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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정전
오가와 사토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평점 :
나오키상, 일본 SF대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등 내로라 하는 상들을 휩쓴 오가와 사토시 작가의 신작 <거짓과 정전>이 출간됐다. 전작 <너의 퀴즈>로 국내에 이름을 알렸고, 일본에서는 '오가와 월드'라는 새로운 작품 세계관을 구축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듯하다 :) 일본 SF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싶었는데, 충분히 만족스럽게 완독했다.
<거짓과 정전> 속 단편들은 시간을 테마로 한다. 또한 SF와 역사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넓은 의미에서 미스터리도 살짝 맛볼 수 있다. 각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설정은 튀지 않으며 단정하고, 탄탄하며 치밀하단 점에서 평소 이런 장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호오가 심히 갈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시간과 문>이라는 단편이 제일 인상 깊었다. 다양한 시간축을 떠돌다가 종내엔 하나로 연결 짓는 작가의 스킬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표제작인 <거짓과 정전>도 마찬가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만남을 막고, 공산주의라는 역사를 없애버리고자 하는 미래인이라니.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 타인에 의해 180도 뒤바뀐다면 어떨까? 내가 현재 갖고 있는 기억이 정말 진실된 사실일까? 만약 역사가 한번 뒤엎어진 것이라면?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마저도 이 단편집이 사고의 확장을 이끌어줬기 때문이 아닐까 ㅎㅎ 이 또한 작품의 연장선상인 것 같다. 한 편 한 편이 시리어스하면서도 감각적이고, 문장이 낭비되지 않고 정돈되어 여러 의미로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
언어와 음악, 역사, 마술, 그리고 인연에 대한 오가와 사토시의 발상이 무척 신선하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현실의 모습도 드러난다는 점에서 더욱 절묘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소설이었다. 이렇게 여러 장르와 신선한 설정으로 자신의 취향을 설득력있게 흩뿌리는 작가라니, 과연 미야베 미유키 작가가 SF의 신성이라고 표현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