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온 편지
찰스 디킨스 외 지음, 홍수연 외 옮김 / B612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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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편지>는 영문학의 거장 찰스 디킨스와 윌키 콜린스 그리고 5명의 다른 작가들이 협업하여 그려낸 정통 미스터리 소설이다. 책 설명을 읽어 보니, 아직 현대 추리소설의 체계가 잡히지 않은 시기에 실험적으로 집필한 소설이라고. 워낙 유명한 대문호들이니 만큼 몹시 기대가 되었고 생생한 캐릭터와 따뜻한 결말이 무척 좋았다.


조르간 선장은 바다에서 조난 사고에 휘말려 표류를 거듭하다가 도달한 무인도에서 우연히 유리병에 담긴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편지는 부디 내용을 읽지 말고 영국 북데번주 스티프웨이스에서 살고 있는 알프레드라는 사람에게 전달해 달라고 적혀있었다. 조르간은 그 길로 이 아름다운 어촌을 방문해 청년 어부 알프레드를 찾아낸다. 알프레드는 편지를 쓴 사람이 자신의 친형이란 사실을 알아챈다.


편지를 읽은 알프레드는 무척 심각해진다. 아버지와 유산 500파운드가 불미스러운 일에 관련된 듯했고, 이는 곧 결혼을 앞둔 그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프레드는 가족과 약혼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르간과 함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어쩐지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유리병 속 편지(실상은 의심스럽기만 한 내용). 아름다운 바닷마을 묘사와 짧지만 강렬한 난파선의 이야기. 인간적인 매력이 풍부한 조르간 선장과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내기 위한 성실한 청년들, 어쨌든 악인은 처벌받는다는 또렷한 해피엔딩이 전체적으로 편안했던 흐름으로 전개됐다. 무엇보다도 보통 외국에선 디킨스가 집필한 편만 실어 책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 판본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 내용이 부자연스럽게 끊기지 않아 좋았다.


마치 그렇게 흘러가는 게 당연하다는 듯 우연의 일치가 많긴 했지만, 이 역시 디킨스를 주축으로 한 실험적인 작업 정신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 장면이 감동이었고 전반적으로 스릴 넘치면서도 너무 복잡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관계성이 좋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던 소설이라 주말에 쉬면서 읽기 딱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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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 - 모든 파도는 비밀을 품고 있다 Short Story Collection 1
남궁진 엮음, 아서 코난 도일 원작 / 센텐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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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시리즈'의 아서 코난 도일이 선상에서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컨셉으로 꾸려낸 단편집 <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은 오랜만에 읽는 순한 맛의 클래식 미스터리로 가볍게 즐기기 좋았다. 그리고 해적 샤키 선장의 함께 모험기도 다루고 있어 코난 도일의 새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만약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 위에서 무시무시한 사건을 겪게 된다면? N적 사고가 다분한 나는 가끔 이러저러한 것들을 상상하고는 하는데, 개중 제일 끔찍한 일이 위 사례가 아닌가 싶다. 도무지 빠져나갈 곳은 없고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으며 항해가 끝날 때까지 누군지 모를 미스터리한 범인과 함께해야 하다니! 아서 코난 도일이 자아낸 해상 미스터리는 내 상상력을 충족시켜주고도 남았다.


하루아침에 시체로 발견된 선원, 충격적인 비밀을 품고 있는 지인, 저주받은 배와 민족에 얽힌 비화....... 다채롭고 어딘가 있을 법한 의문의 사건들, 그리고 명쾌한 결말은 마치 퍼즐 맞추듯 즐겁게 머릿속에 쏙쏙 입력된다. 각 단편이 끝나고 후반부 4가지 이야기는 해적인 샤키 선장의 일화를 다루고 있는데, 악명 높은 빌런 같으면서도 그만의 개성이 뚜렷해 좋았다.


아서 코난 도일의 미스터리 작품은 '사건이 일어남→추리 과정을 거침→문제 해결'에만 치중되어 있지 않고, 각자의 인간성과 본성 및 살아가며 가져야 할 도덕성 등에 대해서도 깊이 탐구하고 있다는 데에 뚜렷한 강점이 있는 것 같다. 이 단편선 역시 그런 면이 있었고 그래서 더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정통적인 미스터리이다 보니 현대 소설처럼 자극적인 장면은 덜하고 소프트한 전개로 흘러가는 편인데, 오히려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적당하게 무시무시하면서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추리 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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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 빛나지만 음험하고 고요하지만 번화하며 고풍스러우면서도 탈역사적인 척하는 어느 매력적인 도시 여행기
이인우 지음 / 파람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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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릴스나 숏츠 등에서 교토 문화에 대한 짧은 영상이 자주 나오기도 해서 관심이 가는 지역이었는데, 마침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라는 책을 발견해서 독서를 시작했다. 저자 이인우는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로 이제는 정년을 맞이했으며 교토 리쓰메이칸대학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한반도와 일본의 언어와 문명에 대해 연구 중이다.


도쿄가 수도가 되기 전, 천 년이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전통적인 도시이다보니 워낙 교양 있고 프라이드가 높은 곳이란 알고 있었는데,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의 정취가 가득한 곳이었단 걸 새삼스레 되새길 수 있었다.


이름난 절과 명소 그리고 당시 시대의 품격을 담아낸 정원 12곳까지, 일본의 미감이 잘 드러나는 풍부한 사진 자료가 시각적으로도 만족감을 준다. 무엇보다도 가치가 뛰어난 여러 문화재들 그리고 여전히 교토에 남아 있는 고대 한국 문화와 교류했던 흔적과 가슴 아픈 조선 역사의 일부까지 함께 살펴 볼 수 있는 점이 제일 좋았던 부분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신라와 백제, 고구려, 조선통신사를 통해 활발하게 전파된 한국 전통의 문화적 양식에 대해서도 볼 수 있고, 우익 세력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운 윤동주 기념비에 대해서도 언급되니 한국적인 일본 기행기라는 카피가 충분히 이해되었다.


가이드북의 역할도 톡톡히 하니 만약 교토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일반 여행서와 달리 역사와 함께 해당 지역을 살펴 볼 수 있어 훨씬 심도 깊은 여행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일본의 탐미주의와 한국의 미학의 정수로 농축된 교토 가이드북, 무척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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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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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재의 6개 단편이 실린 하루키의 소설집. 새로 쓴 작품들은 아니고,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의 단편들을 선별해 모은 책이다. 그동안 하루키의 장편은 많이 읽었는데 단편은 오랜만이라 색다른 느낌이면서도 그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던 일독이었다.


모두 현실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환상 소설에 가까웠고, 확실히 90년대 유행했던 일본문학의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하루키 특유의 세계관과 문장, 어딘가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결합돼 더욱 독특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다.


우선 제일 알쏭달쏭했던 표제작 <TV 피플>. 주인공에게만 보이는 듯한 'TV 피플'들이 느닷없이 방문해 집에 TV를 설치하고, 주인공의 아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내는 정말 돌아오지 않을까? 주인공에게만 인식되는 TV 피플의 정체는 무엇일까?


<잠>이라는 작품도 인상적이었는데, 갑자기 생긴 불면 증상으로 몇날 며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여자가 남편과 아이를 보며 생소한 감정을 느끼고 이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여러 모로 상당히 스트레스 받고 있는 여자의 상황을 연상시켜서 나까지 괴로웠을 정도다.


솔직히 말해서 이 개연성은 뭐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결말을 가진 챕터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하루키가 추구한 '문학'인 것 같고, 따라서 실린 작품들 자체가 전반적으로 또렷한 해석 보다는 추상의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더 재밌게 느껴지지 않을까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그게 이 단편집의 진실된 포인트이지 않을까……. 해설이 어려운 아방가르드한 현대 미술 같다는 생각도 들고, 따라서 하루키가 자아낸 현실 속 환상에 주목해서 나만의 해석을 따라가 보는 재미가 있는 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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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밤
안드레 애치먼 지음, 백지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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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유명한 안드레 애치먼의 신간 로맨스 소설이 출간됐다~ <여덟 밤>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이십대 남녀의 8일간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느린 호흡과 섬세한 감정 묘사로 옛시절 첫사랑의 순수함을 떠올리게 하는 느낌이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시끌벅적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홀로 있을 장소를 찾다 들어간 트리 뒷편. "나 클라라예요."라고 말하며 다가온 여성에게, 프란츠는 금세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어딘가 독특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대화를 나누며 첫 만남의 밤을 보낸 그들은 서서히 가까워진다.


가까워진 듯하면서도 멀리 있는 듯한 클라라의 말과 행동에 프란츠는 기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한 여덟 밤을 보낸다. 마음 놓고 온전히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금방이라도 다른 이성에게 떠나갈 것 같은 클라라에게 느끼는 불안함 등, '사랑'에 얽히는 모든 감정을 안드레 애치먼은 한겨울 반짝이는 뉴욕 풍경과 함께 아주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서로를 탐색하며 숨기고 있던 것들과, 그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맞이해야만 했던 우정과 사랑 사이에 놓인 연인 아닌 연인들. 상당한 분량 덕분에 '밀당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싶다가도 '아, 얘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지'라고 납득하게 되는 순간이 있긴 했지만, 그만큼 사랑에 빠진 사람의 심리가 아주 자세하게 드러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분명 이 주인공들은 20대인데, 생각의 깊이가 남달라…… 현대에 유행하고 있다는 가벼운 만남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를 띠고 있어서,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듯.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화려한 파티에서 만난 상대와 평생 잊을 수 없을 로맨스라니……. 꼭 영화 같은 장면에(물론 소설이지만), 맘속 한켠이 두근두근했다. 로맨틱한 사랑을 해본 사람들, 혹은 꿈꾸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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