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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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지가 꽤 되었고 책을 읽으며 써놓았던 메모를 옮겨 놓으니 어디까지가 책 내용이고 어디까지가 내 생각인지 구분이 안된다.

성장하지 않으면 퇴보할 것이라고, 아니 이 시장에서 쫓겨나 죽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에 계속해서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는 채찍질을 스스로에게 하지만 한편으로 나의 성장은 누군가에게는 죽음인 것이다. 성장하려고 하지 말자. 단지 올바르고 재미있고 훌륭한 가치를 추구하려고 하자.

정량적 사이즈에 집착하지 말고 정성적 가치에 몰두하자. 모든 것에 있어서. 몇 권의 책을 읽었나가 아니라,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느꼈나에 초점을 맞추자.

최근에 계속 강조되는 (한 물 간 것 같지만) 창의성이나 인문학과 같은 것은 이 세계가 포디즘에서 벗어나 포스트 포디즘 시대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소품종 대량생산을 하던 시기에는 학교에서 사회에서 공장에서 찍어내는 지식과 교육이 먹혀들여갔지만 다품종 소량 생산의 포스트 포디즘 시대에는 학교에서 사회에서 주입하는 지식과 배움이 아니라 다양성이 내재되어있는 스스로 하는 공부, 독서(여기서 인문학이 강조되는 것)가 사회의 요구와 맞닿는 것이다. 마이크로한 소비자들의 욕구와 인문학, 독서가 결합되는 것이다. 인문학과 독서는 다른 말로 학교나 사회에서 일괄적으로 퍼붓지 않는 교육을 스스로 하라는 말과 다름없는 것 같다.

극단적 양극화로 인해 전쟁이 날까 무섭다. 더해 전쟁이 난다 해도 하층민들은 또다시 죽어나가고 10%의 부유한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 다시 부를 쌓아갈 현실이 더 암담하다.

전쟁 후에 얻는 경제적 효과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배를 채울 수 있다며 위안을 받고 그러한 경험을 한 사람들 중에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전쟁이 좋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이지 절망적이다

‘삼성이 우리나라에 기여한 일자리의 숫자보다, 삼성의 문어발식 경영과 하청 관행이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태가 더욱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한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가정한다. 때문에 그 경제의 시합에서 승리한 부자들은 가장 이기적이며 성공적으로 이기적인 성과를 이뤄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고 악인과 동일시 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인류 역사 1만 년의 시간 중에 이기적인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했건 시절이 어디에 있는가.

‘금전적 이득은 진정한 이득인 인간애의 그림자에 불과‘ 그렇다 돈은 그림자일 뿐이다.

단일민족에 대한 집착은 나치를 불러올 뿐이다. 단군의 자손이라는 환상을 빨리 떨쳐버리고 모두를 수용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은 공산주의와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모두가 이제 돈 이외의 것은 인간에게 동기부여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인간에 대한 믿음은 공산주의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나.

인간의 본능은 아마도 자기 생존에 최적화되어 있는 상태로 진화되어 왔을 것이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아마 그 본능은 나만 잘 살거나 공멸을 불러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아주 원초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본능, 이를테면 성욕, 식욕, 수면욕, 이기적 행태, 폭력성 등을 발현시키는 것이 인간의 번식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는 방법인 것인가? 인간을 제외한 모든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인위적인 교육과 법과 제도와 억압이 없는 사회여야만이 인간의 생존과 번식을 최대화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인간은 이미 그 본능에 따르면 멸종하고도 남았어야 할 종인데 법과 교육과 같은 인위적 방법으로 아직까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인가? 그래서 지구가 이렇게 고통받는 것인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훌륭한 사회와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 훌륭한 사회, 둘 중 어느 사회가 옳은 것일까.
논어를 읽으면서 수신 제가 하는 것보다는 힙합을 들으면서 돈과 성과 사치를 우상시하는 시대, 뭐가 옳은 것인가. 이 시대의 성인은 누구인가. 인문학 교수님인가 아니면 힙합 가수인가. 이는 시대에 뒤처진 고민인 것인가 아니면 세계를 올바로 보고 있는 바른 문제 지적인 것인가.

SNS의 발전은 개인 창업자, 프리랜서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게릴라 전을 성공적으로 펼칠 수 있는 인프라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는 뇌 과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문학책을 읽는 것이 좋을까.

독서에 대한 견해는 피에르 바야르보다는 장정일의 생각에 공감한다. 그러나 책, 독서의 의미를 확장시켜 이해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나중에 도서관을 돌며 제목과 목차만 한참 보는 것을 해봐야겠다.

여행기가 단지 사진과 단순하고 순간적인 감상들, 여행지 정보만 나열해놓는다면 그것은 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의미 없는 정보의 나열일 뿐이며 좋게 봐도 1년만 지나도 바뀌어버릴 정보들을 굳이 옮겨놓은 헛수고일 뿐이다.

그래 맞다, 독서의 목적은 사고의 성숙이다.

종교의 명목 아래 행해지는 모든 악한 일들은 사실 종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경제적(경제적 욕망)인 이유로 방생하는 것이 거진 전부이다. 종교는 단지 천박한 경제적 욕망을 포장하는 장식일 뿐이다.

독서일기를 읽다가 든 생각, 누군가의 독서 리뷰, 독후감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독후감을 읽었다고 해서 내가 그 책을 읽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는 이유는? 하나, 다독가로 유명한 사람은 어떤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떤 느낌을 받는지 궁금하다. 둘, 내가 읽은 책에 대해서 이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보고 영화 평론가의 영화 리뷰를 찾아보는 것과 같은 맥락. 셋, 문학 말고 비소설류의 책에 대한 리뷰는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정보 습득이 가능하다.

사실 이 책은 책이라기보다는 리뷰 모음집이다. 말 그대로 독서 일기.

모든 책에 대한 일기를 다 같은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지는 못하다. 내가 읽었던 책이나 주로 사회, 정치 주제를 다룬 책에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다. 문학 책에서는 정말이지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일기는 관심이 안 간다. 갈 수가 있겠나. 내가 보지도 않은 영화 평론을 무슨 재미로 읽겠나.

책을 읽으면 성공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아마 지금도 조금 있는 것 같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독서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책을 많이 읽었을 장정일이나 일본의 다독가로 유명한 사이토 다카시 같은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성공을 하였나..? 흠.. 역시 이 부분에서는 마윈의 지적이 옳은 것 같다. 책을 읽지 않아도 성공을 할 수는 있지만 책을 읽지 않고는 성공한 기업을 유지시킬 수 없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 경험 세계를 확장시키는 것. 여러 다른 경험을 충돌시켜 새로운 사고를 만들어 내는 것.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부분까지 사고를 깊이 하는 것. 그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지식을 가지게 되는 기쁨. 세상을 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 세상의 여러 케이스를 접함으로써 얻게 되는 역사적 사건들의 인과 관계. 그로 인해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일을 점쳐볼 수 있는 능력.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이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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