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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 2 - 완결
산호 지음 / 고블 / 2025년 2월
평점 :
내가 마지막으로 독후감을 적은게 언제였더라? 더이상 그러할 필요가 없게 되면서 반짝거리는 문장을 수집했지만 나는 더이상 책에 대해 쓰지 않았다.
정말 오랜 시간을 넘어 그런 책이 생겼네. 기쁘고도 슬프다. 이런 책을 알게 되는 날은 그에 대한 생각이 멈추질 않아서.
이 책은 내가 시험 전에 신청해 놓고 받으러 가던 그 날은 내가 이 책을 왜 신청했는지 까먹을 정도로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원래 이것저것 따지고 읽을 책을 고르는 편인데. 시험 직전이라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전에는 뭐랄까, 옳기만 하면, 맞다면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고 동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짧고 긴 30여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깨달은 것은 인간의 우매함이 존재한 다는 것이었고 이런 편견과 아집은 절대 논리적인 접근으로는 깰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에 대해 머리가 아닌 심장을 먼저 공략할 수 있는 책. 요즘 눈물이 많아진 걸 고려해도 지나치게 눈물이 많이 났다. 사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책에 대해 다시 반추하면서 눈물을 다시 찍어내고 있다. 우리는 우리앞에 놓인 삶이 어떤 삶일지 숙고하고 계획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단순히 우리 뒷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흥안보의 위기는 하루 아침에 드러나지 않는다. 책에서 처럼 어느날 물 공급이 끊긴다는, 식량이 배급된다는 결정이 날아들었을 때 아 그제서야 우리는 이제 큰일 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가 70대, 80대 노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우리의 기후위기, 식량위기, 생태계 파괴 등은 눈 앞에 닥친 절박한 위기이다. 그런데 왜 아무도 보지 못할까. 10여년 전 고등학교때만 해도 여름에는 큰 장마와 태풍이 불어왔다. 그 며칠은 정말 무섭고 학교가기도 힘들었지만 또 장마와 태풍이 지나면 여름이 절정이 지났구나, 가을이 오겠지 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원체 어디에 박혀서 있는걸 좋아했지만 가을만은 저절로 나가고 싶어지는 계절이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후부터는 더이상 여름이 여름같지 않게 되었다. 특히 올 해의 여름은 그냥 옛날에 갔던 동남아시아의 우기인것 같아. 일기 예보로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비가 미친듯이 쏟아졌다 어느세 거둬져 해가 비치지만 더위는 가시지 않고 오히려 습기만 넘쳐 쪄지는 것 같은 이 기분. 선풍기로 충분히 여름을 나던 우리 가족도 에어컨을 사고 곧 건조기, 또 이후에는 제습기를 사야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날씨. 생태계가 인간을 참아낼 수 있는 시기가 얼마나 남았을까. 아직 비교적 짧았던 나의 생애에도 이렇게 분명한 변화를 볼 수 있는데. 정말 이 책에서 그리는 세계는 내일이 될수도 있다는걸 모두가 알아야 할텐데. 띠동갑 차이도 나지 않는 사촌동생들과 이야기 할 때도 라떼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우리 사촌동생이 살아갈 세계는 하루 하루가 또 얼마나 빠르게 바뀔까?
책은 희망차게도 마녀들의 능력, 양심있는 연구원과 기자에 의해 디스토피아에서 잠시 벗어나는듯 하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확실히 그렇지 않을 것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 과제는 인류 전체의 조과제이고 이런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공이 많은 조과제는 스스로 침몰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한명이라도 더 읽고 알게 된다면 변화를 낳지 못한다고 해도 조금 낫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반대려나, 올 수 밖에 없는 형벌을 기다려야 하는 죄수처럼? 무지에서 나오는 행복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경기도의 독서응원포인트 제도가 실행되고 처음 읽은 책이다. 경기도가 이런 독서 진흥책을 내놓다니, 아직 이런것에 관심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조금 슬픈데, 책은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수적일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시도가 마중물이 되어 독서진흥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도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좀 전 '문학의 쓸모'를 읽을때도 느꼈던 씁쓸한 감정인데, 우리는 어느새 독서나 문학, 책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증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된 그 것. 대체 왜 모든것을 이해시키려면, 참여를 얻어내려면 금전적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어떤 행위는 하는 이유가 없을수도 있고, 습관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개인마다 이유가 다를수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걸 짓밟아 버리는 경제의 거역할 수 없는 톱니바퀴. 어떤 날은 정말 역겹다. 아, 하지만 물론 나는 열심히 책도 빌리고, 읽고, 독후감도 써서 포인트를 적립할거긴 하다. 그래야 더 좋은 책을, 사랑하는 책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