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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정원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이다. 프랑스 영화와 친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로부터 받은 인상이 흐릿하다. 하지만, 따뜻한 나무색과 짙은 푸른색을 마주할 때면 어김없이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르고는 한다. 향수에 가까운 감각이다. 가진 적 없는 추억이 생긴 것 같다. 숲도 아니고, 산도 아니고, 정원. 이는 오롯이 정원만이 주는 환상이다. 가보지 않았어도 그리운 장소.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은 이를 가능케 한다.
책머리에서 저자는 '가든 라이팅'이라는 용어를 가져온다. 쉽게 말하자면 정원이라는 소재를 작품 안에 담는 것이다. 저자는 가든 라이팅을 설명하며 '그저 배경일 때도 있지만 정원이 없으면 안 되는 작품도 있고, 정원이 숨은 주인공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인다. '숨은 주인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생각난 소설이 있다. 표지마저 『정원의 책』과 닮아있는 『지구 끝의 온실』이다.
"지금부터는 실험을 해야 해. 내가 가르쳐 준 것, 그리고 우리가 마을에서 해온 것들을 기억해. 이번에는 우리가 가는 곳 전부가 이 숲이고 온실인 거야. 돔 안이 아니라 바깥을 가꾸는 거야. 최대한 멀리 가. 가서 또 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어. 알겠지?" (『지구 끝의 온실』, 242쪽)
기후 재난이 닥치고 모든 일상이 무너져버린 2058년, 나오미와 아마라는 긴 여정을 떠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아서. 하지만 둘 앞에 놓인 것은 가시밭길이다. 처참한 생존 환경이, 인간의 악의가 도처에 깔려있다. 방심하는 순간 죽는 것은 예삿일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살아내고자 한다. '온실'에서의 기적을 직접 목격했던 그들이다. 인간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도 보았지만, 인간이 서로의 삶을 부여잡고 다시금 터전을 일구어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끈질긴 생에의 의지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유대를 배웠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내일로 향한다. 프림 빌리지에서 들고나온 씨앗을 품은 채로. '온실 밖'으로 나온 씨앗은 둘의 바람처럼 널리 퍼져나갔다.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말이다. 씨앗은 경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고, 시간마저 넘어 2129년 아영에게까지 가닿는다. 프림 빌리지 주민들만의 '온실'은 더 이상 한 공간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세상 곳곳에서 피어오른 모스바나의 불빛이 이를 증명한다. 어느 것보다 푸르른 빛. 생존하여 마침내 실재하는 희망이다.
이들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지구를 떠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 모퉁이마다 씨앗을 심었다. 지수의 말처럼 그들이 가는 곳 전부가 프림 빌리지의 숲이고 온실이 되었다. 이들은 약속을 지켰고, 그러자 이들을, 우리의 세계와 미래를 지켜주었다. 이 '지구 정원사'들이 나누었을 다정하고 "온기 어린 이야기"와 약속들을,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를 비추고 있을 것만 같은 온실의 불빛을 상상해본다. (본문, 262-263쪽)
앞서 저자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소비되는 시대에도 정원과 문학처럼 시간과 관심을 기울여 살펴야 하는 것이 여전히 있음을 기억해주길(10쪽)'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 말처럼, 책을 읽는 동안 정원을 향한 온정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여러 문학을 통해 약동하는 정원의 힘을 아는 독자라면, 저자의 마음과 기꺼이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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