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게숄 지음, 이재경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나치에 대항했던, 유태인이 아닌 자들에 대해 처음으로 접한 글. 혼자 고립된 라이언 일병을 구하러 들어갔다 전멸한 미군의 이야기나 덩케르크에서 고립된 3,40만을 구출해낸 영웅적인 영국 뱃주인들의 이야기나 포로수용소에 갇혀 죽음의 절벽에 발끝을 가까스로 걸치고 있으면서도 아들을 위해 웃음을 잃지 않은 아버지의 이야기나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결국엔 살아내었고 살아왔던 사람의 이야기는 듣고 보았어도 독일인으로서 자유를 위해 시대의 양심이 되어 목숨을 내놓고 마음의 소리를 그대로 내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처음 보았다.
 가난과 궁핍 속에서 자신을 이끌어 줄 강력한 리더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수백 수천 만의 독일인이 그러한 본능을 보여주는 표상이었듯이 독재적인 강압에 목숨 걸고 자유를 외치는 것 역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귀한 본능이며 백장미단이 바로 그러한 본능이 표상인듯하다.

 그러나 가끔은 그러한 양심의 소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 같다. 억압이 있으니 해방의 요구자들이 반사적으로 등장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러한 등장은 시대가 만들어내는 것이지 저항자들 개개인이 스스로 저항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억압이 있으니 저항이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목숨을 내걸고 저항하는 그들은 단지 상황이 만들어낸 조연이자 피창조물에 불과하다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볼프 슈나이더의 만들어진 승리자들을 읽고 나서부터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억압에 반대급부로 생길 수밖에 없었던 자유와 양심을 담는 도구적 존재일 뿐이라고 격하시켜 보더라도 자신이라는 그릇이 깨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러한 소리를 담는 그릇이 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아무나 그런 그릇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그릇이 되기를 포기하려 하거나 먼저 나서 그릇을 깨려하는 자들이 상당수 일 것이다. 나 역시 그릇이 되기보다는 공기처럼 살아가려 할 것이 분명하며 영웅적 존재를 추앙하는 것에 머물 뿐일 것이다. 


밑줄, 생각

35쪽
잠시 시대의 어지러움으로부터
그대의 눈과 귀를 돌려라.
그대의 마음이 스스로 정화되기 전엔
이 시대의 어지러움은 그대의 힘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것.

이 세상에서 그대 소명은 영원을 지키며 기다리고 응시하는 것.
그대는 이미 이 세상사에
묶여 있고 또 풀려나 있으리.
그대를 부르는 때가 오리니
그대 마음을 준비하고
꺼져 가는 불길 속
마지막 불꽃을 위해
그대를 던지리라.
-그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에서

54쪽
˝신은 우리 인간을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고, 우리들은 신의 품에서 안식을 찾을 때까지 방황하리라.˝ 아우구스티누스

71쪽
비열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무책임한 정권으로 하여금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계속 집권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은 문화국민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모두가 남이 시작하기를 기다린다면 우리들은 네미시스(희랍의 복수의 여신)의 사지를 점점 가까이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결국에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도 만족할 줄 모르는 복수의 악령에게 의미 없이 희생될 것이다. 따라서, 각 개인 모두는 기독교와 유구한 문명의 수호자라는 자각심을 갖고 이 어려운 시대에 대한 책임을 다같이 통감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능력을 모두 동원해 인간성을 파괴하는 자들과, 파시즘에 유사한 모든 절대 국가의 체제에 저항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은 어디에 있든지 간에 무기는 들지 않았지만 이 무신론적인 전쟁 놀음의 계속적인 활동을 막기 위해 저항, 또 저항해야만 한다.
 자, 너무 늦기 전에, 모든 도시들이 쾰른처럼 폐허로 화하기 전에, 모든 청년들이 한 사람의 천박한 오만 때문에 피를 흘리며 죽기 전에 저항의 대열을 정비하자. 또 우리들은 결코 잊지 말자. 모든 민족은 그들이 선택한 정부를 세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73쪽
국가는 결코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국가의 존재란, 단지 그 체제 밑에서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계약으로써의 중요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또 인간의 목적이란,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구현하고 발전시키는 것 이외의 아무런 것도 아니다. 만약 국가의 체제가 인간에게 내재하는 제반 능력의 계발과 정신의 발전을 방해할 만큼 해롭고 파기되어야 할 것이라면, 또 사려 깊은 방법에 의해 국가의 체제를 바꿈으로써 보다 안전해질 수 있다면......

101쪽
이와 같은 시절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어쩌면 기적같이 느껴졌다. 봄은 황량하고 메마른 땅에도 꽃을 피우면서 희망을 가져왔다. 어린애들은 언제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길가에 앉아 특이한 장난을 하고 있었다. 뮌헨의 한 역전에서는 아이들 둘이 거리낌 없이 노래를 불렀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흘러가리. 히틀러와 그의 무리들도......˝

104쪽
사람들은 단지 존재만을 위한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110쪽
이 살인적인 전쟁을 독일인 모두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독일 국민의 의식을 보여주기 전에는, 스탈린그라드의 참패에 대한 비애와 충격이 망연히 사라져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119쪽
˝모든 폭력에 대항해 꿋꿋하게 살리라.˝

120쪽
‘이렇게 날씨가 화창한데 나는 이제 이승을 떠나간다. 그러나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죽어가고 있는가. 얼마나 젊고 희망에 찬 생명이...... 만약 우리가 한 행동이 많은 사람들을 깨우쳤다면, 나의 이 한 목숨이 사라진다고 해도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121쪽
˝어린애는 우리의 이상이고, 그것은 모든 방해를 물리치고 관철되어야만 하는 거야. 우리는 그 길을 개척하려는 사람이지만, 개척하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거지.˝
 얼마 후 그녀의 방은 비워졌고 뒷면에 ‘자유‘라는 말을 흘려 써 놓은 공소장만이 모든 것을 말하듯 쓸쓸히 남아 있었다. 

125쩍
˝강하게 살아 남아라. 한 치의 타협도 없이.˝

130쪽
하지만 한스는 단두대에 목을 올려놓기 전에 감옥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자유 만세!‘를 외쳤다고 했다. 

133쪽
후버 교수의 변론
 독일의 한 시민으로서, 독일 대학의 교수로서, 그리고 한 정치적 인간으로서 독일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참여하고, 그릇된 점을 공공연하게 폭로하며 맞서 싸우는 것은 권리일 뿐더러 도덕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도했던 것은 조직적이 아닌 소박한 언어로써 학생들을 깨우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폭력을 쓰는 행동이 아닌 지금 현재의 정치적인 삶을 위협하는 그릇된 점에 대해서 도덕적인 통찰의 길로 이끌려는 것이었다. 도덕적으로 분명한 원칙, 법치국가, 인간 상호 간의 신뢰로 복귀하려는 것은 오히려 합법성의 재현일 것이다.
 나는 칸트가 말한 도덕적 정언명법에 따라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내 행동의 주관적인 원칙이 일반적인 법칙으로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하고 말이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그러면 다시 우리의 정치적인 삶에 질서와 확실성과 신뢰가 찾아올 것이다‘라는 대답이 가능하리라.
  도덕적인 책임을 느끼는 사람은 모두 함께 위협하는 권력의 지배에 대해, 도덕적인 선의 의지를 위협하는 독재에 대해 반대의 소리를 드높일 것이다. 
 전 유럽에서는 민족적, 종종적인 특색을 보존코자 노력하는 저들의 요구가 묵살 당하고 있다. 또 이에 못지않게 소수 민족의 자치권에 대한 요구도 묵살 당하고 있다. 국민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 볼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 모두가 이웃 앞에서 안심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불안에 떨어야 한다고 고백하는 현실이다. 모든 것은 내가 의도한 바대로 되어야 마땅하다. 외부의 모든 규범이 규범으로 될 수 없을 때는, 그것이 진실 되지 못하고 비도덕적일 때뿐이다.
 즉 규범이라는 것이 비겁함의 핑계가 되고 그 규범을 공공연히 훼손시키는 것에 대해 반대할 수 없게 될 때는 규범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한 나라가 대역죄를 준비한다는 미명 아래 자유로운 의사 표시나 도덕적으로 정당한 비평, 반대 의견 등에 대해 가공할 형벌을 내려 처벌하는 것은 성문화되지 않은 인권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 성문화되지 않은 인권은 건전한 민족 의식 속에 항상 살아있으며, 또 계속해서 살아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러한 경고 내지 훈계를 개인적이거나 소집단으로써가 아니라, 책임 있고 가장 높은 심판관의 위치에서 발언하려 한다.
 나는 이 경고에, 정의로운 복귀를 간청하는 나의 이 부탁에 내 생명을 걸었다. 나는 우리 독일 민족에게 다시 자유를 달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짧은 생을 노예의 사슬로 묶어 흘러 보내지 않겠다. 그 사슬이 아무리 남아돌 만큼의 많은 황금으로 만들었다 해도......
 그들은 나에게로부터 사회적 지위와 교수의 권리와 우등생으로 받은 박사 학위를 박탈하고, 나를 아주 비열한 범죄자와 같이 취급했다. 대학 교수의 내적인 품위와 그의 세계, 국가관을 솔직히 과감하게 고백한 사람의 품위에서 어떻게 대역죄인의 모습이 발견될 수 있단 말인가? 나의 행위와 의지의 갈 길은 역사가 단호히 증명해 줄 것이다. 나는 그것을 확고하게 믿고 있다.
 나는 신에게 바라건대 그의 길을 정당화하는 힘이 내 민족에게서 솟아 나오게 해주셨으면 한다. 나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당위의 소리에 따라 행동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피히테의 아름다운 싯귀를 받아들여 그것을 감수하려 한다.


 너는 독일의 모든 것이
너와 너의 행동에 달려 있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해야만 한다.
그것이 너의 책임이다. 

142쪽
함부르크 그룹에서는 학교에 나가거나 공장이나 전쟁터에서 보조원 노릇을 할 나이 밖에 되지 않은 열일곱 살의 청년이 있었다. 그는 국가 사회주의적인 학습과 학생 조직에 의해 교육을 받아 왔었다. 그들 중의 한 삶이 말했듯이, 그의 반항은 감수해야만 할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자기의 천성과 흥미를 쫓아 자라난 그는 케임브리지나 바젤에서처럼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나 바젤에서는 당연한 일이 독일에서는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일으키는 행위‘라 해서 비밀경찰이나 국민재판소가 열심히 쫓고 있는 ‘반역 행위‘가 되어버린다. 

159쪽
 국가의 통치작용이 드러나지 않을 때에만 국민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작용이 뚜렷하게 부각될 대에는 국민은 파멸의 길을 걷는다.

: 국가가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가지고 행정과 정치를 해나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인지, 국가의 적당한 중량감에 대해서 구체적 기준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 무게감이 일상생활에 피로감을 주지 않을 정도면 되지 않을까. 너무 가벼워서서 혹은 너무 무거워서 개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딱 그 정도. 한동안은 꽤나 피로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160쪽
성인이란 모가 났지만 남을 찌르지는 않는다. 그는 똑바로 서 있지만 결코 가파르지 않다. 그는 밝지만 결코 빛을 발하지 않는다. 

˝Salus publica suprema lex˝
최상의 법은 국민을 존중하라.
이상적인 국가의 형태는 유토피아다.

168쪽
 확실히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폭풍우 앞에 힘없이 버려진 키 없는 배처럼, 어머니가 없는 젖먹이 아이처럼, 사라져버린 구름들처럼 진정한 신이 인간의 옆에 같이 하지 않는다면 악마의 유혹에는 너무나 약한 존재이다. 

170쪽
 독재 체제의 난폭자들을 망각하지 말라!
 달아나지 못하도록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라!

: 반인류적인 인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은 단지 쓸데없는 지식의 축적이 아닌, 반복되지 않아야 할 역사를 과거에 잡아 놓고 다시 드러나지 않게 할 최소한의 노력이다. 

우리는 침묵을 거부한다.
우리는 바로 당신들의 양심이다.
백장미를 따라 분연히 떨쳐 일어나자!

175쪽
독일 국민에게 고함 (운동 전선 선언문)

전쟁은 확실히 종말을 고하고 있다.
 1918년 당시에 벌어졌던 ‘무제한 잠수함전‘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전쟁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동부전선에서는 역공세가 예상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미군이 최강의 전열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 히틀러는 단지 수적 확신만으로 독일 국민을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다. 히틀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전쟁을 연장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날로 엄청난 죄를 범하고 있다. 정당한 죄의 대가를 치를 시기가 그들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독일 국민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우리는 눈도 귀도 없단 말인가. 맹목적인 파멸로 이르는 허구의 길로 따라가고 있지 않은가?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승리하자! 당신의 깃발에 새겨져 있지 않은가? 이러한 유혹이 곳곳에서 우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심지어 히틀러는 최후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자고 선언했으나 이미 상황은 기울어가고 있다.
 독일인이여!
 당신과 후손들이 유태인과 같은 운명을 감수하기를 원하는가? 당신들은 자신이 당신들을 유혹한 자와 동등한 범죄자로 간주되기를 바라는가? 우리들은 세계 인류에 의해서 영원히 저주받고 부패한 민족으로 낙인 찍혀야 한단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나치와 같은 하등 동류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밝혀야 한다.
 자! 이제 새로운 해방의 전쟁은 시작되고 있다. 상당수의 국민이 투쟁하고 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무관심의 벽을 허물어라. 
 결심하라! 오히려 때가 늦었다. 공포로 억압하는 나치의 선전을 믿지 말라! 범죄 행위가 독일의 승리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자 사실이다.
 나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것들과 결별을 선언하라! 비겁하게 주저하면서 숨어버린 자들에 대한 준엄한, 그러나 정당한 재판은 언젠가 닥쳐올 것이다. 제국주의적 권력사상은 그것이 어떠한 이유에서 생겨났던 간에 모든 시대에 걸쳐서 제거되어야만 한다.
 극단에 치우친 프로이센의 군국주의는 절대로 권력을 획득해서는 안 된다. 오직 유럽 민족들의 대대적인 공동작업을 통해서 그것은 창조가 가능한 터전을 구축할 수가 있다. 과거의 프로이센이나 독일에서 시도되었던 권력의 집중 현상은 미연에 방지되어야 한다.
 가까운 장래의 독일은 연방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건전한 연방제의 국가 질서만이 오늘날의 허약해진 유럽을 다시금 생동감 넘치는 활기찬 대륙으로 만들 수 있다. 노동자들은 이성적인 재건의 길을 통해서만 억압된 노예의 상태에서 해방될 것이다. 자급자족의 국민 경제에 대한 환상은 전 유럽에서 소멸되어야 한다. 모든 민족은 전 세계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폭력 탄압으로의 보호 등은 새로운 유럽의 근본 토대이다.
 투쟁운동을 지지하라! 

196쪽
 1942년에서 1943년 사이에 있었던 뮌헨 학생 운동을 보통 있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인간의 행동이라고 일반화시킨다는 것은 그릇된 일일 것이다. 그들은 구체적이었고,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으며, 또 구체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의 궐기에 본보기가 되었다고 해서, 만약 그들의 행동을 상징화한다면 그것도 역시 잘못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학생과 그때의 학생 사이에 맥락을 지으려 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들이 설정하는 목적이나 상황은 근본부터가 다르다. 단지 오늘날 발생하는 일과 기껏해야 일부분만 유사할 뿐이다.
 사람들은 보통 비교하기를 즐기는데, 나는 사람들이 당시의 일을 그 자체로만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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