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요괴 도감 101
잭 데이비슨 지음, 강은정 옮김, 최준란 감수 / 공명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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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요괴도감101 잭데이비슨 지음 공명출간 서평


나처럼 평소 온갖 일본 애니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요괴'라는 존재가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웃집 토토로'의 먼지 귀신이나 '귀멸의 칼날'에 나오는 혈귀들같은 매우 유명한 작품들부터 충사나 주술회전, 이누야샤까지, 일본 콘텐츠 속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기괴한 존재들이 등장하기 때문. 이런 캐릭터들은 다 어디서 온 걸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에 출간된 '일본 요괴 도감 101'은 그 궁금증을 아주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이었다.


"미스터리야말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세계적인 요괴 학자 잭 데이비슨이 101종의 요괴를 엄선해 엮은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하지만 딱딱한 사전이라기보다는, 옛날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주는 동화책 같은 느낌에 더 가깝다. 사실 일본 요괴를 잭 데이비슨이란 이름의 서양 학자가 정리했다는 것 부터가 흥미롭다.


책을 펼치면 우리가 흔히 아는 여우 요괴 '기쓰네'나 물귀신 '갓파'부터 시작해서, 밤마다 욕조의 때를 핥는다는 '아카나메', 목이 길게 늘어나는 '로쿠로쿠비'까지 정말 상상도 못한 기묘한 존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요괴를 단순히 '무서운 귀신'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자연의 무서움을 어떻게 요괴로 표현했는지, 혹은 오래된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교훈을 어떻게 '쓰쿠모가미'라는 요괴에 담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예를 들어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 거대 메기 '나마즈'가 땅을 흔든다고 믿었던 전설 같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요괴라는 존재가 결국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거울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묘하게 뭉클해지기도 한다.


비주얼적인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에도 시대의 고전 판화부터 현대 작가들의 감각적인 일러스트까지 무려 250점이 넘는 시각 자료가 실려 있는데, 그림의 퀄리티가 워낙 높아서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요괴 박물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들게 된다. 300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과 이 정성스러운 도판들을 보고 나니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문적인 학술서처럼 용어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는 해설이 곁들여져 있어 창작을 꿈꾸는 분들이나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가이드북이 될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면 내가 좋아했던 캐릭터들이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정감 가는 요괴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밤에 조명을 낮추고 읽다 보면, 어느새 방 한구석에서 요괴가 말을 걸어올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서늘함을 느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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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
스즈키 고지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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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고지 신작일본호러소설추천 유비쿼터스 서평 현대문학 출간



스즈키 고지의 신작 일본 호러소설 '유비쿼터스'는 읽는 내내 이건 좀 다르다 싶은 소설이었다. 호러 소설하면 흔히 떠올리는, 특히나 작가의 전작이 티비에서 튀어나오는 사다코로 유명한 '링'의 스즈키 고지라면 바로 생각날 귀신이나 저주를 다룬 전통적인 호러가 아니라, 인간이 당연하게 여겨온 자연 그 자체를 다룬 새로운 종류의 공포라서 더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건 이야기의 시작부분이다. 남극 깊은 곳에서 시추된 얼음과 함께 수천년간 얼어붙어 있던 미지의 존재가 일본으로 들어오면서 사건이 시작된다는 설정이 굉장히 색다르게 다가왔다. 보통 공포소설은 오래된 저주나 원한에서 출발하는데, 이 작품은 시작부터 지구 반대편의 아주 먼 천연의 자연을 끌어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탐정 마에자와 게이코도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였다. 개인적으로 이 케릭터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바람을 피우다가 상간남의 아내에게 들켜 직장에서 해고되고, 그 이후 탐정으로 전향했다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일본적인 느낌이 강했다. 완벽한 영웅은 커녕 어딘가 망가진 듯 나사 하나 쯤은 빠진 채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점이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게이코와 함께 사건을 쫓는 물리학자 츠유키 역시 흥미로운 조합이었다. 어둠의 투기장에서 3승을 거둔 의사 출신의 물리학자라니... 둘 다 전형적인 케릭터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면서 사건의 핵심에 빠르게 접근하는 느낌이 있었다. 답답하게 질질 끄는 전개가 아니라, 필요한 단서를 잡으면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개 방식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는 내가 숨겨진 사실을 눈치채면 질질 끌지 않고 바로 다음페이지에서 츠유키 역시 진실을 깨닫는 스피디한 전개가 일품이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임에도 체감 속도가 빠르게 느껴졌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오컬트적인 설정이다. 예를 들어 선악과가 실제로 존재한다거나, 식물이 인간을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운반자’로 키워냈다는 가설 같은 부분은 단순한 호러라기보다는 거의 SF에 가까운 상상력처럼 느껴졌다. 특히 식물 중심의 세계관이라는 설정은 기존의 인간 중심 사고를 완전히 뒤집는 느낌이라 흥미로웠다.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치던 풀, 나무, 자연이 사실은 훨씬 더 오래되고 거대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발상 자체가 이 소설의 핵심 공포처럼 느껴졌다.


구조적으로도 꽤 인상적이었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집단 사망 사건을 추적하는 게이코의 이야기와, 남극 얼음에서 비롯된 연쇄적인 죽음 사건이 서로 교차하면서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낸다. 두 개의 축이 따로 놀지 않고 점점 맞물리면서 진실로 접근하는 방식이라 몰입감이 좋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작가의 대표작인 링 시리즈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는 부분이었다. 링이 초자연적인 공포와 저주의 이미지에 가까웠다면, 유비쿼터스는 자연 그 자체를 공포의 근원으로 끌어온다. 그래서 단순한 초자연 호러라기보다는 오히려 SF 호러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특히 이 작품이 앞으로 4부작으로 확장된다는 점이 무척 반갑게 느껴진다. 단순한 한 권짜리 이야기가 아니라, 더 큰 세계관으로 이어질 서장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미국을 비롯해 우주까지 이야기가 확장된다고 하니, 이번 작품에서 던져진 설정들이 앞으로 어떻게 커져 나갈지 기대가 된다.


링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작품, 스즈키 고지의 유비쿼터스를 일본 호러소설의 팬들에게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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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걸
하비에르 카스티요 지음, 박설영 옮김 / 반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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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석권한 압도적인 페이지터너 하비에르 카스티요의 세계' 그리고 '넷플릭스 글로벌 1위 시리즈의 원작 소설' 스노우 걸.

이 어마어마하게 독서욕 샘솟게 만드는 문구를 보고 사실 처음엔 ‘도파민 팡팡 터지는 자극적인 스릴러겠지’라는 생각으로 책장을 펼쳤다. 그런데 막상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이 작품 속 이야기는 단순히 사건을 따라가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사건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현실적인 시선으로 표현하는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느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역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감정 묘사였다. 흔히 이런 상황에서는 슬픔이나 절망이 크게 강조되는데, 여기서는 그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바뀌는지가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죄책감이 점점 쌓이고, 결국 서로를 탓하게 되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뻔하디 뻔한 표현이 아니라 무척 현실적이라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렇게 되겠구나 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전반적으로 표현이 굉장히 디테일한 것도 이 소설의 특징이다. 단순한 묘사를 넘어서,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물건의 브랜드까지 나올 정도로 구체적이다. 처음엔 이런 부분이 조금 과한가 싶었는데, 읽다 보니까 장면이 훨씬 선명하게 그려져서 오히려 몰입에 도움이 됐다.


구성도 완성도 높게 잘 짜여 있다. 1998년 실종 사건, 몇 년마다 도착하는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들이 계속 교차되는데 전혀 이야기가 헷갈리지 않는다. 보통 이런 구조는 집중이 흐트러지면 따라가기 어려운데, 이 작품은 흐름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몰입이 잘 되는 느낌이었다. 초반에 나름대로 미스터리 소설 매니아로서 후반부의 전개를 예상하면서 읽었는데,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서 더 재밌었던 것도 있다.


소설 '스노우 걸'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반전’ 중심의 추리소설은 아니다. 사건의 핵심적인 진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윤곽이 드러난다. 그래서 후반부는 범인을 밝히는 데서 오는 긴장감보다는,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 예를 들면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언론이 이 사건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이런 쪽으로 무게가 옮겨간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꽤 인상 깊었다. 특히 언론이 비극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시선이 계속 남는다. 보통은 작 중 주인공의 시점에서 독자를 설득하려 할텐데 이 작품은 의외로 주인공에 반하는 기존 세력들의 목소리에 훨씬 설득력이 실려서 특히 인상 깊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도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침대 스프링 소리가 아이가 뛰놀던 소리에서 시작해서, 점점 그레이스의 뇌전증 발작으로 이어지며 페이드아웃되는 장면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소리 하나로 남겨진 아빠의 심정을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해냈다.

결국 '스노우 걸'은 두툼한 분량이지만 쉽게 몰입되서 빠르게 읽히는 페이지터너이면서도, 다 읽고 나면 깊이감 있는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사건의 충격보다는 그 이후에 남는 감정이 더 오래 남는 이야기. 가볍게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제 넷플릭스 시리즈로 '스노우 걸'을 감상해봐야겠다. 스릴러 장르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하비에르 카스티요의 스노우걸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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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숲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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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장르를 꼽으라면 무협부터 판타지, SF, 추리까지 다양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즐겨 읽는 장르는 호러소설이 아닐까 싶다.

호러라는 장르를 좋아해 만화책으로는 이토 준지부터 주온과 링 같은 영화까지 모두 즐기곤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두 일본의 컨텐츠들이다.

확실히 동양과 서양의 공포 장르에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는데 잔인함보다는 축축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일본의 공포장르가 내 취향에는 더 재미있게 느껴지나 보다.


오늘 읽은 소설은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숲으로 제목은 유령저택 3부작 중 하나인 괴담의 집과 같은 시리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화가-흉가-재원에 이어 세계관을 공유하는 집시리즈의 하나인 마가를 제목과 표지를 바꿔 새롭게 태어난 작품이다. 그래서 늘 스쳐가듯 등장해 같은 세계관임을 확인시켜주는 요시카와 키요시도 이 작품에서 등장하며, 작자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언급도 있어 미쓰다 월드를 훔쳐보는 재미도 생각보다 쏠쏠하다.

개인적으로는 미쓰다 신조의 작품은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며, 과거를 무대로 한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보다는 근래에 일어난 사건을 다룬 작품들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기도 하다.


이번 작품 괴담의 숲에서는 소년 유마가 삼촌을 따라 괴이한 숲 바로 옆에 위치한 저택에 머물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숲이 마치 의지를 가진 것 마냥 어린 아이를 납치한다는 소문이 전해져 내려오는 사사 숲과 정체 모를 괴이한 것들이 숨어있는 듯한 저택은 그 분위기만으로도 미쓰다 신조 특유의 음습하고 알 수 없는 것에서 오는 공포를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나 시각적으로 연상되는 공포의 이미지를 잘 활용하는데, 연극 소리를 따라 홀린 듯 쫓아간 공터에 덩그라니 남아있는 빈 자전거나 갑자기 모두가 사라진 학교에 대한 시각적인 묘사가 무척이나 뛰어나 공포감을 배로 전달한다.


이 작품 괴담의 숲에서 특히 공포스러웠던 것은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닌 것 같다!'는 부모의 의심에서 오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저택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사건들이 합쳐지자 피아의 식별이 불가능해지며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의 감성도 느껴졌다.


이 작품 괴담의 숲은 일본 공포소설의 팬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미스터리 요소와 호러 요소가 절묘하게 섞여 있으면서도 두 장르의 구분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고, 그래서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도, 호러 소설로서의 재미도 모두 확실하게 잡은 작품이었다.

근래 읽은 미스터리호러소설들은 호러와 추리 두 요소를 어떻게 절묘하게 섞어 하나로 만드는지가 작품의 완성도와 바로 이어지는 것 같았는데 이 작품은 추리는 추리대로, 호러는 호러대로 생각보다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 하면서 두 요소가 모두 제대로 기능해 특히 인상깊게 읽었던 것 같다.

거기에 미쓰다 신조 특유의 반전이 주는 재미와 집 시리즈만의 찝찝한 결말까지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호러소설로 완성 된 것!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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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혜영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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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의 신작 장편소설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단순히 ‘대리 출산’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 빈곤과 계급, 그리고 여성의 몸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소비되고 거래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소설이다. 기리노 나쓰오 특유의 냉정하고도 집요한 시선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며, 작품을 읽는 내내 불편함과 질문을 동시에 남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메인 주제인 빈곤과 대리출산, 여성의 몸 문제뿐만 아니라 그 주변부에 배치된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었다. 유흥가 문제, 다문화가정, 빈국과의 매매혼 같은 요소들이 이야기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으며, 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케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작중 주인공 리키가 대리모를 ‘선택’하는 과정뿐 아니라, 의뢰하는 부부 역시 리키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아내와 닮았다는 이유로 리키를 선택하는 장면은 이 관계가 단순한 계약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돈이 얽힌 대등한 비즈니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감정과 욕망, 그리고 빈부격차에 얽힌 권력이 관여된 매우 비대칭적인 관계임을 드러낸다. 이로 인해 나는 이 계약이 과연 공정한 거래인지, 아니면 가난을 볼모로 한 일종의 노예계약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작품은 이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들어, 오히려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물이 끓고 8분이면 완숙이 되는게 닭이 낳은 알의 본질이라면 여자 몸속에 있는 난자의 본질은 뭘까. 삶으면 몇 분 만에 단단해질까. 이소가이 씨, 난자의 본질도 한번 알려줘 봐요.


작품 속 상징적 장치들도 매우 인상 깊었다. 이소가이의 ‘삶은 계란의 본질’은 단순하지만 강렬하게 난자와 비유되어 작품의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사실 백프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색 자전거'는 가장 기억에 남는 상징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은색 자전거는 한정된 아파트의 자전거 주차공간에 갑작스럽게 등장해 나머지 자전거의 주인들을 곤란하게 만들며 마치 빌런처럼 묘사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은색자전거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애초에 주차 공간이 부족한 구조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보이는 많은 상황들이 사실은 사회 구조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작품 속 다양한 상징들은 한 번에 이해되기 어렵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오래 고민하게 만들고, 독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한편 주인공 리키에 대한 감정은 매우 복잡했다. 리키는 종종 무기력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는 인물로 보인다. 가난 때문에 대리모를 선택하는 것도 그렇지만, 계약 이후 규칙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모습은 답답함을 넘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런데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런 리키를 보며 ‘저러니까 그런 삶을 살지’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를 넘어, 내가 얼마나 쉽게 타인의 불행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만든다. 결국 이 작품은 리키를 평가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런 평가를 내리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이 소설은 인물들의 입체적인 변화가 돋보인다. 유코, 모토이, 리키 모두 초반과 후반의 모습이 크게 다르며, 평면적인 케릭터로 소비되지 않는다. 어떤 인물은 성장하고, 어떤 인물은 전혀 다른 면모를 드러내며 독자의 예상을 벗어난다. 특히 리키의 마지막 선택은 이 작품의 핵심이자 가장 예상하지 못했지만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결국 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질문을 남긴다. 선택은 과연 자유로운 것인가, 인간의 몸은 어디까지 거래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있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명확한 답 없이 질문 그 자체로 남겨지며, 그래서 책장을 덮은 후에도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여운이 남는 결말과 함께 이야기 뒤에 남겨진 그녀들의 삶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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