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연대기 살림지식총서 147
한혜원 지음 / 살림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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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부분은 영화 홍보인가 할 정도로 겉핡기식 이어서 약간 실망스러웠으나 주제가 너무 매력적인 탓에(!) 계속 읽었더니 아주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특히 이 부분이 드라큘라의 탄생에 대해 큰 깨달음을 주었다.
‘한편 매력적인 캐릭터인 드라큘라 백작은 유럽의 설화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악령과 귀신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들만을 모아 재조립한 일종의 ‘아상블라쥬(assemblage)’이다. 늑대인간(Werewolf)의 설화에서 송곳니의 흔적을 빌려오고, 그림자나 상은 영혼의 상징이기에 드라큘라는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설정을 했으며, 하루에 최대 10cc의 피를 빨아 먹는 중남미 흡혈박쥐의 성향을 염두에 두고 박쥐로의 변신을 설정했다. 이 외에도 루마니아의 민간에서 전래되는 마늘이나 바곳 등의 특정 향신료를 드라큘라 퇴치에 사용했으며, 기독교의 상징인 성수와 십자가를 드라큘라에 대항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로 설정했다. 이러한 법칙들은 후대의 다른 작품들에서 뱀파이어를 규정할 수 있는 중요한 요건들로 굳어진다. 드라큘라의 법칙이 21세기까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요건들이 한 개인의 머리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창작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축적된 이야기라는 점에 있다.‘
항상 드라큘라가 브램 스토커의 순수한 창작물인지 아니면 설화들의 집합인지 좀 궁금했는데 이런 ‘아상블라쥬’였다니. 매우 속이 시원하다. 그리고 문학작품에서 다룬 뱀파이어(및 드라큘라)를 연표 보듯이 깔끔하게 설명해 주어서 너무 좋았다. 이런, 나는 지금 외교사를 외워야 하는데 뱀파이어사를 외우고 있다. 조금 절망적인데, 어떤 전쟁과 조약이 아니라 어떤 뱀파이어가 어떤 문학 작품에 나왔는지 그때의 사회 배경은 어떠한지 물어보면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살림지식총서는 항상 내가 궁금해 하는 주제에 대해 가장 좋은 입문서 같은데, 누군가는 그 주제 대해 글을 쓴것이 있고, 매우 짧으며, 사람들이 보통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직선적으로 소개하게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가격도 매우저렴하다. 내 첫 살림지식총서는 초등학교때 산 다빈치 였던것 같은데… 20년이 지나도 같은 시리즈를 보고 있다니… 하긴 나는 초등학교때 읽었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도 지금도 사모으고 있구나.
다시 뱀파이어 이야기로 돌아와서. 사람들의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고 그것이 차곡차곡 모여 만들어내는 문화 등은 더 경이롭다. 오늘 산책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오리를 보았는데 문득 오리는 어떤 말을 하고 살까 궁금해졌다. (나는 초등학교 떄 동물도 자신들의 언어로 대화한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하이에나는 우유 배달부‘는 아직도 매우 좋아하는 책이다.) 그러다가 아, 동물들은 저기 저 곳에 맛있는 물고기가 있대! 라는 말은 할 수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어요. 어떤 것들은 황혼녘의 그늘에 숨어 살며 모시는 거죠…… ‘그’를.“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할 수도 있지만 아직 그들이 어떤 문명과 문화를 가졌는지는 목격된 바가 없으니 일단 이렇게 넘어가도록 하자) 이러한 상상력의 축적이 우리를 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만든것이 아닐까 한다. (아니 잠깐 나는 동물 매우 사랑하며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차이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봇과 우리는 무엇이 다를까? 로봇도 상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생성형 AI라는 것을 볼때마다 궁금하다. 이들이 생성하는 것은 상상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주사위 굴리기를 통해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에서 하나씩을 채택해서 콜라쥬 해놓은 결과물일까? 그러나 또다시 본질적으로, 우리의 상상력은 ‘순수하게’ 상상인가? 뱀파이어 이야기의 축적에서만 해도 알 수 있듯 본질적으로 온전하게 그 자체가 순수한 상상인 것은 존재하기 어렵다. 모든 기억의 축적과 수많은 레퍼런스 중의 차용이 모여 그것을 구성했고 우리는 단지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뱀파이어도 축적의 산물이다. 엽기적인 역사와 허구, 공포가 모여 차곡차곡 쌓이고 그것이 훌륭한 소설가의 귀에 들어갈 때 우리는 뱀파이어 (및 드라큘라)의 탄생을 목격하게 되며 이는 다시 변주되어 항상 익숙하지만 항상 새로운 대상으로 존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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