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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회한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평점 :

오늘 읽은 책은 반전의 제왕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의 히포크라테스 시리즈의 국내 최신작 히포크라테스 회한으로 다섯편의 단편을 담은 연작 단편집이다.
늘상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의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길 때면 작가에 대한 소개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만큼 많은 작품을 출간하고 있고 그 작품 수 만큼이나 다양한 시리즈를 구성하며 각 시리즈가 교차하며 '시치리 월드'를 만들어나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시치리 월드에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시리즈'로 입문해 비웃는 숙녀 시리즈와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그리고 이누카이 하야토와 펴정없는 검사 시리즈까지 거쳐 이번에는 히포크라테스 시리즈까지 손과 눈이 닿게 되었다.
굉장한 다작가 답게 반전의 제왕이란 별명 외에도 사회파의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별명도 꽤 유명하다고 하는데 히포크라테스 시리즈야 말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유족의 목소리보다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놔둬도 알아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죽은 자는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한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오늘 읽은 히포크라테스 회한은 히포크라테스 시리즈 6종 중 4번째 출간 작품으로 국내에는 선서와 우울의 뒤를 이어 세번째로 출간된 작품이기도 하다.
노인의 목소리, 이방인의 목소리, 아들의 목소리 등 이 작품에 수록된 다섯편의 단편은 죽은자의 목소리를 법의학으로 읽어내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회한을 읽고 있으면 정말 이 작가의 사전조사와 지식이 대단하다고 새삼스레 감탄하게 되는데 법의학에 대한 전문성과 사회파 미스터리에 걸맞는 깊은 주제의식을 모두 꼼꼼하게 챙기면서도 우리가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이유인 반전까지 놓치지 않는 작가의 필력에 놀라게 된다.
이전 몇몇 작품에서 일본의 소년법과 심신미약 상태의 범죄를 깊게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일본의 법의학이 처한 현실과 법의학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방송에서 필터링 없이 언급한 법의학계의 권위자 미쓰자키를 의식해 익명의 누군가가 방송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일본 법의학계는 말 그대로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친애하는 미쓰자키 교수. 인터뷰에서는 아주 대단하게 말하던데 시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당신의 귀를 시험해 보지. 앞으로 나는 사람을 딱 하나 죽일 거야. 반드시 자연사로 보이게 말이야. 그러나 시신은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겠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들어봐.
범인의 살인예고 덕분에 이제 일본의 경찰은 자연스럽게 죽은 것 처럼 보이는 시신들마저도 모조리 의심하고 사법해부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쓰가노 마코토와 고테가와 가즈야가 이런 상황에서 듣게 되는 다섯가지 시신의 목소리가 연작 단편의 내용을 이룬다.
-관할서 과장을 협박하다니, 아직 백년은 일러.
백 년이 지나면 협박해도 되나.
-이래 봬도 악동 시절에는 나나한을 몰고 다녔어.
이래 봬도 라니, 지금도 악동으로만 보이는데.
늘상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두 주인공 고테가와 형사와 마코토 조교의 티키타카도 작품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추리소설이라면 거의 대부분 벌어지는 범인과 탐정의 두뇌싸움이 아닌 법의학자와 시신이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건을 풀어간다는 점도 새로웠다.
무엇보다도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답게 이번 작품에도 다양한 일본의 사회적 이슈들이 녹아 있었는데 블랙기업과 외노자를 대상으로한 임금차별문제를 비롯해 우익과 외국인차별 그리고 더 나아가 인종차별까지 추리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나는 사회파 미스터리보다는 본격 미스터리를, 그 중에서도 특수설정 미스터리를 좋아해왔다. 깊은 주제 의식보다는 단순한 도파민을 쫓아 페이지를 넘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믿고 보는 작가인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은 달랐다. 강력한 한방의 반전보다는 은은하게 남는 여운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다가왔다.
사회파의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명성에 걸맞게 일본의 사회문제를 담은 주제의식을 제대로 보여주면서도 반전이 주는 재미까지, 두마리 토끼를 모두 훌륭하게 잡아낸 나카야마 시치리의 신작 미스터리 소설 히포크라테스 회한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