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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으로 널 사랑해 - 철학자들이 말하는 사랑의 모든 것
올리비아 가잘레 지음, 김주경 옮김 / 레디셋고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 특히나 더욱 중요하다고 부르짖는 것은 바로 사랑일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다. 그리고 자라면서도 항상 사랑을 갈망한다. 사랑이란 말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고 슬프게도 한다. 아마 사랑에 대한 욕망은 죽을 때 까지 지속될 것이다.
누군가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셀 수 없이 많은 답들이 쏟아지리라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하듯 한눈에 반해버리는 사랑, 마음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사라져가는 알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신경생물학자들은 과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랑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아닌 예측 가능한 것으로 복잡한 신경 생리학의 역학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인 이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지 아주 예전부터 철학자들도 이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쇼팬 하우어는 사랑에 대한 허상을 깨기 위해 ‘사랑이란 생식을 유도하기 위해 자연이 쳐 둔 덫이다. 사랑은 비이성적인 현상이므로 현명한 자를 바보로 만들고 신중한 사람을 치명적인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다른 철학자들도 그와 조금은 다르지만 공통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의 욕망에 대해 조르주 바타이유와 클로드 래비스트로스는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근친상간의 금기와 동물적 향락에 대해 금지함으로 인간임을 드러낸다고 말하고 있다. 그 당시에도 성욕에 관해 의견이 분분했다. 동물적인 성욕을 비난하는 자들과 에로티즘의 폭력성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조금 난해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사랑과 성욕과 금욕은 종교와 정치와 사회적인 구조에 의해 결혼과 사랑, 쾌락과 사랑을 따로 분리시키기도 했는데 그 시대에 여성은 사랑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거의 주어지지도 않았고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사회가 바라는 여성으로 구속된 삶과 남편의 부속물처럼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이고 희생자였다.
그 시대를 들어다 보면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배척하려고 하기도 했다. 사랑은 찬양의 대상이기 전에 불신의 대상으로 고대부터 질서를 중요시한 자들에 의해 사랑은 언제나 경계대상이고 추방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결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닌 후손을 위해 가정을 위해 하는 것으로 사회가 정해주는 사람과 하도록 강요당해야만 했다.
“사랑을 제거할 수 없었던 교회는 적어도 그것을 살균 소독이라도 할 생각에 결혼을 만들었다”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
이처럼 고대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저지르며 사랑을 왜곡하고 그 가치를 훼손하며 사람을 모순적인 사회의 테두리에 옭아매었던 것 같다.
결혼은 여성에게 또 다른 구속이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기독교 교리에 의해 결혼에 높은 영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결혼으로 하나가 된 두 사람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었기 때문에 사람이 갈라놓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의 표현이었다. 결혼의 파기는 현재 삶의 이름으로 신의 사랑을 배반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편의 횡포에서 벗어나 현재 삶의 행복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사후에 구원을 받느냐를 두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와 가치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아마 사람이 존재한 날 부터가 아닐까 싶다) 많은 철학자들과 문학가와 예술가와 과학자들까지 다를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연구하고 변화하며 재해석되고 새롭게 정의되어 왔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연구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의 감정은 카멜레온처럼 수십 번, 또는 더 많이 얼굴을 바꾼다. 사랑의 기쁨 속에 고통이 있고 행복 속에 불행이 있다. 사랑으로 인해 세상을 다 가졌다가 하루아침에 세상을 잃기도 한다. 어떤 이는 두 사람이 만나 완전한 하나의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도 자신의 반쪽이 어디 있을지 찾아 헤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반쪽을 찾으면 행복해질 거라고 고독과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을지도 있다. 하지만 사랑의 시작은 행복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고독과 외로움과 불행의 시작일 수도 있다. 영원하지도 않고 언제라도 배신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인데도 불구하고 사랑을 원하며 살아가는 것은 삶에 있어서 사랑이란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숙명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