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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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는 만약 너 스스로 결심하지 못한다면 거기엔 어떤 정의도 없는 거야, 당구나 한 판 더 하자고!"
라스콜니코프는 극도로 흥분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아주 일상적이고 흔한 일로, 단지 형식과 주제가 다를 뿐 젊은이들의 그런 대화와 생각을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왜 하필 지금 그의 머릿속에도 정확히 똑같은 생각이 막 싹트기 시작한 지금, 하필 이런 대화와 생각을 들어야만 했을까? 왜 하필 지금, 그가 노파로부터 자기 생각의 단초를 얻자마자 노파에 대한 대화를 듣게 된 걸까?...... 이 우연의 일치가그에게 늘 이상하게 여겨지곤 했다. 술집에서의 이 별것 아닌 대화는이후 사건이 발전하면서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정말로 여기엔 어떤 숙명이, 계시가 있는 것만 같았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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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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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들어봐, 또다른 한쪽에는 젊고 싱싱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해 헛되이 망가지고 있어, 이런 사람들이 수천은 된다고, 도처에 널렸지! 수도원으로 가게 될 노파의 돈으로 도모하고 개선할 수 있는 좋은 일이나 사업이 백 개, 천 개는 돼! 수백 수천의 존재가 자기 길을 찾게 되지. 수십 개의 가정이 극빈과 붕괴와 파멸과 타락과 성병진료소에서 구원될 수 있어. 이 모든 게 그 할멈 돈으로 가능하다고. 노파를 죽이고 돈을 취한 다음, 그 돈의 도움으로 온 인류와 공공을 위한 일에 봉사하면서 헌신하는 거야. 네 생각은 어때, 하나의 작은 범죄가 수천 가지 선행으로 씻길 수는 없을까? 하나의 목숨으로 수천의 생명이 부패와 붕괴에서 구원되는 거야. 하나의 죽음과 백 개의 생명을 맞바꾸는 것, 이게 진짜 산술 아니겠어! 그래, 그런 멍청하고 심술궂은 폐병쟁이 할망구의 목숨이 전체 무게를 놓고 볼 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머릿니나
바퀴벌레의 목숨보다 나을 게 없어, 그래. 그것보다도 못하지. 왜냐면 노파는 해를 끼치니까. 노파는 다른 생명을 갉아먹어. 얼마 전에도 심술을 부리면서 리자베타의 손가락을 깨물었다는 군. 거의 잘릴 뻔했다지!"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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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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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는 절규했다. 정말, 정말로 내가 진짜 도끼를 들고 노파의 머리를 내리쳐 두개골을 부수려는 건가..… 끈적끈적하고 더운 핏속을 빠져나가 자물쇠를 부수고, 도둑질을 하고, 벌벌 떨면서,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숨으려는 건가… 도끼를 들고….. 맙소사, 정말?"
이렇게 말하며 그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대체 나란 놈은 뭐지!" 다시 몸을 일으키며 너무나 놀란 듯 그는 말을 이었다. 그걸 견더내지 못하리라는 걸 뻔히 알면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를 괴롭힌 걸까? 바로 어제도, 어제도, 그걸...… 시험해보러 갔던 어제도 난 내가 견뎌내지 못하리란 걸 너무나 잘 알게 되었지 ….. 그런데도 지금 난 왜 이러는 걸까? 지금까지도 난 대체 뭘 의심하는 걸까? 바로 어제 계단을 내려오면서 이건 비열하고추악하고 천하디천한 일이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 생각만으로도 실제로 구토가 나고 공포에 빠져들었지...
아니, 난 견딜 수 없어, 견딜 수 없다고! - P95

"알겠어요. 갈게요." 여전히 망설이면서도 리자베타는 그렇게 말했고, 천천히 자리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스콜니코프는 이미 그곳을 지나쳤기에 더는 듣지 못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그는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지나쳤다. 처음의 놀람이 차츰 두려움으로 변하면서 마치 냉기가 등을 타고 지나가는듯 했다. 그는 알고 말았다. 내일, 정확히 저녁 일곱시, 노파의 동생이자 유일한 동거인인 리자베타가 집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따라서 노파가 정확히 저녁 일곱시, 집에 혼자 남을 거라는 사실을 갑자기, 불현듯,
전혀 예기치 않게 알게 된 것이다.
집까지는 몇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사형선고라도 받은 사람처럼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았고, 전혀 판단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이제 더는 판단의 자유도 의지도 없음을, 모든 것이 갑자기 최종적으로 결정되었음을 불현듯 온 존재로 느끼게 되었다.
그가 가진 계획을 성사시키려 심지어 앞으로 수년 동안 적당한 때를기다린다 해도, 지금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보다 더 확실한 한 걸음을 기대하기란 아마 당연히 불가능할 것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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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그는 거의 엄숙하다 할 정도의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요, 그건 진리예요. 취하는 게 미덕이 아니란 것도 알아요. 그건 더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극빈은, 선생, 극빈은 죄입니다. 가난속에서는 타고난 고귀한 감정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지만, 극빈 속에서는 누구도 절대 그럴 수 없지요. 사람들은 극빈 상태에 이른 사람을 지광이로 내쫓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무리에서 빗자루로 아예 쓸어내버려요. 모욕을 더 심하게 느끼라고요. 옳은 일이에요. 왜냐면 극빈 속에서는 자기가 먼저 자기를 모욕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술집이 있는 거지요!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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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가면 됐다. 심지어 그곳이 자기 집 정문에서 몇 걸음인지도 그는 알고 있었다. 정확히 730 걸음이다. 언젠가 그 몽상에 깊이 사로잡혀 세어본 적이 있었다. 그땐 아직 스스로도 자신의 몽상을 믿지 못했고, 그저 추악하지만 유혹적인 대담함에 자극받았을 뿐이다. 반면 한달여가 지난 지금 이미 그는 다르게 보기 시작했고, 자신의 무력함과 우유부단함을 혼잣말로 계속 조롱하고 또 여전히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추악한‘ 몽상을 어떤 계획으로 여기는 데 이미 익숙해졌다. 심지어 지금 그는 자기 계획을 시험해보러 가는 길이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흥분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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