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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광복회 총사령 - 조국을 광복하고 동포를 구하자 ㅣ 천천히 읽는 책 87
주강현 지음 / 현북스 / 2026년 3월
평점 :
<현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작성한 글 입니다.>

한국 역사 중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요.
유명한 독립운동가분들을 존경해서 인물화 그림도 많이 그리고 있어요.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평범한 민중들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 영웅들을 만나고 있는 요즘이에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라서 만나게 된 책이에요.
역시 술술 읽히고 몰랐던 독립운동가를 만나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1915년 7월 전국 조직망을 갖춘 항일 무장조직 광복회가 결성되었어요.
광복회 총사령은 박상진. 저도 아이도 들어본 이름이지만
책을 통해서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감사한 분의 일대기를 따라가 보았어요.

<박상진 광복회 총사령>
1884년 승정원 승지를 지낸 박시규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큰아버지는 홍문관 교리를 거친 박시룡.
반가에서 유가와 법도를 익히며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신학문을 배웠고 판사 임용시험까지 합격하고 독립투사의 길을 걸었어요.
스승 허위가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교수형에 처해졌어요.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 스승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까지 치뤘어요.
스승의 죽음이 박상진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독립투쟁 거점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김덕기, 오혁태와 ’상덕태상회‘ 라는 상점을 차려요.
항일 독립운동단체 광복회를 결성한 것은 1915년 7월 15일.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의 부호들에게 의연금을 요청했어요.
하지만 친일부호들이 거부했고 처단에 나섰어요.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위독한 소식을 듣고 고향을 찾았어요.
박상진은 그때 체포되었고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21년 8월 11일 음력 7월 초 여드레,
무척이나 덥던 한 여름이었어요.
박상진은 36년 6개월이 짧은 생애를 대구 형무소에서 마쳤어요.
한평생 애국운동에 몸을 던진 실천적 지식인의 최후였어요!
당시 신문기사에는 조국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광복단의 수령으로
칠곡군의 유명한 부자 장승원을 살해한 박상진은 감형 운동을 하야
리규환 씨 외 유생 100여 명이 총독부에 장서를 제출하였다더라.

박상진의 의형제였던 김좌진 장국이 쓴 박상진 의사 만사.
슬프다!
하늘이 어찌 이토록 무심하단 말인가.
우리 광복회의 기둥이 무너졌으니,
앞으로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형님은 가셨으나 형님의 뜻은 내가 이어받아
반드시 독립을 쟁취하고야 말갰소.
박상진의 애국 정신은
광복 이후에도 살아남았기에 나라를 바로 잡으며
광복회도 다시 세우려고 했어요.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등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하면
박상진과 광복회의 독립운동 이야기는
그의 고향인 울산에서는 얼리 알려져 있으나
전국적으로는 이름조차 모르고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기억하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민족수난기에 일어난 찬란한 항쟁의
맨앞에 선 단체가 광복회이고
주역이셨던 박상진 의사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