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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의 분홍 원피스 ㅣ 청어람주니어 고학년 문고 2
임다솔 지음, 정은민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중학생 때의 일을 떠올렸다. 교실에서 수업 중이던 우리는 갑자기 심한 기침을 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무엇때문인지 숨 쉴때마다 목과 코로 들어오는 매운 가스로 인해 호흡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눈물이 흘러 손으로 닦아 내자 눈에 눈은 고춧가루를 뿌린것처럼 따가웠다. 그리고 곧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대모를 일으켰고 전경들이 그 대모를 막기 위해 체루탄을 쏜 것이었다. 그 가스가 바람을 타고 교실까지 들어온 것이다. 처음 겪는 나로선 정말 어리둥절했다.
집에 가는 길은 더 심했다. 길가에 전경들의 차들이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리집은 도청과 대학교가 인접해 있는 곳이었는데 집 근처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무장한 전경들이 도청 앞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체루탄이다’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난 더 이상 눈을 뜰 수 없었고 숨도 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체루탄 가스때문에 눈물, 콧물 다 쏟아져 나왔다. 얼굴은 눈물,콧물 범벅이 된채 어디로 도망을 쳐야 될지 몰라 정신나간 사람처럼 한참 허둥거리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날 후로도 학교 가고 오는 길에 전투태새를 갖춘 전경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뻣뻣하게 마네킹처럼 꼼짝도 않고 서 있는 그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란 생각을 해 보았다. 언론도 그리 자유롭지 않던 시대고 정치에 관해서는 잘 몰랐던 난 무엇 때문에 학생들이 시간만 나면 대모를 일삼는지 이럴 땐 정부와 학생 모두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TV를 커면 마스크를 낀 대학생들이 도로에 나와 구호를 외치며 화염병을 던지고 전경들은 체루탄을 쏘는 모습이 거의 매일 방영되었다. 그들의 싸움은 끝이 없어 보였다.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도 우리는 전혀 듣지 못했다. 그 일은 오랜 세월이 흘러 차츰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처음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와 입을 막아 놓았기 때문에 그 당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을 뿐이었다. 불안했던 시대를 살고 가슴 아프게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건 노력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했을까?
그 시대를 잘 반영하는 것이 드라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본 ‘모래시계’에서도 그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난 그런 비인간적인 만행에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느꼈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할머니도 광주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였다. 그 당시 할머니는 딸이 그토록 입고 싶어 했던 분홍 드레스를 가방에 넣어 광주에 있는 그리운 딸을 만나러 간다. 그곳에서 군인들이 무고한 시민을 사살하는 것을 목격한 할머니는 자신의 목숨은 간신히 건졌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잊을 수 없는 충격으로 남았다. 그리고 딸의 죽음까지 봐야 했던 할머니는 끝내 딸에게 주지 못한 잃어버린 분홍드레스가 마음속에 한이 되어 치매로 모든 기억을 잊어버렸지만 그때의 일만은 할머니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딸에게 주려고 했던 분홍 드레스를 찾기 위해 매일 밤 곳간으로 사라지는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나빛이는 차츰 알게 된다. 민주화 운동때 군인신분으로 진압 명령을 받고 투입되었던 밀짚모자 아저씨 또한 그때의 충격으로 한번씩 발작을 일으킨다. 그리고 평생을 죄인처럼 살면서 분홍드레스의 주인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된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가? 군인 신분으로 명령을 어길 수 없었던 사람들,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죄 없이 죽어간 억울한 사람들, 학생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모두가 시대의 피해자인 것이다. 이제는 또 하나의 역사가 되었지만 정말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던 그 시대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죽어간 많은 아름다운 영혼들이 있는 한 우리는 절대 그때 그들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