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쪽
아흔 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랑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도덕 역시 시간의 문제일 따름이고, 머지않아 당신도 그걸 알게 될 거에요, 라고 말하곤 했따.
16쪽
그 무렵, 나는 늙음의 첫 번째 증상이 자신의 부모와 비슷해지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영원한 젊음을 선고받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24쪽
중요하 정치 거물들이 하룻밤의 연인에게 국가 기밀을 털어놓는 식으로 가볍게 입을 놀리면서도, 옆방에 있는 그 누구라도 얇은 판자 칸막이 너머로 엿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독신 생활의 달랠 길 없는 욕망을 홍등가의 고아들과 밤마다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채우고 있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린다는 사실도 그렇게 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그런 얘기를 잊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람들이 나를 좋게 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중한 것만을 높이 평가했다.
48쪽
젊음에 대해 너무나 여유만만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은 언제 해도 절대로 늦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60쪽
이런 빌어먹을, 얼굴이 마음을 폭로하며 배신을 하다니!
66쪽
반면 사장실은 조용하고 시원했으며, 우리와는 별개의 이상적인 영토에 자리 잡고 있었다.
67쪽
그 무엇도 바깥 거리의 날씨가 아니라 봄날처럼 시원한 사무실에나 걸맞았다. 옷을 차려입는 데 두 시간 가까이 허비했던 나는 가난의 수치스러움을 느꼈고, 그러자 더욱 화가 치밀었다.
73쪽
그러자 나는 내 사랑이 될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모든 사랑들로 목이 메었다.
83쪽
나는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는 신기한 미덕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운전사와 함께 밤 10시에 그곳으로 갔다.
89쪽
그 작품들을 통해서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은 행복한 사랑이 아니라 버림받은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돌과 화염병으로 무장한 학생 시위대에 끼어서 나의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나는 사랑에 미쳤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앞장서지 않기 위해 쇠약한 몸에서 남은 힘을 모두 짜내 싸워야 했따.
99쪽
2500년 전에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와는 전혀 상관 없이 실크 종이로 만든 화관으로 뒤덮인 의무적인 축제다.
103쪽
나는 잠들어 있는 그녀를 더 사랑하고 있었다.
106쪽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상처보다도 그가 피임구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13쪽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늙고 외로운 나 자신이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125쪽
질투가 진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해 왔지요.
127쪽
˝우리는 타인들이 우리라고 믿는 것처럼 될 수도 있다.˝
132쪽
최악의 남자라 할지라도 평생 내 곁에 있어주려 했다면, 영혼이라도 바쳤을 거에요. 다행히 적절한 때에 중국인 남편을 만났지요. 새끼손가락과 결혼한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는 나만의 남자예요.
그녀를 꺠우세요. 그리고 당신의 소심함과 인색함의 대가로 악마가 선물한 노새 같은 당신 물건으로 그녀가 흡족해 할 때까지 사랑을 안겨주세요.
진심으로 말하는데,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경이를 맛보지 않고 죽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134쪽
그 아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창녀뿐이오, 라고 나는 말했다.
142쪽
그러나 아흔 번째 생일에 델가디나의 행복한 침대 속에서 살아 있는 몸으로 눈을 뜨자. 인생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어지러운 강물처럼 흘러가 버리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석쇠에서 몸을 뒤집어 앞으로 또 90년 동안 나머지 한쪽을 익힐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흡족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155쪽
˝노래하지 않는 사람은 노래하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도 없다.˝
154쪽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비평가들은 이 책이 2004년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 그런가.
노인의 고독과 사랑, 성에 대한 고찰이자 작가들이 끝 없이 영감을 얻게 되는 사창가의 모습을 그려낸 문학 작품인지, 나이 든 할아버지의 판타지를 그려낸 소설인지.
사랑 앞에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문학의 아름다움과, 90대 노인의 추잡한 로리타적 성매매사건으로 알려질 현실의 괴리. 낭만이 부재한 현실이라고 할수도 없고, 현실감이 부족한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는.
세상과 문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세상과 문학을 정확히 분리시켜 문학을 단순히 유희적으로만, 사유적으로만 받아들이자고 책을 읽는 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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