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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Nobody civil anymore.
하얀 얼굴, 초록색의 삼각형 눈 화장, 언제나 웃고 있는 입 모양의 분장을 한 조커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러했다. 영화 조커의 주인공 아서 플랙은 어느 동화에나 나올법한 착한 청년이다. 작고 깡마른 체격을 가진 아서 플랙은 우울증과 정신병을 앓고 있다. ‘당연히’ 그는 가난했으며 아픈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한없이 우울한 그에게도 작은 꿈 하나가 있었으니 그는 코메디언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고담시의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버스에서 자신을 처다 본 아이를 웃겨주려고 따스하게 다가간 그였으나 아이의 엄마는 아서를 비난했고,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생각한 부자 토머스 웨인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자신의 롤모델인 머레이는 그의 재능을 무시하고 비웃었다. 혐오와 차별, 냉대와 무관심이 아서를 혼돈과 무질서의 화신 조커로 변화시켰다.
이것은 영화 속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냉대와 조소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로서 존재한다. 혐오와 차별을 겪은 모두가 조커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 속에는 혐오와 차별로 인해 조커가 태어난다. 그리고 이 조커는 자신을, 타인을, 우리 사회를 파괴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불편한 책이다. 나에게도 그랬다.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혐오의 사례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다. 민주 시민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은 자신이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양성, 포용, 평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이러한 가치에 손상을 끼치려는 그 어떠한 움직임도 거부한다.(그리고 그 움직임은 이번 12.3내란 사태를 거치면서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주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누구나 한 번 쯤은 크리스마스에 결핵환자를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사본 경험이 있을 것이고, 길에서 불우이웃에게 성금을 기부한 일이 있을 것이다. 또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를 해보았거나 가사 일을 어머니에게만 맡기는 아버지를 속으로라도 원망해 보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은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사례는 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어쩌면 우리가 정당한 이유를 들먹이며 일상에서 해왔던 혐오와 차별을 들추어낸다. 누구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물질적, 심리적 지원을 한 경험이 있는 것처럼 누구나 한 번 쯤 사회적 약자들을 혐오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여성, 난민,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성적 소수자 등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선입견, 입장, 사회적 지위, 종교에 따라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그들을 탄압하는 우리의 모습을 이 책은 마치 거울처럼 보여준다.
확실히 이 책은 불편한 책이다. 읽는 내내 나는 내 스스로 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작업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고 나에게는 찜찜한 마음이 남아 있있다. 그러던 중 한 직장동료와 대화하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 직장동료는 장애가 있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던 동료였다. 나는 당시 다른 동료를 소위 뒷담화하며(이것도 분명 또 하나의 차별이리라.)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A는 정말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에요. 마치 공감능력에 장애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해버렸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렇다 나야말로 선량한 차별주의자 였던 것이다.
좋은 책은 독자를 변화시키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평소같으면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나갔을 나의 농담이 나는 스스로 너무나 불편했다. 나는 바로 동료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나의 행동을 반성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이제는 알아버렸다. 이 책을 읽기 전 불편하지 않있던 것들이 이제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진정한 평등이라는 것이 실현가능한 것이겠냐고. 자유, 공존, 평화, 휴머니즘은 이상에 불구한 것이지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고. 이 질문에 대해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함께 살아가는 방법, 공존의 조건으로서 평등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고정된 옳은 삶을 규정하지 않는 이 해체의 시대가 버겁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갈구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p.204.)
나는 내가, 네가, 우리가, 모두가 자유로운 시대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