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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독 (애장판)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평점 :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접하게 되어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랜 시간 가슴속에 묵직한 여운을 남겼던 우사미 마코토의 '어리석은 자의 독'을 이번 애장판 출간을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블루홀식스 출판사에서 나온 '아이는 무서운 꿈을 꾼다'를 통해 우사미 마코토라는 작가를 처음 접했는데, 평소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을 즐겨 읽으면서도 나이가 많은 기성세대 작가들의 작품보다는 80~90년대생 젊은 신예 작가들의 소설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감각적이고 전개가 빨라 속도감 있게 읽히며 무엇보다 즉각적인 독서의 보상으로 도파민을 줄 수 있는 소설에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사미 마코토의 작품들을 접하며 그러한 내 취향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무서운 꿈을 꾼다'와 '어리석은 자의 독'을 포함해 총 다섯 편의 작품을 읽으며 느낀 점은 우사미 마코토 작가의 글은 요즘 젊은 신예 작가들의 작품처럼 단순히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에 실린 단단한 무게감 덕분에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 속으로 빠져드는 몰입감이 뛰어났다.
이번에 다시 펼친 '어리석은 자의 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5년과 1985년을 교차하며 과거의 사건이 현재를 어떻게 뒤흔드는지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는데, 시대상에 대해 생생하면서도 참혹한 묘사가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을 넘어 한 편의 깊이 있는 순문학을 읽는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소설 '어리석은 자의 독'은 1985년 직업 소개소의 실수로 우연히 만나게 된 생일이 같은 두 여자, 요코와 기미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친구가 되며 시작한다. 그리고 2015년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노부인의 독백과 교차하며 소설은 1965년 폐광마을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참극까지 거슬러올라가며 죄와 죄책감 그리고 업보의 순환을 장엄하게 그려나간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작품의 초중반부에서 이 소설의 반전에 대해 조금은 눈치챌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결점이 아니라, 반전이라는 일회성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도 서사를 끌고 갈 수 있다는 작가의 강력한 자신감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트릭 외에도 이야기 자체의 힘과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내면 묘사로 작품 전체를 정교하게 이끌어간다. 그렇다고 결코 반전이나 트릭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일회성 반전을 넘어 여러 이야기들이 얽히며 드러나는 진상은 충격적이고 미스터리 장르의 재미를 제대로 충족시켜 준다.
무엇보다 시대적 굴레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려야 했던 인물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씁쓸함과 가슴 아픈 응원의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평범한 미스터리 소설이 자극적인 반전으로 순간적인 도파민을 선사한다면, '어리석은 자의 독'은 그에 더해 씁쓸하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묵직한 여운까지 전한다. 단순한 사건 해결을 넘어 인간 내면에 대한 정교한 탐구와 서사의 깊이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멋진 양장본 애장판은 그냥 서재에 꼽아두는 것 만으로도 내 미스터리소설 책장이 훨씬 고급스럽게 느껴지게 하는 효과까지 있다는 점을 추가로 자랑하고 싶다.
"가슴속에 독을 품으십시오. 어중간한 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야말로 그 독을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의 독입니다."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