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이 웃을 때 나는 웃지 못할까? 생각해보면, 세상이웃는 방식으로 내가 웃었다면, 애초에 시를 쓰지 않았을것이다. 세상이 미소 짓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미소 지었으므로 시를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픈 이야기다.
미안해, 친구들아, 나는 문학 때문에 너무 편협해졌어. 나는 시를 쓰느라 우물 안에 들어갔고, 들어갔는데 우물이 더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물 안에 우물을 또 만들었고, 그우물을 파서 기어이 더 깊은 우물 안으로 들어간 슬픈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 왜냐하면 문학은 결국 깊이깊이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인데, 내가 무언가를 너무 깊게 이해할수록 우물 밖의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정말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 - P173
유일하게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건 인력거와 만날 때다. 인력거는 약속병이 있다. 약속을 하면 어기고 싶어지는 병이랄까. 인력거는 약속장소에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도 나가지 않는다. 결국 약속 혼자 약속장소에나가 우리를 기다린다. 인력거는 즉흥적으로 만나거나, 길을걷다가 전봇대 앞에서 만나는 경우 외에는 만날 수 없는 분이다.
전시장에 들어갔다. 나는 전시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친구는 한 시간 반 정도 공들여 작품들을 관람했다. 나는 노력끝에 30분 정도 관람하고 의자에 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샤갈이 친구 바르샹에게 헌정한, 미소짓는 자화상 아래 남긴 낙서다.
"나 여기 있어, 생각날 때면 나한테 미안해해." - 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