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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는, 제2판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현실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헤쳐보지 않고 단순히 A는 나쁘고 B는 좋으니 B를 실행하면 온누리에 평화가 올 것이라는 접근법이야 원숭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자본론을 설명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봐준다면, 꽤 나 손쉽게 읽히는 자본론 입문서인듯싶다.
밑줄, 생각
49쪽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정리해보면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는 거죠? ‘사용가치‘가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그 상품이 쓸모 있다는 뜻이고, ‘교환가치‘는 그것이 다른 상품과 교환되는 비율을 얘기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상품들이 서로 교환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모두 ‘노동의 성과물‘이기 때문이에요. 교환되는 비율은 그 상품을 만드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되고요.
59쪽
앞으로 얘기할 상품들의 교환 과정은 모두 ‘등가 교환‘이라는 점입니다. ‘등가 교환‘이란 상품 간에 교환이 이루어질 때, 각 상품을 만드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의 비율대로 교환되는 걸 말합니다.
60쪽
이렇게 가정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임수나 사기가 없이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질 때도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입니다.
62쪽
‘C(와인) - M(화폐)‘이나 ‘M(화폐) - C(겨울 외투)‘처럼 상품들 사이에 교환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유통 과정‘이라고 합니다. M(화폐)도 상품인 것 잊지 마시고요.
‘생산 과정‘은 말 그대로 원료, 기계 등을 이용해서 노동자가 상품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화폐가 ‘자본‘으로 기능한다는 것은 단순히 상품 간의 교환을 매개하는 역할을 넘어서서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식하는 주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M (화폐) - C (상품) - M‘ (화폐) : 자본의 일반 공식
63쪽
화폐가 ‘자본‘으로 기능한다는 말의 핵심 의미는 화폐가 ‘돈벌이‘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64쪽
M-C-M‘식에서 M‘은 처음의 M보다 화폐의 액수가 증가했음을 나타내면서,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의 경제활동을 표현합니다.
65쪽
M - C - M‘ - C - M‘‘ - C - M‘‘‘ - C - M‘‘‘‘ .....
이전에는 거래의 ‘수단‘일 뿐이었던 화폐가 ‘자본‘으로 기능하는 순간, 수단에서 ‘목적‘으로 격상되네요.
69쪽
결국 새로운 가치는 ‘유통 과정‘이 아닌 ‘생산 과정‘을 통해서만 창출될 수 있습니다.
: 유통 과정에서 유통을 하기 위해 부지를 매입하고 매장을 꾸미고 프로세스를 구축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련의 과정에 들어가는 노동시간이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볼 수는 없는 건가? 단지 유형의 상품만이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나? 유통업자가 노동시간을 들여 구매의 편리함이라는 가치를 소비자에게 만들어준다고 했을 때, 가치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70쪽
사실 궁극적으로 생각했을 때, 물건의 위치가 바뀌기만 하는 유통 부문에서는 가치가 창출될 수는 없죠.
: 새로운 물질적 상품의 생성만이 가치를 발생시킨다고 하면 무형의 서비스는 마르크스의 시장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인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상품을 소비자가 있는 지역으로 운송하는 것도 유통으로 분류하곤 하는데요.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그런 운송 과정을 유통 과정이 아닌 생산 과정으로 분류했습니다. 기계(차량)와 재료(연료)를 가지고 노동자의 노동(운전, 배달)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으로 파악한 것이지요.
71쪽
마르크스가 유통 과정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물건이 교환되는 과정에 얽힌 일들입니다.
: 위에서 제기한 나의 물음이 해소되었다.
76쪽
변경된 ‘자본의 일반공식‘
(변경 전) M - C - M‘
(변경 후) M - C (LP, MP) - P - C‘ - M‘
77쪽
식의 처음에 나오는 화폐 M은 자본가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가지고 있는 화폐입니다.
()안에 있는 LP와 MP는 각각 노동력(Labor Power : LP)과 생산수단(Means of Production : MP)을 나타냅니다.
노동력도 노동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므로 C(LP)로 표현한 것.
기계나 원료처럼 생산을 위한 도구가 되는 상품을 통틀어서 ‘생산수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C(MP)로 표시합니다.
‘자본‘은 이러한 교환 과정을 거쳐서 노동력과 생산수단이라는 상품(C)으로 형태를 바꾸게 됩니다.
79쪽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가치가 바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의 가치인 셈이죠.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자기 ‘노동력‘의 ‘교환가치‘인 겁니다.
80쪽
P는 생산 Production의 앞 글자를 딴 것입니다.
자본가는 LP와 MP를 이용하여 시장에 내다 팔 상품을 생산(P) 합니다.
P - C‘은 생산 과정(P)을 통해서 새로운 상품(C‘)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나타냅니다.
: M : 자본가의 초기 투자금으로 노동자를 고용(LP), 생산설비를 구입(MP), 생산설비와 노동자의 노동력을 통해 생산을 거쳐(P) 상품이 만들어지고(C‘) 이 상품(C‘)를 판매해 돈을 범(M‘)
C와 M에 각각 ‘ 이 붙은 이유는 초기 자본금(M)보다 수량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81쪽
M-C(LP, MP) 교환 과정과 C‘ - M‘ 교환 과정은 ‘등가 교환‘입니다. 그러므로 가치의 변동이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가치의 변동이 생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생산 과정입니다.
92쪽
‘생산수단‘들은 생산 과정에서 자기 교환가치를 그대로 상품으로 옮깁니다. 이렇게 자기 교환가치를 생산물에 그대로 넘겨주는 ‘생산수단‘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 자본을 ‘불변자본Constant Capital‘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사용한 자본은 ‘가변자본Variable Capital‘이라고 합니다.
노동자는 자신이 받은 임금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가변‘이라는 낱말을 사용하는 거죠.
93쪽
밀가루 8킬로그램 : 8노동시간
제빵기계의 감가상각 : 8노동시간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 : 8노동시간
노동자의 하루(8시간) 임금 : 빵 1개 : 3노동시간
불변자본 C = 밀가루(8노동시간) + 제빵기계의 감가상각(8노동시간) = 16노동시간 = 160,000원
가변자본 C = 3노동시간 (노동자의 하루 임금) = 30,000원
이렇게 자본가가 불변자본 C와 가변자본 V를 구입하는 데 든 비용은 초기 자본금(M) 19만 원입니다.
빵 8개의 가치 = 밀가루 8킬로그램(8노동시간) + 기계 감가상각(8노동시간) + 노동자의 8시간 노동(8노동시간) = 24노동시간
94쪽
빵 8개의 가치 = C(16노동시간) + V(3노동시간) + 5노동시간 = 24노동시간
노동자가 일당을 받지 못하고 온전히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 일한 이 5시간을,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잉여노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시간의 잉여노동을 통해 형성된 5노동시간의 교환가치를 ‘잉여가치‘라고 했습니다.
빵 8개의 가치 = C(16노동시간) + V(3노동시간) + S(5노동시간) = 24노동시간
95쪽
상품의 가치 = C(불변자본) + V(가변자본) + S(잉여가치)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닌 ‘노동력의 대가‘라고 분명히 구별해서 얘기했습니다.
96쪽
자본가는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간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노예주나 봉건영주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에 ‘이윤‘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은폐된 ‘착취‘ 구조입니다.
97쪽
우리의 노동시간을 단축해도 줄어드는 건 자본가가 가져가는 ‘잉여노동‘뿐이죠. 자본가가 노동시간 단축에 이를 악물고 반대하는 것은 자신의 이윤이 줄어드는 것을 막으려는 저항일 뿐입니다.
이윤이란 ‘빼앗긴, 착취당한 노동(잉여가치)‘에서 나온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얘기한 ‘잉여가치론‘입니다.
103쪽
김개똥씨의 하루 8시간 노동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김개똥 씨의 8노동시간 = 필요노동(3노동시간) + 잉여노동(5노동시간)
105쪽
‘필요노동‘이라는 개념은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 중 자신의 임금에 해당하는 시간을 말하는 겁니다.
109쪽
이윤율 = 이윤/비용 = S / (C+V)
112쪼
자본가가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고 노동자들을 끝없이 착취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부를 늘리고 호의호식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고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결국 악마처럼 되지 않고서는 패배자가 되어버리는 ‘생존의 법칙‘ 때문입니다. 그런 법칙의 지배하에 자본가의 인간성은 점점 ‘자본‘의 무한한 탐욕을 닮아가게 됩니다.
113쪽
‘화폐‘ 자체에 대한 자본가의 탐욕에서 나오느냐, 아니면 피 말리는 시장 쟁탈전에서 나오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경우든 결과는 노동자의 ‘착취‘로 이어지요.
이렇게 노동시간의 연장을 통해 더 많은 ‘잉여가치‘를 추구하는 방법 마르크스는 ‘절대적 잉여가치 창출‘이라고 했습니다. 잉여가치의 ‘절대량‘을 늘려 이윤을 추구하는 방법이죠.
126쪽
하루의 노동시간은 8시간 그대로지만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산력 상승이 필요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를 불러오고, 따라서 필요노동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은 고스란히 잉여노동 시간이 되어,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착취해 가는 몫인 ‘잉여가치‘가 늘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말한 ‘상대적 잉여가치 창출‘입니다.
: 기술 발전에 따라 개별 상품에 요구되는 노동시간의 절감으로 발생되는 잉여가치를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결국 중요한 문제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기업 간에는 착취를 근절시키고 기업 내에서는 동일한 노동에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고, 한 기업 내의 최고 임금과 최저 임금의 범위를 한정시키고, 자본이익 즉 주주 배당금의 한계를 설정하고 주식 매매를 통해 얻는 차익에 세금을 물리고 이를 통해 국가가 거둬들인 과도한 잉여가치를 노동의 기회가 없는 사람에게 분배한다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인가?
반면에 내가 기업가라면? 어떤 방식으로 잉여가치를 지나치게 착취하지 않고 기업 밖으로 잉여가치를 환원할 수 있을까? 직급 내 임금의 차이를 최대한 작게 하고 이익금의 일부를 사회로 환원하면 가능할 것인가? 그러한 도덕적 기업 행동이 인센티브로 작용하여 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클까 아니면 투자금의 부족으로 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클까.
127쪽
인플레이션에 따른 화폐 가치의 하락 때문에 ‘상대적 잉여가치 창출‘ 현상이 가려져버린 거죠.
129쪽
새로운 기술 도입에 따른 생산력의 증가로 ‘과도기‘ 시기에 얻을 수 있는 초과이윤을 ‘특별잉여가치‘라고 합니다.
132쪽
생활필수품의 가치가 하락하면 ‘절대적‘ 삶의 질은 높아지더라도 ‘상대적‘ 삶의 질은 오히려 낮아지는 결과가 나옵니다.
134쪽
마르크스는 숙련공들이 기계를 파괴하기보다는 기계를 자본주의적으로 사용하는 ‘자본가들‘에 대해 투쟁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자본주의‘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가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
138쪽
노동자에게 일을 더 오래 시켜서 이윤을 뽑아내는 방법이 ‘절대적 잉여가치 창출‘이라면, 생산력을 높여서 노동자의 몫을 줄여나가는 방식이 ‘상대적 잉여가치 창출‘입니다.
151쪽
착취율 = S / V
153쪽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착취율‘을 다른 말로 ‘잉여가치율‘이라고도 했습니다. 필요노동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이라는 의미겠지요.
‘착취율‘을 보면 더욱 확연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노동자가 임금으로 받는 몫과 자본가가 챙겨 가는 잉여가치는 서로 대립된다는 것입니다.
155쪽
솔직히 꼭 자본가만이 공장을 소유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그 공장을 소유할 수도 있는 거죠.
: 자본가들이 생득적이고 필연적으로 공장을 소유하는 게 아니지 않나?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공장을 소유하는 것이 법적으로 막혀 있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로 시작해 자본을 획득하여 공장을 소유하게 된 케이스도 있을 텐데. 노예제와 자본주의가 다른 것은 노예주와 노예는 생득적인 것이었고 변화 불변한 것이었지만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신분은 변화 가능하다는 점인데.
자본주의 기업에서 자본가가 하는 일을 협동조합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한 대표자가 합니다.
: 일이란 게 단순히 생산과 분배만 있는 것이 아닌데 이런 구조로 기업이 운영되면 장기적 관점에서 이윤창출과 영속적 기업의 운영이 가능할까? 생산이 소비를 초과한 순간 이런 구조의 기업 경영은 불가능해져버린 게 아닌가? 생산이 소비를 초과해 생산한 제품이 소비되지 않는 기업들이 발생하는 순간, 단순히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한 생산과 분배만을 통해 기업이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일까?
164쪽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어서 사회가 이기적이라기보다는 사회의 구조가 인간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끼친 거네요.
168쪽
‘돈‘이란 그저 각자의 노동이 생산해낸 것들을 교환하는 데 쓰이는 매개물일 뿐이죠. ‘돈‘이 무슨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나요? 모든 가치는 ‘노동‘이 창출하는 것입니다.
169쪽
자본주의는, 인간이 노동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데도 모든 것을 돈이 가능하게 한다는 환상을 심어줍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화폐‘에 대한 환상으로 바꿔버리는 현상을 가리켜 ‘물신주의‘라고 했습니다.
171쪽
˝병원에 돈을 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에 놀랐습니다. 아픈데 돈이 없으면 치료도 못 받고 죽어야 하나요? 이해가 안 됐죠.˝
173쪽
자본주의는 ‘이기적‘인 삶을 우리에게 강요합니다.
182쪽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제빵기계처럼 한 번에 가치가 회수되지 않는 것을 ‘고정자본‘이라고 불렀습니다. 반면에 한 번에 가치가 회수되는 밀가루나 임금 같은 것을 ‘유동자본‘이라고 했죠.
184쪽
아무런 변화 없이 생산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단순재생산‘이라고 했습니다.
185쪽
이러한 과정(벌어들인 이윤을 재투자해서 기업의 규모가 점점 커지는 것)을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확대재생산‘이라고 했습니다.
186쪽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잉여가치, 곧 이윤을 지속적으로 재투자해서 가본으로 전환하는 것을 ‘자본의 축적‘이라고 했습니다.
188쪽
불변자본(C)과 가변자본(V)의 비율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고 합니다.
가변자본(C)에 대해 불변자본(C)의 비율이 상승하는 것을,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된다‘고 표현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기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면서, 자본가의 투자액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기계 등을 구입하는 비용이 늘어나는 것이죠.
189쪽
기술의 발달에 따른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 추세가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쫓아내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실업 상태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산업예비군‘이라고 했습니다.
191쪽
‘자본의 축적‘과정이 진행되고 기술이 발달할수록 산업예비군과 극빈층의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적 일반 법칙‘이라고 했습니다.
200쪽
그들(자본가) 돈인데 왜 자꾸 간섭을 하냐고요? 이미 우리는 재벌들이 누리는 부의 원천이 노동자들의 ‘잉여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런 건 우리의 토론 대상이 아닙니다.
211쪽
초기 자본금을 투자해서 원금과 이윤을 회수하기까지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의 ‘회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회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자본의 ‘회전시간‘이라고 했죠.
212쪽
연간이윤율 = n * S / (C+V) (n은 연간 회전수)
214쪽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유통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자본을 ‘상업자본‘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어리바리‘ 회사와 같은 제조업체는 ‘산업자본‘이라고 했고요.
215쪽
은행처럼 돈을 빌려주고 대가로 이자를 챙기는 자본을 ‘대부자본‘이라고 합니다.
산업자본이나 상업자본, 혹은 대부자본에게 토지를 빌려주고 그 대가로 지대를 챙기는 자본이 바로 ‘지주자본‘이지요.
상업자본은 만든 물건을 상업자본가에게 넘겨 이윤을 얻고,
상업자본은 산업자본가에게서 산 물건을 소비자에게 팔아 이윤을 얻고,
대부자본은 돈을 대출해주고 받은 이자로 이윤을 얻고,
지주자본은 토지를 대여해주고 지대 형태로 이윤을 얻습니다.
216쪽
산업자본의 이윤, 상업자본의 이윤, 대부자본의 이자, 지주자본의 지대는 모두 그 원천이 하나라는 점입니다. 그 원천은 바로 노동자에게서 착취한 ‘잉여가치‘죠.
218쪽
마르크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마르크스의 이 말대로 자본가라는 ‘존재‘가 자본가의 ‘의식‘을 규정하게 되지요.
219쪽
우연히 한 자본가가 착할 수는 있어도 자본가 계급 일반이 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란 결국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22쪽
인간은 단순히 주어진 환경의 영향을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을 ‘실천‘으로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죠. 자본가 계급에게는 이 자본주의 세상을 바꿔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만 노동자 계급에게는 그것이 자기 삶의 절실한 요구입니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에게는 자신들의 ‘사상‘이 있습니다. 또 노동자 계급의 정당과 노동조합이라는 ‘조직‘도 생겼습니다. ‘사상‘과 ‘조직‘은 실천을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사상이 있어야 실천 방향을 잡을 수 있고, 조직이 있어야 위력적인 실천이 간ㅇ합니다.
223쪽
이성이 우리에게 방향타 구실을 한다면 감성은 추진력과 같죠.
232쪽
확대재생산을 통해서 자본의 크기를 불려나가는 과정을 ‘자본의 집적‘이라고 합니다.
233쪽
인수 합병을 통해 자본이 덩치를 불려나가는 방법을 마르크스는 ‘자본의 집중‘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집적‘과 ‘집중‘의 과정을 통해서 몇몇 기업이 다른 기업들을 압도할 만큼 덩치를 키우면 이들은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독점자본‘의 출현 과정입니다.
235쪽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로지 자본가의 이윤 추구 욕구에 따라서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자본 독재‘가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이것을 노동자의 민주적 통제로 바꿔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 노동자들에 의한 자본의 민주적 통제..? 이게 결국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국가가 자본가의 역할을 하고 그 국가를 일반 대중 노동자가 통제하는 구조? 이건가? 그러면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퉁쳐지는 그 많은 사람들의 이익은 상충하지 않는다는 건가? 물론 절대적으로 이익이 상충할 수밖에 없는 자본가와 노동자보다는 노동자 간의 이익 상충이 덜 구조적이고 해결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236쪽
저는 국가의 중요한 산업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맞게 운영되려면 ‘국유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조치를 취하려면 먼저 노동자 민중 세력이 정치권력, 곧 국가기구를 장악해야겠지요.
237쪽
기업의 대표자도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 노동자가 기업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그러면 동네 치킨집 사장님은 아르바이트 직원 3명이서 투표로 선출하는 게 옳다는 건가? 그렇다면 새로운 기업은 어떻게 출현할 수 있는 거지? 이미 있는 나라의 대통령을 투표로 뽑을 수는 있어도 없는 나라의 대통령은 무슨 수로 뽑는다는 말인가.
240쪽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위기인 ‘공황‘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먹을 것은 오히려 넘쳐납니다.
물자는 남아도는데 서민들은 생활고로 자살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자본주의의 ‘공황‘입니다.
242쪽
마르크스는 기업이 전체 사회의 필요에 따라 생산을 계획하지 않고, 자본가의 사적인 이윤추구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생산의 무정부성‘ 때문에 과잉생산에 따른 공황이 발생한다고 보았습니다.
245쪽
마르크스는 경제가 자본가들의 개인적인 이윤 추구 욕망에 따라 ‘무정부적‘으로 운용되어서는 안 되고,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통제하며 민주적인 결정 구조에 따라 사회 전체의 이익에 맞게 ‘계획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64쪽
생산력 발달에 따른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는 장기적으로 이윤율을 떨어뜨리지만, 생산력의 발달은 동시에 ‘착취율‘을 늘려 이윤율을 높이는 작용도 하는군요. 두 가지 효과 중에서 어떤 것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장기적인 이윤율의 흐름이 결정되겠네요.
277쪽
군사적으로 대놓고 지배하는 것이 ‘식민지주의‘라면 드러나지 않게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교묘하게 지배하는 것이 ‘신식민지주의‘입니다. 최근에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많이 쓰죠. 저는 그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 지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