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파클 (반양장) - 제18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134
최현진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평점 :
상실감은 눈과 닮았다. 소리 없이 쌓인다는 점에서. 조금 내리는가 싶더니 금세 수북이 쌓이고야 마는 것이다. 『스파클』에서는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무언가를 잃었다는 속성 때문에 한데 묶였지만, 이들의 사정은 각자 다르고 복잡다단하다. 유리는 눈目으로 눈雪을 본다. 각막 이식을 받은 눈은 잠잠한데, 다른 눈에서 이상이 발견된다. 표면적으로 유리의 상실은 눈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상이 발생한 곳이 다름 아닌 '자신'의 한쪽 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눈보라처럼 자욱한 흰 연기, 눈에 들어간 유리 조각, 화재 현장에서 남동생을 업고 사라진 할머니의 뒷모습. 과거의 잔재가 트라우마처럼 모여 지금의 눈을 만들었다. 그리고 눈송이가 내린다. 사고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알려주듯이.
그게 내가 자꾸 벤치로 향하는 이유야
하지만 나는 그만할 수 없어
스크롤을 올렸다.
엄마는 이제 형 얘기를 그만하래
흰 화면이 꿈속의 설원처럼 움직였다.
떨어지는 눈이 형이었으면 좋겠다고
시온의 말은 거꾸로 읽어도 완전했다. 나는 이 형제가 궁금하다
(본문 59쪽)
한편 『스파클』은 서사를 풀어가는 키로써 수학 용어를 가져온다. 유리함수와 x축, y축은 생명을 부여받아 인물 자체가 되기도 하고, 인물의 상태가 되기도 한다. 좌표평면 위에서 길을 잃고 둥둥 떠다니던 유리는 x축인 영준, y축인 시온을 찾아 나서면서 제자리를 찾아간다. 유리는 시온에게 '너를 만나면서 눈송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라고 하지만, 시온의 편지를 읽고, 그의 소망을 현실로 가져온 것은 온전히 유리의 몫이다. 유리는 스스로 자신 안의 x와 y를 구하러 간 것이다. 그렇게 무너져 있던 축을 세웠다. 삶을 수학에 빗댄다면, 이것은 유리의 풀이 과정인 셈이다.
나의 행운이 누군가에게는 불행이라는 것. 그건 내게도 아픔이니까.
"이시온, 기다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내게 눈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이영준의 동생이 아니라, 한 명의 시온에게. 같은 병실의 한나가 수술실에서 돌아오지 않아 신을 믿지 못하고, 의지했던 뜬구름 형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뇌사에 빠져 산타를 믿지 못하는. 기적과 행운은 다른 이의 희생이라는 걸 아는 시온을 향해서. 영하의 바람을 맞으며 그동안의 편지가 머릿속에 영화 자막처럼 펼쳐졌다. (본문 86쪽)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유리를 일으킨 것은 시간이 아니다. 삶의 목표를 잃은 사람에게 시간은 멈추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유리는 멈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법을 알았다. 죽다 살아난 자신과 뇌사상태인 동생을 비교하며 떠안는 부채감, 떠밀리듯 선택한 의사라는 꿈. 소거법으로 오답을 하나씩 지워간다. 이제 유리는 자신에게 맞는 루트가 무엇인지 점검한다. 유리는 이미 '비행기가 순항 고도로 진입할 때 기울어지는 게 하늘과 수평이 되기 위함'임을, 흔들림이 무서울 수 있지만 '중심을 잡으려면 흔들림은 필연적(159)'임을 알고 있다. 기내에서도, 삶에서도.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실이었다. 한 아이가 열일곱이 된 유리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면 유리는 피하지 않고 대답한다. "하늘을 나는 사람." 비로소 지상에서의 점검을 마치고 이륙하는 것이다.
"구름을 피하지 못하면 어떡합니까."
송신.
대기.
"같이 진입하겠습니다. 저는 캡틴의 눈이니까요."
(본문 197쪽)
눈이 녹고, 언 땅이 녹으면 활주로가 열릴 것이다. 찬란하게.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