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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12쪽
˝그런데 이제 안심이구나. 나는 죽을 때까지 자밀라를 잊지 않을 수 있을 거야.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28쪽
그애는 아무 이유 없이도 늘 행복한 아이였다. 흑인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 행복해하는 걸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36쪽
˝그렇다면, 벌써 좋아지고 있군요. 아이가 울고 있잖아요. 정상적인 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94쪽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음이 분명하다.
96쪽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99족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103쪽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104쪽
나는 나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해본 다음에나 그 행복이란 놈을 만나볼 생각이다.
105쪽
르 마우트는 바닥에 주저앉아 질질 짜고 있었다. 로자 아줌마의 엉덩이에 다 쏟아버린 그의 행복이 억울해서였다.
106쪽
겨우 서른밖에 안 된 그 젊은 친구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풋내기인 것을.
111쪽
˝너, 왜 울고 있니?˝
˝울지 않아요.˝
그녀는 내 뺨을 어루만졌다.
˝그럼 이건 뭐니? 눈물 아니야?˝
˝아뇨, 그게 어디서 나왔을까요?˝
117쪽
법이란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18쪽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120쪽
조무래기일 땐, 뭐라도 된 것 같으려면 여럿이어야 하는 법이니.
129쪽
나는 달랑 혼자인데,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130쪽
사람들은 항상 사람에게보다 개에게 더 친절한 탓에 사람이 고통 없이 죽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135쪽
저능아란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자라지 않기로 마음먹은 아이다.
138쪽
불행하게도 다시 시작해봤자 결국 그게 그거야
150쪽
`낫지는 않아, 낫지는 않는단다`를 심각하게 강조하는 것이 내게는 몹시 우스웠다. 마치 낫는 것이 세상에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153쪽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늙은 창녀들만 맡고 싶다. 나는 늙고 못생기고 더이상 쓸모없는 창녀들만 맡아서 포주 노릇을 할 것이다. 그들을 보살피고 평등하게 대해줄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경찰과 포주가 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층 아파트에서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
158쪽
˝모하메드야. 오십 년 전에 내가 로자 부인을 만낫더라면 결혼 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때 결혼했으면 오십 년 동안 서로 미워하게 됐을 거에요. 그렇지만 지금 결혼하면 서로 잘 볼 수도 없고, 미워할 시간도 없잖아요.˝
168쪽
나는 샤르메트 씨가 불쌍했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나오는 연금이 있다 해도 그 역시 돈 없고 찾아오는 사람 없는 노인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 말이다.
로자 아줌마는 사람들이 점점 더 자기에게 친절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171쪽
롤라 아줌마는 창녀라는 직업도 점점 한물가고 있다고 했다. 그건 돈도 안 받고 그 짓을 하는 여자들이 늘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돈을 안 받는 창녀들은 경찰이 단속하지 않지만, 돈을 받는 창녀들은 경찰의 단속을 받았다.
179쪽
자연은 야비한 악당이라서 그들을 야금야금 파먹어간다.
184쪽
프랑스에서는 미성년자들을 극진히 보호한다. 너무 보호하는 나머지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은 감옥에 처넣을 정도로.
223쪽
˝박해가 당신네 유태인의 독점물은 아닙니다.˝
232쪽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 둘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은 지켜야 했다.
251쪽
내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산다는 것에 대해 도대체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256쪽
내게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로자 아줌마 곁에 앉아 있고 싶다는 것. 적어도 그녀와 나는 같은 부류의, 똥 같은 사람들이었으니까.
261쪽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271쪽
˝선생님,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
300쪽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기록을 세운 미국인이예수그리스도보다도 더 심한 고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은 셈이니까.
305쪽
그녀는 이제 숨을쉬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숨을 쉬지 않아도 그녀를 사랑했으니까.
311쪽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살 수 없다.
사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