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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염장이 - 대한민국 장례명장이 어루만진 삶의 끝과 시작
유재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평점 :
[대통령의 염장이] _ 유재철 _ 김영사
사랑하는 사람을 세상에서 떠나는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까. 그 마음을 헤아리는 장례지도사의 이야기. <대통령의 염장이>다. 회색으로 보이는 푸른 속지는 그리 어둡지 않아 먹먹하지만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차분하고 쓸쓸하고, 다정하다. 수의의 촉감이 연상되는 표지를 애정을 담아 쓸어넘긴다.
문득 할머니의 장례가 떠올랐다.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게 해준 사람. 장례 예법을 전혀 모르는 나는 약속을 했었다. 할머니가 입관을 하게 되면 마음이 아파서 몸에 상처를 낸 곳을 닦아 관에 넣는 일이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질병을 앓았던 곳이나 아픈 부위를 닦아 넣으라고 하셨다. 자기가 떠나는 길목에 버려주겠으니. 나는 그게 돌아가신 할머니의 마지막까지 주고 싶어 하셨던 사랑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리 닦아 넣는 것도 친척들과 가족들의 말림이 컸고, 당황하셨으나 내 호소를 들은 장례지도사님이 물티슈를 하나 건네 주셨다. 이걸로 닦아 넣으시라고, 어딘가 슬프고 다정한 표정이었다.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이상한 유언이자 미신 사이에서 나홀로 목 언저리와 손목을 닦아 넣었다. 가시는 길에 손에 꼭 쥐여 드렸다.
한바탕 소란 후에 그 장례지도사 분의 안내에 따라 시신을 봤다. 오랜 암을 앓고 돌아가셨음에도 표정이 온화하고 따뜻했다. 은은한 미소로 기억 될 만큼 온기있던 시신의 분위기. 곱게 모아진 두 손과 곱게 입혀진 수의. 할머니의 결혼 반지이자 묵주반지는 내 검지에 유품으로 남고, 내 몸의 상처를 닦은 티슈가 할머니의 손에 쥐어졌다. 그렇게 관을 닫았다.
못난 손녀. 딸과 다름 없다시던 내가 드린 물티슈 한 장. 눈물 범벅으로 멍하니 식장에 앉았다. 엄청난 죄책감으로 길에서 신부님께 뛰어가 고해성사를 받았다. 가시는 길 마저 배웅하지 못하고 좋은 손녀이지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을까.
장례지도사 분들은 한참 무너져보이는 내게 섣불리 다가오지 않으셨지만 가볍게 인사를 주고 받으며 늘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셨다. 침묵으로 전할 수 있는 최대의 위로였다.
아이유의 새 앨범 속 <정류장>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지하철에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늘 책이 주어진 순서 대로 정독하는 습관이 있는데, 목차를 보고 2장으로 바로 넘어갔다. 돌아가신 분의 신체 하나 하나를 주제로 2장이 진행된다. 손과 발, 눈과 귀 등 마치 내가 떠나보낸 사람을 기억하듯 섬세하게 염을 하는 작가의 생각이 이어졌다.
암으로 오래 고생한 환자의 죽음은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가는 정성스레 얼굴 근육을 마사지 한다고 했다. 손이 경직되어 펼쳐지지 않으면 온 힘을 써서 하나 하나 펴 드린다. 곱게 수의를 입히고 자세를 바로 잡는다. 꼭 완벽한 잠이 든 사람처럼. 온 몸을 씻고 좋은 오일을 바른 채로 새 잠옷을 입고 잠든 사람처럼. 돌아가시기 전 나와 단 둘이 살던 할머니의 잠자리를 준비하고 팔 다리를 주물렀는데, 마지막 가는 길의 효도를 대신 해주신 것 같았다. 책을 읽을수록 그때의 장례지도사분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마지막으로 고인을 어루만질 때에 늘 장례지도사들은 가장 마지막에 닫히는게 귀라고 늘 조심한다고 한다. 그래서 유족들이 너무 슬퍼하더라도 오열하지 마시라고 말린다고 한다. 수의에 눈물이 떨어지면 무거워서 이승을 못떠난다며. 하지만 요즘은 눈물 흘리는 가족들을 보며 잘 살았구나 할만큼 팍팍해졌다고 한다. 앞 장을 읽을 때, 귀가 듣고 있다는 말에 철렁했었다. 눈물 범벅으로 휘청이던 내가 안쓰러웠을까봐, 걱정되었을까봐, 그게 다 들리셨을까봐 뒤늦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내 슬프고 그리운 마음이 전해졌으리라, 잔뜩 사랑받고 떠나는 사람이고 또 그렇게 보였으리라 안심이 되었다.
장례지도사에 대한 편견이 없을 세대일까. 혹은 그때의 손수건을 받은 기억일까. 나는 염장이라 불리는 장례지도사에 큰 편견이 없었고, 책을 읽어가며 더욱 감명받았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을 따뜻하게 보내드리는 효도를 해주시는 분들. 정성스레 옷을 입히고 몸을 닦아주시는 분들. 혹여 시신이 험할 때에 마지막 가족들에게 비추는 얼굴을 가꾸어 주시는 분들. 그리고 강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장례지도사 유재철 작가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견해. 수 많은 고인과 가족에게 담긴 이야기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며 경조사에 참여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떠나 보내야한다. 조금 더 이 책을 만났다면 좋았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잘 떠내보낼 수 있었을까. 죽음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에 찾아 올지 모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잘 준비 된 상태로 보내드리고 싶다. 아직 많이 남은 삶과 인연에서 혹시 맞게 될 누군가의 죽음을, 가득한 사랑과 애정으로 실수 없이 보내드리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새긴다. 언젠가 맞이할 나의 죽음 또한 끝까지 아름답길 바라며.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