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이나 인물들의 모습이나 그걸 표현해내는 문장이나, 책을 읽는 내내 쓸쓸한 바닷바람이 스쳐가는 기분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순간을 보내며 그 많은 대화와 눈빛을 나눴음에도 만남과 헤어짐의 기억은 어찌 그리 다를 수 있을까.

서로의 기억이 다름에도 같이 사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결혼 후 다른 여자를 찾는 남자와 그 남자를 억지로 이해하고 덮어두어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여자의 모습은, 실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너무 진부할뿐더러 옳지도 않다. 남자는 배고 여자는 항구라는 비유는 진저리난다. 바다에 표류한 두 배가 우연히 만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한 배가 딴 맘을 먹고 방향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간 것일뿐. 누구도 항구가 아니고 누구만 배일 수 없지 않겠나.

무지에 기반한 편견일 수도 있지만 일본인은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게 되어버렸다.` 라는 말을 자주 쓰는 듯 하다. 어떤 상황이 내 앞에 갑작스레 떨어져 그걸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내가 의도한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다투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자`라는 것인가 싶다. 다투면 피할 곳이 없는 섬 나라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和의 발현인지 아니면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언어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건과 자신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남녀관계에 대한 일본적인, 남성의 일방적 변태스러움은 상당히 불편하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낯섬이 일상이 되어가고 안개 같이 스산하면서 신비로운 분위기가 아침해가 떠오르며 안개가 걷히듯이 명확해진다. 안정되지만 진부한. 친숙하지만 궁금하지 않은. 그것이 나의 사랑만은 피해가길 바라지만, 결국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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