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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그 마음 무슨 마음인지 알지, 책장을 넘기며 생각했다. 다 헤지고 낡은 물건이라도 '골동품'이라는 이름을 단 순간 괜히 더 신기해 보이고 관심이 가는 법이다. 아쉽게도 내가 살던 동네에는 호랑골동품점 같은 가게가 없었지만, 분리수거 날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오래된 물건을 버리곤 했다. 그러면 나는 눈을 빛내며 그것들을 구경하러 갔다. 가구, 식기, 자개함 등 별의별 물건이 다 있었다. 죄 녹이 슬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귀해 보였다. 세월이 주는 운치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누군가 두고 간 물건이라는 사실에 찝찝함을 느끼는 한편, 호기심을 멈출 수 없었다. 말하자면 분리수거장이 내 골동품점인 셈이었다. 어느 날은 올드한 스타일의 꽃무늬 컵을 발견했다. 이가 깨지지도 않았고 상태도 제법 괜찮았다. 고민 끝에 컵을 집으로 데려왔다. 책상 한편에 전시해두면 좋을 것 같았다. 집안에서 낯선 컵을 본 부모님이 어디서 난 거냐고 물어봤을 때는 우물쭈물하다가 솔직하게 고백했다. 버려진 걸 주워왔다고. 혼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린 나는 이날 '물건 잘못 주워오면 큰일 난다'는 속설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호랑골동품점』을 읽으면서 새삼 기억이 났다. 골동품에는 그런 매력이 있지, 하고. 나를 미지의 곳으로 데려다주는 것만 같은 감각이다. 묘하게 꿈속 같기도 하다.
『호랑골동품점』은 골동품의 이름을 소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오싹한 맛이 있다. 소제목을 처음 읽으면 으레 골동품점에 있을 만한 물건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다. 일례로 성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모품'으로 쓰고 버리기 일쑤인 물건이다. 하지만 이 작은 성냥 하나가 얼마나 큰 불을 낼 수 있는지, 얼마나 파란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선은 꼭 성냥과 같았다. 모두가 쉬쉬하며 넘어가는 부당함에 제동을 거는 것, 성냥에 불을 피우는 것, 그리하여 사회적 불씨를 키우는 것. 미선은 콜센터의 유일한 불꽃이었다. 이 챕터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아는 서비스 직종의 명암을 지적한다. 모른 척하거나 알고도 내 일이 아니기에 넘어갔던 사회 풍조에 성냥갑 하나를 툭 던지고 간다. 버려도 버려도 다시 돌아올 거라고. 문제가 없어지지 않는 한 불은 또다시 타오를 거라고 말한다.
「성냥」이 매운맛이라면 「그림자인형」에서는 짠맛이 났다. 금수만도 못한 인물의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면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아내와 아이의 사연에 눈길이 갔다. 90년도는 백마 띠의 해였다. 백마 띠에 태어나는 여자아이는 기가 세다는 이유로 선별적으로 지워졌다.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내게도 이 말이 구전설화처럼 전해질 정도로 그 해에는 많은 아이가 빛을 보기도 전에 사라져야만 했다. 「그림자인형」에 나오는 일화가 픽션이 아닌 사실 기반이라는 점이 내게는 어떤 괴설보다도 괴설 같았다.
전반적으로 『호랑골동품점』은 산신의 능력을 가진 인간과 이형의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판타지성을 강화하지만, 소재에 얽힌 에피소드에서는 세태 비판적 시선이 엿보인다.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그렇기에 실존하는 문제로부터 눈을 돌릴 수 없는 작가의 고민이 잘 드러난다. 소재와 에피소드 간 유기성이 높아 작품의 지향점이 더욱 돋보였다. 또한 사부에서 이유오, 소하연으로 이어지는 '호미' 메인 스트림을 깔고, 각 챕터별 서브 스트림을 이끌고 가는 구성도 매끄러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