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저들에게 뭐라고 말한다 해도, 그들 중 누구도 아무것도 이해 못할 거야." 그가 계속했다. "하지만 난 이해해. 내겐 당신이 필요해,
그래서 당신에게 온 것이기도 해."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소냐가 속삭였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사실 당신도 똑같은 짓을 했잖아? 당신도 선을 넘었어.... 넘을 수 있었어. 당신은 자기 몸에 손을 댔고, 삶을 파멸시켰어...… 자기 삶을 말이야(뭐든 마찬가지지!). 정신과 이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해도, 결국 센나야 광장에서 삶을 마치겠지! 하지만 당신은 견딜 수 없을 거야, 만일 혼자 남는다면 나처럼 미쳐버릴 거라고 지금도 이미 미친 거나 다름없지. 그러니까 우리는 함께 가야 해, 같은 길로! 가자!"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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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에겐 세 가지 길이 있다. 그는 생각했다. 운하에 몸을 던지거나, 정신병원에 가거나, 아니면...... 아니면 결국 이성이 흐려지고 감정이 무뎌진 채 타락에 몸을 던지는 거지. 마지막 생각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이미 회의론자가 되었고, 젊고 추상적이고 따라서 냉정했기에, 마지막 결과가, 다시 말해 타락의 가능성이 무엇보다 높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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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점은 그야말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가 이 같은 결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두 여자가 자기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채 마지막까지 허세를 부린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 것은 많은 부분 그의 허영심과, 자아도취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의 자만심 때문이었다. 별 볼 일 없는 신분에서 자수성가한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자신에게 병적으로 감탄하는 버릇이 있었고, 자신의 머리와 능력을 높이 평가했으며, 심지어 가끔 혼자 있을 때면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에 넋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가 무엇보다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은 갖은 수단과 노력으로 얻은 자신의 돈이었다. 돈은 그를 그보다 높이 있던 모든 것과 동등하게 만들어주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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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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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내리치는데도 노파는 마치 나무토막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 놀라 몸을 더 가까이 숙이고 노파를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노파도 더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그는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 몸을 숙여 아래에서 노파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그러고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졌다. 노파가 앉아서 웃고 있었다. 그가 자기 웃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있는 힘을 다해 참으며, 조용히 소리 죽여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문들 침실 문이 조금 열리는가 싶더니 거기서도 웃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광폭한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노파의 머리를 치기 시작했지만, 도끼를 내리칠 때마다 침실 쪽에서 나는 웃음과 속삭임은 한층 더 크고 선명하게 울려퍼졌고, 노파는 그렇게 온몸을 흔들며 킬킬거렸다. 도망치려고 몸을 내던졌지만, 현관 전체가 이미 사람들로 가득찼고, 계단으로 향한 문이 활짝 열린 채 층계참에도,
계단에도 그 아래에도 온통 사람들이 머리에 머리를 맞대고서 모두 그를 바라보고 있다. 모두들 숨어서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심장이 조여왔고, 땅에 붙박인 것처럼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다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무겁게 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꿈이 여전히 계속되는 것 같았다. 방문이 활짝 열려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문턱에 서서 그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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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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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노파‘의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간다고! 아, 정말 쓰레기 같다......
순간순간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는 열병과도 같은 희열 속에 빠져들었다.
‘노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발작적으로 흥분하며 생각했다. ‘노파는 어쩌면 실수일지도 몰라, 문제는 노파가 아냐! 노파는 한낱 질병 같은 거야...... 난 어서 빨리 넘어서고 싶었어...... 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원칙을 죽였어! 원칙을 죽이고도 넘어서는 걸 넘어서지 못하고, 이쪽 편에 남았지...... 죽일 줄만 안 거야. 그것조차도 결국은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원칙이라고? 아까 바보 같은 라주미힌은 무엇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을 욕했을까? 근면성실하고 장사에 능한 족속인걸, 그들은 ‘공공의 행복‘에 전념하지 .… 아니, 내게 삶은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아. 더이상은 결코 없을 거야. 나는 ‘모두의 행복‘을 기다리고 싶지 않아. 나 자신 역시 살고 싶고, 그러지 못한다면 죽는 게 더 나아. 대체 그게 어때서? 난 그저 ‘모두의 행복‘을 기다리느라 주머니에 돈을 꽉 움켜쥔 채, 배고픈 어머니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모두의 행복을 위해 한 장의 벽돌을 나르고 그걸로 마음의 평안을 느낀다 라고. 하하! 어째서 너희는 나를 빼놓은 거냐? 난 고작 한 번 살기에, 나 역시 살고 싶단 말이다.... 아. 나는 미학적 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며 덧붙였다. ‘그래, 난 정말로 이다.‘ -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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