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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이유 - 자아를 찾는 아홉 가지 철학적 사유
갈렌 스트로슨 지음, 전방욱 옮김 / 이상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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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런('갈렌' 아니고 '게일런'임) 스트로슨은 매우 통찰력 있는 철학자이다. 그의 논문 몇 편을 읽어본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의 입장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나는 오늘 저녁에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책을 구매해서 집에 돌아와 서론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장이 괴랄하다. 스트로슨의 유려한 문장이 이렇게 멍청한 내용을 담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이번에도 또!) 원서를 온라인으로 구입해서 대조를 해봤다. 역시 또냐...


수동태를 능동태로 번역하질 않나, 가정법 과거완료인데 직설법으로 해석해서 내용을 바꿔버리질 않나, 주장과 논증을 구분하지도 못하고, "respect"가 일정한 측면의 의미로 쓰인 경우에 '존중'이라고 번역하질 않나(16쪽)..."삶 속에서 의식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아는"으로 번역해야 할 것을 "삶이 절대적으로 확실하다는 것을 아는"이라고 번역하질 않나(17쪽)...


이런 책들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제는 번역문과 원문을 대조해놓고 난도질 하기도 귀찮다. 


정말 돈이 아깝다. 


이 오역의 바다를 헤치고 스트로슨의 통찰과 논증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당신은 이미 스트로슨의 논문들을 영어로 읽어봤고 관련된 주제에 대해 배경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번역자는 생물학 분야의 전문가일 테고, 생물학 저널에 실린 영어 논문들이야 문제 없이 잘 독해할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 분야에서 쓰는 영문은 자연계쪽 저널에서 나오는 정형화된 글과는 요구되는 독해의 수준이 다르다. 어휘나 문장의 질 자체가 다르다. 번역자는 철학이나 문학 쪽의 영어독해는 초보자 수준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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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온 고양이 모차 6
니고타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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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생활해본 사람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는 만화입니다. 


5권을 볼때까지는 저의 반려 고양이가 제 곁을 지켜주고 있었는데, 6권을 읽은 지금은 제 사랑하는 친구가 떠나고 없네요. 


떠나간 고양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이번에는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 고양이도 이랬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과거의 기쁨이 추억으로 되살아나고, 이내 그리움과 슬픔으로 바뀌고, 그러다가 내 곁에 있어줬던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친구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마지막 에피소드 <추억의 보물상자>를 볼 때는 떠나간 고양이를 추억하고 애도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 이별의 아픔에 대한 나름의 위로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만화를 읽기 전에도 마음 속을 거쳐갔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감정, 생각, 고민들이었지만 다시 한번 마음을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고양이를 사랑하는 작가의 마음이 정말 잘 느껴지는 만화라고 생각해요. 만화 자체는 밝고 즐거운 내용이니까 고양이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이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만화 리뷰에 이런 글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사랑하고, 너무 고맙다, 홍시야!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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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철학 - 고양이와 삶의 의미
존 그레이 지음, 김희연 옮김 / 이학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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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고양이 그림책을 찾다가 이 책과 마주쳤다. 그리고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학문적인 태도를 취하자면, 이 책은 그다지 좋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애묘인이자 철학쪽에 몸담은 사람으로써 이 책은 아주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는 번역자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구매했다.  


고양이에 대한 부분을 완전히 제거한다고 해도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온전하게 남을 것이다. 


왜 인간은 철학을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진단과, 일종의 반철학(anti-philosophy)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자의 처방은, 저자가 고양이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다고 말하는 삶의 태도에 대한 설명이 없이도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간략한 요약같은 것은 여기에다가 적지 않겠다. 어차피 누구 읽으라고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또는 철학함)에 대한 저자의 진단과 처방은 모두 편협하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서양철학의 특정 조류, 죽음에 대한 공포로 대표되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영원하고 보편적인 원리를 찾고 그에 따르는 삶을 살려는 시도로서의 합리주의적 철학을 비판한다. 대부분의 명민하면서도 회의론적 태도를 취하는 식자들이 그러하듯, 저자는 비판을 할 때는 날카롭지만 대안으로 나아갈 때는 일부러 그러는 것 마냥 굉장히 단순무식한 태도를 취한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는 복합적인 개념들의 지저분한 잡종처럼 불명료하고, 도가의 무위자연적 삶의 태도는 동양 철학에 익순한 식자들에게는 매우 식상하기 그지없다. (이 두 가지가 저자의 철학 치료제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전도된 오리엔탈리즘처럼, 동양적 지혜가 뭔가 서양적 철학병을 치료할 것처럼 구는 것은 동아시아의 독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지루하다. 스피노자로 현학떠는 학자들과 도가 철학으로 현대의 서양철학병을 치료하고 삶을 되돌려 줄 것처럼 과대광고하는 학자들을 너무 많이 봐서인지, 내 입장에서는 정신이 구토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재미있다. (과음을 해도 구토를 하겠지만, 그전까지는 기분이 좋지 않은가?) 분명 저자는 진지하다. 전문 철학자가 철학에 대해서 느끼는 실존적 회의의 짙은 향기와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사실 내가 이 책을 구입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책 덕분에 철학자로서의 몽테뉴를 발견한 기쁨에 보답하기 위해서이다. 몽테뉴에 대한 책이나, 그의 <에세>(<수상록>으로 많이 알려진 책이다)에 입문하게 되어서 나는 기쁘다. 16세기의 지옥이라는 용광로에서 스토아적 현자를 동경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의 긍정법을 발견한 몽테뉴는 정말 매력적이다. 그리고 새뮤얼 존슨 박사의 소설 역시 너무도 즐거운 만남이다. 


존 그레이라는 저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서도 여러분은 반-이론철학의 영웅들이나 침묵주의(quietism)의 영웅들(예를 들자면, 비트겐슈타인이나 존 맥다월 같은 사람들)의 책에 빠져서 나름의 교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보다 실용적으로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을 통해서 자기 기만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매우 거칠게 말하자면, 전자는 아주 머리가 아픈 길이고, 후자는 머리가 아픈걸 완화하는 길이다. "어느 길이든 어떠랴. 그것이 너의 본성이라면 깊이 빠져 들어서 무시무시한 자기의식에서 벗어나라." 사실 이딴 무책임한 말 한마디 하는 것 이상으로 존 그레이가 딱히 더 해주는 말은 없다. 


번역어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diversion"을 "기분전환"으로 번역하는 것은 저자의 의도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여기서 "diversion"은 주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터, 답 없는 보편적 원리의 추구가 낳는 불행으로부터, 무자비하게 회귀하는 자기의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이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주의/생각 돌리기에 해당한다. "주의돌리기"가 더 낫지 않을까? "기분전환"이라고 하면, 일하다가 지루해져서 잠시 산책나가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물론 이런 의미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diversion"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추구행위이다. 이것은 단순한 일시적 도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을 살아가는 주된 방식으로 제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 "그러면 뭐든 다 괜찮아요? 음주나 마약은요? 비디오 게임은요?" 이런 질문이 나오게 마련이긴 한데, 여기서 자기보존이니 본성이니 그런 말 해봤자, 별 쓸만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보편적인 원리의 추구가 철학적 허구라며? 그렇다면 뭘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쓸데없는 소리를 좀 덧붙이자면, 


몽테뉴는 멋지다. 새뮤얼 존슨은 버클리의 관념론에 짜증을 내며 돌멩이를 찼을 때보다 쓸데없이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느라 시간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할 때 더 멋졌다. 그리고 고양이는 이 둘을 초월해서 훨씬 더 멋지다. 고양이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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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언어철학
윌리엄 G. 라이컨 지음, 서상복 옮김 / 책세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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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원서로 이미 읽어보았다. 이번에 다시 한번 원서를 보면서 번역본과 한 3분의 1 정도 대조해보았다. 가독성이 심하게 떨어지는 기계적 직역은 넘어가더라도, 오역이 너무 많다. 번역자가 상당 부분은 원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번역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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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독성인간 2022-08-02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역사에 관심이 있어 이것저것 두서없이 읽어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글쓰신 것들 읽어보니 서양고대사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아서요. 그리스 로마사 관련 좋은 책 추천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풍돈 2022-08-02 13:3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서양고대사 전공은 아니고 철학 전공자입니다. 서양 고대사에 관심은 많지만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고대그리스사 전공자인 분이 번역서를 출판하면서 책 마지막 부분에 입문용 참고 서적 목록을 써놓은 것이 있는데, 괜찮아 보입니다.

폴 카틀리지, 이상덕 옮김 2011, <고대 그리스> 교유서가,

이 책의 역자 후기 274-6쪽의 독서 안내를 참고 바랍니다. 번역에 대해서는 제 입장에서는 호불호가 있지만, 책 자체는 다 좋아요.

잡독성인간 2022-08-03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고대 그리스사 - 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까지
토마스 R. 마틴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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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번역서를 포함해서 한국어로 쓰여진 고대 그리스 역사 입문서는 흔치 않다. 


그 중에서 분량 대비 명료성과 내용의 충실성을 고려한다면 내가 보기에 이 책이 제일 좋다. 


일단 번역문이 유려한 편이다. 


나는 이 책을 한 번 다 읽고서 원서와 비교하면서 다시 정독하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종종 부정확한 번역이나 심지어는 오역들이 있기는 하다. (사실 꽤 많다.)

그러나 대체로 번역의 품질이 좋다. 사실 이건 원래 영어 원문이 깔끔한 덕분이기도 하다. 


오역의 예: 


266쪽: 번역자가 쓴 표현 "흠 있는 가축"은 원서에 있는 "unblemished domestic animal"를 오역한 것이다. 당연히 "흠 없는 가축"이 되어야 맞다. 내용 상으로 이게 말이 안되는 번역인 게, 제의에서 바치는 희생물을 흠 있는 것을 골라서 바친다는 것이 종교적 상식으로 말이 안된다. 


270쪽: "비극은 강력한 인간과 신이 등장인물로 나오고"로 번역하면 안되고, "강력한 인간과 신의 힘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고"로 번역해야 옳다. 원어는 "involving ... characters representing powerful human and divine forces"이다. 그리스 비극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신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비극 일반의 경우에는 신이 극 속에서 직접 등장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근데 번역을 저따위로 하면 신이 일반적으로 비극의 등장인물, 즉 연기자가 연기하는 역할 중 하나로 나오는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원어와도 안맞고 말이다. 

272쪽: "코러스의 음악적 역할은 비극의 시적 특질을 더욱 정교하게 꾸미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라고 번역한 부분은 "코러스의 음악적 역할은 아테네 비극의 전반적인 시적 본성을 더 정교화하는 것이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다. "...에 불과했다"라는 식으로 코러스의 역할을 폄하하는 표현은 원서에 없다. 원어: "the musical aspect of the chorus’s role was an elaboration of the overall poetic nature of Athenian tragedy" 일반적으로 아테네 비극에서 코러스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한데(에우리피데스에 와서야 코러스의 음악적 성질이 약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점을 번역자가 생각을 못하고 있는데다가 원어에도 없는 식으로 코러스의 역할을 약화시키면 안된다. "elaboration"의 역할이 왜 폄하되어야 하는지? 그리스 비극 입문서만 봐도 이런 실수는 안한다. 아니 그냥 원어대로 번역해도 이런 문제는 안 생긴다. 


276-7: 번역자의 오역: "하지만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 비극에서 묘사된 여주인공들은 당대의 사회적 도덕률 속에 내재된 긴장을 탐구했다. 특히 가정과 관련된 도덕률의 경우, 남자들이 그것을 위반하면서 갈등이 생겨났다. 여주인공들은 행동을 통해서 여성의 지위와 명예를 과시한다."

 원문: "the heroines portrayed in fifth-century Athenian tragedies also served to explore the tensions inherent in the moral code of contemporary society by strongly reacting to men’s violations of that code, especially as it pertained to the family and their status and honor as women."

  번역은 다음이 훨씬 더 낫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비극에서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당대 사회의 도덕률에 대한 남성들의 위반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함으로써 그러한 도덕률에 내재한 긴장을 탐구하는 역할을 수행했는데, 특히나 이러한 위반이 가정과 여성으로서의 지위와 명예와 관련이 있었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강력한 대응이 일어났다." 

 (좀 더 의역해서 풀어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여성의 지위와 명예를 "과시한다"는 번역자의 번역은 오역이 분명하다.)


391쪽: "기병이 적의 정면을 쳐부수어..."는 "기병이 적을 약화시키는 공격부대로 사용되고..."로 번역해야 맞다. 기병이 팔랑크스 진형을 짜고 있는 중장보병의 창 앞으로 돌진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기병은 측면이나 후면으로 돌아들어가서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원어도 "...deployed as a strike force to soften up the enemy"이다. 


일일히 여기서 오역을 다 열거하지는 않겠다. 


(사실 파도파도 끝이 없다. 계속 나온다...) 


그런데 고대사 관련서를 여러 권 번역하신 전문번역가라는 분이 역자후기에 "이 수정판을 정독, 번역하게 되었는데..."라고 쓰신 걸 보고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독을 했다면 적어도 위의 예에서 내가 지적한 그런 오역은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대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내용의 오역을 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이 지점에서 왜 이런 식의 오역들이 나오는지 추측을 해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꽤 개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대한민국은 무서운 사회이므로 여기서 그만하겠다. 


역자님, 문장 유려하게 번역 잘 하셨어요. 잘 읽었습니다. 쌩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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