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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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최진영 작가님의 작품은 ‘구의 증명’과 ‘단 한 사람’ 밖에 읽지 않았지만 작가의 말과 같이 그녀는 언제나 ’언젠가 사라져버릴 당신과 나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쓰는듯 하다.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일찍이 알지/깨닫지 못했던 사랑을 마주한다. ‘단 한 사람’에서 그녀는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라고 적는다. 이 구절에서야, 일화를 바라보는 월화의 ’알아. 나도 너처럼 그렇게 내 몸에 얼굴을 파묻고 이 지긋지긋한 인생을 구덩이에 다 묻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엊그제도 그랬고 어쩌면 내일도 모레도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을게. 너를 보고 있을게. 네가 네 손으로 네 인생을 파묻지 않도록 내가 감시해 줄게.‘ 라는 구절에 다다라서야 나는 내 동생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글은 담담한 필체로 그려놓은 감정이 짙어서 눈물을 떨어뜨리며 읽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나가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서술한 것 처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나를 울렸던 단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
죽음은 그녀의 질문이자 답을 도출해내가는 과정이다. 죽음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극단적인 이벤트 이기도 하지만 삶의 필수적인 구성요소이기도, 그래서 가장 평범한 것이기도 하다. 그녀의 소설에서 등장인물은 모두 죽음을 겪어내며 성장한다. ‘구의 증명’에서는 죽음마저 나의 몸으로 온전히 안아내며 그를 사랑하고, 하나가 되는 지점에 다다른다. ‘단 한 사람’ 에서는 죽음을 지켜보기도 구해내기도 하는 나는 엄마와 할머니 와는 다른, 더이상 나아가지 않고 열심히 살리며 단순히 기적이라고 단념하거나 겨우 한명만 구해내는 저주라는 분노를 쏟아내고 냉소를 퍼붓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담담히 하나 하나의 개별적 죽음을 존중해 나가는이로, 더 나아가 죽고싶어하던 이는 나를 돕고 싶어서, 살리고 싶어서 선택한/선택받은 이를 키워내기에 이른다. 죽음은 모두의 삶을 폭풍우처럼 쓸고간다. 그 폭풍우 안에서야 우리는 질문을 하기도, 답을 찾기도, 또는 답은 없음을 깨닫기도 한다.
나는 그녀가 죽음이라는 소재를 이용하는 것도,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드러내는 것도 모두 좋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터부시한다. 또는 죽음을 충분히 긍정하지 못한다. 우리는 단순히 삶의 끝 이라는 고루한 죽음의 정의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야한다. 죽음을 삶과의 대척점이 아니라 삶의 과정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그 순간에 이르러야 ’영원한 건 오늘뿐이야. 세상은 언제나 지금으로 가득해.‘라는 뜻을 이해하게 된다.

혹자의 리뷰를 읽다보면 이야기에 걸맞지 않은 허무한 엔딩이라는 평이 있는데, 나는 감히 반기를 들어본다. 이 글은 전체적으로 엄청난 반전이나 대단원의 마무리가 걸맞는 거대한 글이 아니다. 작가는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매일 글을 썼다고 한다. 이 글의 구성은 이전에 읽었던 ’구의 증명‘에 비해서도 다른 촘촘한 작가들의 이야기에 비해서도 매우 성글다. 이 글은 담담하고 듬성듬성 틈이 있는, 그 순간을 기록해야 하기에 쓰여진 찰나의 기록이기에 빽빽할 수도, 따라서 대단한 마무리를 할 수도 없다. 어쩌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일 수도 있는 금화의 실종조차 작가는 성글게 마무리 짓는다. 더이상 금화의 이야기는 중요한것이 아니다. 모든 죽음은 개별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죽음은 모든곳에서, 모두에게 일어난다. 질문과 답을 찾기 보다는 그대로 존중하고 보내주는 것이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이 글을 읽어내려가며 한 가문의 여자들에게 내려진 무언가를 기적, 겨우, 단 한사람, 기도로 대하는 변화를 보며 원동력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나 혼자 겪어내야 하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옆의 동반자가, 나와 함께 모든것을 겪어내는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 나를 사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것을 감당해내기에 충분치 않은 경우도, 나와 같은 일을 겪지는 않지만 내 존재의 분신인, 둘이지만 언제나 하나인 경우도, 나와 같은 것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의 경험과 나 자신마저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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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 채석장 시리즈
마틴 푸크너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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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담아내고 있는 세계는 무엇인가. 얼마전 귀국 비행기에서 제인 오스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제인 오스틴은 뛰어난 풍자가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사회상을 잘 비틀어 보여준다는 의미) 나는 사실 그런점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소설속의 세계로만 단절시켜가며 읽었다. 그녀의 많은 작품들은 수만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원형이기에 나는 그녀의 작품이 이 세계에 발 닿아 있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녀는 그녀가 관찰한 실제 세계를 그녀의 문학 안에 온전히, 약간 비틀어서 또는 흐릿하게 담아낸다. 문학은 아무리 상상속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하더라도 인간이 서술하기 때문에 그들이 숨쉬고 사는 실제세계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한편 문학이 담아내는 세계는 대체적으로 정복자의 세계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수많은 문학이 얼마나 주류의 시각에 찌들어 있었는지 새삼 느꼈다. 소수자를 위한 문학도 결국은 다수에 대비한 소수자의 삶을 그리며, 인간 이라는 종 자체가 정복자이므로 이에 벗어나는 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시각은 진정으로 가능한 것인가.

나는 인간이 아닌 비인간 주체를 위한 문학이 주류를 이룰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해야하는 작업은 어렴풋이 비추는 현실의 그림자를 통해 인간이 이 세계를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 어떤 영향과 상처를 남겨왔는지 깨닫는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나치게 빠르게 흘러가는 종말의 시계를 전혀 늦출 수 없을 것이고 종국에는 절멸로 향하게 되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노력은 불가능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여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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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 채석장 시리즈
마틴 푸크너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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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담아내고 있는 세계는 무엇인가. 얼마전 귀국 비행기에서 제인 오스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제인 오스틴은 뛰어난 풍자가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사회상을 잘 비틀어 보여준다는 의미) 나는 사실 그런점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소설속의 세계로만 단절시켜가며 읽었다. 그녀의 많은 작품들은 수만은 신데렐라 스토리의 원형이기에 나는 그녀의 작품이 이 세계에 발 닿아 있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녀는 그녀가 관찰한 실제 세계를 그녀의 문학 안에 온전히, 약간 비틀어서 또는 흐릿하게 담아낸다. 문학은 아무리 상상속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하더라도 인간이 서술하기 때문에 그들이 숨쉬고 사는 실제세계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한편 문학이 담아내는 세계는 대체적으로 정복자의 세계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수많은 문학이 얼마나 주류의 시각에 찌들어 있었는지 새삼 느꼈다. 소수자를 위한 문학도 결국은 다수에 대비한 소수자의 삶을 그리며, 인간 이라는 종 자체가 정복자이므로 이에 벗어나는 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시각은 진정으로 가능한 것인가.

나는 인간이 아닌 비인간 주체를 위한 문학이 주류를 이룰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해야하는 작업은 어렴풋이 비추는 현실의 그림자를 통해 인간이 이 세계를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 어떤 영향과 상처를 남겨왔는지 깨닫는 것이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나치게 빠르게 흘러가는 종말의 시계를 전혀 늦출 수 없을 것이고 종국에는 절멸로 향하게 되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노력은 불가능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여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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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 2종 랜덤 머그 - 살아 있는 고양이 or 유령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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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사랑스럽고 다 좋은데 슈뢰딩거의 고양이 살때마다 자꾸 살아있어요… 유령고양이도 보고시퍼…
개인적으로 머그인만금 조금더 두껍고 사이즈가 크면 좋겠어요! (이 컵은 일반 알라딘 머그 사이즈/두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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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닮은 사람
정소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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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불행을 얇게 저며 펼쳐놓은것 같다. 얇디 얇지만 끈끈하게 빠져나갈 수 없는 지독한 굴레를 담담히 풀어낸다.
환상소설이 떠오른다. 당연하고 평이한 현실에 서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장소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거짓현실로 바뀌지만 그 또한 현실이며 마술적인 장면의 전환이다. 그런데 한권의 책은 어쩌면 실제로 한 사람의 인생이고 그 삶의 정수일지도 모른다.

참 묘한것 같지만 이 이야기들은 나직하고 새된 목소리로 담담하게 모든것을 말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절대 창백하지도, 지나치게 생동감이 넘치지도 않는 미색의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뿌리가 거세된 인간들은 애처롭게 떠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속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런 이 작가는 약간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 들게 한다. 잠시 앞이 보이는것 같다가도 안개가 나를 스쳐지나가고 나는 갑자기 내 눈을 의심한다. 그러나 안개가 스쳐지나가는 그 절묘한 순간은 너무나 매끄러워 이전의 현실과 이후의 현실을 구분할 수 없도록 교묘히 엮어 놓는다.
'돌아오가'까지 읽고서 이 책을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책은 환상소설집이다. 사실 나는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치 못했는데...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드디어 만난 나의 취향이다.

젠장 이렇게 말끔하고도 무거운 단편들을 써내기 위해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펜을 들었을까. 글을 써내려가는 펜의 무게가, 키보드를 누르는 손가락의 무게가 천근만근이었을 것만 같다. 최근에 읽은 책들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서 책을 읽다보면 답답한 마음 뿐이었는데 오랫만에 이야기 자체의 무거움이 내 폐를 짓누르는 책을 찾았다. 정말 숨죽여 아껴 읽었다.

그러나 계속 드는 생각은 가족한테만 다정하지 않는 나. 왜이리 어려울까. 가정에서의 학대는 보통 부모가 자녀한테 가하지만 나는 반대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왜 엄마에게 따뜻한 말, 조금의 기다림 없이 핀잔을 주고 화를 내는가. 그녀는 나에게 진심으로 사랑만을 주었는데 말이다. 어느날 나는 가족한테 화를 내는 사람들은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나는 나에대한 분노를 사랑하는 가족에게 풀어내야 할만큼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인가. 나의 무심코 또는 일부러 던졌던 말이 우리 가족을 너무 깊게 찌르거나 베지 않았는지. 우리 가족은 '실수하는 인간'이 아닌데 내가 그렇게 만들고 있구나. 다른 한편, 나 또한 겨우 '실수하는 인간'인가? 이전까지 실수였던 아니었던 더이상은 중요하지 않다. 알면서도 계속 '실수'한다면 그것은 실수라고 할 수 없을터.

시간이 점점 빨리 지나가 이제는 한 해라는 시간도 해처럼 저물어가는 지금, 나는 올 해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을 생각보다 빠르게 고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처음에 이 책을 빌린것은 드라마의 원작인 '너를 닮은 사람'을 전자책으로 읽었고 그 단편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가벼운 단편이지만 나를 그 무엇보다 무겁게 묶어 버렸다. 그래서 그 이상 마음에 드는걸 찾을 수 없을것을 확신 하면서도 이 책을 빌렸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단편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카사레스에 우리의 비극을 섞은 느낌. 너무 한국적인 글은 나를 현실에 처박는것 같아서 거부하던 나에게 한국적이기 때문에 더 무겁게 와닿았던 소중한 이야기들.

절대적으로 해설을 읽는것을 추천한다. 해설을 항상 읽지만 사실 정말 해설이 필요한가? 내가 소설을 읽는 그 순간 내가 느낀 그것이 나에게는 온세상일텐데. 그걸 깨내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스스로 어느정도까지 읽어낼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데 이 해설은 내가 느끼는 것을 언어로, 이론으로(?) 명료하게 집어준다. 감히 말하건데 아주 좋은 해설이다. 이 소설은 나의 세계를 한번 깨어야 할 정도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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