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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고백하건대, 살아가면서 한 식물에 관심을 두고 유심히 바라본 일이 드물다. 구에서 공기 정화를 위해 심어놓은 가로수길, 유원지에서 인위적으로 조성해둔 화단을 보면서도 잘 해놨네, 정도의 감상일 뿐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식물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에는 이 나무나 저 나무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높은 장벽은 아무래도 감흥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메신저 프로필로 풍경 사진을 걸어두는 것조차 이해를 못 했다. 하고많은 오브제 중에 굳이, 했다. 그러던 내가 식물 앞에서 기웃기웃거리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인은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는 방증'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에도 일견 동의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어서라고 덧붙였다. 자극적인 요소가 주류가 되는 콘텐츠로부터 염증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SNS를 떠나 내 주변에서 조용히 머무르고 있는 것에 시선을 두려고 노력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었던 산책을 했고, 점점 걷는 범위를 넓혀갔다. 일전에는 걸어서 숲에 다녀오기도 했다. 도파민에서 멀어져 일상을 살아가니 그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색이며 잎매며 모양이 신기한 꽃이라든지, 풀숲을 부스럭대며 지나가는 청설모라든지. 소소하게 아름다운, 내가 놓치고 살았던 세상이었다.
그러나 제 소임을 다 하고 나면 누구도 꽃잎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없다. 벚꽃처럼 한 장 한 장 휘날리든, 무궁화처럼 꽃잎을 단정히 말아 내려놓든, 동백꽃처럼 아직 싱싱한 꽃을 통째로 떨어뜨리든 꽃은 때가 되면 미련 없이 꽃잎을 버린다. 시든 꽃잎이 제때, 제대로 떨어지지 않으면 남아 있는 나머지 꽃 부분에 해를 줄 수도 있다. (본문, 59쪽)
찬 기운이 가셨나 했더니 일찌감치 벚꽃이 피었다. 지난주부터 벚꽃 명소에 나들이 인파가 가득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가족도 그 대열에 합류하려고 했지만 각자 시간이 맞지 않았다. 치일 피일 일정을 뒤로 보내다가 이번 주가 되었다. 주말에 가보자, 그렇게 말하면서. 문제는 3일 내내 비바람이 몰아칠 거라는 기상 예보였다. 하필이면 날짜가 딱 주말을 끼고 있었다. 다들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비바람이 그친 다음에는 꽃이 다 떨어져 있을 테니까. 그래도 한 번 나가보자는 나의 제안은 통하지 않았다. '꽃이 중요하다고, 꽃이.' 가족은 꽃이 나무의 진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꽃이 다 지고 난 후에 올라오는 파릇파릇한 잎도 예쁜데. 눈치껏 속으로 말을 삼켰다. 겸연쩍어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식물학자의 숲속일기』 4월 편에서, 저자는 넌지시 답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벚꽃잎이 쏟아져 내린 나무를 쳐다보며 이런 생각도 한다. 화려한 꽃잎들이 떨어져 꽃이 모두 사라진 듯 보이지만 나무엔 어린 열매들이 남겨져 있다고. 또한 꽃잎이 떨어져 상처 난 자리마다 열심히 치료 중이며, 땅에 떨어진 꽃잎은 흙에 사는 다른 생물들의 먹이가 되고 결국 나무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본문, 60쪽)
내가 안고 있는 문제와 부정적 감정들이 갑자기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숲 바닥에 켜켜이 쌓여 있는 검은 잔해들에 대해 곰곰이 다시 생각했다. 자연에서 맞고 틀린 건 없는 것 같았다. 죽은 식물을 보면 슬프고,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미생물이 내 몸에 나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인간인 내 입장에서의 감정과 판단일 뿐이다. 그래서 슬프고 나쁜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본문, 96쪽)
'숲속의 어두움으로부터' 챕터를 폈을 때 나는 퇴근길 지하철 안이었다. 회사에서 업무를 망치고 기분이 우중충해진 채였다. 소위 말하는 독서로 현실 도피를 해보려던 찰나에, 이 챕터를 만났다. 답답한 마음에 숲속을 걷는 저자와 활자 사이를 활보하는 내가 얼핏 겹쳐 보였다. '마음이 힘들어서 그랬는지 어둡고 음울한 것이 눈에 띄었다'는 저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저자의 눈을 빌려 숲의 어두움을 가만 응시할 수 있었다. '썩은 나뭇가지들과 낙엽들, 그것들과 버무려진 흙과 미생물들.' 저자의 시야에 따르면,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 다른 개체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식물과 상호작용한다고 한다. 식물이 흙 밖으로 머리를 내밀게끔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는 셈이다. 설명 끝에 저자는 '숲속에는 맞거나 틀린 것, 좋고 나쁜 것, 기쁘고 슬픈 것이 없을 거라고' 말한다. 한 가지 면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기에는 너무 단편적이라고 말이다. 저자의 이야기에 괜히 위로를 받은 듯했다. 인간사는 자연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사람은 한순간만으로 삶을 평가받지 않고, 어떤 일이 생겨도 주변의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사람도, 자연도. 이치가 다 그런 모양이다. 숲속의 어두움으로부터 배운 게 있다면,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태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