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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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를 시작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찾아 읽어보기 시작했다. 1Q84를 읽느라 두꺼운 책은 읽고 싶지 않아 개중 짧아 보이는 책을 골라 빌려왔다. 239쪽의 애프터 다크. 거장의 숨결을 짧은 책으로 좀 손 쉽게 느껴볼까 했는데 숨결은 고사하고 한숨만 나온다. 

 내가 읽은 건 도대체 무엇인지. 뭘 의미하는 내용인건지. 하루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데. 이 다음 책으로는 애프터 다크와 함께 빌려온 언더그라운드를 읽어볼까 한다. 옴진리교 사건의 피해자와 관련자들에 대한 인터뷰 집이라던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필터를 통해 옴진리교 사건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으면 좋겠다. 

 문학 책을 읽을 때 작가를 확인하고 읽는 게 좋은 것이니 아닌지 잘 모르겠다. 1Q84를 읽고 애프터 다크를 바로 이어서 읽으니 소설의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의 색감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 내용이 완전히 다른 것이더라도. 애프터 다크를 읽기 시작하니까 꼭 1Q84와 시간적 배경은 같고 아오마메와 덴고가 생활하는 공간이 아닌 바로 옆의 다른 도시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람들의 일만 같다. 1Q84가 주었던 이미지가 모두 어렴풋해지고 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해야 했던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예쁜 외모 덕에 사랑받고 그 사랑에 어긋나지 않게 다른 이의 기대를 맞추며 살아온 아사이 에리. 한동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뒤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잠을 자며 자기 방과 TV 속에 있는 시리카와의 사무실을 닮은 빈 방을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아사이 에리는 눈을 뜨지 않는다. 

 아사이 에리의 동생 아사이 마리. 정치적으로 옳은 먹거리를 좋아하며 스스로를 어둡다고 생각한다. 중국어를 잘 하며 어렸을 때 소외를 경험한 뒤로는 흔들리지 않도록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살아간다. 데니스에서 누나의 친구였던 다카하시를 만난다.

 다카하시. 아사이 에리와 사귀었던 옛 친구가 주선한 더블데이트를 통해 수년 전 아사이 마리와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치킨 샐러드를 먹으러 데니스를 왔다가 마리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다카하시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조금 모순적이다. 먼저 말을 거는 성향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으면서 수년 전에 한 번 만났던 마리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테이블에 합석해버린다. 어쨌든 그는 마리와 함께 일련의 사건을 겪고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트롬본을 연주한다.

 가오루. 덩치가 좋고 힘이 센, 지난 시절에 프로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지만 정체 모를 사건을 겪은 뒤 도망 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고오로기와 고무기와 함께 알파빌에서 일하고 있다.

 궈돈리. 길지 않은 소설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 같았는데 단지 마리와 다카하시, 가오루를 연결시키는 매개체로 사용되고 끝나버리는 인물. 19살 중국 소녀. 일본에서 창부로 생활하고 있다. 시라카와의 주문으로 알파빌로 배달되었다가 갑작스럽게 터진 생리로 인해 시라카와에게 폭행을 당함. 시라카와가 그녀를 ‘주문‘하여 ‘배달‘되었다고 표현한 것처럼 이 책에서 그녀는 도구적으로 사용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라카와. 프로그래머. 기혼. 알파빌에서 종종 창부를 불러 성매매를 함. 소설의 배경이 되는 그 밤에 알파빌에 가서 궈돈리를 불러 폭행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남은 일을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게 끝이다. 이 책을 읽고 나에게 남은 건 인물과 사건의 정보가 전부다. 궈돈리 폭행 사건과 함께 소설의 한 축을 이루는 아사이 에리의 꿈에 대해서는 도저히 느껴지는 바가 없다. 작가는 그 꿈에 대해 아주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하려고 했지만 침대에 누워있던 에리가 TV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라는 사실만 기억된다. 

 에리와 마리가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그 어둠(다크) 후(애프터)에 뭐 어쨌다는 거지? 

 독서 실패. 하루를 날렸다.


밑줄, 생각

198쪽
˝그게 가능하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노력하는 게요?˝
˝노력할 수 있다는 게.˝

199쪽
˝시간을 들여서 자기 세계 같은 걸 조금씩 만들어왔다는 자각은 있어요. 혼자거 거기 들어가 있으면 어느 정도 마음이 놓여요. 하지만 그런 세계를 구태여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제가 상처받기 쉬운 약한 인간이란 뜻 아닌가요? 게다가 그 세계란 것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정말 아무것도아닌, 보잘것없는 세계라고요. 종이 상자로 지은 집처럼 조금만 센 바람이 불면 어디론가 날려갈 것 같은......˝

202쪽
˝그래서 생각하는 건데, 인간은 기억을 연료료 해서 사는 게 아닐까? 그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억인지 아닌지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아. 그냥 연료야. 신문광고지가 됐든, 철학책이 됐든, 야한 화보사진이 됐든,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 됐든, 불을 지필 때는 그냥 종이쪼가리잖아? 불은 ‘오오, 이건 칸트잖아‘라든지 ‘이건 요미우리 신문 석간이군‘이라든디 ‘가슴 끝내주네‘라든지 생각하면서 타는 게 아니야. 불 입장에선 전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해. 그거랑 같은 거야. 소중한 기억도, 별로 소중하지 않은 기억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억도, 정부 공평하게 그냥 연료.˝

221쪽
˝있지, 우리 인생은 밝다, 어둡다로 단순하게 나뉘는 게 아니야. 그 사이에 음영이란 중간지대가 있다고. 음영의 단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게 건전한 지성이야. 그리고 건전한 지성을 획득하려면 나름대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책의 첫 문장 : 보이는 것은 도시의 모습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 : 다음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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