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조율사
궈창성 지음, 문현선 옮김 / 민음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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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으로 보이는 나른한 언어보다 너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음을 짐작하지만 나는 아직 거기에 닿을 기운이 없다.
매우 자기 주관적인 삶을 살기에 주의하고자 책을 읽는 나는 다시 한 번 허를 찔린다. 모두에게 피아노는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터, 어떤 피아노는 정신을 놓게 하기도, 애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번 찬찬히 세어볼까, 내 추측에 나는 2002년 또는 2003년 정도부터 피아노를 쳤던것 같다. 그러면 2025년인 지금까지 약 24년 정도 피아노를 쳤고 내 생의 3/4 정도는 피아노와 함께했다. 이전에 내 삶의 반 정도를 피아노와 함께했을 때가 와서야 나는 피아노를 그만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니 그 보다는 그만둠 자체가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피아노에 전혀 재능이 없었지만 그래서 어려운 악보를 해석하고 음악을 만들어 내는것이 너무도 힘겨워 매일매일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는 모종의 이유로 피아노 소리가 문득 시리게 아름답게 들리고 피아노 연주가 아니면 내가 평생 계속 할 일이 딱히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추어인 내가 연주하는 음악도 (그것을 음악이라 칭할 수 있다면)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매번 어떤 음을 어떻게 연주할지, 어떤 빠르기로 연주할지, 손가락이나 손목과 손의 힘은, 모양은 어떻게 할지, 내가 그 부분을 연주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 고려해야 할 점은 끈임없이 이어진다.
타인에게도 피아노는 각자의 사연과 감정을 갖고 있겠지.
머리로는 알지만서도 문득 이렇게 책으로 피아노에 대한 다른 시각과 느낌에 닿게 되면 당혹스럽다. 이 책의 줄거리는 몇 줄로 요약할 수 있겠지, 심지어 책도 이렇게 짧은데. 그러나 피아노 조율사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주변인의 생각과 느낌을 피상적으로 예측하게만 할 뿐이며 심지어는 조율사의 과거, 생각, 느낌등을 완벽히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의 이해와 어긋나는 균열이 생기고 나는 더이상 조율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피아노로 이어붙여진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그 중심에 위치하지 못한다.
피아노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엮여있다. 그 이야기를 꾸역꾸역 간직하게되는 피아노는 묵묵히 살아남는다. 피아노를 연주해 주는 사람이 없어질 때 피아노는 주인의 이야기와 함께 모두에게 잊혀질 것이다.
내가 기대했던 방향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더 섬세하고 더 무거웠다. 그러나 조금 더 말이 필요한 부분에서 음악과 침묵으로 대체하는 것은 이야기를 지나치게 어렵게 끌고가는 것이다. 일반화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동양문학은 가끔 서양문학 처럼 조금 더 수다스러워 질 필요가 있다. 너무 침묵하는 현자는 알아주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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