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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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 씨가 살고 있는 집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폭풍(wuthering)'이라는 말은 비바람이 몰아칠 때 이런 높은 곳이 감당해야 하는 대기의 격동을 가리키는 이 고장의 표현이다. 이렇게 높으니 사시사철 상쾌하고 통풍은 좋겠다. 절벽 위로 불어오는 북풍의 위력은 본채 가까이에 있는 전나무 두어 그루가 미처 못 자라고 심히 기울어져 있는 것과 앙상한 관목 한 무더기가 마치 태양에게 구걸하는 거지처럼 모두 팔을 한쪽으로 뻗은 것으로도 능히 짐작된다.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문학동네) 11p

그렇게나 망설이고 망설이던 고전이었다. 내가 읽어낼 수 있을지 용기가 쉽게 생기지 않았고, 함께 읽는 이가 있어서 과감하게 읽어보기로 결정하였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하인인 넬리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이다. 과거의 이야기는 넬리 부인에게서 전해 들으며 현재의 모습은 록 우드가 직접 만나는 그들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시간 순으로 보자면 폭풍의 언덕에서 살았던 언쇼 가족의 모습이 제일 먼저 비친다. 언쇼씨가 일을 위해 잠시 집을 떠나있다가 돌아오면서 히스클리프를 데려오면서 모든 이야기는 극적으로 변한다. 어쩌면 '히스클리프'가 원인이 되지 않았을 테지만 그 가정에서 겨우 이어지는 평범하다고 여기는 모습은 와르르 무너진다. 언쇼씨가 히스클리프를 데려오게 된 경위나 그의 과거, 그를 특히 예뻐하게 된 이유들은 밝혀지지 않는다. 이 과거의 모습 역시 하인 넬리의 시선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 가정에 굴러온 돈으로 지내 온 히스클리프는 무서우리만치 동요하는 표정이나 슬퍼하는 감정을 숨기고 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 하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내내 이 시선이 넬리의 시선인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어쩌면 히스클리프 역시 어딘가에는 분풀이를 하지 않았을까?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애정이 끊어낼 수 없는 것으로 되기까지 그들의 감정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이 주고받았을지 모른다.

지금 같아서는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나도 천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히스클리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가 알아서는 안 돼. 넬리,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건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그 애의 영혼과 내 영혼이 뭘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어. 린턴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과 다른 것은 달빛이 번개와 다르고, 서리가 불꽃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인걸.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문학동네) 130p

넬리, 내가 곧 히스클리프인 거야. 그 애는 내 마음속에 항상, 항상 있는 거야.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야. 내가 나 자신에게 항상 기쁨을 주지는 않잖아. 그 애는 기쁨을 주려고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있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진다느니 하는 말은 두 번 다시 하면 안 돼.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어. 이제...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문학동네) 133p

그들의 사랑이 허락될 수 없는 것을 캐서린도 히스클리프도 알았고, 어쩌면 캐서린은 너무나 이성적인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지탱해 온 모든 것이 끊어진 느낌이었고, 그를 떠나게 하였고 다시 복수만이 자신 안에 가득 채워서 돌아왔다.

너무나 비이성적이고 비뚤어진 성격의 인물들 사이에서 유독 넬리만이 현명한 자세를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곧 그 시선에 갇혀버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하였다. 사실 넬리가 보는 것이 모든 것의 진실이라고 느끼며 우리가 그들의 삐뚤어진 욕망과 복수심과 애정들을 바라보고 똑같이 마음에 폭풍이 이는 것을 느끼는 것을 쉽게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그의 마지막 모습은 희한하게도 우리가 책장을 덮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했지만 도리어 다시 책을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분명히 악인의 모습인 히스클리프가 이사벨라 린튼이 사랑에 빠지게 만들 만큼 매력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캐서린의 행동을, 왜 다시 보고 싶어지는 것인지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지내는 장소이다. 폭풍의 언덕('워더링 하이츠')와 드레스 크로스 저택, 이 상반된 곳의 사람들은 분위기만큼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드레스 크로스 저택에 살면서 뭔가에 끌린 듯 폭풍의 언덕으로 가고야 마는 캐서린 린튼의 모습은 억눌러져 있을 욕망을 결국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휘몰아치는 듯한 감정으로 이 책에 그대로 몰입되게 하는 글에, 적잖게 놀라며 마지막까지 읽은 후 마음을 놓고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 책을 읽게 될 것을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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