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 - 90세 스웨덴 할머니의 인생을 대하는 유쾌한 태도
마르가레타 망누손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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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스웨덴 할머니의 인생 철학을 꾸밈없이 담아 낸 담백한 에세이. 이웃집 할머니가 술술 얘기해 주시는 재밌는 인생담 같아서 하루만에 다 읽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두 현명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마냥 어둡고 우울하고 비관적이기만 한 사람도 많이 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많아진다고 모두가 똑같은 배움을 얻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런 부정적인 어른들을 반면교사 삼아서 과거의 내 행적에 대해서도 많이 후회하고 있고, 이제부터라도 베풀 줄 알고 따뜻한 감성의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다짐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여전히 정이 없고 신경질적이긴 하다 ㅋㅋ


그런 의미에서 이 에세이가 사랑스럽고 저자를 존경해 마지않는다. 항상 주변인을 소중히 여기고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에 추억을 가득 만들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자기가 그동안 살면서 받아왔던 아름다운 배려를 내리사랑하듯 새로운 세대를 이끄는 젊은이들에게 베풀며 대접하려는 저자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다. 노화로 인해 이전보다 신체가 부자유스럽고 그에 따라 예민해질 만도 한데, 그것마저 유쾌한 사색으로 넘어가는 태도를 보며 아무것도 아닌 걸로 파르르 분노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서 반성되기도 했다.


<초콜릿을 참기에는 충분히 오래 살았어>라는 제목처럼, '초콜릿을 먹어서 죽든 그보다 훨씬 덜 기분 좋은 무언가 때문에 죽든 어쨌든 곧 죽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라고 쿨하게 말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걸 맘껏 즐기는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의 다짐이, 크나큰 마음의 여유를 이끌어 내는 게 아닐까?


특히 책의 큰 주축이 되는 정신, 스웨덴의 미니멀 라이프적인 전통 '데스클리닝'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깊히 박혔다. 세상을 떠날 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남기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남은 이들이 되도록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따스한 마음이 이 에세이처럼 우리 삶 전반에 펼쳐진다면, 너나할 것 없이 덜 우울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무척 재밌고 의미 있게 읽었다! #협찬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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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부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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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기담집>을 읽고 란포에게 사랑에 빠짐. 진실로… 이렇게 매력적인 기담집이 또 있을까? 기이하고, 불길하고, 음침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왜 다들 일본 미스터리 하면 란포, 란포 하는지 알겠다.


모든 에피소드가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던지라, 10점 만점에 10점 주고 싶다. 사실 단편을 엮어 둔 책은 그다지 기대하고 읽진 않는 편인데(각 편마다 기복이 심한 작품이 많아서) 해당 기담집은 처음부터 끝가지 너무너무너무 매력적이었다. 원래는 며칠에 걸쳐 천천히 읽으려고 했는데 주말 반나절을 통으로 쏟아 완독했다. 진짜 재밌었음.


억지스러운 권선징악이 없어서 더 좋았다. 미스터리 한 사건은 미스터리 그대로 남기는, 어떻게 보면 애매한 결말도 어떤 환상의 세계 속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이게 대체 무슨 전개야!"라고 부르짖게 되는 에피소드도 그저 허무맹랑하지 않고 인간 내면 속 깊이 숨어있는 사악함을 짙게 뿜어내고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어쩐지 현대의 미스터리, 공포의 토대가 되는 작품들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익숙한데도 새로웠다. 이 시대 사람들은 이 소름 돋는 자극을 얼마나 더 풍요롭게 느꼈을까. 부럽다.


유독 기억에 남는 단편은 <애벌레>인데...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 인간의 생을 향한 집념과, 한순간에 그 집념을 포기해 버릴 수밖에 없는 절망이 여실히 느껴졌다.


란포는 살아있을 당시 대체 어떤 하루를 보낸 걸까? 작품을 위해 매일 이런 류의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면, 왜인지 그가 꺼림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고... 어떻게 보면 극히 일본적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이런 음침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무척 맘에 들었지만.......


보통 리뷰에 이런 말은 잘 안 남기는 편이지만 책 만듦새도 일품이었다. 표지가 약간 벨벳 천 느낌 나는데, 그래서 촉감이 상당히 부드럽고 고급스러워서 '에도가와 란포'라는 네임밸류에 딱 걸맞다고 생각된다. 아무튼, 여름에 읽기 딱 좋은 서늘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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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편지
찰스 디킨스 외 지음, 홍수연 외 옮김 / B612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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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편지>는 영문학의 거장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 그리고 5명의 다른 작가들이 협업하여 그려낸 정통 미스터리 소설이다. 책 설명을 읽어 보니, 아직 현대 추리소설의 체계가 잡히지 않은 시기에 실험적으로 집필한 소설이라고. 워낙 유명한 대문호들이니 만큼 몹시 기대가 되었고 생생한 캐릭터와 따뜻한 결말이 무척 좋았다.


조르간 선장은 바다에서 조난 사고에 휘말려 표류를 거듭하다가 도달한 무인도에서 우연히 유리병에 담긴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편지는 부디 내용을 읽지 말고 영국 북데번주 스티프웨이스에서 살고 있는 알프레드라는 사람에게 전달해 달라고 적혀있었다. 조르간은 그 길로 이 아름다운 어촌을 방문해 청년 어부 알프레드를 찾아낸다. 알프레드는 편지를 쓴 사람이 자신의 친형이란 사실을 알아챈다.


편지를 읽은 알프레드는 무척 심각해진다. 아버지와 유산 500파운드가 불미스러운 일에 관련된 듯했고, 이는 곧 결혼을 앞둔 그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프레드는 가족과 약혼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르간과 함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어쩐지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유리병 속 편지(실상은 의심스럽기만 한 내용). 아름다운 바닷마을 묘사와 짧지만 강렬한 난파선의 이야기. 인간적인 매력이 풍부한 조르간 선장과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내기 위한 성실한 청년들, 어쨌든 악인은 처벌받는다는 또렷한 해피엔딩이 전체적으로 편안했던 흐름으로 전개됐다. 무엇보다도 보통 외국에선 디킨스가 집필한 편만 실어 책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 판본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 내용이 부자연스럽게 끊기지 않아 좋았다.


마치 그렇게 흘러가는 게 당연하다는 듯 우연의 일치가 많긴 했지만, 이 역시 디킨스를 주축으로 한 실험적인 작업 정신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 장면이 감동이었고 전반적으로 스릴 넘치면서도 너무 복잡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관계성이 좋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던 소설이라 주말에 쉬면서 읽기 딱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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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 - 모든 파도는 비밀을 품고 있다 Short Story Collection 1
남궁진 엮음, 아서 코난 도일 원작 / 센텐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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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시리즈'의 아서 코난 도일이 선상에서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컨셉으로 꾸려낸 단편집 <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은 오랜만에 읽는 순한 맛의 클래식 미스터리로 가볍게 즐기기 좋았다. 그리고 해적 샤키 선장의 함께 모험기도 다루고 있어 코난 도일의 새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만약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위에서 무시무시한 사건을 겪게 된다면? N적 사고가 다분한 나는 가끔 이러저러한 것들을 상상하고는 하는데, 개중 제일 끔찍한 일이 위 사례가 아닌가 싶다. 도무지 빠져나갈 곳은 없고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으며 항해가 끝날 때까지 누군지 모를 미스터리한 범인과 함께해야 하다니! 아서 코난 도일이 자아낸 해상 미스터리는 내 상상력을 충족시켜주고도 남았다.


하루아침에 시체로 발견된 선원, 충격적인 비밀을 품고 있는 지인, 저주받은 배와 민족에 얽힌 비화....... 다채롭고 어딘가 있을 법한 의문의 사건들, 그리고 명쾌한 결말은 마치 퍼즐 맞추듯 즐겁게 머릿속에 쏙쏙 입력된다. 각 단편이 끝나고 후반부 4가지 이야기는 해적인 샤키 선장의 일화를 다루고 있는데, 악명 높은 빌런 같으면서도 그만의 개성이 뚜렷해 좋았다.


아서 코난 도일의 미스터리 작품은 '사건이 일어남→추리 과정을 거침→문제 해결'에만 치중되어 있지 않고, 각자의 인간성과 본성 및 살아가며 가져야 할 도덕성 등에 대해서도 깊이 탐구하고 있다는 데에 뚜렷한 강점이 있는 것 같다. 이 단편선 역시 그런 면이 있었고 그래서 더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정통적인 미스터리이다 보니 현대 소설처럼 자극적인 장면은 덜하고 소프트한 전개로 흘러가는 편인데, 오히려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적당하게 무시무시하면서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추리 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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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 빛나지만 음험하고 고요하지만 번화하며 고풍스러우면서도 탈역사적인 척하는 어느 매력적인 도시 여행기
이인우 지음 / 파람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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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릴스나 숏츠 등에서 교토 문화에 대한 짧은 영상이 자주 나오기도 해서 관심이 가는 지역이었는데, 마침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라는 책을 발견해서 독서를 시작했다. 저자 이인우는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로 이제는 정년을 맞이했으며 교토 리쓰메이칸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한반도와 일본의 언어와 문명에 대해 연구 중이다.


도쿄가 수도가 되기 전, 천 년이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전통적인 도시이다보니 워낙 교양 있고 프라이드가 높은 곳이란 알고 있었는데,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의 정취가 가득한 곳이었단 걸 새삼스레 되새길 수 있었다.


이름난 절과 명소 그리고 당시 시대의 품격을 담아낸 정원 12곳까지, 일본의 미감이 잘 드러나는 풍부한 사진 자료가 시각적으로도 만족감을 준다. 무엇보다도 가치가 뛰어난 여러 문화재들 그리고 여전히 교토에 남아 있는 고대 한국 문화와 교류했던 흔적과 가슴 아픈 조선 역사의 일부까지 함께 살펴 볼 수 있는 점이 제일 좋았던 부분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신라와 백제, 고구려, 조선통신사를 통해 활발하게 전파된 한국 전통의 문화적 양식에 대해서도 볼 수 있고, 우익 세력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운 윤동주 기념비에 대해서도 언급되니 한국적인 일본 기행기라는 카피가 충분히 이해되었다.


가이드북의 역할도 톡톡히 하니 만약 교토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일반 여행서와 달리 역사와 함께 해당 지역을 살펴 볼 수 있어 훨씬 심도 깊은 여행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일본의 탐미주의와 한국의 미학의 정수로 농축된 교토 가이드북, 무척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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