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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텅구리 - 한국 최초 신문 연재 네컷만화로 100년 전 날것의 식민지 조선을 보다
전봉관.장우리 편저, 이서준.김병준 딥러닝 기술 개발 / 더숲 / 2024년 12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식민지 조선은 어떤 시대였는가? 일제의 국권침탈로 인해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해버렸다. 조선인들은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박탈당하였고, 조선이 독립국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일제에 의해 금지당햇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체포, 투옥, 고문을 당했고, 제국의 2등 신민으로 떨어졌다.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서는 물자, 사람, 심지어 숟가락까지도 빼앗긴 시대. 한마디로 암울한 시대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웃음은 있었다. 이 책은 1924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된 신문연재 만화 <멍텅구리>를 모아 복원하고 엮은 책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이미지 파일을 분석하여 명료화하고, 현대어로 풀이를 하여 주석을 덧붙인 저자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좋은 책이다.
주인공 최멍텅은 한량이다. 부모로부터 막대한 돈을 받았지만 별다른 직업도 없이 허튼 일이나 하며 세월을 보낸다.기생 옥매를 사랑하여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일을 벌리기도 하고, 순사에게 맞기도 하고, 세계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세계일주를 떠나기도 한다. <멍텅구리>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최멍텅의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보여주며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멍텅구리>가 단순히 웃긴 만화정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멍텅구리>에는 당시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우리 민족의 삶과 일상이 담겨있다. 각 에피소드를 읽으면 일제에 의해 민물 게장이 금지되고 양담배의 수입이 금지되었던 당시 시대의 모습, 너무 기쁜 나머지 만세를 부르자 다시 3.1운동이 일어난 줄 알고 출동한 경찰의 모습,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가운데 경성과 평양에 설치된 비행장 등 당대의 사회 모습과 문화 코드를 읽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 자체로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사료가 된다. 날카로운 어조와 직접적인 비판, 조선인들의 자각과 계몽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없었던 시기, 조선일보의 지식인들은 만화라는 장치를 통해 당시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일제의 단속에 적발되면? "이것은 만화인데 뭐. 왜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나?" 하고는 가볍게 넘길 수 길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만화를 통해 너무나 힘들고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는 동포들을 위로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최멍텅은 말한다. "세상사람이 나를 멍텅구리라고 놀리지만 내가 보기에는 세상사람이 모두 멍텅구리로 보입니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시기에 난데없는 계엄을 겪고, 그것을 옹호하는 자들이 득세하고,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내란 수괴는 아직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있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있자면 최멍텅의 말대로 우리가 바로 멍텅구리가 아닐까?
식민지 조선의 사회와 문화를 재밌게 이해하면서 동시에 당대의 역사자료를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