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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큰 빚과 더 큰 빛
─김홍의 『말뚝들』을 읽고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김홍의 『말뚝들』을 읽었다. 표지와 제목 등 책의 외형적 생김새부터 특유의 유머와 예측할 수 없는 전개, 기이한 설정과 재기 발랄한 캐릭터까지 어느 것 하나 작가의 개성이 묻어있지 않은 게 없었다. 얼마 전 그의 소설 『프라이스 킹!!!』(2023년 제29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을 재밌게 읽은 나는 무릎을 딱 내려치고 말았다. 또 김홍인가.
큰 빚이 큰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빚은 저들의 것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나는 사람을 살게 하는 여러 요소 중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이 유머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번 『말뚝들』에서도 김홍은 여전히 유머를 통해 상처와 슬픔, 불안과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이 소설은 언뜻 불가해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적 죽음의 면면의 상징화되는 '말뚝들'을 등장시켜 예리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아낸다. 경계와 비경계, 현실과 비현실, 환상과 비환상의 줄다리기 속에서 그의 소설은 지금 이 시대의 커다란 비유로 존재한다.
사라졌던 말뚝들이 하나둘 다시 나타난 건
모든 게 완전히 정리됐다고 생각한 몇 달 뒤의 어느 날부터였다.
처음 밀려올 때처럼 돌연히, 생각지 못한 장소에 그들은 왔다.
어느 다리 위에, 인적 드문 공원에, 문 닫은 공장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 의지와 상관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누군가 그 앞에 꽃을 가져다 놓았다. 짧은 편지를 붙여놓고,
햇빛을 가릴 모자를 씌워줬다.
간혹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순전하고 합당한 애도에서 비롯한 슬픔이었다.
무엇보다 김홍은 김홍답게 쓴다. 큰 빚을 더 큰 빛으로 만들어내는 그의 소설에서 나는 말뚝처럼 단단하고 굳센 작가의 심지를 보았다. 나는 그가 단단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