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의 쓸모를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고 지인이 강추한 책이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보았다. 김영란의 독서는 나에게는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독서였다. 김영란이 읽은 책은 나는 요 몇년간 읽은 책들이었다. 김영란과 깉은 수준의 독서를 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읽고 여기에 소개된 모든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 욕망이 사라지기전에 얼른 책을 들어야겠지. 마지막 부분에서야 이 책을 쓴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그 시절의 독서를 하면서 작가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 작가의 삶의 질문과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소설 속에서 나의 삶을 해석하게 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끝없이 달려온 삶의 마지막에 치통아줌마를 만나서 욕구를 내려놓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라야 하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것은 누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치통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해 하찮은 성공이라도 받아들이라고 자신을 설득하고 있는 안데르센의 모습은 자신의 성공을 과장하여 써내려간 자서전보다는 훨씬 더 삶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P264

-이럴 때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주는 작가들은 나에게 유일하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이런책으로의 침잠이 현실도피적이라는 생각을 한 때도 있었지만 판단은 늘 유보해두었다. 다행스럽게도 2018년 사망한 후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작가 어슐러 K. 르 귄은 거짓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거짓으로부터의 도피‘는 "기쁨과 비극과 윤리가 존재하는 보다 생생한 세계를, 격렬한현실의 존재를 확립하고자 하는 것" 으로서 본질적으로현실과 밀접하다고 주장해주어서 위로가 되었다.
- P268

 그러나 글을 마칠 무렵이 되자 결국 책을 통해 만난 그 모든 사람들이내 삶에 들어와 있는 인물들이며 나였다는 생각 또한 든다. 그리고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때에 뒤늦게 다가올 진리의 순간에는 나 자신의 삶과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 속등장인물들의 삶을 구분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질지도 모른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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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에 대해 많이 들어봤지만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이번에 공부하면서 프랑켄슈타인 영화 3편을 보고 책도 읽었다. 프랑켄슈타인 작품 자체도 좋지만 메리 셀리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된 점이 좋았다. 이런 작품을 그당시에 여성이 썼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 나의 편견이기도 하다. 메리 셀리가 자기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낼 수 없었던 그 시대가 안타깝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로 인해 탄생된 괴물은 태어나면서부터 창조자인 박사에게 버림받고 스스로 언어를 배우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었지만 거절당하고 모욕당했다. 과학으로 만들어지는 ai 와 로봇들에게 인격이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이 계속이어지는 것 같다.
글 중간중간 나오는 지식을 보면 메리 셀리의 지적인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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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빼고 모두가 휴식을 취하거나 즐기고 있었다. 나는 악마의 수장처럼 내 안에지옥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 걸알고 나니,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내고 주위를 마구잡이로 파괴하고 나서 주저앉아 그 폐허를 만끽하고 싶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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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너무 아름다워서 책을 통째로 외우고 싶다. 작가가 구석에 대한 마음과 서쪽, 시에 대한 사랑이 아름다워서 배우고 싶다. 이글을 읽고 나의 시에 다음 행을 입혀져서 좋다. 세상의 조도가 낮아질 때 나의 마음과 같아서 공감된다. 작가가 책을 더 많이 내면 좋겠다.

내일은 눈이 녹을 것이다. 눈은 올 때는 소리가 없지만, 갈 때는 물소리를 얻는다.
그 소리에 나는 울음을 조금 보탤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내 마음은 온 우주보다 더 크고, 거기에는울음의 자리도 넉넉하다.
- P14

겨울을 겨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한 듯해도, 돌이켜보면 그런 시선을 갖지 못한 적이 더 많다.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이다. 그러나 조급해한들,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고통이 그런 것처럼.
- P19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외면이란 사실 따로 존재 - P25

그러므로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사람이 된다. 지혜로워지거나 선량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시의 한 행에 다음 행이 입혀지는 것과 같다. 보이는 거리는 좁지만, 보이지 않는 거리는 우주만큼 멀 수 있다. 나라는 장시(長詩)는 나조차도 미리 짐작할 수 없는 행들을 붙이며 느리게 지어진다.
- P25

그러니 역시 ‘행복‘이라는 낱말은 없어도 될 것 같다.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마주하면, 나의 최선과나의 최선이 마주하면, 우리는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다.
- P35

우리는 구석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구석의 목소리는 곧 꺼질 불씨처럼 위태로워서,
구석끼리 자꾸 말을 시켜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의 가능성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 P55

세상의 조도가 낮아지고, 지붕과 나무와 빈 그네에침침한 그림자가 진다. 선명함을 잃을 때 모든 존재는쓸쓸함을 얻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주 의기소침해지는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상대방의 마음이라는 건 도대체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 같기만 하고, 나는저녁 앞에서 노인처럼 어두운 눈을 비비는 것이다.
- P121

창으로 하늘이 보였다. 노을은 있기도 없기도 했다. 세상에는 왜 서쪽이 있는지, 서쪽은 왜 아름다운지, 아름다운데 왜 두려운지, 그런 답이 없는 질문들을 거기 서서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뻔한 마술처럼 눈앞의 풍경이 어둠에 스며 사라지고, 창 위로 내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할 수 없다는 듯 책상에서 내려왔다.
그 ‘자율저녁감상‘ 시간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책상을 딛고 올라가 창밖을 보는 대신 책상 위에 시집을 두고 읽기 시작했다. 시 안에도 서쪽이많았고, 나처럼 서쪽을 바라보는 얼굴들이 있었다.
- P123

"엄숙함은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것이지만, 웃음은 일종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무거워지는 것은 쉽고 가벼워지는 것은 어렵다.
결국 발목에 추를 달 줄도, 손목에 풍선을 달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양극을 번갈아 오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두 겹의 감정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추를달 때 풍선을 기억하고, 풍선을 달 때 추를 잊지 않기.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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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담임을 하고 난 뒤에 이 글을 읽으니 아주 새롭게 다가온다. 학교라는 곳에 오는 것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큰 사건인 줄 몰랐다. 처음 1학년을 했을 때보다 훨씬 너그러워지긴 했지만 아이들을 알아주지는 못한 것 같다. 아이들의 상실감에 사회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냈을까?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한 행동들 아직도 자기를 잃어버리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보았던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시 헤아려보게 된다. 내가 아이들에게 비빌언덕이 되어주고 있나? 아이들이 사회로 나오도록 안내하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요즘 엄마와 아이가 너무 밀착되어 아이들에게 사랑을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은 것 같다. 엄마 옆자리에 아이를 여전히 두고 싶어하는 엄마들도 많다.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잃어버리고 새로운 관계에 이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책. 꼭 읽어봐야 하는 책 인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러 아이들에게 진짜 어려움이 닥치게 됩니다. 대랑의 상실이 일어나고 힘겨운 애도의시간을 줄줄이 견뎌내야 합니다. 조금씩 잃고 조금씩 채워가는 리듬이 보장되지 않고, 한꺼번에 잃고, 미처 채우기 전에 또 잃을 수 있는 처지에 놓입니다. 무슨 일일까요? 네, 바로 학교에 가게 된 것입니다.
잘하던 것을 못하게 되고, 못하는 것을 만나게 되고학교에 가는 순간 아이는 먼저 자기 땅을 잃습니다. 학교는 더 이상 사적인 공간이 아닙니다.  - P192

아이는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잘하는 나가 아니라,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나, 혹은 잘하려고 노력하는 나, 잘하기보다는 즐겁게 하는나, 남이 잘하는 것을 응원하는 나가 되는 것도 결국은 나를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이전의 자신의 모습과 헤어져야 합니다.  - P195

 지식은그렇게 우리가 도저히 풀 수 없는 미스터리와 마주하면서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방패막이가되어줍니다.
- P248

아이가 실망과 좌절을 하는 상황은 항상 다른 사람과의비교,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진 기대감에 있습니다. 이는 성인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고, 그 기대감을 스스로 채울수 없을 때 실망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일이 잘못되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절망할 때가 아닙니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자기에게 없거나 자기가 뺏겼다고 여기는 것을 채우는 방법을 누군가에게 물었을 때, 다시 말해 해답을 달라고 누군가에게 요구했을 때, 그에 대한 답을 제대로 얻지 못할 때 생깁니다. 지식의 효과, 공부의 역할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지점에 있습니다.
- P226

좋아하지도 않고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라면, 답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멀어져버린 공부와 나의 관계를 좁혀주고, 상실되었던 발견의 지점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연구의 장 안으로 발견의 체험을 밀어 넣는 것이죠. 바로 거기에 학교와 선생님들의 역할이 있습니다. 책에 잘 설명되어 있는 것을 다시 잘설명하는 일, 학원 선생님이 잘 설명한 것을 다시 설명하는일이 선생님의 역할이 아닙니다. 지식의 전수와 관련된 선생님의 역할은 객관적인 차원으로 분리되어 나간 공부와아이의 사이를 좁혀주는 일입니다.  - P231

책이나 전자매체를 통해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지식과 단독으로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하지만 중간에서선생님이 전달해준다면 나와 선생님과의 관계가 생깁니다.  - P236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학생에게 말을 하지만, 그 못지않게 학생의 말을 들어줘야 합니다. 한편 학생은 선생님의말을 듣고, 또 선생님에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말을 하는 순간, 내 말을 들어주는 ‘너‘가 생기고 ‘너‘로 인해나는 1인칭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다시 등장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학교에 가면서 발생하는 상황, 주인공을 맡던 무대에서 내려와 나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를 보상해주는 방법이 됩니다.  - P235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친구들에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한다면 그것은 조금 다른 의미를 품습니다. 거기에는 어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랑하고 어른에게 인정받고싶어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인정을 통해 아이 자신과 삶이가치 있어집니다.
- P237

 선생님은 아이를 사회적인 장으로 이끄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와사회의 중간에 서 있는 선생님의 과업입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가능하면 자신의 것을 최대한보존하면서 지식과 사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방향을 잡아줘야 합니다. 선생님 없이 아이 혼자 지식과 사회를 마주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삶이 객관적인 체계에서 어느 지점에 상응하는지 찾기 위해 훨씬 더 오래 방황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놓고, 말하기를 멈추고 들어야 하는 상황이 아이에겐 낯설고무언가를 뺏기는 것 같은, 그보다 더한 경우라면 자신을 잃어버리는 듯한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실감은 반드시 겪어내야 하지만, 그로 인해 회복되지 않는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의 지식을 대표하는 선생님음 말 그대로 선생님으로서 바로 그 사회의 지식을 통해 아이가 겪는 상실도 함께 극복해나가고 그 상실을 통해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해주어야 합니다. - P251

 그것을 해결하고 그 흔적을 감당할 수 있으려면 우리에게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나의 고통과 좌절을 알아주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나의 노력을 응원해준다고 믿을 수 있어야만 나의 힘든 노력이 공허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의지하는 사람, 내가 의지하는 법, 내가 의지하는 사회 체제는 내게 결코 정답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부름에 대한 응답은 얻을 수 있어야합니다. 어떤 응답도 없는 세상에서는 살아볼 용기를 낼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할 때, 우리는 부모로서, 선생으로서 그에 대해 응답해주어야 합니다. 직접 나서서 그러기이 아니라, 적어도 그 아이가 정말로 고통스러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아이가 그것을 이겨내도록 노력을 해주기 바란다는 것을, 그리고 그 노력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 P254

아이의 보호자의 윤리에는 아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P256

어떤 친구냐면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해주는‘ 친구들이죠.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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