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학술책이라고 주장하는 이 책은 쉽고도 재미있고 어딘가 한구석 쓸쓸해지기도 하다. 돌봄노동, 의존 노동이라고 하는 것이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것이 슬프고 그 와중에도 사람들과의 친밀함을 바탕으로 즐겁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한방울씩 차올라서 결국 할 수 없게도 만든다. 그렇다고 자본으로 다 해결할 수도 없다. 그러면 아질이 어사일럼이 되기 때문이다.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나 역시도 있게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자기돌봄이 필요한가? 자기 돌봄도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슬프다.

p53
위니콧이 말한 ‘참된 자기‘란 명하니 있는 무방비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컨대 탕에 몸을 담그면 절로 "오오오!" 하는 소리를 내며 긴장을 푸는데, 이럴 때 ‘참된 자기가 얼굴을 내민다.
아기가 엄마의 돌봄을 받을 때치림 무언가에 내 몸을 전부맡겼을 때 ‘참된 자기가 나타난다. 즉 무리하지 않고 존재하는자신이다. 그래야 비로소 ‘있기가 가능해진다. 내가 야구 경기를본 뒤에 늘어져서 앉아 있던 것이 바로 그 예다.
반대로 엄마의 돌봄이 실패해서 아기가 더 이상 자신을 맡길수 없어지면 아기의 마음은 무너질 위기에 놓인다. 생존이 위험해지고, ‘있기 가 위협을 받는다. 그러면 아기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엄마를 기쁘게 하려 노력한다. 위니곳에 따르면, 그럴 때
‘가짜 자기가 나타난다.

p54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온전히 기댈 때, 의존할 때는 진정한 자신으로 있고, 그럴 수 없어지면 ‘가짜 자기를 만들어나다. 그래서 있기가 괴로워지면 ‘하기‘를 시작한다. 뒤집어 말해
‘있기 위해서는 그곳에 익숙해지고 그곳의 사람들에게 안심하고몸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p78
물론 돌봄 시설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사회인, 전업주부, 학생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상사에게 질책을 듣거나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거나 연인과 헤어지면, 극히 평범하던 일상이 너무나 간단히 재가 된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불씨가 단숨에 퍼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평소와는 다른 자신이 튀어나온다. 학교나 회사를 빼먹기도 하고, 소중한 인간관계를 스스로 망가뜨리기도 한다. 그간 당연했던 ‘있기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의일상 역시 얇은 막으로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돌봄 시실의 경우에는 일상을 유지하는 그 막이 유독얇다. 그리고 연약하다. 얇은 막은 가연성 물질처럼 한순간에 불이 옮겨 붙는다. 

p101
의존노동은 돌봄, 관심, 관계로 특징된다. 돌봄은 취약한 상태에 있는 타인을 수발하는 노동이다. 이 노동은 친밀한 사람들 간의 결합을 지속시키거나 혹은 그 자체로서 친밀함과신뢰를 만드는, 즉 관계이다.

p105의존노동은 눈에 띄지 않는다. 나무꾼은 아내의 가치를 좀처럼 알아보지 못하고, 나무꾼의 아내 자신도 ‘나는 나무를 베지못하니 그냥 빨래나 해야지.‘ 라고 생각하기 쉽다.

p145
나카이 히사오는 "조현병 환자들이 지루해한다면 꽤 호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루함이란 우리를 지키는 원이잘 닫혀 있음을 알려주는 위대한 결과다. 공허란 원이 닫혀 있다.

p193
마음의 치료, 즉 정신치료는 사정이 좀 복잡하다. 마음의 병은 삶의 방식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이 치료인지 알기어렵다. (어떤 삶이 옳은지 현대 사회에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그래도 정신치료는 새로운 삶을 열어젖히고 인생을 재구축하는것을 목표한다. 그것을 사람의 성장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사건은 정신치료에 큰 의미를 지닌다. 정신치료도 어디까지나 수단이다. 통과하는 과정이다.
돌봄 시설은 이와 또 다르다. 돌봄 시설에서는 변치 않는 것‘
에 큰 가치가 있다.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긴 시간을 소비하고 건강보험에서 많은 돈을 받으며, 즉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부어 ‘변지 않는 것을 목표한다.
돌봄 시설에서는 ‘하루‘를 지낼 수 있게 되기 위해 하루를 지낸다. 그곳에서는 수단 자체가 목적이다. 멤버들은 돌봄 속에 머무를 수 있기 위해 돌봄을 받는다. 돌봄에서 지르는 통과하는과정이 아니라 머무르는 곳이 된다.

p109
 사회심리학자 프랑크 리스만 Frank Riessman 은 ‘조력자 치료 원리 Helper Therapy Principle 라는 이론을 세웠다. 간단히 말하면 누군가를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지하철에서 교통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좋은 일을 한 것 같아서 앉아 있을대보다 기운이 난다. 친구에게 공부를 가르치면 나에게도 공부가 된다. 후배에게 한턱내면 나도 왠지 기분이 좋다. 이른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들이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주면, 내가 준것 이상을 얻을 수도 있다.

p337
다시 말해 아질에 예산이 투여되면 어사일럼이 된다. 자본은아질을 죽인다. 자본의 투명한 빛은 어두컴컴한 아질을 구석구석 비추어 어사일럼으로 바꿔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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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속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의 어두움도 들여다보게되었으며 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된다. 새로운 원칙이나 새로운 시선에도 마음이 머무른다.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에 대한 나의 경직된 마음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한사람의 노력이 소중해지고 함께 살리기 위해 어디선가 치열하게 싸우는 태도도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계속 내가 여기에 쓰는 것도 의도적인 메모라 할 수 있겠지.

103 한 사람의 어떤 노력도 중요하지 않은세상이라면 그 사람은 속으로 얼마나 슬프겠어요.

115 몸은 노화를 겪으며 낡는데 그 낡은 몸이 결코 낡을 수 없는 기억을 담고 있다.

45
인간적인 것은 모두 내 마음을 움직인다. 내가 가장좋아하는 이야기들 속에는 슬픈 세상에 깃든 인간의이런 사랑스러움이 없었던 적이 없고 내 눈에는 이런것들이 아주 아름다워 보인다.

45
사회가 힘이 셀수록 그저흘러가는 대로, 되는 대로 가만히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 메모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메모는 ‘자신감‘ 혹은 ‘자기존중‘과도 관련이 있다. 스스로 멈추기 때문이다. 

49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은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얼굴과몸짓, 표정, 눈빛마저 바꾼다. 나는 나의 가치는 내가중요하게 여기고 살리는 이야기의 질에 달려 있다고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50
꽃이 폈다. 바깥에 좋은 것 많다. 나가 놀아라. 네 생각바깥으로 나가 놀아라." 

51
"그러는 너는 뭐가 재미있어?" 라고 물어봐주면좋겠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있다."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은 활짝 핀 꽃그늘 아래 또는별빛 아래를 걷는 것이다. 시원한 바람과 맞서며 해변을 걷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깜짝 놀라는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다 있어?"

64
이제껏 해보지 못한 생각을 하면 좋고 이제껏느껴보지 못한 것을 느낄 수 있으면 좋다. 꼭 시원한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것 같다. 그리고 ‘아! 이거구나‘ 하는 깨달음은 반드시 침묵을 데리고 온다. 

67
보르헤스의 말이다. "우리 인생에는 약간의 좋은 일과 많은 나쁜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은 그냥 그 자체로놔둬라. 그리고 나쁜 일은…." 여기서 잠깐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대체 나쁜 일은 어떻게해야 할까? "나쁜 일은 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 이 말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93 우리 살아남아서 서로를 살리자.라고말하려면 나부터 어디선가는 싸우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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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게 된다. 그 무지로 인해 알게 모르게 이런 사회가 계속 유지되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부끄럽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들을 때 나는 피해자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 또한 피해자를 타자화하고 주체가 되지 못하게 했다. 숙대 트렌스젠더 입학 거부를 보면서 페미니즘을 말하면서 자신도 차별에 앞장 선다는 사실에 의아 하고 분노했다. 이태원 학원강사일도 보면서 사람들의 분노와 혐오에 대해 그건 아닌데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무지, 나의 고정관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페미니즘이 신 자유주의와 함께 오면서 중산층의 계급이 높은 여성들에게 다가 오는 페미니즘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금과 페미니즘은 역시 분리 할 수없는 문제인 것 같다. 작가가 희망은 절망적 상황에서 가능하다고 했다. 이 현실을 직시하고 나설때 작은 희망이 있지 않을까?

P10
페미니즘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사상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그 이상이다. 페미니즘의 관심사는 피해와 가해라는 위치가 주어지는 방식 자체에 있다.

P10
피해와 가해라는 문제는 ‘누구‘ 혹은 무엇‘의 문제에서 ‘권력과 폭력‘의 문제로 재설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피해와 가해의 맥락을 어떻게 이해하고 번역하고 정당화하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책에서 시도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런 작업이었다. 무엇이 피해이고 무엇이 가해인지,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가아니라, 권력이 폭력을 통해 실행되고 정당화되는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 모든 필자들의 목표였다.

P17
누가 진정한‘ 여성인가? 가장심각한 피해는 누가 정하는가? 우선 순위는 사회 정의와 어떻게연결되는가? 정희진은 이러한 현상은 남성 정치의 모방일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 자아 개념의 변화와 함께 페미니즘에도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한 결과라고 본다.

P17
어떤 여성과 동일시할 것인가는 언제나 권력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백인 여성? 이성애자 여성? 젊은 여성? 비장애인 여성? 누가 여성의 ‘기준‘인가라는 질문은 여성주의 이론의역사 그 자체이다.

P18
하지만 정체성의 근거가 피해에 머무르게 되면, 여성들은 고통을 경쟁하고 피해를자원으로 삼는 남성 사회가 원하는 성 역할 수행 주체가 됨을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글의 요지는 이것이다. 페미니즘은 피해자 정체성의 정치가 아니고 피해 역시 그 자체로 사실이 되지 않는다. 현재의 ‘미투‘ 운동처럼,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경험을 말하는 것은 사실의 공표라기보다는 담론적 실천‘이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적 실천이 사회 정의로 수용될 때 비로소 사회의 변화는 가능해진다.

P70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속해 있다고 생각했던 사회를다시 생각해야 하고, 그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되는 것에 질문을멈추지 말아야 한다.

P109
누가 가해자인가 보다는, 무엇이 폭력인가‘를 질문했어야 했다.

P133
커밍아웃을 하는 데 용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용기는 반드시 대중 앞에 나설 용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케밍아웃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괜찮아. 나는 동성애자이고, 있는그대로의 나로 살아도 돼." 라고 말하는 것이다.

P136
피해를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할 때 우리는 개인이 감당할 몫과 나를 포함하여 사회가 감당할몫이 따로 있음을 알아야 하고, 동시에 그 각각의 몫의 경계를구분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P147
그러므로 커버링을 완전히 수행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하지만 교묘하게 계속 소수자들에게 다른 사회적 지위와 대우가 가능하다는 착각을 스스로 하게 만든다.

P188
혐오는 가해자가 자신의규범성을 증명해야 하는 방어적 상황일 때 지배 규범을 인용하면서 그 형태를 갖추고 정당성을 획득한다.

P197
사회적 신뢰‘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피해자와 그 지지자체성, 혹은 이별 통보가 패닉을 야기할 정도였는지 물을 수 있고하는 것이다. 이럴 때 패닉 방어 전략의 피해자, 이별 살인의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왜 게이나 트랜스라는 정들이 변명하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다.

P225
그렇지만 피해자성을 중심에 둔 페미니즘은 타자와의 연대를불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간 고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보고, 나의 고통을 타인이 빼앗아 간다고 생각한다. 남성은 ‘권리‘를, 여성은 ‘고통‘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때 사회적 약자에게 주어진 ‘선택‘은 두 가지이다. 타자와연대할 것인가, 아니면 지배 세력이 원하는 피해자가 될 것인가.
문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 선택이 매우 특별한 의미를 띠게되었다는 점이다.

P234
성별 범주의 구속 대신, 개인으로서 각자도생의 길을 찾으려는 여성들에게 타인의 시선(가부장제의 규범)은 분노를 넘어 무시하거나 비웃어도 되는 대상이 되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젠더 권력 관계가 변화했다기보다 성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대응 방식이달라졌음을 의미한다. 개인이 모든 것을 헤쳐 나가야 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의미를 확인하는 일은 타인과의 관계가아닌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때 일부 여성들에게는 나만을 위한 페미니즘이 일시적으로 필요하다. 생존의 개인화가 강하게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절대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사회 정의로서 페미니즘‘이라기보다 각자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여부 즉 이익 집단으로서의 페미니즘 성격을 강하게 띠기 때문이다.

가p236
분명한 점은 지금과 같은 일부 페미니즘의 대중화 방식은 절대로 여성의 지위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전제하는 젠더=여성‘은 관념이다. 젠더 한 가지만으로 작동하는 여성 억압은 없다. 젠더는 사회 구조 자체이자 사회 문제의 기본 분석 단위이며, 인식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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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언어가 또다른 약자를 지킬 수 있기를 10)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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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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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동네 전설이 재미있다. 아이들이 그 전설을 이야기 하면서 새로 온 친구와 사귀고 함께 동네 아이들이 되어가는 게 멋지다. 자연에 살면서 계절이 오는 걸 한눈에 알아보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다. 밤이 떨어지는 밤밭에소 돼지 할아버지와 앉아 있는 장면은 너무도 아름답다.

적당한 무게의 밤알이 낙엽에쌓인 흙에 부딪쳐 나는 소리. 그 소리는 정말 새로운 느낌이었다. 밤들은 수없이 쏟아져 내였다.
최고로 아름다운 음악이 밤밭에 흐르고 있었다. 준영은 황홀했다.
‘세상에 이런 멋진 소리가 또 있을까?‘
아름다운 소리 사이로 가끔씩 돼지할아버지의 숨소리도 들려왔다. 왠지 두 소리가 잘 어울렸다. 문득 준영은 깨달았다.
가을이 되면 돼지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혼자서 이 아름다운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소리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는 사실을, 준영은 자신이 그 누군가가 된 것이다행스러웠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밤밭에 온 자신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과수원의 복숭아나무들은 이제 이파리들만 남아 있었다.
그중에는 벌써 잎을 반쯤 쏟아 낸 나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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