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너무 아름다워서 책을 통째로 외우고 싶다. 작가가 구석에 대한 마음과 서쪽, 시에 대한 사랑이 아름다워서 배우고 싶다. 이글을 읽고 나의 시에 다음 행을 입혀져서 좋다. 세상의 조도가 낮아질 때 나의 마음과 같아서 공감된다. 작가가 책을 더 많이 내면 좋겠다.

내일은 눈이 녹을 것이다. 눈은 올 때는 소리가 없지만, 갈 때는 물소리를 얻는다.
그 소리에 나는 울음을 조금 보탤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내 마음은 온 우주보다 더 크고, 거기에는울음의 자리도 넉넉하다.
- P14

겨울을 겨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한 듯해도, 돌이켜보면 그런 시선을 갖지 못한 적이 더 많다.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이다. 그러나 조급해한들,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고통이 그런 것처럼.
- P19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외면이란 사실 따로 존재 - P25

그러므로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른사람이 된다. 지혜로워지거나 선량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시의 한 행에 다음 행이 입혀지는 것과 같다. 보이는 거리는 좁지만, 보이지 않는 거리는 우주만큼 멀 수 있다. 나라는 장시(長詩)는 나조차도 미리 짐작할 수 없는 행들을 붙이며 느리게 지어진다.
- P25

그러니 역시 ‘행복‘이라는 낱말은 없어도 될 것 같다.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마주하면, 나의 최선과나의 최선이 마주하면, 우리는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다.
- P35

우리는 구석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구석의 목소리는 곧 꺼질 불씨처럼 위태로워서,
구석끼리 자꾸 말을 시켜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의 가능성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 P55

세상의 조도가 낮아지고, 지붕과 나무와 빈 그네에침침한 그림자가 진다. 선명함을 잃을 때 모든 존재는쓸쓸함을 얻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주 의기소침해지는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상대방의 마음이라는 건 도대체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 같기만 하고, 나는저녁 앞에서 노인처럼 어두운 눈을 비비는 것이다.
- P121

창으로 하늘이 보였다. 노을은 있기도 없기도 했다. 세상에는 왜 서쪽이 있는지, 서쪽은 왜 아름다운지, 아름다운데 왜 두려운지, 그런 답이 없는 질문들을 거기 서서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뻔한 마술처럼 눈앞의 풍경이 어둠에 스며 사라지고, 창 위로 내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할 수 없다는 듯 책상에서 내려왔다.
그 ‘자율저녁감상‘ 시간은 한동안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책상을 딛고 올라가 창밖을 보는 대신 책상 위에 시집을 두고 읽기 시작했다. 시 안에도 서쪽이많았고, 나처럼 서쪽을 바라보는 얼굴들이 있었다.
- P123

"엄숙함은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것이지만, 웃음은 일종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무거워지는 것은 쉽고 가벼워지는 것은 어렵다.
결국 발목에 추를 달 줄도, 손목에 풍선을 달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양극을 번갈아 오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두 겹의 감정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추를달 때 풍선을 기억하고, 풍선을 달 때 추를 잊지 않기.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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