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 3년 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잘 봤었다`라는 느낌만 남아있고 무슨 내용인지는 신기하리만큼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책이다. 해야만 하는 것을 하루 종일 상당 기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우울해지거나 덧 없음을 느끼게 되는데 그게 오늘이다. 마땅히 눈 둘 곳이 책장 밖에 없는 내 방에서 뭘 하면 좀 기분이 나아질까 싶어 책장을 훑어보다 이 책을 발견하고 꺼내들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순간마다 다양하겠지만 나는 대체로 갑작스레 한 질문이 떠오르면 그에 관련된 책을 검색해보고 그 중에서 표지와 제목이 가장 매력적인 책을 고르는 것 같다. 내 질문을 수 년 전부터, 아니 수 백 수 천 년 전 부터 기다린양 내 질문에 답해줄 것만 같은 책은 항상 고전부터 2016년에 나온 것 책까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역시 사람의 고민이란게 거기서 거기고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가보다.

내가 왜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선택하진 않았다. 사랑에 이유가 어디있겠나. 그냥 사랑하는거지.

그냥 좋은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생각 없이 웃고 싶을 때 예능을 찾아보는 것 처럼.

이 작가는 왜 거의 문단마다 숫자를 달아놓은 걸까. 무슨 의도가 있었겠지만 그 숫자들을 다 없애고 간격조절을 했으면 책 두께는 얇아지고 가격도 줄었을 것이다. 독자에 대한 배려하고는. 왜 작가가 그런 설정을 했는지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냥 불평을 해버리는 게 편할거다.

지인 중에 북플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친구 추가를 한 사람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없다. 고로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은 전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고 내가 읽는 글을 쓴 사름들도 전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다. 다른 SNS는 사진부터 개인정보에 내 생각을 짧게 담는 글 까지 좀 봐달라고 게시판에 떡 하니 걸어놓아 조금은 노출증 같아 피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염탐하고 있는 모습은 관음증 같아서 의도적으로 피해야지 하고 멀리한다. 그러나 노출증과 관음증이 전혀 없는 건 또 아니라 적당히 나를 드러내고 싶은 생각과 사진 보다는 글을 공유하는 곳이 좋고(좀 더 잘생겼더라면, 돈이 많아 이것 저것 하면서 올릴 사진이 많았더라면 굳이 이렇게 길게 무언갈 써대지 않았을 거다. 몇 초면 남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텐데 뭐하러 이런 수고를 하나) 꽤 높은 정도의 익명성을 바탕으로 하는 곳이 북플이다보니 요즘에는 매일 북플에 들어오게 된다. 책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상을 기록하는 용도로, 읽고 싶음 책을 체크해두는 용도로, 내가 읽은 책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찾아보는 용도로, 읽은 책의 권수를 통계로 보여주다보니 또 그 숫자를 늘리는 재미로 등등. 내 생각을 올리면서도 이걸 뭐하러 여기에 쓰나 에버노트에 쓰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누군가 좀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 슬쩍 올려보게 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보다는 예전에 했던 싸이 미니홈피에 글을 올리는 느낌으로. 나도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지만 페북이나 인스타 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좀 부끄러우니까 남들이 의도적으로 눌러야 볼 수 있는 곳에 올려놓는다. 이걸 올린 건 나지만 선택해서 읽은 건 당신이니까 나를 뭐라 할 수 없을 거다 라는 생각에.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바람으로 책상 위에 일기장을 올려놓는 기분이다.

예전에 이 책을 읽고 알랭드 보통의 사랑 시리즈 3권을 모두 샀는데 아직 나머지 두 권을 못읽었다. 아마 새로운 사랑을 하거나 이별을 할 때가 되야 그 책들을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사람은 사랑을 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지 그 사람을 사랑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라면. 또한 사랑은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하여 우리가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완벽한 상대를 잃지 않으려고 바둥대는 것일 뿐이라면. 사랑은 소멸할 수 있다는 불안정 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결혼과 사랑 만큼이나 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친구들에게 하면 너는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한다거나 결혼 하고 나서도 서로 사랑하며 잘 지내는 커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리를 하냐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나는 연애 할 때보다 더 뜨겁게 사랑하는 부부를 아직은 실제로 본적이 없다. 있을 수도 있겠지만. 불안정하면서 열정적인 사랑이 존재하는 것 처럼, 같이 한 시간과 대화와 믿음과 여러 사건들이 단단하게 연결하는 안정된 사랑 역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은 한다.


남녀간의 사랑은 어느정도 기독교적인 사랑과도 비슷하다. 내 모든 걸 나눠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지만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내가 하지 말라는 걸 하면 너를 지옥으로 보내버리겠다는 것. 하나님도 사랑과 자유주의의 대립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남녀간의 사랑은 어떠하겠나.

11쪽
짐을 챙겨서 세관을 통과했을 때 나는 이미 클로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18쪽
나의 실수는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였다.

: 아직까지는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고 있다. 내 삶에 멍하니 서있는 나에게 강물이 흐르듯 사랑이 찾아 왔다 흘러 갔다 할 뿐이고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은 지금 흐르고 있는 강물이라는 건 너무 낭만적이지 않지 않나. 내 나이가 낭만을 쫓는 것을 그만두기 전까지 그런 사람이, 그런 사랑이 끊임 없이 오고 갈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이 사랑이,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주는 느낌과는 너무 다르니까.

19쪽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39쪽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항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41쪽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맀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97쪽
유머가 있으면 직접적으로 대립할 필요가 없었다. 자극물 위를 미끄러져 넘어갈 수 있었고, 그것을 비스듬하게 바라보며 눈을 찡긋할 수 있었고, 실제로 말을 하지 않고도 비판을 할 수 있었다.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124쪽
나는 몸 때문에 클로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본질에 희망을 품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 몸을 사랑했다. 그것은 매우 가슴 설레는 희망이었다.

174쪽
사랑의 가장 큰 결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비록 잠시라고 해도 우라에게 심각한 행복을 안겨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228쪽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230쪽
문명이 환각 위에 세워진 것 같았다.

클로이가 떠남으로써 거의 모든 일에서 자신감이 흔들렸다. 나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어린애같이 삐치기 잘하는 악마가 나를 장악한 느낌이었다. 그 악마는 나에게 웃음을 짓게 하고, 안심하라고 다독거린 뒤에, 바위에 메다꽂았다.

238쪽
나는 시간의 부식으로 인해서 모난 부분이 다듬어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나는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다. 그래야 불타버린 신경의 말초를 통해서 클로이와 관련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나의 죽음을 통해서만 내 사랑의 중요성과 불멸을 주장할 수 있었다. 비극에 싫증을 내는 세상을 향항여 자기 파괴를 보여줄 때만 사랑은 치명적일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일깨울 수 있었다.

252쪽
클로이가 떠나는 것과 더불어 현재를 따라가고자 하는 모든 욕망도 사라졌다. 나는 노스탤지어에 젖어서 살았다.

269쪽
문제를 파악하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 지혜와 지혜로운 인생은 크게 다르다.

270쪽
그러다가 어느 날 디너 파티에서 레이첼이라는 여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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