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그 어느 부분에서도 화들짝 놀라지 않았다. 모든것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1인칭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사건을 진행시킨다. 모든것은 꽤 담담하게 흘러가지만 그녀(안나)를 처음만나는 순간과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은 말 그대로 '타오른다'. 그러나 여러 사건과 아들의 죽음 등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건조하게 서술된다. 이렇게 주인공은 자신의 세계를 건설해 나간다. 지나칠만큼 당연스럽게, 고루한/성공한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모두가 꿈꾸는 진정한 사랑(! 또는 자신의 생)을 만난다. 여기서 모든것을 다 던지고 사랑만을 쟁취할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것을 덮어두고 이전의 삶을 지켜나갈 것인지 선택의 갈래에서 사실 많은 소설과 같이 사랑을 선택한다. 아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선택을 할 때, 영위해 나가던 삶은 산소처럼 익숙하기에 오히려 그 중요성은 잠시 흐려지고, 타오르는 태양같은 사랑에게 끌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음 적어도 나는 항상 그래왔던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랑이 그가 겪은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걸 버려 사랑을 선택한것 같다. 또는 반대로 나는 항상, 매 순간 사랑을 위해 모든걸 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 같은데 다행이도 그 사랑이 보통 가족과 친구 등이어서, 나의 삶과 사랑이 크게 부딫히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아직 파괴되지 않았다. 각설하고,선택을 하는 그 당시에는 어렴풋이 이후의 결과가 걱정되기는 하나 아직 닥쳐오지 않은 무언가 이기에 우리는 모든것을 유예하고 싶은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은채 사랑을 선택한다. 나중에 모든것이 천천히 드러나겠지. 그러나 그 판결의 순간 이전까지는 그 사랑에 조금 더 탐닉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러한 안일함으로 우리는 모두 진실의 법정에 서게된다. 나의 선택은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어떤 이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고 어떤 이는 삶을 지속해나가지 못하기도 한다. 여기서 나는 안타깝게도 조금 느꼈다. 나는 모든것을 안고 죽을 수 없는 생존자가 될 것 이라는 사실을. 차라리 모든것을 멈추고 고통에서 빠져나오기 보다는 이 진득한 생에 들러붙어 마지막까지 구차한 목숨을 지속해 나갈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애스턴과 마틴의 선택을 할 수 없으면서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역시 태초부터 다르게 태어난 탓이겠지. 생존자는 그 굴레를 지고 살지만 죽은자는 모든것에서 자유롭다. 역시 자유는 추구미로 두고 모든것에 매여산다. 가장 궁금한 것은 애스턴과 마틴이 그러한 선택을 한 이유이다. 아마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