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자기가 창조해낸 인물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는 소리를 경청하는 존재라는 서문의 글이 글쓰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정말이지 이미 만들어진 인물들은 그들 스스로 이야기를 꾸려갈 것 같다.
처음에는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싶다가도 나중에는 일락이를 제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제 목숨 내놓으며 매혈하는 허삼관의 변화가 막판에는 찡하다. 격동기의 중국 현대사를 살아갔던 수 많은 개인들의 삶이 허삼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다.
소설 한 권을 읽으면 마치 작가가 그려낸 그 세계에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냥 수사적인 표현으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라는 게 아니라 정말로 여행을 다녀온 듯 장면 장면이 잔상처럼 이미지로 남아있다. 마치 내가 그 삶을 살았던 것 처럼. 아니면 그 이야기 속에 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 처럼. 그래서 이야기가 끝나면 여행이 끝난 것 마냥 아쉽고 기억나는 장면을 곱씹어보자면 아련해진다. 전체 인생은 참으로 고된 역경의 연속이었지만 마지막으로 저만을 위해, 그것도 전에 없이 맛있게 돼지간볶음에 데운 황주 두냥을 먹고 이야기가 끝나 내 마음도 훈훈해진다.삶이야 힘들지만 그렇게 맛난 음식 먹으며 좋아할 수 있으면 그만 아니겠나. 일락이를 자기 아들이 아니라며 몰아칠 때 까지만 해도 너무나 미웠던 허삼관이지만 마지막엔 그에게 돼지간볶음 한 접시 대접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고생하셨다며.

330쪽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돼지간볶음은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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