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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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기적의 멜로디와 빛으로 물든 지구의 태엽
─조해진의 『빛과 멜로디』를 읽고

누군가는 비웃을지라도,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다시,
믿고 싶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란 것을,
권은에게 증여된 카메라가 이 세상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작가의 말 中


앞서 '사람을 살리는 일의 위대함'을 섬세한 문체로 그려냈던 조해진의 단편 「빛의 호위」가 『빛과 멜로디』라는 제목의 장편 소설로 되돌아왔다.

『환한 숨』에서도 그랬고, 『로기완을 만났다』에서도 그랬듯이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여러 번 밑줄을 그었는데, 한 생명에 깃든 무수한 생애와 현재를 사랑과 애정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찍는 권은과 기자로 일하는 승준은 어린 시절의 애틋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소설은 현재의 시점에서 그들의 과거를 하나씩 비추면서 현재 변화된 인물들의 삶을 조명한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승준은 러시아 침공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여성 나스타를 인터뷰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영국에 머물고 있는 권은과 다시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펼쳐지는 그들의 아득한 사연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가 되고, 승준이 권은에게 건넸던 카메라와 권은과 나스차가 나누어 가졌던 애절한 감정을 환기시킨다.

삶에서 죽음을 발견하고, 죽음에서 삶을 발견하게 되는 역설적인 그들의 취재 과정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의 멜로디와 빛으로 물든 지구의 태엽을 지금─여기로 불러온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현재 우리 삶의 꼭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여, 때로는 빛처럼 삶을 비추고 때로는 멜로디처럼 삶을 흐르게 하는 조해진의 소설이 바로 여기에 도달한 것이다.

문학이 우리 삶을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나의 기대를 조해진의 소설은 늘 상기시켜준다. 『빛과 멜로디』가 바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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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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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바라보는 일에 대하여

─김멜라의 『환희의 책』을 읽고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이 책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의 언어가 부족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이 총체적으로 자연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더 잘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멜라의 『환희의 책』에서는 세 마리의 곤충(톡토기, 거미, 모기)이 등장한다. 그들은 두 레즈비언(호랑과 버들)을 관찰하며 자신들의 삶을 연구한다. 나는 이 책을 '한 존재가 다른 한 존재를 바라보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는데, 어쩌면 다른 한 존재를 제대로 바라보는 일은 다른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저녁놀」과 「제 꿈 꾸세요」, 「이응 이응」에서도 인간과 비인간을 넘나들며 삶과 자연, 죽음에 대한 고찰을 이어나갔던 작가는 새로운 형식적 실험을 통해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그것은 아마 김멜라가 선사하는 또 다른 방식의 '환희'일 것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의 비인간-화자가 등장하는 소설을 여러 편 읽게 되었다. 그중 눈에 띄는 작품이 몇 있었고, 그 작품들을 보며 생각보다 내가 훨씬 더 편협한 시선으로 인간들을 바라보며 '인간애'를 잃지 않으려고 발악(?)하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비인간-화자가 등장하는 김멜라의 작품을 읽은 뒤에 나는 친구들 앞에서도 여러 번 그 소설들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기도 했는데, 몇 번을 읽어봐도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랬다.

내게 김멜라의 소설은 단호하게 읽힌다. 정확히 바라보고 분명하게 세계를 이해해 보려는 그 단호함에 나는 몇 번이고 마음을 빼앗겼다. 『환희의 책』이 바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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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어원 사전 - 이 세계를 열 배로 즐기는 법
덩컨 매든 지음, 고정아 옮김, 레비슨 우드 서문 / 윌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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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기원을 찾아서

─덩컨 매든의 『여행자의 어원 사전』을 읽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아마 진은영의 첫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고 난 이후부터) 내게는 '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이면 믿고 보게 되는 편견이 있는데, 이는 내가 가진 여러 편견 중 그나마 마음에 드는 편에 속한다. 나는 내가, 또 우리가 사전과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덩컨 매든의 『여행자의 어원 사전』을 읽었다. 책 서문에서 레비슨 우드는 이 책을 "지명 모음집인 동시에 여행 안내서"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 짤막한 소개만으로는 이 책의 진정한 쓰임새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애당초 '어원'이라는 것은 "어떤 단어의 근원적인 형태, 또는 어떤 말이 생겨난 근원"이라는 뜻이기에 '어원 사전'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이름'과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일방적인 관점을 깨부순다. 그리하여 보다 폭넓은 사고를 구축할 수 있게끔 사유의 확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름은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창문이고,

그것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류의 진보를 기록하는 서사로서 흥미 요소다.

언어는 계속 변화하고 발전할 것이며 그에 따라 새로운 이름이 생겨나고

옛 이름은 사람들 입에서 사라지겠지만,

당시 사람들의 표현이 갖는 의의는 어원과 의미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덩컨 매든의 『여행자의 어원 사전』 中

덩컨 매든의 『여행자의 어원 사전』을 통해 우리는 '이름의 기원을 찾아서', 명명된 것들의 어원과 언어의 시작을 탐구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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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이름 붙이기 -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존 케닉 지음, 황유원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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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감각으로 새로운 단어를 : 내 감정 바로 알기

─존 케닉의 『슬픔에 이름 붙이기』를 읽고

당신에게는 당신의 마음을,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슬픔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가?

존 케닉의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좋은 처방인지도 모른다. 가령 이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카라노이아(karanoia)'에 빠져 있다고 느꼈던 것처럼.

카라노이아

karanoia

<명사> 무한한 가능성과 느슨한 경계로 인해 자유와 동시에 제약을 안겨주는 백지의 공포

어원 : 일본어 kara-no (텅 빈)

이 책은 우리가 말할 수 없었거나, 말할 수 있는 언어의 한계로 인해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감정들에게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우리 세계의 가능성을 한층 확장시킨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을 수 있는 모습으로도 바로보기" 위해서 이 책보다 값진 '감정 사전'이 있을까. 각각의 단어가 어떤 장면에서, 또 어떤 관계와 서사에서 펼쳐지고 다뤄지는지, 한 겹 한 겹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문득 과거의 나를, 과거의 내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슬픔을 명명하고 형태를 부여하는 이 책을 통해 이제 우리는 내 마음을 바로 알고, 내 감정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오만 가지 슬픔을 정리해 둔 사전이 있다면 존 케닉의 『슬픔에 이름 붙이기』일 것이다.

클렉소스

KLEXOS

과거를 곱씹는 기술

흔히든 과거를 돌이켜봐서 얻을 건 없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과거를 생각하는 게 그저 향수나 후회와 관련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새로운 맥락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바로 눈앞에 있는 잉크 무늬 그림 같은 것의 빈칸을 채우는 일종의 질문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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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이 이야기
송미경 지음 / 읻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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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아름다운 환상극과 딸기맛 웨하스 과자 집

─송미경의 『메리 소이 이야기』를 읽고

누군가 내게 '첫 소설'에 대한 기억을 물어본다면 나는 고민하지 않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뽑을 것이다. 어릴 적, 처음 그 책을 읽으며 작고 소중한 삶의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름다운 이야기의 힘을 절실히도 깨닫게 해준 『어린 왕자』에게 나는 마음의 큰 빚을 지고 있다.

송미경의 『메리 소이 이야기』를 읽고 난 뒤에 뜬금없이 『어린 왕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두 작품이 내게는 비슷한 결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해가 지기 전, 파스텔톤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는 일처럼 은은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나는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명백히 웃을 만한 이야기인데도 아무도 웃을 수 없었다.

그런 일들이 있다. 슬픔을 봉인한 채로 우스꽝스러워진 이야기들.

송미경, 『메리 소이 이야기』 中

『메리 소이 이야기』는 이전까지 동화와 청소년 소설, 그리고 그림책과 만화책을 주로 다뤄왔던 송미경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는 어느 날 문득 사라진 엄마의 동생 '메리 소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나(은수)'의 목소리를 빌려 자전적인 내러티브를 고백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며, 무엇보다 기다림의 미학적인 요소를 십분 활용하여 '슬프고 아름다운 환상극'을 완성해낸다. 메리 소이를 잃어비린 유원지에서, 미미제과(엄마의 사연을 마케팅해 최고 매출을 올린 그 회사)가 제공한 '딸기맛 웨하스 과자 집'에서, 자신을 메리 소이라고 주장하는 숱한 사람들 틈에서 '나(은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림, 기다림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오로지 내일을 기다리는 일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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