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두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두꺼운 한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생소한 용어와 문화적인 것들에 어지러워 하면서도 다시 너무나 진하게 연결되는 '연대'로 가는 길을 발견하게 한 듯하다.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이 부제가 전혀 생소하지 않게 느껴질 만큼 이주민으로써의 삶에서 여전히 토박이, 원주민으로써 지내 온 그들의 부모 세대가 전해 준 지혜를 그리워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식물학자가 전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들에 감사를 표하는 것은 함부로 취하지 않고, 자연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객관적인 자료를 보여 주고, 수업을 해야 하는 그녀의 위치에서 그녀가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과 학생들이 비로소 느끼는 것들을 확인해가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의식을 치르며 땅과 모든 것에 감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 딸이 자라고 아버지의 작아진 등을 바라보며 회상하게 되는 모습은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아빠의 등을 바라보는 듯이 느끼게 하였다.

'어머니 대지'라는 이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잡고 갔고, 내가 이 책을 완독하게 된 힘은 그 대지의 이야기를, 대지에 감사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물론, 함께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더 힘을 내게 하였다.)

이야기는 땅을, 우리와 땅의 관계를 복원하는 가장 효과적인 연장 중 하나다. 우리는 어떤 장소에 살아 있는 옛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새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이야기꾼이 아니라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으며 옛이야기의 실에서 새 이야기가 직조된다.

- <향모를 땋으며> 497P

내가 결국 이 책에서 마지막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은 '이야기의 끈'이었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이야기를 한다. 자연, 대지, 감사, 회복, 치유, 양육, 지혜 ... ! 그것을 왜 이야기의 형식으로 해 나갔을까 생각하였고 작가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글에서 확신을 했다. 지금 새롭게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이 글도 1분이 지나면 다시 지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연결된 그 이야기는 향모를 땋듯이, 직조해 나가듯이 이야기 역시 서로의 끈을 받고 이어가며 직조되고 연결되어 간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고, 그 이야기들을 우리는 계속 읽고 듣고 봐 나가야 한다.

가능한 일일까?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여러 두려움이 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계를 바꾸고 싶은 의지에 타오를지도 모른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하지만 일단은 이야기에서 시작되어야 그 의지가 희미해지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모임을 하며 나의 버릇을 갑자기 발견한 것처럼, 문득 내가 의식하지 않은 많은 것들은 결국 내가 나를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나서야 발견되곤 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의 버릇, 나의 말투, 나의 글, 나의 이야기들 모두가 촘촘하게 땋여져가고 있고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 것을 느낀다.

연말만 되면 많은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제는 그저 하나만 남기고도 오히려 더 강하게 나를 세우는 걸 안다. 2022년 나의 단어는, '이야기'이다. "모든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으며 옛이야기의 실에서 새 이야기가 직조된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직조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향모를 두 손으로 천천히 꼼꼼히 땋으면서 그들이 생각했을 감사함, 단단한 믿음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야기들을 두 손으로, 쓰며 이야기하며 천천히 직조해 나가고 싶다. 그들의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한 명이라도 읽히고 조금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나의 두 손은 가장 큰 의미를 만들어낼 것임을 단단하게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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