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바람이 불면




성 민(윤찬준)



섬에 바람이 불면

추억과 그리움의 늪 속을

헤매이고 헤매이다

흔들리는 새벽을 맞는다.

   

얽혔던 인연의 실 풀어져

나는 당신의 지평선 너머로

당신은 나의 지평선 너머로

새가 되어 날아간다.

   

기다림 앞에 놓여진 바다

어떨 땐 설핏 떠올랐다

어떨 땐 사라졌던

그 돛단배는 오지 않았다.


만남보다 더 처절했던

헤어짐의 순간은

이미 재가 되고 연기가 되고

그리움만 문신마냥 선하다.


이제 섬에는

그대 떨군

눈물 한 방울만이

청아한 잔에 담겨 있고


희미하게 퇴색되어가는

그대 뒷모습 속으로

끈적한 망각의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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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만남






성 민(윤찬준)




 

땅거미 지는 해거름에

서글픈 인연으로 만나

진물처럼 돋아난

어설픈 사랑을 묻는다.

육체가 가면 정신도 간다는

아니 정신이 가면 육체도 간다는

추상적인 관념에

무참히 짓밟혀버린

청초한 순정

한 때는 삶의 피안에 살면서도

삶의 이쪽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예리한 아픔을 끓였지만

감정이 굴절된 지금

사랑은 부표처럼 떠돌다

유성처럼 사라진 허무

문득 찾아온

무의미한 성희의 향내는

망각 속에 옅어져만 가고

인연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닌

어설픈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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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거나 어쩔거나(4)



그런 그녀를 보면서 생선 도매 아내의 친구들은 자신들도 성형할 것을 원했고 몇 명은 실제로 시도하여 효과를 보기까지 했다.

상황이 그 정도에서 마무리가 되었으면 문제가 생길 리가 없었다.

그 이후부터가 문제가 되었다.

생선 도매 아내의 친구 한 명이 성형했고, 그 친구의 성형 예찬에 또 두어 명의 친구가 성형을 시도했고, 그녀들은 하나 같이 입을 맞춰 성형 예찬을 늘어놓음에 의해 그녀들 모임은 성형 이야기로 시작되어 성형 이야기로 끝났다.

마치 그녀들의 모임은 친목이 아닌 성형을 위한 모임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디 한 부위라도 성형을 하지 않은 여자는 반푼이 취급을 받았고 친구들로부터 반푼이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디 한 군데라도 성형하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처음에는 성형에 별로 관심이 없던 상규의 아내도 친구들의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성형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결혼 이후 근검절약이 몸에 밴 그녀가 성형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리였다.

그러나 상규의 아내는 성형하고 싶었다.

처진 목덜미와 눈꺼풀을 볼라치면 짜증이 나고, 각진 턱과 넓은 이마를 볼라치면 울화가 치밀었다.

특히 손등을 볼라치면 80이나 된 노파의 손등 같아 우울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상규의 수입은 고정되어 있고 지출도 고정되어 있어 여윳돈이 별로 없다.

그나마 몇 푼 안 되는 여윳돈은 딸의 결혼자금으로 적금으로 들어가니 실제로 여윳돈은 없는 셈이었다.

그때 상규의 아내의 뇌리를 스친 것이 바로 상규의 퇴직금이었다.

그래도 한 직장에서 30여 년을 근무했으니 퇴직금이 아주 큰 돈은 아닐지라도 목돈은 될 것이고 그것으로 성형을 하면 된다고 상규의 아내는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상규의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것은 상규의 퇴직금으로 성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성형 이야기를 남편에게 쉽게 꺼내기는 힘들었다.

상규의 아내는 찬스를 엿보고 있었으나 그 찬스는 좀처럼 오질 않았다.

또 설령 말을 꺼내려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망설여졌다. 그런데 오늘 남편이 느닷없이 퇴직금으로 귀농생활을 하겠다고 하니 상규의 아내는 그것을 꼬투리로 잡아 성형 이야기를 꺼낼 속셈이었다.

상규의 말은 목마른 자에게 물을 준 격이 되었다.

“당신의 퇴직금으로 성형하려니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저는 성형을 해야겠어요.

우리 형편에 모아 놓은 돈은 없고 목돈은 당신의 퇴직금으로 성형하는 것이 미안하지만 그 퇴직금 제 성형에 보태줬으면 해요.

제가 여태껏 어디 허튼 데 한 푼이라도 썼어요.

알뜰살뜰 아등바등 살았다고요.

이제 나도 가꾸며 살아야겠어요.

당신 보기에도 제가 너무 늙어 보이지 않나요.”

상규의 아내는 넋두리를 풀어놓았다.

상규는 아내가 그렇게 넋두리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상규는 그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동안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아내였다.

아내는 마치 가족만을 위해 살기 위해 태어난 여자 같았다.

상규의 아내는 외모도 뛰어나지 않았고 학벌이 좋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규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오로지 성실하고 천성이 착한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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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진액







성 민(윤찬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대 얼굴이 떠오르지 않네

그때 하늘은 옥빛으로 열리었지만

사랑은 잿빛으로 물들었네



세월의 수레바퀴에 실려

사랑도 추억도 그대도

미지의 세상으로 떠나고 있네

망각의 즙을 떨구며



마음이란

원래 비어 있는 것

채워졌던 것도 언젠가는

바싹 메마르게 되는 것



그래 비워질 바에는

아주 비워져야지

그래야 그 빈 공간을

다른 사랑으로 채우지



그러나 그런 바램이라고 할지라도

날아오르는 그리움의 새 한마리는

나 어찌하나

그대는 또 어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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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거나 어쩔거나(3)



상규는 아내의 단호함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상규는 아내가 단호할 때는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25여 년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것이었다.


“그리고 성형수술이 어디 한두 푼이 가나.

꽤 들어갈 텐데.”


상규는 화제를 확 바꿨다.

상규가 25여 년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것만큼 터득한 아내였다.


“당신 퇴직금이면 충분해요.

땅 사서 귀농할 생각 말고 내 성형수술이나 해 줄 생각이나 해요.”


상규의 아내는 처진 눈꺼풀을 올리고, 주름살을 펴고, 코도 반듯하게 세우고, 턱도 바로잡는 양악수술도 했으면 한다고 했다.


상규의 아내는 친구들 모임에 나가보면 누구는 눈꺼풀 수술을 했는데 10년은 젊어 보이고, 누구는 뺨과 목의 주름살 수술을 했는데 처녀 같으며, 누구는 콧대 높이는 수술을 받았는데 몰라보게 예뻐 보인다는 등 성형 예찬을 늘어놓았다.


상규가 알기로는 두부 한 모를 사는데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시금치 한 단을 살 때도 몇 번을 생각하던 아내였다.

그녀는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러 마트에 가야 할 때 아무 때나 가지 않았다.


그녀는 필요한 물건을 메모하여 놓았다.

인근 대형마트에서 그 물건을 할인 행사할 때 달려갔다.

또 그녀는 마트에서 ‘오늘의 특가 세일’이나 ‘오늘의 마감 세일’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판매하는 시간대에 마트를 이용했다.


그때 마트를 이용하면 신선식품이나 조리식품을 비롯하여 생필품 등을 싸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애장품 1호인 수첩에는 인근 마트의 일정이 하루 단위로 빼꼼히 메모가 되어 있었다.


모두가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그녀의 갸륵한 정성이었다.

그렇던 그녀가 한두 푼도 아니고 거금이 들어가는 성형수술을 들고나왔으니 심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규는 아내가 그렇게 된 것은 모두가 아내 친구들의 모임 탓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친구 중 생선 도매를 하는 남편을 둔 여자의 탓이 크다는 생각이었다.

생선 도매 아내는 생김새가 마치 아귀 비슷하게 생겨 누가 봐도 잘생긴 외모는 아니었다.


그러던 그녀가 10여 년 전부터 볼이며, 이마며, 턱과 목에 성형을 하기 시작하더니 그녀의 성형수술은 매년 계속되어 지금은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젊어지고 예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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