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왕 정성공 - 중국의 아들, 대만의 아버지
조너선 클레멘츠 지음, 허강 옮김 / 삼우반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대만 여행을 하기 전에 자료수집 차 읽어본 책인데 상당히 재미있다. 북플에 이 책의 후기를 올린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으로 보아 널리 읽힌 책은 아닌 것 같지만 정성공이라는 인물을 알 수 있는 훌륭한 전기이자 명말청초 시대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좋은 역사서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일단 책 자체가 재미있다. 정성공이라는 인물의 곡절 많은 삶 자체도 흥미롭고 명말청초 시대의 역사적인 이야기 역시 재미있게 읽힌다. 단지 재미를 위해서 읽어도 좋은 책일듯 싶다.

정성공의 대만 점령 이후 대만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다 보니 정성공은 대만에서 파운딩 파더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이는 중국 중심적인 역사를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나 그렇고 대만에는 그전에 이미 오스트로네시안계의 선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이놈의 문명화되었다는 국가들 중에서는 도대체 선주민들을 신경 쓰는 데가 없다. 현재 대만에서 고산족으로 분류되는 선주민들은 전체 인구의 2%밖에 되지 않아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힘들지만 네덜란드가 대만에 들어가기 전에, 정성공이 청나라에 밀려 대만에 오기 전에도 그 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마카오를 공격했다 포르투갈에 패배하고 대만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네덜란드, 명나라 말기 이자성에게 망해버린 명을 점령하기 위해 중국의 중심부로 쏟아져 내려오는 청나라, 망해버린 명의 부흥을 위해 복건에서 항거하다 대만으로 쫓겨나는 정성공. 대만을 차지하기 위한 네덜란드와 정성공의 싸움. 그 이후 명의 유신을 뿌리뽑으려는 청과 명을 부흥시키려는 정씨 왕조와의 싸움. 청과 명(정성공) 네덜란드를 세 축으로 하는 삼국지를 읽는 기분이다.

현재 정성공에 대한 평가는 국가별로 상이하다. 대만을 빼앗긴 네덜란드에서는 해적으로, 중국에서는 대항해 시대 서양 세력을 무찌른 영웅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대만을 식민화했던 일본에서는 대만 식민화의 명분으로(정성공의 어머니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대만은 일본인의 땅이었다는 것..), 대만에서는 대만의 파운딩파더로(어디까지나 본성인과 외성인의 시각이지 선주민의 시각은 아닐 것 같다). 어떤 평가가 정성공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성공이라는 인물 자체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오랜 시간 이야기될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말로 천년 동안 이야기될 인물이지 싶다.

내용 대충 정리

명조 숭정제 시기 이자성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자성의 군대는 북경에 입성했으며 숭정제는 자금성 뒷산 현 경산공원에서 자결하였다. 산해관에서 청나라와 대치하고 있던 명나라 장수 오삼계는 자신의 애첩이 이자성에게 겁탈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청을 불러들였다. 청나라의 실권자인 청황제의 숙부인 도르곤은 군을 이끌고 오삼계와 함께 북경으로 공격해들어갔다.

청나라에 저항하여 명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는 ‘남명‘ 정권의 수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정지룡이었다. 세례명 니콜라스 이콴. 상인이자 무인이었으며 해적들과 사략선으로 조직된 집단의 우두머리로 중국 동남부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군벌이자 재력가였다. 정성공의 아버지.

정성공의 어머니는 일본인이었고, 그의 경호병들은 아프리카 흑인들과 인디언들로 구성되었다. 그가 신뢰한 특사는 이탈리아인이었으며 그가 통솔하던 ‘중국인‘ 부대에는 도주한 독일인과 프랑스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조는 본래 복건 지방 처녀로서 잠자는 몸에서 혼이 빠져나와 곤경에 처한 뱃사람들을 구조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죽은 후에 해안가에서는 그녀의 유령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자주 보고되었고, 뱃사람들은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그녀에게 제물을 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인신도 제물로 바쳐졌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대만에서는 마조를 신으로 모시고 있다.

정지룡의 어머니는 첩이었고 정소조에게 그닥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된 이후로는 정지룡도 아버지와 반목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눈 밖에 난 정지룡은 10대에 자신의 두 동생을 데리고 마카오의 현지 상인이었던 외조부를 찾아간다. 정지룡은 ‘이단‘의 선단에 몸담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음. 당시 일본의 히라도와 나가사키의 제한구역에는 네덜란드인들과 영국인, 중국인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정지룡은 그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많은 외국인들과 접촉하게 된다. 또한 정지룡은 일본에서 다가와라는 여인에게 반하게 되는데 그녀는 영주 마쓰라에게 봉사하던 사무라이 다가와 시치자에몬의 딸로 추정된다. (일본이 주장했던 대만 식민화의 명분으로 사용했던 근거)

중국과 교역하기 위해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이 점령하고 있던 마카오를 공격. 그러나 포르투갈에 패배한 네덜란드 선박은 그 목적지를 팽호열도로 바꾸었다. 그러나 팽호열도는 중국과 교역을 하기 위한 항구도시로 만들기엔 그 환경이 열악하였고 다시 그 목적지를 대만으로 바꾸었다. 팽호열도에서 중국 정규군에게 패배한 네덜란드는 이단의 중재로 대만으로 옮겨갔고 정지룡은 네덜란드 선단을 따라다녔다.

중국인들에게 네덜란드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이미 오래전에 중국의 위대한 항해가 정화를 영접한 바 있었던 무지몽매한 오랑캐일 뿐이었다.

당시 중국 본토는 명나라 말기로 15세에 황제로 등극한 천계제는 어머니와 결탁한 환관들에게 나라를 맡겼고 황제로부터 전권을 넘겨받은 이들은 폭정을 일삼았다. 거기에 중국 본토는 기근과 가뭄으로(소빙하기) 백성들이 고통받자 대만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정지룡은 이들을 대만으로 이송함.

이단과 안사제가 연달아 사망하자 그 휘하에 있던 세력이 분열함. 정성공은 7살에 일본을 떠나 혼자 정지룡에게 왔다. 일본인 어머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일본에 남아있기로 함. 정성공은 어렸을 때부터 무예에 소질을 보였으며 용감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 병사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자람. 믿을 사람 없다고 생각한 정지룡은 중국, 네덜란드, 일본 등 자신의 적들과 완전히 무관한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데려와 호위를 시킨 것. 1639년 15세의 정성공은 안해를 떠나 남경으로 갔다.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태학에 입학한 소년 정성공은 유명한 학자이자 문인인 전겸익의 문하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복건 해안의 왕이 된 정지룡을 경계하는 조정에서 정지룡을 뭍으로 불러들임. 산간지방의 반란을 막으라고 명을 내림.

이후 새로운 대만 총독이 된 푸트만스는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통해 중국과 교역하는 것처럼 자신도 해안 항구를 얻기 위해 계략을 세움. 과거 정지룡과 일했던 인물인 유향이란 자를 책동해 해적질을 시켰고 이를 명분으로 네덜란드는 해적과 정지룡을 공격, 중국 황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함. 푸트만스는 자신의 구상을 중국 고관에게 보냈지만 사실 이는 정지룡이 내세운 바지(?)고관이었다. 즉 푸트만스는 계속 정지룡에게 자신의 계획과 구상을 알렸던 것이고 정지룡은 이를 계속 받아보며 지켜보고 있었다. 정지룡은 유향과 이단의 아들 이국조, 네덜란드를 잇달아 패퇴시킴. 푸트만스는 대만으로 돌아갔고 정지룡을 통해 다시 무역을 재개함.

황득공의 진영으로 간 홍광제는 청군에 잡혀 결국 처형당하고 새로운 황제로 옹립된 주율건(융무제)는 복주로 이동하여 정지룡의 힘에 기대었다. 이때 융무제는 정복송(정성공)을 아껴 성공이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황실의 성인 ‘주‘씨를 써도 좋다고 윤허한다. 이때부터 정성공은 ‘황실 성을 쓰는 자‘라는 존칭의 뜻을 지닌 국성야로 기록된다. 국성야의 복건 방언인 ‘콕선야 koksenya‘가 ‘콕싱아 COXINGA‘로 표기되고 이게 오늘까지 이어져 옴. 1645년 다가와 부인은 이때 복건으로 와 10년간 헤어져 살았던 큰아들 정성공과 상봉했다.

정지룡은 중상정책을 통해 전쟁비용을 충당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결국 정지룡에게 이득이 될 전략이기도 하였다. 이후 정지룡은 청나라 장수 볼로에게 항복하고 북경으로 보내졌으나 정성공을 비롯한 정씨 가문의 유력자들은 청에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안평에 정씨 진영을 차리고 청에 항전했다. 이 과정에서 다가와(정성공의 모친)는 끝까지 항전하다 성벽에서 자결하였다. 이걸 본 만주족들은 일본의 여인이 저럴진대 일본의 남자들은 어떻겠냐며 일본과 싸우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반청의 무리는 서쪽으로 피신하는 영락제와 복건에서 항전하는 정씨 가문 두 세력 밖에 남지 않았다. 정성공은 영락제에게 충성하고자 하였으나 두 무리는 서로 연락이 어려웠고 협조가 되지 않고 있었다.

섭정왕 도르곤은 사냥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였고 순치제(복림)는 아담 샬을 신뢰함. 만주족은 양자강 전투에서 정성공에게 승리했지만 정성공은 함대를 이끌고 바다로 나가버렸다. 이를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 해금령을 시행하여 정성공과 육지의 비밀 지원 세력을 차단했고, 나아가 중국의 관심 범위에서 바다를 제외시켜 버리고자 했다. 만주족은 한족도 바다에 대해서 무지하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바다에서 50km까지는 아무도 살 수 없게 만들어버렸고 밀수나 교역은 금지시켰다.

동생의 아내이자 애첩이었던 효헌을 잃고 우울증에 빠진 순치체는 그 역시 천연두에 걸렸고 이에 양위하기를 결정하였다. 그다음의 황위를 이은 자는 6살 난 현엽이었고 그는 훗날 강희제로 불리게 된다.

남명 황제 영력제는 버마로 넘어갔다.

만주족의 해금령으로 갈 곳을 잃은 유민들은 대만으로 떠났다.

대륙에서 보급이 끊긴 정성공 부대는 새로운 보급로가 필요했고 대만은 이 역할을 맡기에 충분했다. 대륙을 떠난 한족들은 대만에서 자리 잡아 정성공 부대에 보급을 지원해줄 수 있었고 해금령은 정성공의 대륙 공격을 막는 역할도 했지만 반대로 대만을 청나라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하였다.

정성공의 대만 원정 함대는 약 900척의 전함과 25,000명의 병력으로 편성되었다. 프로빈샤 요새는 정성공에게 금방 투항했으나 제란디아 요새는 항전을 지속했다. 바타비아에서 네덜란드 지원군 700명을 실은 10척의 배가 대만에 도착. 복건 도독 이솔태는 코예트에게 동맹 협상을 제안했다. 이솔태는 네덜란드의 힘을 빌려 본토에 남아있는 정씨 일가의 잔당을 제거하려는 목적이었고 코예트는 그들의 힘들 빌려 정성공을 제거하고 이 기회를 통해 청나라와의 영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솔태의 요청으로 5척의 배를 이끌고 본토로 떠난 캐우의 배는 팽호열도에 정박했고 캐우는 그중 2대를 이끌고 시암으로 도망쳐버렸다. 이로 인해 대만의 제란디아성은 물자와 병력이 감소되었다. 정성공은 투항해온 라디스의 조언에 따라 워트레흐트 탑을 공략. 1662년 2월 1일을 기해 네덜란드 선박들이 항구를 떠나자, 정성공의 부하들은 제란디아 요새를 접수하고, 한때 붉은 핏빛 기가 날리던 곳에 정씨 가문의 기를 올렸다. 네덜란드인들의 입장에서는 대만이 ˝본래의 야만적인 이단 풍습과 중국식 우상 숭배로 회기했다.˝ 대만에 거주하고 있던 중국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정성공을 영웅으로 환영했다. 대만 원주민들은 별 감흥이 없었다. 단지 그들이 사는 섬의 정복자가 바뀐 데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삼계에게 인도된 영력제는 처형을 당했고 이 소식을 들은 정성공도 곧이어 자신의 황제를 따라 그 생을 다했다. 정성공 사후 정씨 가문은 분열했다. 본토에 있던 정경은 자신의 사형집행인이었던 주전빈을 총사령관으로 해서 대만을 정복했고 청나라에 독립된 왕국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결국 대만은 청나라에 복속되게 된다.

정성공의 말

˝ 정성공은 융무제가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어찌 폐하의 용안에 수심이 가득하옵니까? 제 아비가 폐하를 향한 마음을 돌렸다고 여기시기 때문이옵니까? 미천하나마 소신이 목숨을 바쳐 폐하를 보필하겠나이다.˝

˝애비를 죽이고, 나라를 되찾으라.˝

˝나는 오랑캐들의 말을 믿지 못하며, 반역자들과는 협상하지 않노라.˝

정성공이 지은 시

커다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 한 해로다
사람은 입신양명에 열심이지만,
죽음이 그를 놓아주지 않으니,
쓸데없는 놀이처럼 모든 것이 끝내 헛되도다
사람들의 마음은 눈먼다 해도
천도는 진정한 마음을 알아줄 것이니
비록 나의 삶이 한낱 장기놀이에 불과하다 해도
나는 최후의 한 수도 두렵지 않구나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하라
정직한 사람이 되기가 쉽지 않으니
비통하고 사악한 시기로다

˝정부가 학정을 일삼으면 부와 명예를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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