글이 알려지기를 원하며 백방으로 알아보고 사람들을 만나보고. 직접 글을 전달하며 노력하셨죠. 그러는 와중에 교직에 담긴 몸이기에 해야할 일들이 있어 미뤄지기도 했던 그 순간들 조차도 솔직하게 담담하게 말하며 사과를 구하기도 하시구요. 본인을 비방하는 이에게 반박을 위해 반박문 180매 써 놓으셨다며 약간의 흥분을 섞은 편지글조차 놀랍기도 하구요, 논문 120매 가량을 초안해 놓았다니. 지금 전 A4 1장도 적어내기 힘든데말이죠. 그 시대 당시의 출판계와 몇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조차도 편지글이었기에 가능한 솔직한 이야기들에 전 흥미진진함이 더해져서 보게 되었어요.


두 분 모두 어린이들을 위한 일에 애쓰셨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기도 해서 좌절하기도 하셨죠. 지금도 살아 계신다면 얼마나 속상해하실까요? 그 당시의 시대상을 두고 두 분이 나누신 글들이 그 시절을 객관적으로 꿰뚫고 있다는 생각도 하였구요. 


그리고, 이 책은 계속 읽어 나가고 싶으면서도, 오래오래 읽고 싶었습니다.

쉽게, 빨리 이 책을 덮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평생 버리지 못할 책이 몇 권 있는데, 이 책 역시 그 책들 곁에 놓여질거구요.

이 분들의 책들, 이 분들을 이야기한 책들을 만나고 싶어졌고, 만나야겠습니다.

이 책의 문학적 가치, 의미, 이런 이론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읽는 내내 마음을 움직였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우 말 듣고 눈물이 났다.

권 선생이 지금까지 그렇게

내 곁에 있는 줄 몰랐다. (2003.06.17)

-2003년 8월 25일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정웁니다. 그만 끊겠습니다."

딱 이 두마디 말만 하고 전화는 끊겼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맏아들이자 상준이네 아버지였습니다. 전화가 끊기고 나서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셧다는 것을... (중략)

선생님, 이담에 우리도 때가 되면 차례차례 선생님이 걸어가신 그 산길 모퉁이로 돌아가서 거기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부디 큰 눈을 더 부릅뜨셔서 이승에 남아 있는 우리들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살아 생전처럼 호되게 꾸지람하시고요.

선생님의 영전에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진달래꽃 한 다발 마음으로 바칩니다.

2003년 8월 25일 오후 5시

권정생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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