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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봄이 와 있다 - 서서히 피어나고 점점 진해지는 서른 살 나의 이야기
김규리 지음 / 예담 / 2012년 10월
평점 :
시간은 지치지도 않는지 어김없이 또 가을이 왔다. 그리고 내 마음 한구석에도 가을이 찾아든다. 친구들과 노느라 시간가는 줄도 모르던 어릴적 점점 날이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벌써 날이 저물어 버린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간직한 채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향하곤 했었다. 그때처럼 날이 저물어갈 때 느끼는 기분이랄까, 마음속에도 어느새 깜깜한 밤보다 더 서글픈 찬바람이 불고 허전함이 밀려온다.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이유 없이 슬퍼지려한다. 또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서일까, 짧은 가을이 지나고 나면 곧 추운 겨울이 올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덧없이 또 한 살을 먹는 것이 서글퍼서 일까.
가을은 봄과는 또 다른 느낌을 갖고 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면 또 다시 그토록 바라던 봄이 올 것이다. 내 인생에도 봄이 오길 기다리며 이 가을에 배우 김규리의 봄볕처럼 따뜻한 이야기가 피어오르는 책을 만났다. 이 책에는 그녀의 어린 시절 추억과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과 앞으로 어떤 자세로 새로운 날들과 만날지를 소박하고 담백하게 담고 있다.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그녀의 잔잔한 일상을 보면서 그녀가 조금씩 마음이 성숙해지고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나 또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책장을 넘기다 만나게 되는 다른 책속의 글들은 여행길에 보게 되는 봄꽃처럼 멋지다.

인생도 사계절처럼 변화무쌍하다. 굽이굽이 인생길이란 말처럼 봄날같이 피어나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차디찬 칼바람에 베일 때도 벼랑 끝에 서게 될 때도 있다. 끝이 없어 보이는 터널을 통과하듯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녀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사랑하는 엄마가 암으로 고통에 시달릴 때도 자신이 힘이 되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두려움이 많았던 시기. 배우로서 자신의 역량을 보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감, 슬럼프에 빠져서 지낸 시간들, 아프리카에 봉사하러 갔다가 그 곳에서 찾은 행복, 새로이 바라보게 된 삶에 대한 생각들이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다.
힘들 때면 그녀는 어릴적 자전거를 배울 때를 떠올린다.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는 뒤에서 자전거를 잡아주는 사람을 전적으로 믿고 페달을 밟는다. 그러다 그 사람이 손을 놓은 것도 모른 채 타게 되는데 문뜩 뒤에서 잡아 주는 사람이 손을 놓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고 만다. 그렇지만 곧 누군가 자전거를 잡아주지 않아도 자전거를 탄 것을 깨닫게 되고 그때부터는 자신을 믿고 페달을 밟게 된다. 그렇듯이 자신을 믿고 세상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두려운 세상도 자신을 받아준다고...
식구를 위해 자기 몸도 돌보지 않았던 엄마, 약수터에 매일 새벽 자기를 데리고 다니던 아버지와의 추억, 언니에게 처음으로 수영 배우던 날, 물만 실컷 마시고 죽을 뻔했던 이야기 하지만 그 덕에 물에 어떻게 자신을 맡겨야 되는지 알게 됐다는 그녀. 도전과 경험에서 얻은 것을 값지게 생각하고 더욱 자신을 성장시킬 줄 아는 그녀. 나이가 들면서 깊어가는 가을처럼 내면이 알차지는 그녀를 보게 되었다. 세월 속에서 얻어지는 연륜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그만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이듬은 연륜이 쌓이는 것. 그만큼 지혜로워지고 내면이 탄탄해질 수 있는 숙성기간을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소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가 조용히 내 마음을 두드린다. 언제부터 기다린 건지 봄은 우리들의 집 문 앞에서 서성이며 닫힌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그녀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봄이 벌써 와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봄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기다리던 봄이 기다리다 지쳐 떠나가 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