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에 반대한다 -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우중몽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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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에 읽기 시작했지만(!) 도저히 당시에는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잠시 놓아두었다 6월 3일이 참담한 지방선거 결과를 밤새 보다 이 책을 다시 잡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진정으로 새로운 세대가 진보담론에 동조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정당이 '진보'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그러나 진보는 이미 자신이 거부하기로 한 것들에 대해 온몸으로 부딪히기는 커녕 이미 그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제는 단순히 좌파의 오래된 믿음이 전 지구적 파국에 일조하는 것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진정한 변화를 거부하는 지배계층, 눈 앞의 이익(심지어는 이익도 아닌)에 눈이 멀어버린 피지배계층은 조선이나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도, 그리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요즘 망국에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이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루하루 발버둥쳐 무언가를 조금 바꾸어 놓았다 생각해도 결국 바뀐것은 없고 모든것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것. 그러나 실은 이전보다 더 악화되기만 하는것.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팀플레이이고 이 팀플레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장서는 이가 천재적이거나 모든이가 자신의 욕망을 조금 접어두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 지금 나의 세계는 어떠한가. 모든 의지를 잃어가는 이 무기력함이 함께하고자 했던 이들에게 닥쳐온다. 그 이유는 같이하는 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조금도 뒷전으로 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젝은 (나와달리!) 멸망해가는 세계를 그대로 침잠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그는 "희망이 없더라도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운명 자체를 바꿀 행동을 수행함으로써 주어진 상황 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외친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2배는 훌쩍 넘은 나이의 지젝이, 나보다 세상의 절망을 곱절은 더 많이 지켜보았을 지젝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진정으로 침몰하는 세계를 구할 수 없을지라도 이러한 열정을 가진 이가 함께 한다면 한번은 더 눈감도 앞으로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극우주의가, 극단적 이기주의가, 파시즘이 다시 득세하는 세상, 우리는 2차대전이 끝난 폐허보다 사상적으로 더 후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모든것이 파괴되었을 때 과거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으로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젝의 말처럼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야만 한다.
나에게 이 책은 단순한 진보의 비판이 아니라 내일을 나아가게 하는 희망의 빛 한줄기를 비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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