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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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회사의 면접을 보러 갔다. 얼핏 봐도 남자는 80명 정도 되어 보이는데 여자는 6명 정도 밖에 없었다. 일반 식품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에 같이 면접을 보러 갔던 나보다 한 살 어린 여자 후배는 어차피 그 회사 여자는 안 뽑는다며 면접을 가긴 하지만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같이 면접에 들어갔고 열심히 했지만 자기소개를 할 때 말이 막혔던 나는 합격했고 말 한 번 절지 않았던 그 후배는 떨어졌다. 나는 남자였고 그 후배는 여자였다.

회사에 다니는 한 여자 사람 친구는 일을 더 하고 싶기 때문에 적어도 30살은 넘어야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남자 사람 친구 중에 아이와 자신의 커리어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아이는 남녀가 함께 작용해야 생기는 것인데도. 또 다른 여자 사람 친구는 회식자리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언어적인 성희롱과 술 먹으면 늘상 일어나는 신체접촉에 대해 말해주며 너는 개저씨가 되지 말라 한다. 그리고 회식 다음날 그들은 하나같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시전한다고 한다. 기억력까지 좋지 않은 개저씨인가보다.

남자 사람 친구들의 카톡방에는 심심치 않게 조선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인간들이 있으며 여자는 집에서 일이나 하지 왜 직장에 나와서 자기한테 짜증을 내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남자 상사가 갈군다고 그 사람은 집에서 청소를 해야 맞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들어보지 못 했다.

여자 사람 친구와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 자기는 그래도 여자라서, 그게 옳은 건 아니지만 남자보다 돈을 덜 벌고 모아둔 돈이 더 적어도 괜찮을 거 같다고 한다. 반대로 남자 사람 친구는 이렇게 벌어서는 결혼해봤자 불행할 거 같다고만 한다.

너무나 일상적이다. 차별과 프레임에 갇혀 자신을, 남을 재단하며 살아가는 게.

밑줄, 생각

16쪽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은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 그러나 가끔 어디까지가 사회화된 젠더 역할의 억압이고 어디까지가 남성과 여성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23쪽
그렇게 성난 투로 이야기해서는 안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30쪽
우리가 지금부터 아이들을 다르게 키운다면, 앞으로 오십 년 혹은 백 년 뒤에는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물질적 수단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더는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 페미니즘은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가 억압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평등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게끔 하는 운동이다. 성 평등 혹은 프레임 벗기기와 같은 의미라고 봐도 좋을 듯. 그런 면에서 여성 혐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본래 의미를 모두 다 담지도 못할뿐더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대로 메시지를 전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전략적으로 좋은 단어가 아닌 것 같다.

37쪽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51쪽
페미니스트 :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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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꿈맛 - 꿈을 안고 떠난 도쿄에서의 365일 청춘일기
허안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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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왜 이렇게 이 책이 좋을까 생각했다.
도쿄로 유학을 떠나기 전의 설렘이나 처음 도시를 돌아보고 학교에 가고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고 놀고
그러면서 밖에서 만나면 조금은 어색하고
외국 생활이라는 설레임에 외로움은 더욱 돋아 보여
오히려 더 사람과 사랑과 한국에 사무치는 생활
그리고 막상 좋은 기억보다 씁쓸한 기억이 많음에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멀어져 가는 도시를 볼 때 느껴지는 아쉬움까지

그 사람의 감정이 하나하나 전부 다 이해가 됐다.
잊고 있던 나의 교환학생 시절의 감정이 작가의 이야기에 하나하나 다시 다 떠올랐다.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나의 추억을 읽는 느낌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일본 여행기도 참 멋졌지만
허안나 작가의 생활기가 좀 더 찌질하고 솔직하고 평범하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설레고 뿌듯하니 마음에 든다.
그 시간의 이야기들을, 생각들을, 감정들을 책으로 보관하고 있는 작가가 부러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까지 도쿄라는 도시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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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생 자르기 Fired K-픽션 13
장강명 지음, 테레사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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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 얼마나 잘못된 세상인가.

돈 벌라고 하는 거, 돈 벌자고 시키는 거 돈은 거 제대로 계산합시다. 열정은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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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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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 또한 현실이라, 더 많은 사람들의 더 아픈 사람들의 현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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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제국 -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기록한 우리 시대 음식열전!
황교익 지음 / 따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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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행복은 음식남녀(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것)라고 하는데 사랑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빈번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 오히려 고통이 더 클 때도 있지만 음과 식만큼은 매일 같이 하루 세 번 혹은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인데, 이 순간만큼이라도 좀 더 행복해지고 싶어 이 책을 읽었다. 미식에 있어서 실습 없이 이론만 공부한다고 하여 뭐가 나아지긴 할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밀린 실습을 하게 됐을 때 알고 먹는 것과 그냥 먹는 것은 그 마음부터 다르고 마음이 다르면 보는 것이 달라지고 보는 것이 달라지면 느끼는 것이 달라질 테니 이 책을 읽는 것이 내 삶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매일 세 번 먹는 밥인데, 하루에 세 번만 행복해도 그 삶은 훌륭한 삶이 아닐까.

근데 또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먹는 음식들의 비루함을 알게 되어 오히려 불행만 늘어가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잘만 행복해하며 콜라를 들이켜던 때가 콜라는 죽음의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미식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빛보다 어둠이 더 많은 세상에서 빛을 보겠다고 어둠에 고통스러워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마 그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보는 기쁨이 백 번의 고통을 뒤덮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있고 좋은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거겠지?

허세스럽지 않고 정말 음식을 사랑하는 진심이 묻어 나와 읽기에 좋은 글인 것 같다. 음식에 계급을 나누고 입에 침을 고이게 하는 수식어가 아니라 세련됨과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이런저런 쓸데없는 표현과 위화감 드는 영어 단어나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를 남발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좋다.

이 책을 읽었다고 당장 오늘 저녁부터 음식의 맛이 달리 느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매일 먹는 음식,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밑줄

17쪽 물
물은 스스로 비어 있으니 모든 맛의 바탕이 된다.
물은 눈으로 봐 맑아야 하며 냄새가 없어야 한다. 마셨을 때 혀에서 가벼워야 하며 목구멍으로 넘길 때 부드러워야 한다.

20쪽 소금
소금의 노릇은, 앞에서 말했듯이 음식 재료에 숨어 있는 맛을 끌어내는 것이 그 핵심이다. 잡다한 맛이 없으면서 짠맛이 부드러운 소금을 가장 좋은 소금이라 할 수 있다.

25쪽 식초
식초는 신맛 안에 그 원료의 향을 품고 있으며, 그 향은 원료였을 때보다 미약하나 때로는 그로 해서 더 감미로운 맛을 보탠다.
기본이 없으면 사이비일 뿐이다.

28쪽
고추에는 캡사이신이라는 매운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입 안에 들어가 통각을 자극하면 몸에서 이 통증을 잊기 위해 엔돌핀이라는 ‘생리적 마약‘을 분비하게 되고, 따라서 기분이 좋아지게 되니, 사람들이 고추를 즐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추를 즐기는 우리 민족은 엔돌핀, 즉 ‘생리적 마약‘ 중독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35쪽 설탕
무뇌아적 중독을 일으키는 ‘환상‘의 맛
단맛의 음식을 두고 맛있다고 찬사를 보내는 것은 미식가로서 자질이 없다는 증거이다.

37쪽 참기름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을 똑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독재자이다.

39쪽 화학조미료
화학 조미료의 가장 큰 해악은 식재료의 질을 숨길 수 있다는 것이다.
화학조미료는 그 자체로 맛있는 것은 아니다. 식재료들 제각각의 맛을 뭉그러뜨리는 역할을 하는데, 툭툭 튀어나오는 맛들의 중간에 서서 조절을 한다.

43쪽 혀
음식 맛의 대부분은 향으로 느끼는데 이를 담당하는 신체 부위는 코이다.

49쪽 밥
‘갓 도정한 쌀‘이란 조건이 밥맛에서 제일 중요하다.

73쪽 삼겹살구이
프로판가스가 보급되고 이를 이용한 식탁용 조리기구가 개발되면서 만들어진 음식으로 1970년대 중반에 외식업계에 등장하였다.
삼겹살구이는 ‘된장 쌈‘의 한 재료에 불과할 수도 있다.

75쪽 돼지갈비
간장과 설탕 타는 맛으로 먹는다

82쪽 열역학
복사열을 이용하자면 숯불이 제일 좋다.
숯의 양이 많아야 하며, 숯불과 고기의 거리를 최단으로 해야 한다.
백탄이 고기 굽기에 가장 좋다.

92쪽 비빔밥
비빔밥의 나물들을 제대로 조리해 내자면 보통의 공력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 공력을 고추장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94쪽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어머니의 수와 같다.

95쪽
음식을 해서 먹인다는 것은 곧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일이다. 이것은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사랑의 행위이다. 아내가 내 삶의 조정자 노릇을 할 수 있는 권위는 이 사랑이 부여한 것이다.

99쪽 잔치국수
대멸을 쓰려면 멸치의 머리와 내장은 버려야 한다. 중멸은 그냥 써도 된다. 오래되어 눅눅한 멸치는 팬에 덖으면 잡 내가 달아나지만 좋은 멸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멸치는 강한 불에 오래 끓이면 쓴맛이 많아진다. 찬물에 하룻밤 우렸다가 살짝 끓여 비린내만 날리면 더없이 고급스런 국물이 만들어진다. 대멸을 불에 구워 끓이면 강하고 복잡한 맛의 국물이 만들어진다.

수연소면이 식감에서 가장 좋다. 국수는 제조 후 묵힌 것이 좋다. 그래야 생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는다. 국수를 삶을 때는 물의 온도 변화가 없어야 한다. 물이 끓으면서 그 힘으로 국수가 저절로 휘돌아치게 하는 것이 좋다. 헹구는 물은 얼음처럼 차가워야 한다. 맛있는 잔치국수는, 제대로 된 국물과 국수를 만들어 내자면, 돈이 많이 드는 음식이다.

102쪽 칼국수
칼국수는 크게 닭국물, 사골국물, 해물국물을 쓴다. 일반적을 이 국물에 따라 면의 굵기가 달라지는데, 사골칼국수의 면이 가장 가늘고 닭칼국수는 중간이며 해물칼국수는 굵은 편이다. 이런 차이는 국물 맛의 강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가는 면의 사골 칼국수는 씹지 않고 후루룩 넘기면서 목넘김의 쾌감을 즐기고, 굵은 면의 해물칼국수는 오물오물 씹으면서 쫀득한 면의 식감을 즐기는 게 요령이다. 공장에서 만들어 파는 국수는 어떤 좋은 국물이든 맛을 버린다.

107쪽 냉면 분류법
평양냉면은 메밀 면과 육수의 조화를 중시하는 음식이고, 함흥냉면은 감자 면과 고춧가루 양념의 조화를 중심으로 하는 음식이다.
메밀국수 - 평양냉면, 막국수, 소바, 진주냉면
감자국수 - 평양냉면
밀국수 - 부산밀면

110쪽 떡
쌀알이 씹혀야 떡이 부드럽다. 공장 떡은 고온에서 손상된 고운 쌀가루로 떡을 하다 보니 퍽퍽하고 단단하고 빠득빠득하지만 재래 도구로 빻아 떡을 빚으면 떡에서 쌀알이 씹힌다.

114쪽
떡볶이는 ‘떡을 이용한 음식‘이라기보다 고추장과 설탕을 이용한 음식‘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116쪽 두부
두부 맛은 콩 맛이다. 두부는 만들어진 지 하루 정도 지나면 그냥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다. 맛있는 두부는, 입 안에 넣었을 때 약간의 콩 비린내가 받으면서 입천장 가득 고소함이 확 번져야 한다. 끝에 남는 것은 콩의 향이어야 한다. 부드러움의 정도는, 두부 조각을 혀 위에 올리고 입 천장 쪽으로 밀어 올렸을 때 별 저항감 없이 풀어져야 한다. 또 덩이 진 것이 압 안 여기저기 흩어지지 않아야 한다. 다 삼키고 난 다음에는 혀와 입천장에 이물감이 없어야 한다.

119쪽
순대의 맛은 바로 이 돼지 피의 선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봐야 한다.

120쪽 잡채
식은 채로 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124쪽 콩나물 무침
데치기, 이게 콩나물 요리의 알파이며 오메가이다. 팔팔 끓는 물에 소금 조금 넣고 뚜껑 연 채로 데치는 것이 더 낫다. 데칠 때 마늘 조금 넣으면 단맛까지 더해진다.

126쪽 배추김치
배추김치 맛의 핵심은 개운한 산미이다. 이런 배추김치를 만들기 위한 첫째 조건은 양념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134쪽 고수
고수는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재배하였던 푸성귀이다.

136쪽 풋 옥수수
옥수수 맛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밭에서 따자마자 찌는 것이다. 이게 불가능하다면 이미 딴 풋옥수수는 냉장 보관을 하고, 그래도 24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이미 찐 것은 랩에 돌돌 말아 공기가 안 통하게 하고는 냉동하였다가 데우면 갓 찐 옥수수와 맛이 같다. 풋옥수수를 찔 때 설탕 등 단맛을 더하면 향이 죽는다. 소금은 단맛을 강화하고 향도 살린다.

139쪽 사과
봉지 씌우지 않은 사과 맛을 보고 나면 봉지 사과는 싱겁다 할 것이다. 보기 좋은 것, 단맛 강한 것 좇다가 진정한 사과 맛을 잊고 사는 것이다.

141쪽 포도
향을 얻으려면 단맛을 버려야 하는데, 이게 한국인들에게 쉽지 않다.

143쪽 곶감
곶감 표면에 하얗게 이는 분은 포도당과 과당이 넘쳐 밖으로 삐져나온 것이다.
자연 건조한 것이라야 고운 향이 난다

147쪽 임지호의 매화차
˝맛에는 순수한 맛과 변형된 맛이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요리는 자연을 다치지 않고, 그 재료의 원초적인 맛을 그대로 먹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수한 맛입니다. 순수한 맛은 순수한 마음과 통합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은 정신적인 행위입니다. 마음을 열고 풀잎을 보면 풀잎과 제가 일체를 이루게 됩니다. 저와 일체가 된 풀잎을 무념무상의 지경에서 요리합니다. 그러면 이 음식을 먹는 사람도 이 음식과 일체가 되고. 즉, 요리사-요리-손님이 일체가 되는 겁니다. 사람을 보면 느낌이란 것이 있지요. 음식에도 이런 느낌이란 게 있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으면 그 음식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지요.˝

152쪽 커피
신맛, 단맛, 쓴맛 이 세 가지 맛의 배합에 기댈 뿐이다.

156쪽
공장 막걸리는 상온에 하루 정도 둬서 병이 부풀어 올랐을 때 냉장했다가 마시면 탄산가스 맛을 얻을 수 있다. 막걸리는 와인과 맛의 중심이 전혀 다른 술이다. 막걸리 세계화한다고 와인 소믈리에에게 막걸리를 감별케 하는 것은 어색해 보인다. 좋은 막걸리 맛은 시골 할아버지들이 더 잘 알 수 있다. 와인 잔에 막걸리를 따라 마시는 것도 맞지 않다. 막걸리가 마르면서 잔에 남기는 얼룩은 흉하다. 백자가 맞다.

159쪽
좋은 술은 깨끗하게 넘어가고 뒷맛이 깔끔해야 한다. 도수 낮은 희석식 소주가 그렇기는 한데, 이는 첨가제를 넣어 얻어 낸 맞일 뿐이다. 좋은 술은 술기운이 단전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와 좀처럼 머리까지 치지는 않아야 한다. 희석식 소주는 머리부터 친다. 첨가물로 인해 이게 더 심할 수도 있다.

160쪽 와인
와인은 발효공학을 취미로 삼지 않는 한 일반인들이 공부할 것도 아니며 공부할 여건도 안 된다. 즐기면 그만이다.

165쪽 콜라
죽음의 향내가 난다. 강한 중독성을 일으키는 음식에서는 대체로 ‘죽음의 향‘이난다.

167쪽 인스턴트 라면
짠맛을 왕창 올리고 그 짠맛의 날카로움을 죽이기 위하여 감칠맛의 첨가물을 더함으로써 밸런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170쪽 돈가스
돈가스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돼지고기와 튀김옷, 튀김용 기름이다. 돼지고기 60퍼센트, 튀김옷 20퍼센트, 튀김용 기름 20퍼센트.

173쪽 스시
밥이 중심에 서야 한다

178쪽 인도음식
인도음식의 매력을 들자면, 그 강한 향신료들이 입 안에서 요동을 쳐도 혀와 코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일이 없어 그 맛을 오래, 깊이 즐기게 한다는 것이다. 향신료를 이만큼 잘 다룰 줄 아는 민족이 있을까 싶다.

190쪽 생선회
일본식은 회를 두툼하고 큼직하게 썰므로 한 점이 한 입에 꽉 찬다. 이런 식은 생선 그 자체의 맛을 즐겨야 한다. 그러니까 되도록이면 옅은 양념장에 찍어 생선의 육즙이 온 입 안을 감싸게 하는 것이 좋다. 이 두툼한 생선을 상추 위에 올려 마늘, 풋고추에 된장을 발라 먹으면 맛이 없다. 생선만을 씹을 때는 턱에 사뿐히 힘을 줘도 되지만 쌈을 싸게 되면 와작와작 큰 힘이 들어가게 되고, 따라서 쌈 속의 생선은 물컹물컹 뭉개지듯 허물어지기 때문에 식감이 좋지 않게 된다. 대중 횟집들이 일본식을 따르면서도 생선을 그보다 얇게 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얇게 썬 생선을 여러 토막 올려 쌈 싸 먹으면 씹는 맛이 난다. 씹는 맛으로 치자면 막회가 최고다. 뼈째 총총 썰어서 채소와 함께 비벼 우걱우걱 씹는 맛. 이런 막회는 와사비 간장으로 먹으면 맛이 안 난다. 그러니까 일본식이 낫다 우리식이 낫다가 아니라 회를 치는 방법에 따라 먹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193쪽 진상품
조선시대 진상과 공물의 내용을 보면 그 지역의 것이 특별히 맛있어 임금이 친히 찾았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중앙이 필요하니 그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을 거두어 갔을 뿐이다. ˝우리 지역에서 궁궐에 진상을 많이 하였다.˝고 자랑하는 것은 ˝우리 지역에 가렴주구가 횡행하여 백성이 굶주리고 도탄에 빠졌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역의 특산물은 그 지역의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며, 생산자들의 땀이 서린 노동의 산물이다. 이 신성한 물품에 조선 왕가와 지배계급의 탐욕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덧씌우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205쪽 과메기
꽁치를 말린 것을 과메기라 한다. 최상의 과메기를 얻자면 통째로 말려야 한다. 이를 통말이라 한다.

207쪽 쥐포
쥐치포가 바른 말이다. 쥐포는 생선의 포이지만 생선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설탕 맛으로 먹는다고 하는 것이 맞다.

213쪽 대게
대게 앞에는 보통 ‘영덕‘이 붙는다. 예전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동해안의 대게가 영덕에 집산을 하여 내륙으로 이동되어 그리 이름 붙은 것이다. 맛은 매한가지이다. 좋은 대게는 살에 결이 있다. 닭살 찢어지듯 결대로 쭉쭉 찢어지는 것이 좋은 대게이다. 물이 차 있는 대게를 흔히 물게라 한다. 물게는 살이 물 안에 담겨 있는 꼴이라 살의 탄력이 없고 싱겁다. 대게의 맛은 크기에 달려 있지 않다. 단단한 대게는 작아도 맛있다. 단단하고 맛있는 대게는 배딱지의 색깔이 짙다. 배딱지가 투명할수록 물이 많이 차 있는 것이다. 배딱지 부분을 힘을 주어 꾹 눌렀을 때 물게는 물렁하고 물이 쭉 나온다. 대게는 쪄서 따뜻할 때 먹는 것보다 차게 식혀 먹는 것이 낫다.

215쪽 꽃게
봄에는 암꽃게가, 가을에는 수꽃게가 맛있다. 한국 사람들은 한자리에서 한 종류의 음식을 배 터지게 먹는 습성이 있다. 향이 약한 음식은 이렇게 먹어도 별 무리가 없다. 꽃게처럼 강한 향의 음식은 한자리에서 많이 먹으면 후각이 지쳐 뒤에는 무슨 맛으로 먹는지도 모르게 된다. 최소량에서 오히려 미각의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

219쪽
˝돌에 붙어 자라야 석화지요. 바다 위 양식장에서 자라는 것은 그냥 ‘양식 굴‘이구요. 크다고 석화라 불리면 진짜 석화들이 섭섭하지요. 맛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돌에 붙어 자라는 진짜 석화는 조수 간만의 차로 하루에 두 번 바닷물 밖에 노출된다. 그러니까 햇볕에 말려지고 바닷바람에 씻기면서 그 맛이 깊어진다. 양식 굴은 자라는 동안 물 바깥을 구경할 일이 없다.그래서 맛이 ‘맹탕‘이다. 비꼬자면, 허우대만 멀쩡한 카사노바라고나 할까? 세상만사,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223쪽 젖
뭔가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에게 사랑 없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행이다. 끼니로서의 음식,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 서글프고 처연한. 결국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은, 먹고자 하는 것은, 젖과 같은 사랑이다.

224쪽 미식
어둠이 있어야 빛의 황홀도 잇는 것이다. 미식이란, 음식에서 어둠의 맛까지 느끼는 일이다.

226쪽 나가며
미각은 모든 감각과 통한다. 섬세하게 다듬으면 세상이 보이고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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