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PRAYER - 모든 것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이야기하는 법 A. W. 토저 인사이트 시리즈 1
A. W. 토저 지음, W. L. 시버 엮음, 유정희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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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들의 강력한 영적 무기인 기도에 대해 다각면으로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그 기도가 더욱 빛을 발하도록 활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기도가 순종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면서 기도를 할 것(그냥 받는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은혜 말고), 어린아이라 해도 쓸데없이 소원을 비는 행위는 아무 유익이 없음을 일찍 깨워쳐 줘야 한다는 점, 아직 기도할 것이 많은데 기도 시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멈췄던 것, 기도는 솔직하게 해야 한다는 점, 그 무엇보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기도하는 자들이라는 점, 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지 알려고 해야 한다는 점 등 기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별점: ★★★★★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수정하시고, 우리가 더욱더 그분의 아들을 닮게 만드시며 그분의 거룩하심과 자비와 사랑과 영광이 크게 드러나도록 우리가 기도했던 문제를 종결시키시는 영적인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만일 우리의 일상생활이 분주하고 무의미한 일들로 가득하며, 진심으로 기도하려는 절박함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고 하나님을 좀 더 친밀하게 알아가는 아름다운 여정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1/ 기도를 배우라

​온 삶으로 기도하라
가장 좋은 기도는 그 사람의 삶 전체로 드리는 것이다. 그러한 기도는 오직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의 결과로 주어진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위는 기도가 되고, 온 삶이 찬양과 예배의 거룩한 제사가 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의 탁월함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지속적으로 교제하지 않고, 세상을 많이 따랐으며, 기도를 힘든 순간이나 중요한 응급 상황의 비상탈출구로만 여기는 신자에게 기도는 의무이자 무거운 부담이다. 그러나 모든 삶이 기도가 될 때 기도에 대한 부담이나 율법적 속박은 사라진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구애에 응답한다면, 그의 주변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도를 위한 비옥한 토양이 바로 거룩한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설득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기도를 포함한 여러 가지 면에서 징계하여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실 수밖에 없다(히 12:10). 그렇게 되면 그 여정은 더 힘들고 복잡해질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는가? 달리 말하면, 우리의 기도는 응급 상황의 기도들로 가득한가, 아니면 온종일 기도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가? 기도가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지려면 야고보서 4장 7,8절, 베도로전서 5장 6-10절, 열왕기하 22장 18-20절에서 도움을 얻으라.

성(聖)과 속(俗)의 심리학
그리스도인의 내적 평안을 방해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의 삶을 두 영역, 즉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으로 나누는 습관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오랫동안 힘들게 일해야 하고, 이 세상의 것들에 많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 성령 안에서의 삶이다. 거기서 우리는 더 고차원적인 삶을 누리며, 하늘나라의 지위를 보유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즐긴다.
성과 속의 딜레마에서 오는 어려움을 피하려면 진리가 우리의 피 속에 흘러 우리의 생각 전체를 좌우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실제로, 단호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의 삶은 능력과 기도로 가득했다.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려면 거룩하지 않은 행위는 없다는 사실을 매일 깨닫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면 마당의 잔디를 깎는 일, 설거지, 창고 정리, 운동, 선반 정리, 보고서 작성, 그 외에 수백 가지 세속적인 행위들이 우리에게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기도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성과 속의 심리학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우리는 기도할 때나 일상의 생각 속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실제적으로 단호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에 대해 묵상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이 거기서 벗어나게 해주실 때 당신의 기도 생활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주목해보라 하나님은 당신이 주변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해 기도하게 하실 것이다.

묵은 악습에서 벗어나라
‘성과 속의 심리학’에서 온전히 벗어나려면 지적인 생각과 경건의 기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오직 적극적인 믿음을 발휘함으로써만 이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그분이 그것들을 받으신다고 믿는 것이다. 개인적인 기도 시간에 우리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계속 하나님께 말씀드리라. 그리고 생업에 힘쓸 때에도 생각 속의 기도로 그 시간들을 보충하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3,24). 얼마 후 바울이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고기는 깨끗하며, 모든 날은 거룩하고, 모든 장소는 신성하며, 모든 행동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교회는 날과 절기와 시간들을 다시 지키게 되었다. 특정한 장소들이 특별히 거룩한 곳으로 표시되었고, 특정한 날이나 장소, 사람에 차이가 생겼다. 처음에 두 가지였던 성례는 서너 가지로 늘어나더니 로마 가톨릭이 승리하면서 일곱 가지로 정해졌다.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논리적 결론에 도달한 성-속의 이단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겠다. 그것의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종교와 삶의 완전 분리다.
날과 때를 지키는 것이 우리 사이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과 ‘성금요일‘은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 점점 더 자주 들려오는 단어들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부름받은 사명 안에 거하게 하자. 그러면 그의 일은 사역자의 일만큼 성스러울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일이 성스러운 것인지 세속적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이유다. 동기가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마음으로 주 하나님을 믿으며 나아갈 때 그의 행동은 이전처럼 평범한 행동이 아닐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선하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삶 자체가 제사장의 직무가 될 것이다.
모든 일이 제사장의 사역이 되게 하는 훌륭한 기술을 연마하자. 토저는 이 과정에 속한 네 단계를 지적한다. 1) 하나님에 대한 적극적인 믿음 2) 우리의 모든 행동을 하나님께 내어드림 3) 개인적인 기도 4) 일상의 생각 속의 기도

​올바른 생각이 올바른 기도를 이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악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더럽힌다고 가르치셨으며, 심지어 생각과 행동을 동일시하기까지 하셨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와 같은 말씀을 보라. 바울도 빛나는 미덕들의 목록을 나열한 후 ˝이것들을 생각하라˝라고 명령했다(빌 4:8). 물론 우리는 생각으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없고, 우리의 죄들을 없애거나 타고난 성품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감화를 받은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기꺼이 거하시는 깨끗한 성소로 만드는 걸 도울 수 있다.
우리의 생각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이 그 마음을 받아 즉시 다스리실 것이며, 영적인 것들을 생각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질 것이다. 특히 우리가 오랜 시간을 두고 날마다 기도로 우리의 생각을 단련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훈련(즉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오랫동안 해나가면 거룩한 생각의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올바른 생각이 올바른 행동으로 이어진다. 올바른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사탄은 하나님과 전쟁을 하고 있다. 거기엔 중요한 것이 걸려 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장악하는 것이다.˝ 토저는 지난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자유롭게 했던 생각을 우리의 참된 영적 상태를 알아보 시금석으로 사용하라고 말한다. 그 생각들의 성향이 내적인 마음의 방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기도는 순종을 대신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를 알아내려 해야 한다. 나는 우리의 문제가 기도로 순종을 대신하려는 데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유일한 약점이 기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정말 중요한 순종의 문제에서 여러모로 부족했던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성 15:22). 기도는 결코 순종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 통치자 하나님은 그분의 피조물들로부터 순종이 동반되지 않은 제물을 받지 않으신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으면 죄의 형벌을 면하게 되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기쁨으로 순종해야 할 의무를 갖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순종하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를 순종의 대체물로 사용하기를 멈출 때, 기도는 효력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 대신 드리는 기도를 받지 않으신다. 우리가 그것을 대신하려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밖에 안 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과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매일 순종과 기도 생활에 대한 열정을 회복시켜 주셔서 매일의 도전과 기회들에 대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기도와 순종에 대해 율법적인 속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우리가 더 많이 순종할수록 하나님이 기도를 더 많이 들어주신다고 생각하기 쉽다. 신자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그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며 하나님이 기도하라고 보여주시는 것에 대해 더 많이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역에 기도로 동참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어떤 인간적인 은사나 재능으로도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영원한 사역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고백할 것을 주장하며 ‘교만한 육신‘을 그토록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영적인 삶과 승리에 대한 하나님의 조건들을 충족시킨다.
만일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이루려 하셨던 일들을 달성하려 하신다면, 그러한 기도와 하나님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세 번째 조건일 것이다.

부흥은 자정 후에 탄생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 거룩하고 성령 충만해진다고 할 수 있다.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 점을 분명히 하셨다. 문제는 우리를 충만케 해달라고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실 만큼 우리가 충분히 하나님을 원해야 한다는 데 있다.
개인적인 부흥과 승리하는 삶의 교리를 배우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버리는 어둡고 험난한 언덕을 걸어 올라가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부름받은 사람들은 많고, 택함 받은 사람들은 적다. 실제로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는 사람 중 많은 이들이 잠시 멈춰 서서 동경하는 눈으로 강 건너를 바라보다가 비교적 안전하게 보였던 옛 삶의 폐허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흥은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온다. 그들은 마음의 갈망들이 모두 하나로 축소된 사람들, 즉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길 갈망하여(골 1:10-18) 모든 일에 그리스도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들이다.

조건 없이 기도하라
노리치의 줄리안이 놀라운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구세주께 기도를 드린 후 이런 지혜로운 말을 덧붙였다. ˝또한 저는 아무 조건 없이 이것을 구합니다.˝ 그 마지막 문장이 그녀의 마지막 기도에 능력을 부여했고, 해가 갈수록 홍수처럼 넘치는 응답을 험하게 해주었다.
성공적인 기도는 조건이 없는 기도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해치실 수 없고 반드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다고 믿어야 한다. 그다음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우리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필요한 것을 담대히 구하며, 대가는 개의치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인자하심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주님의 멍에는 쉽고 그분의 짐은 가볍다.

침묵의 힘
가장 고차원적인 기도는 요청하는 기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거룩한 순간의 기도는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 그분과 거룩한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기적들이 평범해 보이고 놀라운 기도 응답들이 별로 놀랍지 않게 보일 만큼 거룩한 연합이다.

오랜 기도에도 응답이 없을 때
만일 우리가 계속 기도함에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 마음의 자연적인 불신을 확고하게 굳혀버릴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불신으로 가득했다.
가장 나쁜 것은 우리가 기도에 실패함으로써 원수가 현장을 장악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일 것이다. 마귀는 항상 승산 없는 싸움을 하며 도망 다녀야 한다. 그런데 이 불경스러운 원수가 잘난체하고 경멸하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다고 해보자. 그때 하나님의 일이 매우 지체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도가 계속 응답되지 않을 때,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응답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성경적인 기도가 점점 줄어들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주시도록 도우려는 자신의 노력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응답되지 않은 우리의 많은 기도들이 잘못된 동기로 구한 결과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또한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의 다른 원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처리하지 않은 죄(개인적인 죄나 공동의 죄, 또는 둘 다) 때문일 수 있다(시 66:18).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가 기도 응답을 받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 우리는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또는 믿음으로 행하고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한다. 이 믿음과 불신의 문제에 있어서 성령 하나님께 성령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드러내달라고 간구하라.


2/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의 유익
기도에는 어떤 유익이 있는가? 하나님이 행하실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믿음으로 할 수 있고,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기도로 할 수 있다. 단, 믿음으로 기도를 드렸을 때 그렇다.
조지 뮬러는 믿음은 사용할수록 성장한다고 말했다. 큰 믿음을 가지려면 이미 가지고 있는 작음 믿음을 사용하기 시작해야 한다. 경건하고 신실한 기도를 실천하면, 그것이 자라서 날마다 더 강해질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구하기 때문에 받고 혹은 구하지 않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아는데 많은 지혜가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 아니겠는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세 가지 방법
중요한 것은 소원을 비는 일이 대부분 어린아이들이나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린아이도 소원을 빌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일찍부터 배워야 한다.
갈망하는 대상이 타당하고 무고한 것이라면, 그것을 얻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 둘째는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리고 셋째는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가능성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있으나,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 안에 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도가 직접적인 답이다.
어떤 것들은 단순한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전반적인 기도의 개념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노력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갈망의 대상들로 구성된 범주가 있다. 이것은 결국 노력과 기도로 귀결되며, 우리가 바라는 대상과 목표들이 대부분 이 범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며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게 한다.
신자가 기도에 헌신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에서 비롯되며, 숨 쉬는 것만큼 일상적인 일이다. 기도와 노력이 거룩한 균형을 이루고 시기적절하여 하나님이 항상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상황이 있다. 소원은 하나님을 제외하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을 방정식과 해답에 포함시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하는 단순한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과 늘 연결되어 있길 원하신다!

​기도는 사람과 상황을 변화시킨다
우리의 모든 기도에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인간의 말에 따라 그분의 영원한 목적을 바꾸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내내 하고자 하셨던 일들을 행하실 수 있도록 그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상황을 변화시키실 수 있게 한다.
습관적으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과정 속에서 기도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상황들(‘하나님께서 물질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드셨으므로‘)을 변화시킬 것이다.

​기도의 씨름
기도를 평가할 때 우리는 그 기도를 누가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즉 우리의 단호한 마음인가, 성령인가? 기도가 성령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 씨름은 아름답고 놀라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과열된 열망의 희생자라면, 우리의 기도는 다른 행위와 마찬가지로 육적인 것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단호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과 씨름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원하는 때에 기도 응답을 받으려 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되길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 뜻대로 되길 원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기를 갈망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떠한 탈출구나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 둘러싸이도록 하실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할 때 성령으로부터 기도가 시작된다(약 4:7,8).

기도할 때까지 기도하라
우리가 진실로 기도하기 전에 기도를 중단하는 습관은 불행히도 흔한 일이다. 종종 마지막 10분이 처음 30분보다 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효과적으로 기도하기 위해 적절한 분위기로 들어가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세상에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일들로 흐트러진 생각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씨름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기도하러 갈 때 우리 마음이 냉담하고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 느껴진다면 우리 스스로 그 상태에서 나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끝까지 기도해야 한다.˝ 토저는 은혜의 보좌 앞에서 정직하고,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히 7:25) 분께 다시 초점을 맞추라고 제안한다.

하나님의 자아와 기도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주실 것이다. 단, 그것이 그분의 뜻 안에 있다면 말이다. 당신이 ‘나는(I am)‘이라고 말할 때 언제나 ‘am‘을 소문자로 쓴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는(I AM)‘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그가 어디에서 파생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 존중은 잘못이 아니며, ‘나는 -이다‘, ‘나는 -할 것이다‘, ‘나는 -을 한다‘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신 본래 하나님의 메아리로서 소문자로 말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한다면 말이다.
죄의 정의는 타락한 자아이다. 죄는 위로 올라가 하나님의 자아를 취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이 자아가 될 거야.” 그리고 하나님은 배제되었다.
당신은 온순하고 경건하게 “오, 하나님, 당신이 계시기 때문에 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때 대문자로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라고 말해왔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탄생이 의미하는 바다. 그것이 곧 회개이고 믿음이다.
당신은 기도 제목들을 하나님께 다 말씀드리고 나와서, 당신이 그 목록을 잊지 않고 다 기도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과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분 앞에서 당신의 기도 제목 중 일부가 수정되고 재구성되는 느낌,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평안을 느끼는가?(빌 4:6,7)

​진리의 두 날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균형을 잃는 것은 종종 선호하는 특정 본문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다른 관련된 본문은 덜 강조함으로 인한 직접적인 결과이다. 진리를 부인하는 것만이 진리를 헛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강조하지 않는 것도 결국은 똑같이 해를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이론상으로는 진리를 고수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무시함으로 아무 효력이 없게 만드는 이상한 입장에 있게 한다.
그는 캠벨 몰간의 말을 인용한다. “모든 진리는 ‘기록되어 있다’라는 말에 있지 않다.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또다시 기록되어 있다’라는 말속에 온전한 진리가 있다. 새가 균형을 잡고 날 수 있으려면 오른쪽 날개가 왼쪽 날개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것처럼, 균형과 대칭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두 번째 본문을 첫 번째 본문과 대조해보아야 한다.
이러한 기도의 균형에 초점을 둔 매우 강력한 성경 구절이 야고보서 4장 1-10 절이다.

​정직한 기도의 능력
비상한 통찰을 가진 또 다른 영적 작가는 기도할 때 완전히 무례해 보일 정도로 솔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가 기도를 하는데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면 고상한 척하지 말고 하나님께 그대로 말하라고 한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일들이 따분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라. 이 조언은 일부 예민한 성도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타당한 말이다. 하나님은 정직한 영혼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곧 그의 무지함을 고쳐주실 수 있으나 위선에 대한 치료책은 알려진 바가 없다.
꾸밈없는 어린아이는 여전히 우리 모두를 위한 거룩한 모델이다. 우리가 모든 가식을 거부하고 사람들 앞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완전히 정직하기를 배울 때 기도는 더 능력 있고 실제적인 것이 될 것이다.
17세기 프랑스 주교, 프랑소와 페넬롱(Francois Fenelon)은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에 대해 몇 가지 강력한 발언을 했다.
당신의 마음에 있는 것을 모두 하나님께 말씀드려라. 친한 친구에게 마음속 기쁨과 아픔을 모두 털어놓듯이. 하나님께 당신의 어려움을 말씀드리면 그분이 당신을 위로해 주실 것이다. 그분께 당신의 열망들을 말씀드리면 그것을 정결케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 당신이 싫어하는 것들을 말씀드리면 그것을 정복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당신을 유혹하는 것들을 말씀드리면 그것들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주실 것이다. 선한 일에 대한 무관심과 악을 선호하는 부패한 마음, 당신의 불안정한 상태를 다 털어놓으라. 당신의 자기애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부당하게 대하게 만드는지, 당신의 허영심이 어떻게 가식을 부추기는지, 당신의 교만이 어떻게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숨기는지 다 말씀드려라.
당신이 이렇게 자신의 모든 약함과 필요와 어려움들을 털어놓으면 결코 할 말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주제가 계속 갱신되기 때문에 결코 고갈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비밀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대화의 주제가 부족하지 않다. 그들은 감출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저울질하지 않는다. 할 말을 찾지도 않는다. 그들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한다. 고민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 하나님과의 그런 친숙하고 거리낌 없는 대화에 도달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토저는 “우리가 모든 가식을 거부하고 사람들 앞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완전히 정직하기를 배울 때 기도는 더 능력 있고 실제적인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앞으로 정직한 기도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기를 바란다.

기도의 영성을 드러내는 공적 기도
기도는 듣는 사람들을 향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하는 것이기에 솔직히 그것을 염두에 두고 기도해야 한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못했다. 그 사람의 기도는 자아의식이 부풀려져 있고, 하나님에 대한 의식은 축소되었으며, 가치에 대한 의식은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전체적인 기도는 ‘나’ 중심적이었지 ‘하나님 중심’이 아니었다.
세리의 기도에서 반복되는 말에 어떤 마법 공식이 있었던 것은 확실히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세리의 마음, 즉 죄에 대해 민감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렇게 기도한다면 공적으로도 그와 같이 기도할 것이다.
가끔씩이라도 우리의 기도를 글로 기록하여 그것이 ‘나’ 중심적인지 ‘하나님’ 중심인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기도를 하나님 앞에 놓고 당신의 마음과 기도의 말들을 살펴주시길 간구하라.
구약 성경들의 기도, 신약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내용을 두 달에 한 번은 꼭 공부하도록 하라. 기도에 관한 연구를 할수록 당신의 기도에 변화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라!
공적 기도와 사적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감을 나타내야 한다. 그것은 매일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와 동행함으로 더 강력해진다. 예를 들면, 당신과 하나님과의 친밀감은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관계만큼 풍부한가?

가장 좋은 것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람이 홀로 외롭게 싸워야 하며, 때로는 금식과 기도로, 말로 다 못할 만큼 피곤하게 싸워야 한다. 모든 사람은 독창적이 되어야 한다. 기도는 모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마치 자기 혼자만 기도할 수 있는 것처럼 기도해야 하며, 그의 접근법은 개인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성경 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생의 중요한 순간에, 다른 사람들의 깊은 필요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신 후에, 최후의 만찬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십자가에서 아버지께 드린 기도가 예수님의 삶에 배여 있었다.
리더십의 영적 자격을 갖추라
리더십은 비전을 요구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 아니면 어디서 비전이 오겠는가?
로마서 12장 12절은 모든 신자들이 ‘기도에 힘써야‘ 한다고 말하며, 유다서 1장 20절은 신자들에게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권면한다. 우리가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려면 하나님의 말씀(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것),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행하는 것),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매일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질적으로 모든 신자들은 ‘기도에 힘쓰라‘라는 권면을 받으나, 그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기도여야 한다.
E. M. 바운즈는 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혹은 더 좋은 기계나 새로운 조직이나 방법이 아니라, 성령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들이다. 즉 기도하는 사람들, 기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성령은 방법이 아니라 사람들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분은 계획이 아니라 사람들, 즉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으신다.

​하나님은 언제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하나님의 계시된 목적들과 정반대되는 것을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려면, 자신이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한 그분의 넓은 뜻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또는 불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간청을 들어주어야 할 의무를 갖지 않으셨다. 그분은 오직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의 기도만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해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일 3:21,22; 요 15:7).
하나님이 언제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궤변은 기도하는 사람이 훈련을 받지 못하게 만든다. 이 부드러운 궤변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이 세상에서 진지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야 할 필요성을 무시한다.
자신에게 참된 믿음이 있는지의 여부도 모른다. 자신의 요청이 수락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바꾸셨고 그에게 다른 것을 주셨다고 선언하는 단순한 책략으로 그 결과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이 짧은 문장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구하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응답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실 때가 있음을 배운다. 그러나 하나님이 언제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믿음에 현혹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세속적인 신자는 응답이 거절당할 때 경건하게 자신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하나님이 언제나 기도에 응답해신다는 생각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성경으로부터 오는 단단한 음식은 신자의 삶 속에서 성령의 능력 주심과 역사를 동반하며, 그것이 성경의 진리를 사실로 만든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단단한 음식을 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젖으로 만족하며 말씀의 기본 원리들을 반복해서 배우는 것에 머물러 있다(히 5:11-13). 또한 그들이 듣고 싶은 말만 해주고 그들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줄 스승들을 많이 두었다(딤후 4:3). 그 최종 결과는 세상과 벗 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며, 그 증거가 자신의 불순종 때문에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누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멘토인가? 그런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께 적어도 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하라.
개인적으로 나는 때때로 나의 죄나 바쁜 일정, 또는 잘못된 우선순위로 인해 기도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최선을 거부하게 될까 걱정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손해는 내가 우주의 무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협력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손실을 느끼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계속 기도하기를 바란다.


3/ 믿음의 기도로 나아가라

​목표를 명중시키는 기도
기도에 있어 가장 큰 함정 중 하나가 막연하게 기도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하여지기 원하는 당신은 ˝난 지금 그걸 받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당신을 시험하시게 하고, 그분이 당신의 기도에 응답을 주셨는지 안 주셨는지 알려고 하라.
막연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 것을 받았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런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킬 수 있다.

​모든 일에 기도로 나아가라
마음의 평안은 문제를 부인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데서 온다는 걸 명심하라. 믿음으로 당신은 당신의 형제요, 인간의 아들이면서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께 부탁할 권리가 있다. 또한 하나님이 당신을 보살펴주실 거라면 왜 염려해야 하는가!
모세, 여호수아, 다윗이 경건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든 것을 기도로 하지는 않았고, 그 결과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를 통하지 않고 우리의 생각이나 힘으로 결정 내리기로 할 때, 우리는 그들처럼 엘리트 그룹에 속했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을 내릴 때, 그에 따른 결과가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가장 해로운 결과들은 우리의 믿음과 미래의 순종, 우리의 구세주이자 주님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신자들과 불신자들 앞에서 우리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훼손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기도로‘ 하기를 부지런히 힘쓰자.

우리의 중재자, 예수님
예수님은 하늘에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구하심이라˝(히 7:25).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신다. 그러므로 힘을 내라!
예수님이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과 관련하여, 성경은 그분이 구체적인 영역에서 기도하신다고 말한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시련이나 폭풍우를 지나더라도 우리의 믿음이 실패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둘째,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이런 폭풍우가 삶을 무너뜨리고 우리로 길을 잃게 만들 수 있지만 또한 우리의 믿음을 정결케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신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가 시련을 대할 때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보기를 원하신다. 셋째, 주님은 이런 폭풍우나 시련들이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형제와 자매들을 강하게 해주는 배경이 되길 원하신다.

​기도로 준비하라
그리스도는 그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날의 제자들에게 커다란 반지에 박힌 작은 다이아몬드 같은 말씀을 주셨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가오고 있는 일을 예상하고 기도하셨으며, 그에 대비하셨다. 내가 당신의 양심에 새겨두기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싸움을 싸우기 전에 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미리 예측하고 앞서가는 기도를 연습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날마다 앞서가는 기도를 연습할 수 있을까?

언제나 기도가 이긴다
˝곤경에 빠지는 사람은 힘이 약한 사람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의 힘이 약한 이유는 기도가 거의 사라지고 침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하고 강건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고난이 와도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시계를 보며 ˝기차를 놓치겠어˝라고 말하면서 황급히 뛰어나가지 말라. 당신이 급히 가야 한다면 신약성경을 가지고 가라. 출근길에 뉴스나 뉴스를 읽는 대신 신약성경을 읽고, 그다음에 고개 숙여 하나님과 대화하라. 싸울 준비를 하라! 아침에 기도를 아예 건너뛰기보다는 어딘가에서 기도를 부여잡으라.
절대 기도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기도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고, 기도하면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물론 그것이 참된 기도이고 말로만 하는 기도가 아니며, 당신의 삶이 당신의 기도와 조화를 이룬다면 말이다. 기도하면 실패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다.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기도하라
복음주의적 합리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상태로 축소시킬 것을 주장하며, 따라서 합리적인 신앙을 가지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간 이성의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그런가 하면, 복음주의적 신비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인간의 이성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과 믿음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위에 있다. 우리가 신자가 되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작은 이성을 무한히 초월하는 영역이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화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믿음은 결코 이성과 반대로 가지 않는다. 믿음은 단지 이성을 무시하고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다.
믿음은 가장 높은 종류의 이성이다. 믿음은 우리를 곧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고, 우리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가신 휘장 뒤로 들어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이 이루시는 일들에 다가간다.
응답받지 못한 기도는 장기간에 걸쳐 성도들 안에 다섯 가지 일을 행한다. 첫째, 기도하는 사람들을 낙심시킨다. 둘째, 자연적인 마음의 불신을 확인해 준다. 셋째,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부추긴다. 넷째, 원수에게 신성 모독할 기회를 준다. 다섯째, 원수가 영역을 장악하게 한다. 당신의 환경에서 원수가 장악한 영역을 되찾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신의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응답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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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E. 해긴의 사단, 귀신 및 귀신들림
케네스 E. 해긴 지음, 오태용 옮김 / 베다니출판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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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귀신론”에 대한 강의이다. “사단, 귀신 및 귀신들림”에 관해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고 대하는 실제적인 사역과 삶 속에서의 예들을 바탕으로 성경적, 신학적, 사역적으로 잘 정리한 책으로, 목회 현장에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유용할 것이다]라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책 소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내용의 교훈을 주는 것 같으면서도,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에는 비성경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며,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책을 읽을수록 비판적이고 거부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케네스 해긴에 대해 검색을 해보면 잘못된 가르침 vs 위대한 사역자라는 의견이 대립한다. 약 70여 권을 저술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의 진위 여부를 밝히려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더욱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로 신앙 상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라하˝ 요한1서 2:27. 아래 책 요약 중간중간에 나의 의견을 기록했다. 이 책은 믿음을 견고히 하기보다 혼란을 가중시키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별점: ★☆☆☆☆







1/ 귀신의 기원과 활동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1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린도후서 12:2
성경에는 세 개의 하늘이 언급되어 있다. 세 하늘들 가운데 첫째는, 바로 우리 머리 위의 대기권 하늘이다. 그 위, 즉 우주의 밖에 별들이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셋째 하늘(하늘들의 하늘)이 있다. 우리 위의 대기권 하늘에(하늘들에) 악한 영들이 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이사야 14:13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북극에는 그들이 탐사할 수 없는 텅 빈 장소가 있다고 한다. 거기가 바로 하나님 보좌가 있는 ˝북극˝인 것이다. *추정에 의존한 의견을 사실처럼 주장하고 있다.* 분명히 루시퍼에겐 어떤 종류의 보좌가 있었다. ˝내가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라고 그가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구름 아래에 있었다.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리라˝라고 그가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단에겐 땅 위에 어떤 종류의 왕국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우리는 ˝아담 이전의˝ 창조를 믿을 수 있다.

창세기 1:1과 창세기 1:2 사이에 수백만 년이 지났을지 모른다고 믿는 성경학자들이 많다. 고고학적인 발견에 의하면, 공룡과 다른 유형의 동물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들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들은 우리의 시스템에서 온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아담 이전에 종류가 다른 피조물들이 틀림없이 이 땅에 있었던 것 같다. 악한 영들은 여기 땅 위에 존재하고 있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가? 나에게 논리적인 설명을 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아담 이전에 창조된 영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교리적으로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이것을 교리로 삼을만한 견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에스겔 28:13
분명히 루시퍼는 음악과 관련이 있다. 다윗이 수금을 타자 사울에게 있는 악한 영이 잠잠해졌다. 올바른 악은 당신이 하나님의 성령께 굴복하도록 준비시키지만, 잘못된 음악은 마귀의 영에게 굴복하도록 준비시킨다.
때로는 분명히 우리가 무거운 짐에 눌려 있기도 한다. 이따금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그러나 그건 잘못이다. 그런 것을 통해 우리는 문을 열어 놓고 잘못된 영이 우리를 장악하게 하는 것이다. 그건 우리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잘못된 영에 우리가 굴복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의 세계는 물질세계와 마찬가지로, 사실적이다. 실은, 더 사실적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창조하셨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에베소서 6:12
귀신들, 곧 악한 영들에게는 네 개의 계급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에베소서의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기록했다.* 1) 통치자들, 2) 권세들, 3)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4)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이 어둠의 주관자들˝은 다른 영들을 지배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한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지배하려는 것 외에, 그들은 어둠 가운데 행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을 지배한다.

하나님 자신은 인간의 영에 대해 권세를 행사하지 않으신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주장인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함께 하시고, 기름부으신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권세가 따르는 일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악한 영들과 귀신에 대한 권세를 행하사셨는데, 교회의 신자는 어느 누구든지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인간의 영이 그 상태 그대로 있기를 원하면, 다른 신자가 그것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자 그 음성이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요한일서 5:16을 읽어본 적이 있느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를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만일 그녀가 마귀의 시험을 받고 졌었다면 그녀를 용서하셨을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도망을 쳤다고 해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것은 아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그녀가 남자 100명과 놀아났어도 주님께로 돌아왔다면 그녀를 용서하셨을 것이라고 주님은 설명하셨다. 그런데 그녀는 더 이상 주님을 필요치 않다고 고의적으로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시험을 당하거나, 진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 죄는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이 그것을 더 설명해 준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6-29
자기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게로 많이 왔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께 등을 돌린 적이 없다면, 이 죄를 지은 게 아니라고 나는 그들에게 말해준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했든, 그들이 아무리 멀리 떠나갔든(심지어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예수님께 욕을 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후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마귀를 처리하기 위해 영분별의 은사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하셨다. 당신이 그것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꼭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은사를 받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영분별의 은사를 갖거나 마귀에게 권세를 행사할 사역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믿는 자는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권세가 있다. 교회 안이나 밖의 사람이 교회의 사역을 위협하거나, 방해하거나, 훼방하거나, 저지하기 위해 행동할 때마다 그것은 악한 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영은 우리가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우리가 사람을 처리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가 곤경에 빠질 수 있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내가 예수님께 물었다. 너의 기도 골방 은밀한 곳에서 이렇게 말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무개의 삶에서 역사하고, 이 교회를 방해하고 훼방하는 너 더러운 영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너의 술책을 중지할지어다.˝
우리가 여태까지 사용했던 것보다 더 많은 권세가 우리에게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데 일어나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지 않고, ˝언젠가는 일이 잘 풀리겠지!˝라고 바라면서 이리저리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영원토록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게 하시고, 어둠의 권세들을 이기신 승리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 귀신과 귀신을 다루는 방법
왜 악한 영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기를 원하는지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 물리적 세계에서 그들을 최대한도로 충분히 나타내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몸이 있으면 이 영역에서 그들을 나타낼 수 있는 자유가 더 많아진다. 귀신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갈 곳을 찾게 되면, 그 사람 속에 들어간다.
사람이 귀신에게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면, 그는 영과 혼과 몸이 다 사로잡힌 것이다. 몸은 단지 눌릴 수 있을 뿐이고, 악한 영들이 당신이 사는 집(당신의 몸)에 있을 수 있지, 실제로(최대한의 의미에서) 당신 안에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실제로는 영이다. 인간은 혼을 가지고 있고, 몸 안에 산다. 인간은 신체적으로 죽을 때,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인간은 물질인 육체와 비물질인 영혼으로 구성된 피조물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육체는 선하게 창조되었으므로 신체에는 본질적인 악이 없다. 다만 육체도 영혼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타락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인간의 죄악됨이 육체와 영혼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는 ‘육체로부터의‘ 구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육체의‘ 구원을 가르친다. 정통 신학은 인간을 육체와 영과 혼, 이 세 가지로 구분하는 삼분설을 거부한다. 영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본질적으로 영원하지 않다. 영혼은 물질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물리적인 힘으로 파괴될 수 없지만 하나님에 의해서는 파괴될 수 있다. 즉 영혼은 하나님이 유지하시는 능력 없이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행 17:28). 우리는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신자와 불신자 모두 계속 산다. 다만 신자는 그들의 육체의 부활과 영화가 이루어질 구원의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반면, 회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기다린다. 인간은 전체적으로 타락했으므로 영혼, 육체 모두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은혜의 대상이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 102가지(R. C. 스프로울) 중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고린도후서 5:6-8
내가 몸을 떠날 때, 나는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 ˝ 빌립보서 1:21-23
속사람이 진짜 사람이다. 당신은 영의 존재이다. 당신은 지적인 특성과 감정적인 특성으로 구성된 혼을 가지고 있지만, 몸 안에 살고 있다. 우리의 영은 우리가 거듭날 때 다시 태어난다. 베드로전사 3:4는 말한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
당신의 마음(heart)은 당신의 영이다. 고린도후서 5:17은 말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은 몸일 수가 없다. 당신이 거듭날 때 새로운 몸을 갖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감사하게도, 우리는 훗날 새로운 몸을 갖게 될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란 ‘속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은 더 이상 그 안에 마귀의 본성이 없다. 그가 다루어야 할 본성은 바로 육신의 본성이다. 아직 속량되지 아니한 것은 그의 몸이다. 만일 당신의 영 안에 마귀나 귀신이 있었다면, 그들은 없어졌다. 영적 사망의 옛 본성은 지나갔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당신의 몸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다시 태어나는 것은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체험이 아니다. 성령 충만은 신체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아니다. 그 둘은 다 결국엔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이 것에 영향을 미치는 영적인 체험이다. 우리가 거듭나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다음에는,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우리에게 달려 있다. 만일 우리 몸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속사람이 지배하지 않는다면, 악한 영들이 출입할 것이다. 그들은 육신을 통해서 우리를 지배할 수 있다.
거듭나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이 그의 영에 귀신이 든다는 것을 나는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내게 확신시킬 수 있는 성경 구절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할 것이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때때로 신체적 질병의 경우, 몸에서 처리해야 할 귀신이 있기는 하다.

그의 아내가 말하기를, 내가 설교한 것을 들은 후에 자기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알았다고 했다. 남편의 뇌에는 뇌세포들이 고갈되었기에 그의 팔 하나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그의 몸을 두루 살필 수 없었다. 그래서 마귀가 그의 몸을 통해(그의 영이 아니라) 역사하면서 그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가 그곳에 서서 마귀에게 하나님의 소유에서 손을 떼라고 명했어야 했다고 깨달았다. 나는 마귀가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그녀에게 확실히 말해주었다.
우리는 때로 마치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도움은 하나님 안에 있다.

영의 세계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며, 그 세계는 이 물리적 세계보다 훨씬 더 실제적이다. 에베소서 6:12에서 바울이 말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악한 영들은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려고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질병과 아픔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려고 한다. 사도행전 10:38에서 베드로는 질병과 아픔을 마귀에게 눌린 것으로 말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행전 10:38.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마태복음 4:24,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마가복음 1:32 이 말씀들을 비교해본다면 사도행전 10:38 말씀이 해긴의 주장처럼 ‘질병과 아픔 = 마귀에게 눌린 것‘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따로 분리해서 나열했기 때문이다.*
마귀는 아프게 하거나 파괴하는 모든 것의 배후에 존재한다. 인간은 실험을 통해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에 권세를 행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페니실린은 어던 병균들에 권세를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은 모든 것에 다스리는 권세를 행사한다!

어떤 순복음 목사가 한 번은 내게 말하기를 만일 귀신이 질병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사람에게서 귀신을 잘라낼 수 있느냐고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맹장염에 걸리면 수술을 받고 그 뒤에 좋아지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에게 귀신을 잘라낼 수 없기 때문에 그건 귀신일 리 없다고 말했다.
사람에게서 귀신을 잘라내는 것 역시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몸의 어떤 부분이 귀신의 영향을 받는다면, 그때는 당연히 그 부분이 잘려나갈 때 귀신이 영향을 미칠 부분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명백해져야 할 것은 귀신을 잘라내는 문제가 아니다. *뒤에도 나오지만 해긴은 모든 병은 귀신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나는 이 부분에 동의할 수 없다.*

이들 귀신들은 어떤 종류의 귀신이든지 사람들을 억압하는데, 귀신 억압(oppression)에는 여러 정도가 있다. 때로는 다른 때에 보다 더 많이 억압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사로잡힘(possession)에도 여러 정도가 있다. 더 많이 잡히기도 하고, 덜 잡히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것을 십분 이용해서 성령의 지배를 받아 이기는 자가 되기로 결심해야 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신약에는 교회나 믿는 신자가 마귀를 내쫓아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말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마귀를 내쫓아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신약은 믿는 자들 자신이 직접 마귀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하라고 말한다. 만일 그들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마귀에 대해서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은 이미 모두 했단다.˝
*예수님을 믿는 내가 누구이고 귀신이 누구인지 그 실체를 분명히 안다면 ‘하나님 귀신을 쫓아내주세요‘라고 기도하기도 전에 내가 바로 꺼지라고 명령할 것 같기는 하다. 예를 들어 개가 시끄럽게 짖는다고 해서 눈을 감고 ‘주님, 개가 조용히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기 전에 그냥 내가 먼저 개에게 ‘조용히 해!‘라고 명하지 않겠는가?
한편,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한복음 14:13-14 말씀처럼, 주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행하신다고 했다. ‘단, 마귀 쫓는 것만 빼고‘라고 하지 않으시고.
또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26-29, 이 말씀에서는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6:15-18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야고보서 4:7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 당신에게 마귀에 대한 권세가 없다면 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야고보는 믿는 자들에게 쓰고 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에베소서 4:27,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의 뜻은 간단하다. ‘마귀가 당신 안에 어떤 자리도 차지하게 하지 말라.‘˝ ˝그 말은 네가 그에게 허락하지 않으면 마귀는 네 안에 어떤 자리도 차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의 영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권세가 없지만,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그러한 괴롭힘의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을 다스릴 권세를 가지고 있다. 아무도 없는 당신의 집에서 ˝아무개(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를 통해서 이 교회의 사역을 방해하고, 위협하며, 해치고, 훼방하는 일을 하는 너 더러운 귀신아,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훼방을 중지하라!˝ 이렇게 선포함으로 그 상황을 처리할 수 있다.

우리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은 매일의 싸움에서(직장에서, 가정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는 이들 귀신들과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마귀를 도망가게 할 수 있다!


3/ 눌린 자들에 대한 사역
단지 성령 충만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마귀에게 굴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마귀에게 굴복하여 당신이 원할 때마다 마귀가 당신을 지배하게 할 수 있다. 당신은 육신에 굴복하여 육신이 당신을 지배하게 할 수 있다. 당신은 세상에 굴복하여 세상이 당신을 지배하게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 그 가다라인이 귀신에 점유되었는데 군대 귀신이 들렸다고 성경이 말하는 것을 주목하라... 그들 중 하나만이 그를 점유한 것인데, 항상 이러는 것이다˝ ˝점유하는 귀신이 다른 귀신들을 불러들이는 법이다. 그러나 사람을 점유하는 귀신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점유를 하고, 그다음에 다른 귀신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항상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중 하나란다.˝ *한 번에 한 명인지 여럿인지가 중요한 논쟁거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누가복음 8:33, 누가복음에 귀신들(demons, NIV)이 그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했다.*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다소간에 귀신과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다스림을 받는다…. 구원받는 사람들조차도 이런 영들에 굴복하여 그 지배를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일 네가 그들을 허용하면, 그들이 지배할 것이다. 그들은 실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 관해 내게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마귀가 믿는 자들의 영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그의 생각(mind)이다.˝
당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아무 데나 원하는 곳으로 빗나가게 하고 평안을 기대할 수는 없다. 사단과 그의 제안에는 당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닫아놓아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당신의 생각을 집중하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완전히 귀신에게 사로잡히게 되면 그 귀신이 그의 음성을 사용하여 당신이 누구인지를 안다고 할 수 있다 하셨다. 내적인 계시인 영분별을 통하여 어떤 종류의 귀신이 그 사람을 점유하고 있는지 내가 알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그 귀신이 나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나가지 않는다면, 그의 이름이 무엇이며, 몇 명이나 안에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위에서는 그들 중 하나만 점유한다고 한 주장과 상반된다* 당신이 이렇게 하기 전까지는 나가지 않으려는 귀신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악한 귀신들이 쫓겨날 때 어디로 가느냐고 예수님께 물었다. 이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 그 이상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지(내가 그들을 지옥으로 내쫓았어야 했는지)를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더 낮은 계급의 귀신들에게는 네가 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대단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들 귀신들은 마른 곳을 돌아다니며 쉬기를 구한다고 하셨다(마 12:43). 만 그 사람이 받아준다면, 그들은 그들이 나온 곳으로 다시 들어가려 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귀신 문제를 다룰 때는 시간을 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 속에 심어주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마귀에게서 해방 받는 그 해방에서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다. 그 후에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귀신들이 나간 후에 당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우리는 이 분야 전체를 다루는 게 필요하지, 귀신을 쫓아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사실 그를 부당하게 대우한 것일 수 있다. 그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기보다는 더 해를 끼칠 수도 있다. 만일 그가 후에 바른 일을 하지 아니하면, 그 한 귀신이 나가서 일곱 귀신을 더 데리고 와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악화될 것이다.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성경을 읽고, 교회에 나가며,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중요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결국 타락하고 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 후에 무엇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마귀는 직간접적으로 모든 질병과 아픔의 배후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 말이 항상 문자 그대로 거기에 귀신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은 병자를 치유하는 것과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구별 짓는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 사도행전 10:38, 여기서 베드로는 질병을 사단의 눌림이라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수많은 가지가지의 질병들이 오직 귀신을 다룸으로써만 치유될 수 있다고 나는 완전히 확신한다. 그 귀신을 다루지 아니하면, 모든 머리가 다 닳아빠질 때까지 사람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머리에 안수를 해도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한 페이지 안에서 주장하는 걸까? 병자 치료와 귀신 쫓는 것을 구별한다고 했다가,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고치신 것을 질병을 치료한 것이라고 했다가, 귀신을 다뤄야만 질병이 치료된다고 했다가….*
(악한 귀신에 눌린 사람을 안수하여 해방시킨 후 위궤양이 사라진 경험에서) ... 나는 모든 궤양 환자가 그런식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수많은 가지가지의 질병들이 오직 귀신을 다룸으로써만 치료될 수 있다고 나는 완전히 확신한다는 방금 전의 말과는 또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영분별로 알려진 은사는 내가 성령 안에 있을 때 내 삶에서 기능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은 내가 버튼을 눌러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 세 번째 주간 화요일 밤에 이 여자를 다시 집회에 데려왔다. 내가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에 안수했을 때 나는 성령 안에 있었다. 하얀 구름이 내 머리 위로 내려와 나를 감싸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과 회중석이 사라졌다. 강단이 사라지고 마치 그 젊은 여자와 내가 그 하얀 구름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본 것을 아무도 볼 수 없었고 내가 들은 것을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그들이 들었다.
내가 보니 귀신 하나가 그녀의 몸 밖에 매달려 있었다. 마치 작은 원숭이가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그림에서 본 작은 꼬마 요정 같았다. 그것이 그녀의 몸을 꽉 누르고 있었고, 그녀의 영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에게 명하자, 그는 느슨해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거기에 누워서 흐느꼈다. 그는 회초리로 맞은 작은 강아지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흐느껴 울면서 자기는 떠나고 싶지 않다고 계속 말했다. *설령 이러한 체험이 사실일지라도 거부감뿐, 읽는 이로 신앙을 견고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집회에서 안수를 하지 않았지만, 설교를 듣고 암이 치료된 경험에서) ... 여기에는 영분별이라는 게 없었다. 그녀는 기도를 받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신의 믿음을 통해서 치유를 받았던 것이다. *이 말은 모든 질병이 귀신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과 일치하여 단지 안수가 아닌 믿는 자의 믿음으로 귀신을 쫓아내 치료받았다는 것인지, 귀신과는 관련이 없이 믿음으로 질병을 고침 받았다는 주장인지 불분명하다.*

(집회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던 사람을) ... 내가 그를 위해 기도를 해주고 나자 그는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몇 사람 더 기도를 해주고는 우연히 그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렇게 할 때, 나는 성령 안에 있었는데, 악한 귀신이 그의 오른쪽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악한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사람의 몸에서 떠나라!˝라고 명령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그 귀신이 팔을 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만일 그것이 나에게 달려 있었다면, 내가 처음 그에게 안수를 했던 바로 그때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나타남이 있지 아니하면, 이런 식으로 사역할 수가 없다.
은사의 나타남은 성령께서 원하실 때 각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지, 사람의 뜻대로 주시는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만, 이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을 세워주기 때문이다.


4/ 귀신들에 관한 질문과 성경의 대답
Q. 그리스도인이 귀신들릴 수 있는가?
A. 귀신 들린다는 것은 마귀에게 영과 혼과 몸이 완전히 점령 당한다는 것을 뜻한다. *위에서 한 번 언급한 바와 같이 정통 신학은 삼분설을 부인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은 마귀에게 점령될 수가 없다. 사실, 마귀는 신자의 허락이 없이는 그 사람에게서 어던 일도 할 수 없다. 성경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라고 말한다(에베소서 4:27).
당신은 성령께 절반 정도 굴복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굴복할 수 있다. 귀신의 눌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마귀에게 절반 정도 굴복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굴복할 수 있는 것이다.

Q. 질병과 아픔이 있다는 것은 항상 귀신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징후인가?
A. 모든 질병과 아픔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문자 그대로 사람 안에 악한 영(귀신)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은 모든 질병이 원수의 눌림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어디에?* 어떤 질병을 가져다준 귀신이 몸에 머물러 있어서 질병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귀신이 다루어져야 한다.

Q. 귀신들을 불러낼 때 그들과 말을 해야 하나?
A. 예수님께서 그 환상에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신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때로는(항상 그러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어떤 종류인지 알아야 한다. 첫째, 귀신에게 명하여 나오라고 해라. 만일 그가 나오지 아니하면, 몇 명이 있느냐고 물어라.˝ *계속 반복되는데, 점유하는 귀신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주장했다가, 몇 명이냐고 물으라고 했다가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 마태복음 12:45*

Q. 마귀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가 있는가?
A. 그 사람 안에 있는 마귀가 내가 도시로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실로 마귀가 우리를 지켜보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심을 기억해야 하겠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귀신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Q. 귀신을 다룰 때 일단 그 사람이 행방을 받았으면, 그다음 번 단계는 무엇인가?
A. 사람이 죄에서, 질병에서, 마귀로부터, 혹은 그 무엇으로부터 해방을 받았을 때, 그를 즉시 고백과 간증 및 예배의 훈련 가운데 밀어 넣어야 한다.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마가복음 5:19

Q. 정신 이상자인 사람에게 어떻게 사역하는가?
A. 정신 이상 환자를 다룸에 있어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당신이 따를 수 있는 일정한 패턴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모든 해방(죄로부터, 질병으로부터, 귀신으로부터, 혹은 어떤 악으로부터든)의 참된 치료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바울은 로마서 1:16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스코필드 성경에는 이 구절에 대한 각주에 ˝구원˝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와 헬라어 단어가 ˝해방˝과 ˝치유˝를 의미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다.
나는 내가 안수기도를 해준 기도 손수건을 몸에 지님으로써 몇몇 사람이 어떻게 해방을 받았는지 말했다. 사실은 세 사람이 그 손수건을 10일간 몸에 지닌 후 오후 3시에 해방을 받았던 것이다. 왜 그 일이 그런 식으로 일어났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이 설령 사실이라 해도 책에 쓰지 않는 것이 더 좋았었겠다. 손수건을 신령하게 여기는 것은 우상 숭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마치 광야에서의 놋뱀처럼*
해방의 참된 치료책은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정신 이상자를 다룰 때 때로는 길고 혹독한 믿음의 시련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역사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Q. 왜 귀신들이 인간의 몸속에 들어가 거하고 싶어 하는가?
A. 표현의 범위를 가능한 한 가장 넓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물리적인 것들을 통해서 활동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유로 해서 그들은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Q. 알코올 중독은 귀신인가?
A. 내 생각에는 알코올 중독이 귀신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목사님께서 안수하실 때, 뭔가 전기 같은 것이 내 온몸에 임했어요. 따뜻한 것이 내 몸 전체를 감쌌어요. 그것은 놀라운 영적 체험이었어요. 둘째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묶여 있었던 그 알코올 귀신이 나를 떠났어요. 나는 술 항 방울도 잎에 댄 적이 없습니다.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어요! *마귀가 역사하여 알코올 중독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술을 끊었다고 해서 모두 다 알코올 귀신이 떠나간 결과로 단정 짖는 것이 올바른 판단인지 의문이다.*

Q.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 일을 방해하게 하는 귀신의 활동을 어떻게 중단시키는가?
A. 만일 누가 어느 누가 교회 사역을 괴롭히거나 위협하거나 훼방을 놓거나 그만두게 한다면, 그것은 마귀임을 알아야 한다. 영분별의 은사를 가질 필요는 없다. 마귀를 볼 필요도 없다. 그것은 초자연적으로 알 필요가 없다. 그건 바로 마귀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집 은밀하게 그런 활동을 중단시킬 수 있다. 밖에 나가서 그것을 떠벌일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을 다룰 필요가 없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아무개(그 사람의 이름을 대라)를 통해서 교회의 사역을 훼방하고 위협하며 괴롭히고 그만두게 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너 더러운 귀신아,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중단할지어다.˝

Q. 귀신을 다룸에 있어 성공하려면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은 무엇인가?
A. 기도와 금식함으로,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말씀을 묵상함으로, 그리고 바른 삶을 삶으로써 자신을 준비한다. 1)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바른 삶을 살지 아니하면, 아무런 확신도 갖지 못할 것이고, 마귀가 당신을 비웃을 것이다. 2)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당신의 권리와 특권을 알지 못한다면 담대할 수가 없다.

Q. 하나님께서 마귀에 대해 뭔가를 해주시도록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가?
A. 그렇지 않다. 성경은 ˝너희는 …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라고 말한다. 그 문장의 양해된 주어는 당신이다.
˝나는 저 TV 설교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편지를 써야겠어. 그에게 믿음이 있더구먼. 아마 그가 기도하면, 마귀가 나를 내버려 둘 거야.˝ ​
진지하게 말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마귀를 다스리는 권세를 취해야 한다. 우리에게 그를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는 게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다. 누구 딴 사람에게 뭔가를 해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 *반복되는 내용인데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9:26-29, 이 말씀에서는 기도해야 한다고 했고, 기도는 당연히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내가 마귀에게 대적하며 물리치는 기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 둘 다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마귀가 어떤 일을 하며, 그가 어떻게 그들을 병들게 하고, 성공 못하게 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마귀에게 그들을 다스릴 지배권을 내어주는 셈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바를 이야기하면, 마귀는 겁을 먹고 당신을 피해 도망갈 것이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당신에게 권세가 있는 것이다.

Q. 마귀의 궤계에 관해서 우리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적인 은사들을 사용하시는지 예를 들어주실 수 있는가?
A. ˝젊은이, 당신 바로 앞에 내가 보니(당신 앞 바로 딱 한 걸음 되는 곳에) 검은 벽이 있어.˝(나는 성령 안에서 검은 벽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그쪽으로 발을 딛는 순간 당신은 가는 거야.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몰라요. 하지만 당신 바로 앞에 뭔가가 있어. 나는 이걸 아주 잘 알아. 만일 당신이 이 제단에 나와 당신의 마음을 예수님께 드리면, 당신은 구원을 받고 그런 어둠에 절대로 빠지지 않을 거야˝ 그 젊은이는 나오지 않았다... 그 젊은이가 밖에 나가 술에 취했어요. 그는 집으로 간다고 생각했지만, 엉뚱한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는 문을 쾅쾅 치고... 그 집주인은 누가 들어왔는지 알지 못했죠. 그는 산탄총 두 발을 그 청년의 얼굴에 발사했습니다... 그 가련한 친구는 영원의 세계로 가버렸다. 그것이 하나님의 잘못이었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멈추게 하려고 노력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의 주의를 끌려고 최선을 다하셨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다. 그에게는 들을 힘이 있었다. 왜 하나님께서 그를 지배하지 않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서 검은 벽을 봤다는 것은 내게 이 책에 대한 거부반응을 더해 준다.*

Q. 당신이 일단 해방 받았다면, 어떻게 그 해방을 유지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A. 사람이 해방을 받은 후에는 그의 생활방식(그의 삶의 스타일)과 그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여러 번 바꾸어야 한다.
당신이 과거에 생각하던 것과 같이 계속 생각한다면, 마귀는 바로 돌아올 것이다.
해방 받은 상태 그대로 있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어야 한다. 악에서 떠나고 선을 행해야 한다.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매일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동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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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YouTube - 콘텐츠로 스타 되고 광고로 수익 얻는
유튜브 연구회 지음, 정재훈 감수 / 길벗 / 201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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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 줄 알고 읽었는데, 그림책 느낌을 읽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위한 유튜브 사용 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광고를 이용한 수익 창출 구조, 저작권 주의 사항, 채널 및 동영상 홍보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별점: ★★☆☆☆




미디어 소비자의 변화
미디어 산업의 변화는 소비 양식의 변화를 포함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Gen-C(젠-시)’라는 개념입니다.
C 세대(Generation C)의 약자인 ‘Gen-C’는 미디어 변화와 관련한 행동양식을 가진 소비자 그룹을 말합니다. 이 그룹이 가진 특징을 4개의 C로 시작되는 단어인 크리에이션(Creation), 커뮤니티(Community), 커넥션(Connection), 큐레이션(Curation)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C 세대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들은 온라인에 블로그 포스팅, 사진, 영상 등의 콘텐츠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올리는 사람들로, 1980년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Y 세대(Generation Y, Millennial Generation)가 주가 됩니다. 하지만 ‘Gen-C’는 행동양식에 따른 구분이기 때문에 그보다 더 높은 연령에서도 나타납니다. 구글이 30개국을 조사한 결과, 35세 이상의 세대가 평균 39%가량 구성하고 있다는 점은 단지 ‘Gen-C’가 특정 연령대를 대표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말한 4개의 C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Gen-C는 자신이 바로 크리에이터가 되어 콘텐츠를 생산합니다. 좋은 레스토랑에 가면 스마트폰으로 음식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에 공유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모바일 기술의 발전은 Gen-C 세대가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크리에이션-Creation). 또한 이들은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기를 원하고, 정보가 필요할 때에는 언제 어디서든지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기를 원합니다(커넥션-Connection).
인터넷 연결은 정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주는데, 소셜 네트워크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온라인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커뮤니티-Community). 이들은 자신이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찾아다니며 이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들이 속한 커뮤니티에 공유합니다(큐레이션-Curation).
큐레이션(Curation)은 큐레이터(Curator)에서 나왔습니다. ‘큐레이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보여 줄 작품이나 유물들을 선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인 수많은 유물들 중에서 필요한 유물을 골라내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합니다. 큐레이터는 이제 박물관을 넘어서 디지털 세계에서 필요한 존재이자 행동양식이 되었습니다. 도서관에만 있던 정보가 디지털화되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 오히려 어떤 정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합니다. 그 혼란 속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들에게 갈 길을 알려 주는 디지털 큐레이터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튜브는 미디어와 변화와 소비자의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유튜브의 핵심 계층도 바로 ‘Gen-C’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변화들을 이해하고 주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유튜브 생태계 3요소
유튜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튜브 생태계, 즉 유튜브를 이루는 것은 무엇이며, 이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유튜브 생태계를 이루는 요소는 바로 크리에이터(Creator), 사용자(User), 광고주(Advertiser)로 구성됩니다.
‘크리에이터(Creator)’는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생산하고 올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유튜브에서 크리에이터는 동영상 생산자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크리에이터가 동영상을 매개로 자신들의 팬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는 커뮤니티 창조자의 역할도 동시에 하기 때문입니다. ‘사용자(User)’는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유튜브의 핵심층인 Gen-C의 행동양식을 고려해 볼 때, 사용자도 단순히 영상을 보고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동영상을 매개로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합니다. 사회적 관계는 자신의 의견을 댓글로 달기도 하고 커뮤니티에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광고주(Advertiser)’는 유튜브 생태계에서 돈의 흐름을 만듭니다. 유튜브는 크리에이터가 원할 경우 동영상에 광고주가 원하는 광고를 붙이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크리에이터에게 지급합니다. 크리에이터는 이러한 수익을 기반으로 더 좋은 영상을 생산할 수 있게 되고, 좋은 영상을 소비하는 사용자들은 더욱더 큰 커뮤니티를 형성합니다. 크리에이터의 팬 커뮤니티는 광고주에게는 좋은 광고 대상이기 때문에 광고주가 직접 크리에이터의 영상 제작을 후원하기도 합니다. 유튜브는 크리에이터와 광고주 간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파트너십은 크리에이터가 100% 저작권을 소유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광고를 붙이기 원할 경우 유튜브가 광고를 붙여 주고 이 광고로 얻은 수익을 크리에이터에게 나누어 주는 제도입니다. 크리에이터에게 광고비를 지급하는 것이 유튜브만의 고유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튜브의 광고비 지급 모델이 다른 점은 저작권 보호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인데, 100% 저작권을 소유한 콘텐츠에만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실제 성공한 크리에이터의 사례를 보면 유튜브가 광고 수익 이상의 더 큰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유튜브는 소셜 미디어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에 성공한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확고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공한 크리에이터는 바로 유튜브 스타로 인정받고 텔레비전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들의 러브콜을 받게 됩니다. 온라인 미디어에서의 성공은 전통적인 미디어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둘째, 확고한 팬층이 있는 크리에이터들은 기업들에도 매우 큰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많은 기업들이 크리에이터와 직접 계약해 동영상에 대한 협찬을 진행하기도 하고, 크리에이터와 함께 광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예린이의 사례처럼, 이미 만들어진 영상을 기업 광고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셋째, 상품 판매(Merchandising) 역시 크리에이터가 가질 수 있는 큰 기회입니다. 크리에이터 중에서는 자신의 유튜브 브랜드를 잘 발전시켜 티셔츠 등을 만들어 직접 판매를 하는 상품 판매 사업으로 확장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유튜브에서 받는 수익보다 상품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큰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유튜브는 팬을 만들고 커뮤니티를 개발함으로써 직접적인 광고 수익 이외에도 다양한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소셜 플랫폼입니다.
유튜브의 ‘구독’은 커뮤니티 형성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입니다. 유튜브에서 동영상들을 모아 놓은 크리에이터의 홈페이지를 ‘채널’이라고 하는데, ‘구독’은 특정 채널에서 벌어지는 소식들을 자동으로 받겠다고 등록하는 것입니다. 구독이 되면 자연스럽게 그 채널을 만든 크리에이터나 다른 구독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커뮤니티에 참여하게 됩니다. 앞서 말한 Gen-C가 유튜브의 핵심층이라면 커뮤니티의 참여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유튜브의 트루뷰는, 사용자가 원할 경우 광고를 ‘건너뛰기’ 할 수 있는 광고 형태입니다. 사용자가 건너뛸 수 있기 때문에 광고 소재나 길이에 제한이 없어 유튜브 동영상을 그대로 광고 소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광고의 길이가 30초보다 짧을 경우는 광고를 끝까지 볼 경우에만 광고주는 광고비를 냅니다. 광고가 30초보다 길 경우에는 사용자가 30초까지 광고를 보아야 광고주는 광고비를 지급합니다. 광고를 30초 이상 본다는 것은 그 광고에 충분히 몰입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어 일반적인 광고와는 달리 경매 형식으로 판매되어 광고 단가가 그만큼 더 높더라도 매우 인기가 있습니다.
‘MCN’은 멀티채널 네트워크(Multi-Channel Networks)의 약자로 여러 개의 크리에이터 채널과 따로 계약을 맺은 유튜브 파트너 사들을 말합니다.
유튜브 생태계적 관점에서 MCN은 채널과 광고주들에게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MCN마다 모두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 영역을 다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다른 크리에이터와의 협업 프로젝트나 다양한 프로모션의 주선을 통해 채널의 프로모션을 지원합니다. 둘째, 일부 MCN은 세일즈 팀이 광고나 협찬 수익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크리에이터의 상품 판매를 대행하기도 합니다. 셋째, 유튜브 운영 모범사례들을 알려 주고 최적화된 서비스 운영을 위한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넷째, 제작에 직접 도움을 주는 스튜디오나 장비를 제공합니다.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는 MCN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직접 파트너 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MCN이 가진 다른 혜택들에 대해서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MCN에 따라 혜택이 상이하고 수익 배분율도 차이가 나므로, 채널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따져 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튜브에서 성공하는 3원칙
먼저, 동영상을 제작하고 채널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스스로 즐겨야 합니다. 동영상과 채널의 주제를 정할 때 두 번째 생각할 점은, 먼저 어떻게 사용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인가입니다. 이제 영상이 사람들 눈에 띄기 시작했다면, 남은 일은 영상을 보는 사람들을 내 팬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내 팬으로 만드는 지름길은 내 영상을 보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예린이 채널은 앞서도 여러 번 언급되었던 채널입니다. 이제 예린이뿐만 아니라 동생 예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가족사 채널을 가족들만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귀여운 어린아이들은 누구나 보고 싶어 하는 좋은 콘텐츠입니다.


저작권 준수 및 부정 클릭 방지 시스템
유튜브에는 ‘콘텐츠 ID 시스템(Content ID System)’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원저작권을 가진 기업이나 개인이 자신들이 만든 영상이나 음악 등을 유튜브 시스템에 올려두고 내 콘텐츠와 일치하는 음악이나 영상이 사용된 제3자의 영상이 발견되었을 때 원저작권들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해당 콘텐츠에 대한 통제권을 원저작자에게 부여하는 시스템입니다.
유튜브에서 콘텐츠 ID 시스템을 사용하는 음반 기획사가 해당 뮤직비디오와 일치하는 다른 사람이 올린 영상에 대해 ‘차단’ 설정을 해 놓았다면, 다른 사람이 올린 영상은 유튜브 내에서 볼 수 없게 됩니다. 반면, 뮤직비디오와 일치하는 다른 사람들이 올린 영상에 ‘수익화’ 설정을 해 놓았다면, 일치하는 영상에는 이 영상을 볼 때마다 광고가 붙고 그 수익은 모두 저작권자가 가지고 가게 됩니다.
영상 내에 내가 직접 부른 노래나 연주가 들어간 경우라도 해당 음악의 작사·작곡에 대한 저작권이 나에게 있지 않으면 작사자·작곡권자의 동의 없이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 위반이 되므로 유의해야 합니다.
저작권 위반 없이 음악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튜브가 공급하는 저작권이 해결된 음원을 사용하거나 저작권 무료 사이트 또는 저작권 해결 음원을 사용하거나 구입해야 합니다. 유튜브가 공급하는 음원은 www.youtube.com/audiolibrary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며, 저작권 무료 사이트에는 자멘도(www.jamendo.com)나 프리뮤직아카이브(www.freemusicarchive.org) 등이 있습니다.
동영상을 올리고 나면 내 동영상이 잘 나오는지 보기 위해 클릭하지 않을 수 없죠. 일반적으로 자신의 동영상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클릭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내 동영상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허위 부정 클릭을 하는 도구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는 부정 클릭 방지 시스템이 있어 사용자의 기록을 분석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부정 클릭을 잡아내는데, 허위 부정 클릭 사실이 판명되면 어떠한 사전 예고도 없이 계정 자체가 폐쇄되어 버립니다.


유튜브 광고와 수익 지급 방법
유튜브에서는 동영상의 앞, 뒤 혹은 중간에 나가는 영상 광고를 ‘인스트림(Instream) 광고’라고 합니다. 인스트림 광고는 [5초 후 건너뛰기] 버튼이 제공되는 ‘트루뷰 광고’와 건너뛰기가 되지 않는 ‘일반 인스트림 광고‘로 나뉩니다. 인스트림 광고는 일반적으로 15초 혹은 20초로 정해져 있는데, 동영상의 어느 위치에 붙는지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이름을 가집니다.
동영상이 재생되기 전에 붙으면 ‘프리롤(Preroll)’, 재생되고 나서 붙으면 ‘포스트롤(postroll)’, 영상 중간에 붙으면 ‘미드롤(midroll)’이라고 합니다.
배너 광고는 동영상이 재생되는 중에 동영상 위에 나타난다고 해서 ‘오버레이 인비디오(overlay invideo) 광고’라고 합니다. 광고 위의 버튼을 클릭하면 광고가 사라집니다.


조회 수와 평균 시청 시간
유튜브 조회 수는 동영상을 평가하는 데 매우 익숙한 잣대입니다. 하지만 유튜브의 내부 시스템에서 동영상을 평가할 때에는 조회 수보다는 ‘시청 시간’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시청 시간’은 유튜브 동영상을 본 절대시간의 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1,000번의 동일한 조회 수를 가진 A라는 동영상과 B라는 동영상이 있다고 했을 때, A 동영상의 전체 시청 시간이 1,000분이고 B 동영상이 2,000분이라면 조회 수에서는 A와 B가 차이가 없지만, 시청 시간으로 봤을 때 A보다는 B 동영상을 훨씬 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영상이 검색이나 추천 동영상으로 노출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제목, 설명, 태그 등을 바탕으로 연관성을 따지게 됩니다. 2차로 연관성이 비슷한 영상들 사이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선택한 영상을 먼저 노출시키게 됩니다. 사람들이 선택했다는 판단의 기준은 다양할 수 있지만, 시청 시간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결국 시청 시간이 긴 동영상이 더 많이 노출됩니다.
‘영상을 잘 만드는 것’이 창작과 아이디어의 영역이라면, ‘잘 노출시키는 것’은 운영과 경험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전자가 ‘평균 시간’을 늘리는 것이라면, 후자는 ‘조회 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조회 수(Views)’는 내 동영상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내 영상을 클릭해서 보기 시작할 때 형성됩니다. 즉 찾는 행위와 보려고 결정했을 때 클릭하는 두 가지 행동이 함께 일어나야 가능한데, 이 두 가지 행동을 ‘발견(Discovery)’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영상을 잘 만든다는 것은 영상의 질(Quality)이 높다거나 돈이 많이 투자되었다는 것과는 조금 차원이 다릅니다. 오히려 해당 영상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는가가 관건입니다.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재미를,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지식을 제공한다면 그 영상은 잘 만든 영상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용자들의 의도를 영상이 잘 반영하지 못하면 평균 시청 시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영상 노출을 결정하는 메타 정보 입력 노하우
‘동영상 메타 정보’란 동영상을 설명해 주는 문자 기반의 모든 정보를 의미합니다. 각각의 동영상에 붙어 있는 제목, 설명, 태그 정보가 메타 정보에 포함됩니다. 메타 정보는 동영상을 노출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유튜브 검색이나 추천 동영상은 이러한 메타 정보를 이용하여 연관성을 뽑고, 연관성이 비슷한 영상들 중에서 시청 시간 등의 정보를 이용하여 순위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영상 메타 정보를 잘 알고 활용하면 동영상 노출 빈도를 늘릴 수 있습니다.
설명(Description)은 비교적 많은 내용을 넣을 수 있지만, 실제로 유튜브에서 동영상이 재생될 때에는 상위 3줄 정도만 노출되고 나머지는 숨겨져 있습니다. 이 숨겨진 부분은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사용자가 클릭해야 나타납니다. 실제 보이는 부분이 많지 않더라도 설명글이 검색과 추천 동영상 선정 시 연관성을 찾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므로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해외에서도 해당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꼭 외국어로 된 설명을 추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외국어를 문장으로 입력하는 데 부담스럽다면 구글 번역 등을 이용하여 키워드만이라도 넣는다면 해외에서 검색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해외에 콘텐츠를 노출할 수 있다는 것이 유튜브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이므로 다양한 언어의 키워드를 포함시켜 도전해 보길 권장합니다.
유튜브의 동영상과 재생목록은 모두 고유의 URL(주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소는 길이가 길어서 메타 정보에 그대로 넣을 경우 보기에 산만하고 정보량도 많아져 불편합니다. 이럴 땐 주소 간략화 서비스인 ‘goo.gl’이나 ‘bit.ly’ 등을 이용하면 좋습니다. 주소 간략화 서비스는 편리성과 함께 얼마나 클릭이 되었는지 정보도 제공하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당 주소를 클릭했나 대략적인 규모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용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미리 보기 이미지 설정법
사용자들은 여러 영상 중에서 직관적으로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때 가장 큰 작용을 하는 것이 ‘미리 보기 이미지’입니다.
만약 미리 보기 이미지가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혐오감을 준다면, 더 나아가서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판단 경고를 받게 되고 미리 보기 이미지 기능을 사용할 수 없게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계정이 폐쇄될 수 있습니다. 미리 보기 이미지에 문제가 있을 경우 이를 발견한 사용자라면 누구라도 동영상 재생 화면 하단에 있는 깃발 아이콘을 눌러 신고할 수 있으므로, 선정적·폭력적·혐오적인 이미지를 올리는 행위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영상 편성 전략
유튜브에서의 ‘편성’ 개념은 동영상을 제작하고 유튜브에 공개할 때 정기적인 날짜를 정해서 공개하자는 시간 계획입니다. 사용자는 유튜브에서 언제라도 원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지만, 동영상을 유튜브에 최초로 올리는 시간은 크리에이터가 정할 수 있습니다.
동영상 편성 시점은 바로 공개 시점입니다. 실제 업로드를 해서 바로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면 유튜브의 ‘게시 예정’ 기능을 사용해서 업로드와 공개 시점을 다르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즉 업로드를 할 때에는 ‘비공개’로 설정한 후 ‘게시 예정’ 기능을 적용해 각각의 비디오를 계획된 스케줄에 맞추어 공개하는 것입니다.
‘게시 예정’ 기능을 사용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동영상이 비공개인 상태여야 이 기능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공개된 동영상의 공개 시점은 정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동영상 업로드는 항상 비공개로 하고 동영상의 문제가 없음을 파악한 후, 계획과 일정에 맞춰 ‘게시 예정’ 기능으로 공개일과 시간을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채널 브랜딩
미리 보기 이미지는 동영상 내용을 잘 전달하면서도 채널 브랜딩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미리 보기 이미지는 다른 어떤 브랜딩 매개체보다도 사용자들에게 훨씬 자주 노출됩니다. 검색 화면, 추천 동영상, 채널 등 동영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영상을 대표하기 위해 보이는 이미지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리 보기 이미지 내에서 브랜드를 잘 부각해야 합니다. 다만, 너무 브랜드만 강조하면 미리 보기 이미지가 갖는 본연의 기능이 흐려질 수 있으므로 해당 동영상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알려 주는 기능을 명확히 하는 것과 병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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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영상에 광고를 하는 것처럼 다른 영상에 내 광고를 올릴 수 있을까요? 답은 ˝그렇습니다.˝입니다. 광고는 크리에이터에게 수익을 가져오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나도 광고주가 되어 광고를 집행할 수 있습니다. 트루뷰 상품은 크리에이터의 동영상을 광고 영상으로 사용하여 다른 영상 앞에 노출시키고 사용자가 이 동영상 전체를 보거나 30초 이상 보게 되면 광고비를 지급하는 것입니다. 광고비가 지급되면 조회 수도 1로 잡히므로 광고와 동시에 조회 수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유튜브 유료 광고는 동영상용 구글 애드워즈를 통해 가능합니다.


생방송
유튜브는 동영상을 업로드하면 필요에 따라 사용자가 찾아보는 VOD(Video on Demand) 서비스로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생방송할 수 있는 실시간 생방송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생방송 준비에는 저작권에 대한 철저한 사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만약 생방송 중에 저작권이 없는 영상이나 음악이 삽입된 경우, 유튜브 자체적인 콘텐츠 ID 기술을 통해 이를 식별하고 저작권 위반으로 판단되면 생방송이 중단되고, 이러한 중단이 3회 누적되면 6개월간 생방송이 금지됩니다.


기업 비즈니스 활용
음악 기획사나 유통사들에게 유튜브는 뮤직비디오를 세계 시장에 홍보하기 위한 곳일 뿐 아니라,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통한 수익 창출원으로서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의 콘텐츠 ID 기술은 비디오 ID 기술과 오디오 ID 기술로 나뉘는데, 비디오 ID 기술은 저작권의 영상을 올려놓고 저작권자가 아닌 사람에 해당 영상의 일부라도 사용된 영상을 올리면 이를 시스템에서 잡아낸 후 통제권을 저작권자에게 부여하게 됩니다. 통제권을 부여받은 저작권자는 잡아낸 영상에 대해 광고를 붙여 수익을 가져오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못 보게 차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음원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음악 기획사나 유통사의 경우, 오디오 ID 기술을 사용하여 그 음원을 유튜브 시스템에 올려놓으면 그 음원이 사용된 영상들을 찾아내고 그 통제권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영상 권한과 마찬가지로 해당 음원이 사용된 영상에 광고를 붙여 가져올 수도 있으며, 그 음원이 사용된 영상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음악 저작권을 보유하고 차단한 경우는 그 영상의 음성부분 트랙이 모두 소거되지만 영상 부분은 재생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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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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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병이 몸을 괴롭히는 중에도, 행복한 게 사는 것에 집중하는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의 생각이 존경스럽다(유튜브에서 인터뷰 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파킨슨병이라는 주어진 환경에서 병을 원망하며 절망 속에 살 것인지, 그 속에서도 행복하기로 결심하고 행복을 찾을 것인지…. 환자가 아닌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입장을 모르는 말이라고 했을 수도 있겠다.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남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사지 멀쩡한 나를 더욱 반성케 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실화 기반의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도 한 번 시청해보길 바란다.
별점: ★★★★☆

—————————

프롤로그
파킨슨병은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고, 몸이 굳는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그래서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심지어 글씨를 쓰고 얼굴 표정을 짓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보통 파킨슨병에 걸리고 15년이 지나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치매와 우울증, 사고력 저하 등을 동반하는데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그저 약으로 병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불치병이라는 소리다.
그렇다고 24시간 내내 아픈 건 아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반드시 덜 아픈 시간이 있고, 약을 먹어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있다.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고통을 견뎌 낸다. 그래서 그 시간이 되면 운동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딸을 위한 떡볶이도 만들면서 내 일상을 즐긴다. 아마도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나기도 하고 더 큰일을 당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나는 그대로인데,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내 미래가 불확실하고 현재가 조금 불편해진 것밖에 없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내가 왜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망치고 있는 거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도파민 작용제는 보통 치료 효과가 3년 가는데 나는 그 약으로 12년을 버텼다.
레보도파 약효의 지속 시간이 세 시간밖에 안 되어 하루의 반 정도는 누워서 약 먹을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려야 했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하룻밤에도 옷을 세 번 정도 갈아입어야 했다. 게다가 약 기운이 떨어지면 자율신경계가 깨져서 심박동수가 120을 넘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돌아눕기도 힘들고, 이불이 무겁게 느껴져서 발로 차 내려고 해도 다리가 뻣뻣해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다리를 1센티미터 옆으로 옮기는 것조차 내 맘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파킨슨병 환자들의 경우 소변이 금방 마려워 화장실에 자주 가는데 밤에도 예외는 아니다. 겨우 눈을 붙였는데 소변이 마려워 잠을 깨고 화장실에 갔다 오면 한두 시간 잠들었다가 다시 화장실에 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본 뒤에는 어쩔 수 없이 약을 미리 먹었다. 하루 세 번 정량을 지키지 않고 더 먹으면 부작용이 따르지만 그날은 방법이 없었다.
한 발짝 떼는 것으로도 안 되어 기어 다녀야 할 때, 혹은 기어 다닐 수도 없어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할 때 그 고통을 견디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특히나 가족들이 모두 잠든 후 새벽녘에 아파서 자지도 못한 채 그 고통을 참아야 할 때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 조금은 덜 아픈 시간이 분명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고통이 조금 수그러드는 시간을 기다리고, 약을 먹어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픔이 덜해 움직일 수 있거나 약 기운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는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래서 나에게 기다림은 언젠가부터 희망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되고 싶다. 이대로 포기해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인생이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나기도 하고 더 큰일을 당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만약 대학 병원에 남았다면 주어진 길에 내가 맞춰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대학 병원에서 떨어진 게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나는 최선이 아닌 차선의 길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했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는데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니 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영화 ‘슈퍼맨’에서 주인공을 맡은 크리스토퍼 리브는 당시 신인 배우였지만 영화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그런데 마흔두 살에 그는 자신의 애마를 타고 장애물 넘기를 하다 그만 말에서 떨어지면서 목뼈를 다쳤다. 경추 2번을 다친 그는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사지 마비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술을 받고 재활 치료에 들어가서는 발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휠체어에 몸을 꽁꽁 묶고 발가락으로 휠체어를 조절하면서 왕성한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휠체어에 앉은 채 영화감독을 하기도 했고 1998년 영화 ‘이창’에 출연하여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 연기를 해 내기도 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삶을 헤쳐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며,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겁니다. 내 경우엔 운 좋게도 뇌를 다치지 않아서 여전히 머리를 쓸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내가 파킨슨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의 말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병에 걸리고 난 뒤 나는 그의 말을 계속 곱씹게 되었다.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도 나는 가진 게 많다. 그래서 감사한 일도 너무나 많다. 어쩌면 이 복잡한 세상에서 내가 별 사고 없이 살아온 것 자체가 감사하고 다행한 일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기적이 별 게 아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기적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환자들이 나보고 그랬다. 달라졌다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한결 편안해 보이고 표정도 부드러워졌는데 도대체 그 비결이 뭐냐고. 그러면 나는 웃으며 말한다. “제 병이 제 스승이지요.” 파킨슨병을 앓으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힘이 조금은 커진 것 같다.
사람들이 나의 병에 대해 알고 나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먼저 웃으며 그런다. “제가요. 옛날에는 가진 거라곤 돈하고 미모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나이가 드니까 병하고 빚밖에 안 남았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을 풀고 나를 대하는 걸 불편해하지 않는다. 내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나는 병자다’라며 늘 우울하게 살기는 싫다. 나는 여전히 농담을 즐기고, 사람들과 웃으며 살고 싶다.
유머를 던지고 나면 내 병이 가볍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아진다. 유머가 병의 무게를 줄여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가족 중의 한 명이 병에 걸려 내가 돌봐야 할 상황이라면 어떨까.
만일 그가 남은 가족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스스로 생을 정리해 버린다면 나는 그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한편, 남은 가족에 대한 배려 없이 극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을 한 그를 두고두고 원망할 것이다. 또 고통을 이겨 낼 자신감을 상실하고 고통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즉 가족을 위한다는 결정이 가족들에게 무기력감과 죄책감 그리고 분노와 같은 무거운 짐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을 편하게 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은 실은 혼자서만 고통을 피하려는 이기적인 선택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나는 가족들에게 유쾌한 짐이 되자.’
무엇보다 내가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만 빠져 있으면 내가 불행한 것은 물론이요, 지켜보는 가족들도 불행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내 병을 한탄하는 대신 꿋꿋하게 병을 이겨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리고 아이들에게 너희가 옆에 있어 줘서 내가 참 행복하고 내 병을 더 잘 이겨 나갈 수 있다고 알려 준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내딛는다는 것
어떤 것을 이루는 과정에는 견디고 버텨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버티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일의 의미와 절박성을 깨닫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하며 결국은 살아남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러므로 버티어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60점 이상이면 통과인데, 하나도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과 ‘60점만 넘으면 되지 뭐’ 하는 사람의 준비 과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60점만 넘으면 똑같이 필기시험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된다며 불안에 떨면서 시험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준비해도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다.
인생은 때로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때론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도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시 인생의 키를 잡고 노력을 하다 보면 그 결과물을 받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 비록 그것이 내가 애초에 바라던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세상에는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참 많다. 회사에 갈 때 즐겁고 재미있으면 입장료를 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입장료를 내는 대신 오히려 월급을 받는다. 그 대가로 우리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가족들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 회사에 다니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일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일에 질질 끌려다니는 피해자가 되고 만다. 하지만 ‘내가 해 주는 거다’라고 마음먹고 하기 싫은 일을 빨리 해치우면 나머지 시간에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원하는 여행을 갈 수 있고, 원하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다.

변했지만 몰랐던 것들에서부터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어릴 적 상처까지, 쌓인 이야기는 많았고 서로에게 하고픈 이야기도 많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사랑하니까 저 사람은 분명 내가 얘기 안 해도 알 거야’라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아무리 사랑해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나에 대해 자꾸 알려 주어야 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이 차가운 지구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된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 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손잡아 주면 비록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더라도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정신 치료에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No comment is better than any comment.” 굳이 풀자면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들어 주는 것이 그 어떤 말을 해 주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그 어떤 순간에도 삶을 즐겨라. ‘~해야 한다’는 말을 줄이고,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 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 당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꿈을 꾸고, 꿈을 수정해 또 다른 꿈을 꾸던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천체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고 싶었던 내 꿈은 밤하늘을 사랑하게 만들었고, 후세에 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내 꿈은 전공의를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해 주었으며, 세상을 물감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던 꿈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려 그것을 문자로 보내는 취미를 갖게 해 주었다. 그렇게 꿈은 내 인생을 지루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고, 난 지치지 않는 호기심으로 세상을 기웃거리며 수많은 발견과 만남으로 내 인생을 장식했다.

나는 의사와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30여 년 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 남들에게는 건강과 휴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해 왔지만 정작 나는 늘 너무 바빴고 시간은 부족했다. 그래서 돌봄이 필요한 몸을 노예 부리듯 혹사시켰다. 일하느라 밥을 거르기 일쑤였고 때로는 잠까지 줄였다. 몸을 마치 뇌를 쓰고 활동하기 위한 도구처럼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쉬지 않고 계속 무리하면서도 나는 끄떡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몸이 상하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과거의 나처럼 ˝바쁘다˝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면 왠지 더 안타깝다. 몸도 기계처럼 과하게 쓰면 고장이 나니까 몸을 아껴 쓰라고 해 봐야 그들은 말을 안 들을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몸도 뇌도 때론 쉬어야 한다. 잠시 멈추어 선 시간에 우리는 그동안 경험한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해야 할 일들 가운데 못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는데 그래도 괜찮다.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잡지에 들어갈 원고를 쓸 테고, 다른 사람이 나 대신 강의를 할 것이다. 꼭 내가 안 해도 되는 것들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생은 흘러가게 되어 있어요. 당신이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당신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시각 말고,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것부터 결정하세요.”
살다 보면 남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럴 때 독립적인 사람은 당당하게 도움을 청한다. 또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도움을 준다. 타인의 도움은 잠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자신의 일을 주관하는 사람은 자기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와 달라고 했다가 자칫 인생의 주도권마저 타인에게 내줘야 할까 봐 두려워하는 이는 선뜻 타인에게 도와 달라고 하지 못한다. 그럴 경우 그것은 독립이 아니라 고립이 되어 버린다.

신경 쓸 사람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이 그냥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되니까 재미있었다. ‘이래서 혼자 여행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저녁 무렵 어느 성의 망루에 올라 석양을 보고 있을 때였다. 아름답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 “아 참 좋다! 그치?” 했는데 그에 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맞다, 내가 혼자 온 거지.’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그 순간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다.
모든 이별은 마치 처음 맞이하는 이별처럼 낯설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어린 새색시가 갓난아기를 안고 쩔쩔매듯이 매번 이별을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몰라 쩔쩔매게 된다.


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
“좋은 치료자 백 명보다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만나는 게 낫다.” 정신과 의사들끼리 자주 하는 말이다. 우스갯소리냐고? 결코 그렇지 않아.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훨씬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단다. 감추고만 싶던 나의 약점과 단점을 알고도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받아들여 준다고 생각해 보렴.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긍정적인 확신을 갖게 되지 않겠니.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무엇이든 시도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적응해야 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적응은 곧 성장하고 발달해 나간다는 의미다. 그러니 아들아, 딸아. 너희에게 찾아온 성장의 기회를 차 버리지 말아라. 훗날 적응하려고 애쓴 노력이 너희 삶의 레퍼토리를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음을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딸아, 좋아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아끼고 쓰다듬지 않고 멋대로 던지면, 그릇처럼 다 깨져 버리니까. 그리고 한 번 깨어진 그릇은 다시 붙이기도 어렵단다.
많은 부부들이 익숙하다는 이유로, 다 안다는 이유로 서로를 함부로 대한다. 그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운 뒤에 뒤돌아 자 버리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상대의 욕구를 무시하는 거야. 하지만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던 비밀스러운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것이 무시당했을 때 그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이렇게 쌓인 분노는 섹스의 거부로 이어지기 쉽고, 부부 갈등의 골은 매우 깊어지고 말지.
섹스란 두 사람이 나누는 신체적 대화다. 이것은 말로는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환상과 욕망을 나누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대화다. 그리고 이 대화를 통해 부부는 서로의 몸뿐 아니라 영혼에 더욱 밀접해진단다. 그러므로 섹스를 포기한다는 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기쁨을 포기하는 것이자 부부만이 나눌 수 있는 강력한 유대감을 내팽개치는 일이야. 그러니 딸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 들어가면서 불꽃같던 열정이 사그라지는 것 같은 날엔 엄마의 말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섹스는 인간에게 주어진 그리고 인간이 즐겨야 할 귀중한 생의 선물이란 것을.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를 가진 사람은 있지. 그러므로 결혼을 결심할 때 그 사람의 문제를 고쳐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그 문제를 네가 받아들이고 용납할 수 있는지부터 먼저 생각해 보렴.


삶과 연애하라
나이 든다는 것은 상실의 연속이다. 건강을 잃고, 직업을 잃고, 경제적인 능력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과정이다. 여러 가지 상실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아마도 자존감의 상실일 것이다. 사회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고, 더 이상 맡아야 할 역할이 없어진다는 것은 노인들에게 큰 상처를 준다. 그런데 이러한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되찾고자 욕심을 부리게 된다. 조그만 일에도 무시당하는 것 같아 버럭 화를 내고, 버릇없다며 아랫사람들을 야단치기 일쑤고, 세상이 노인을 우습게 알고 공경할 줄 모른다고 불평이 많아진다. 그렇게 스스로를 젊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기에 더 어려운 사람으로 만들고 만다.
노인은 젊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젊음을 그 안에 간직하고 있다. 노인은 그가 살아왔던 길과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을 온몸으로 보여 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경험하고 그 풍경들을 기억하고 있으면서, 그 기억들이 몸으로 배어 나와 사계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이것은 나이 든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공부는 하면 할수록 너무도 흥미로웠다. “와, 재미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동안 그렇게 답답하고 화가 났던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었고 그 해답은 공부에 있었다. 공부를 통해 종잡을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알게 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니,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 나가고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도 좀 더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들은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당신도 한 번쯤은 공부에 미쳐 보았으면 좋겠다.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내면의 호기심이 발동된 공부의 즐거움을 느껴 보았으면 한다.
중국의 현자가 물었다. “학문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렇게 답했다. “사람을 아는 일이다.”
또다시 질문했다. “선(善)은 무엇입니까?” 현자가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삶이 힘들고 어렵고 좀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어느 때나 즐길 거리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즐길 거리가 다양한 사람일수록 불가피한 불운과 불행 또한 잘 버틸 수 있다.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삶을 살아 보면, 연애하는 마음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진다면, 세상은 당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당신이 그 세상을 보고 감탄한다면 무의미한 오늘이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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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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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제도, 봉건 제도, 농노 제도 > 자본 주의 > 경제 자본, 금융 자본 > 소비 사회, 계획적 구식화, 생산량 증가 > 원자재, 에너지 낭비, 쓰레기 증가, 낮음 임금, 많은 판매, 환경 오염, 잉여 가치 공유하지 않음, 불평등한 세금, 빚, 불평등 거래 > 세계 시장 자유 확대, 소수 자본주의자들에게 이익 돌아감, 빈곤 증가. 결국 부를 축적하려는 이기주의가 빈곤을 증가시킨다.

별점: ★★★★☆

1/ 자본자의가 불러온 재앙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생산 방식은 무수히 많은 범죄를 낳았단다. 또한 날마다 수만 명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인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의학이 벌써 오래전에 정복한 전염병들이 돌아오는 바람에 이들이 대량으로 목숨을 잃는 현실에도 책임이 있어. 이것뿐만 아니라 환경 파괴, 토양과 해양 오염, 숲의 파괴 등도 모두 자본주의 생산 방식이 가져온 재앙이란다.

현재 우리의 허약한 지구엔 76억 명이 살고 있는데(2017년 12월 기준-옮긴이), 그중에서 약 48억 명은 소위 ‘남반구’로 상징되는 가난한 나라들에 거주하고 있고, 그들 가운데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만도 수억 명에 이른단다.
세계에서 10억 명 가량은(세계은행은 이들을 ‘극빈자extrêmement pauvres’라고 부른단다)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산다고 봐야 해.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사란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고작 10년 동안 세계 총생산은 2배 증가했고, 세계 무역량은 3배 증가했어. 한편 에너지 소비는 평균적으로 4년마다 2배씩 증가하지. 새 천년이 시작된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는 물자의 풍족함을 누리고 있어.
인간의 노동과 재능, 천재성은 공동의 선, 즉 우리 모두의 공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되어야 마땅하지. 소수의 안락과 호사, 권력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말이야.

2/ 수백 년 묵은 투쟁의 역사
‘자본주의 Capitalisme’라는 용어는 라틴어에서 ‘머리’를 뜻하는 단어 ‘caput’에서 유래했지. 원래 라틴어의 이 말은 경제 분야에서 가축의 머리를 가리켰어. 거기에서 파생된 ‘자본 capital’이라는 말은 12~13세기에 처음 선보였는데, 원금이나 투자금처럼 효율적으로 운용해서 이익을 만들어내야 할 종잣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단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했지만, 이 말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통용되기 시작했어.
“일부에 의한, 타인을 배제한, 독점적인 자본의 전유”라는 뜻으로.
‘수입의 원천으로서의 자본이 일반적으로 노동을 통해 그것을 생산한 자들에게 속하지 않도록 조직된 경제적, 사회적 체제’라는 의미로.
그러니까 ‘자본주의’라는 말은 2가지 근본 개념과 연관 지어 파악되어야 한다는 게야. 하나는 돈의 총체로서의 ‘자본’,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노동자들이 희생한 대가로 부자가 되어가는 ‘자본 관리자’ 혹은 사회적 주체로서의 ‘자본주의자’라는 개념 말이지.
수천 년 전부터 벌써 땅이나 생산 도구, 물길, 근사한 궁궐, 이동 수단, 값비싼 식재료, 금·은 식기, 호사스러운 옷과 보석 등의 재물을 많이 가진 부자들이 있었단다. 그리고 부자들에게는 권력도 함께 주어졌지. 이 부자들은 먼 옛날에도 자기들을 대신해서 일을 하고 자기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들을 소유할 수 있었어.
자유라고는 전혀 없는 이런 남자, 여자, 아이 들은 상품처럼 사고팔 수 있는 존재였어. 이 ‘노예들’을 소유한 주인은 그들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도 가졌지. 이와 같은 오래된 사회적 생산 체제를 ‘노예 제도’라고 부른단다. 고대에는 노예 제도가 널리 퍼져 있었어.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중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경제적·사회적 체제가 점차 자리를 잡았어. 바로 ‘봉건 제도’라고 하는 체제였단다. 봉건 제도는 한마디로 토지(봉토 fief)의 소유를 토대로 그 위에 복잡한 관계망을 결합했다고 보면 되는데, 그 관계망이라는 게 말이지…. 우선 군주(황제, 왕, 제후 등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광대한 토지를 가진 사람들), 다음으로 지역 소유주와 영주, 그들의 봉신(이들은 동시에 자기들보다 지위가 낮은 자들에게는 봉건 영주가 되기도 한단다), 그리고 그 땅에 사는 백성들로 이어지는 굉장히 철저한 위계질서에 따른 관계였어. 땅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 즉 ‘농노 serf’는 ‘농노 신분 servage’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야말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었지. 비록 그들도 신의 아들딸(기독교 신앙을 공유한 형제자매)로서 몇몇 권리는 인정받았지만 말이야.
농노들은 땅에 매여 있으면서 그 땅의 주인을 위해 일을 해야 했어. 그 대신 땅 주인은 그들을 보호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고. 노예 제도와 봉건 제도의 차이는 농노의 법적 지위에 있단다. 농노는 노예와 달리 물건 취급은 받지 않았다는 말이야. 법적으로 인격을 인정받았으니까.
봉토는 자유로운 인간들, 즉 봉신들이 제공하는 의무와 섬김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망의 중추신경이란다. 여기서 의무와 섬김이란 주로 영주의 땅을 방어하거나 영주의 이름으로 다른 땅을 정복하는 군사적인 의무를 말하고, 간혹 영주에게 이득이 되는 조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어.
도시에서는 봉건 제도와 농노 제도에 대항하여 새로운 형태의 생산 방식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자본주의 방식이었던 게야.
마르크스는 이 새로운 방식이 나타난 시기는 16세기이고 그것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는 18세기 말, 즉 몇몇 기술혁명과 노동의 기계화가 이루어지며 ‘부르주아 bourgeois’라고 하는 새로운 사회 계층이 눈에 띄게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시기라고 콕 집어서 말하지.
12~13세기에 걸쳐 땅보다 연장의 소유가 점점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거든. 그리고 연장을 가진 새로운 사회 계급, 즉 ‘도시 부르주아’가 출현했고 이들은 봉건 영주들에게 대항하는 새로운 권력을 쥐게 되었어.
‘노동 수입’ 또는 ‘근로 소득’이란 노동자들의 경우 급여를 말하고, 자유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나 자신의 회사가 벌어들인 돈을 가리킨단다. 한편, ‘자본 소득’, 즉 자본이 벌어들인 수입엔 여러 종류가 있지. 돈을 빌려주고 얻는 이자, 땅에서 나오는 지대, 부동산 임대를 통한 월세, 특허권 사용료, 각종 인허가, 상표권, 기업이 주주들에게 배당금 형태로 나눠주는 이윤 같은 것이 모두 여기에 해당되는 거지. 잉여 가치는 자본가가 벌어들인 수입에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어. 잉여 가치는 그가 생산 또는 판매를 위해 투자한 것과 벌어들인 것 사이의 차이를 말하니까.
지난 3세기 동안 라틴아메리카 인디언들, 그것도 대부분 네 나이 또래의 어린 사람들 수백만 명이 광산에서 죽었단다. 스페인 국왕이 그처럼 경이로운 건축물을 짓는 데 이들이 희생된 거지
덕분에 스페인은 이곳에서 3세기 동안 은 광석 4만 톤을 캐냈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마라, 케추아, 모소, 과라니 족에 속하는 인디언 4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어. 정해진 양만큼의 은 광석을 캐내지 못한 광부는 지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거든.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만 그런 건 아니었어. 프랑스의 지배 계급들도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지. 잔혹함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자본의 원시 축적’ 방식도 이베리아반도 사람들(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 혹은 영국 사람들 방식에 못지않았지. 너도 파리의 대로변에 늘어선 우아한 부르주아 건물들이며 교각, 웅장한 기념물들을 봤지? 마르세유의 카네비에르 Canebière 대로나 가론 Garonne 강변에 위치한 보르도의 호화 저택들도 봤고? 그것들도 다 대서양 건너 대륙에 살던 사람들의 피땀과 절망, 고통의 대가로 지어진 것들이란다.

3/ 사유재산권이라는 중대한 실수
프랑스 대혁명은 말이다, 18세기 유럽에서 부르주아 자본가들이 거둔 정치적, 이념적, 경제적 승리라고 할 수 있어. 부르주아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사회 변혁을 일으키는 힘이 분출될 수 있도록 이 혁명이 물꼬를 터준 셈이지. 그 결과 새로운 정치 체제가 나타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들이 정비되었으며, 부르주아 계층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생겨나 이것이 모두에게 강요되기에 이르렀지.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중심엔 사유재산권이 있단다.
사유재산, 그리고 사유재산의 절대적인 보호는 집단의 이익을 희생할 뿐 아니라 문제의 핵심이자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자본주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많은 혁명주의자들은 장 자크 루소의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았어. 그라쿠스 바뵈프 Gracchus Babeuf, 자크 루 Jacques Roux를 비롯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혁명으로 득을 본 자들을 비판하면서, 로베스피에르에게 격하게 반기를 들었지. 이들은 사유재산권 폐지, 토지와 생산 수단의 집단 소유를 주장했어.
그 뒤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서 이어진 모든 정치 체제는 자본주의자들의 지배를 확인해주었단다.

4/ 아이들이 광산으로 떠나는 이유
‘독점화’는 하나의 경제에서 사용 가능한 자본을 누군가가 독차지하는 걸 뜻하지. 말하자면 경쟁을 없애버리고 혼자서 특정 상품을 만들어서 그 상품의 가격을 책정하는 거야. 그리고 ‘다국적화’는 그 같은 독점이 전 지구적으로, 그러니까 특정한 한 나라만이 아니라 국경에 무관하게 여러 나라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는 뜻이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를 지배하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이 생겨나는 데 ‘우호적인 상황’을 만들어준 두 번째 사건이 뭐냐면, 인간의 창의성 덕분에 쉼 없이 진행된 기술혁명이지. 특히 20세기 서양의 전자, 정보, 천체물리, 통신 분야에서 말이다.
자본은 편의상 내가 앞서 설명한 ‘경제 자본’과 ‘금융 자본’으로 구분하거든. 민간 다국적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수백억 유로 혹은 달러는 금융 자본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특이한 자본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면서 다른 모든 형태의 자본들 위에 군림한단다. 이 자본은 실제적인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해서 얻은 자산이 아니라 엄격하게 금융 자산으로 분리되지.
금융 자산은 말하자면 거래소를 거처로 삼는 자산이란다.
거래소는 아닌 게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상품, 원자재, 화폐, 증권 등의 자산을 교환하고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요컨대 사업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정착시킨 제도지. 거래소의 트레이더들은 금융 시장의 중개인이라고 보면 된단다.
회사를 세우기 위해서 혹은 이미 세운 회사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사업가는 투자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그들은 그 대가로 주식을 받는 거야. 자기 회사가 거래소에 등록을 하면 주식의 가치는 주식 시장의 판도에 따르게 되는 거지. 매 순간 도쿄, 뉴욕 혹은 다른 곳에 있는 거래소 트레이더들에 의해 결정된 주가는 회사 경영자의 결정을 좌우할 뿐 아니라 경영자 개인의 경력도 좌지우지한단다.
회사를 세우기 위해서 혹은 이미 세운 회사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사업가는 투자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그들은 그 대가로 주식을 받는 거야. 자기 회사가 거래소에 등록을 하면 주식의 가치는 주식 시장의 판도에 따르게 되는 거지. 매 순간 도쿄, 뉴욕 혹은 다른 곳에 있는 거래소 트레이더들에 의해 결정된 주가는 회사 경영자의 결정을 좌우할 뿐 아니라 경영자 개인의 경력도 좌지우지한단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채굴된 광물의 이력 추적을 가능하게 하는 법률안을 미국 의회에 제출했단다. 오바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러한 ‘갈등 유발 광물 conflict-minerals’은 북아메리카 시장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거지.
대다수의 광석들은 녹일 수가 있거든. 다른 합법적인 광물들과 혼합될 수 있다는 말이지. 게다가, 엄청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광산계의 거물들이 대대적으로 나서서 오바마의 법률안이 폐기되도록 똘똘 뭉쳤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광산 재벌인 글렌코어는 지주회사, 그러니까 모든 이익 센터의 상부에 군림하는 회사를 스위스의 추크 Zoug 주에 등록했어. 그런데 이 조세 피난처에서는 지주회사의 연간 과세 부담이 실제 매출액의 0.2퍼센트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글렌코어제국의 해도 절대 지지 않는다고 해야겠지….
오바마에 이어서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른 도널드 트럼프가 광산 거인들 앞에 납작 엎드렸다는 말이지. 그가 그런 회사들을 방해하던 성가신 법을 없애버렸어.

5/ 풍요의 경제 뒤, 어두운 이면
자본주의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자본의 축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그래서 지속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려면, 항상 더 많은 양의, 더 다양화된, 더 경쟁력 있고 혁신적인 생산이 필요했어. 그러려면 생산 리듬의 가속화가 필수적이었지. 그 결과, 소비 사회는 그 사회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위해 ‘풍요’라고 하는 것을 창출해냈어. 소비 사회가 섬기는 여신이란 다름 아니라 상품들이지. 소비자들은 상품에게 영혼을 파는 셈이야.
소비 사회는 아주 간단한 몇 가지 원칙에 입각해서 세워졌단다. 구성원들은 사도록, 다시 말해서 소비하도록, 산 것을 버리고 또다시 최대한 많은 양의 상품을 사들이도록, 필요하지 않아도 자꾸 새로운 상품을 사도록 부추김을 받는 거야. 그러자니 그 상품들은 애초부터 짧은 기간 동안만 사용 가능하도록 기획되었고.
이렇게 교체 리듬이 가속화되도록 고의로 물건의 수명을 단축하는 것을 흔히 ‘계획적 구식화’라고들 한단다. 일부 제조업자들은 자기들이 생산해내는 제품의 내구성 또는 지속성을 줄임으로써 더 많은 물건을 유통하기 위해 별의별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다 동원한단다.
불행하게도 이 같은 풍요의 경제엔 어두운 이면이 있게 마련이야. 물건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자재와 에너지 낭비, 풍요로의 접근성에서 나타나는 불평등, 쓰레기 처리,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소비로 인한 인류 정신의 붕괴, 소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수입을 유지하는 데 따르는 사회 불안, 물건이 평가절하되고 더 나아가서 유용성마저 사라지는 현상 등이 여기에 해당되겠지. 그리고 이 지구에 사는 주민의 4분의 3은 이와 같은 풍요를 전혀 누릴 수 없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지.
네가 입고 있는 옷을 만든 어린 봉제공들은 영양실조와 빈곤에 시달릴 뿐 아니라, 그들의 일터인 고층 콘크리트 병영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까닭에 붕괴되는 경우도 있지.
노동자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낮은 임금을 지불하면서, 돈 많은 부자 나라들의 시장을 선점해서 싼값으로 최대한 많은 물건들을 파는 것. 그게 자본주의자들이 바라는 거야. 그런 방식이 제일 잘 통하는 분야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의류, 완구, 휴대전화 등일 거야.
자본주의자들은 아주 체계적으로 지구를 파괴하고 있단다. 네가 군도의 어느 귀퉁이에 살건 각종 오염이 너를 죽일 수 있어. 죽이지는 않더라도 병들게는 할 수 있지. 많은 대도시의 공기는 이미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거든. 우리 호흡기를 공격해 암을 일으키는 독성 물질로 가득 찼으니까. 물도 마찬가지야. 오염된 상수원, 지하수, 강물 때문에 수백만 명이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수질 오염 또는 불충분한 하수 처리는 제3세계만의 문제가 아니야….
2017년, 국제 학술조사 위원회에서는 지난 30년 동안 땅속이나 대기 중에 사는 곤충의 수가 80퍼센트 이상 줄어들었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내놓았어.
아마도 자본주의적 농업 경영 방식, 살충제 남용, 최대 이익 추구, 죽음을 초래할 정도로 마구 쏟아붓는 화학 비료 사용 등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6/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불평등이야말로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자양분이 되어주거든. 자본주의 생산 방식은 날이 갈수록 부자들의 자유는 눈에 띄게 확대해주는 반면, 가난한 자들의 자유는 그에 비례해서 극적으로 축소해버린단다. 불평등뿐만 아니라 생산물의 잉여 가치를 공유하지 않고, 재분배하지 않는 데서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기막힌 효율성이 태어나는 법이니까. 자본주의 생산 방식이란, 지극히 폐쇄적이면서 피해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만의 경제 전략을 밀고 나간단다.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해로운 불평등 가운데 하나가 세금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어찌 된 일인지 무지무지 부자인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 내키는 대로 세금을 내는 것 같아 보이거든. 그 어느 주권국가의 세무 담당 관리도 그들에게는 강제력을 행사하지 못하니까 말이야. 카리브해 연안이나 태평양 연안, 혹은 그 외 세계 곳곳에 적지 않은 조세 천국이 존재하는 걸 보면 자연히 그런 절망감이 들게 마련이지.

7/ 빚더미 위의 검은 아프리카
빚이야말로 이 세상의 식인적인 체제와 모든 세계화된 소수 금융 자본 지배자들의 세력을 공고히 해주는 결정적인 무기라는 사실 말이다!
탈식민지화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후 몇 년 동안,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기구들은 제3세계 국가들에게 대대적으로 돈을 빌려주었지. 서구 자본주의 방식으로 자기 나라를 산업화하고 국가 인프라를 개발하라는 취지에서였어. 식민 국가들은 사라졌지만, 과거 식민 제국을 일구었던 나라들은 과거의 식민지에 널려 있는 부를 계속해서 착취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그곳에 자기들을 위한 시장을 열고자 했어. 일부 독재 정권들은 이러한 빌린 자금을 이용해서 무기 구입에 열을 올리고 전쟁을 일으키는가 하면,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해서는 가혹한 억압 수단의 사용도 주저하지 않았지.
빚을 얻어 쓴 가난한 나라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 혈관 압박기 때문에 질식하게 되면, 다시 말해서 빚을 진 은행들에게 원리금 상환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나라는 지불 유예를 신청하게 된단다. 지불 유예 신청이란 채무자가 당장 상환을 할 능력이 없으니, 빚을 갚아야 하는 마감 기간을 연장해주거나 빚의 일부를 탕감해달라고 요청하는 거야.
그러면 채권자 은행은 이런 상황을 이용하지. 말하자면 채무자의 요청을 부분적으로 수락해주면서 여기에 가혹한 조건을 다는 거야. 가령 몇 개 되지도 않는 수익 기업, 광산, 통신 같은 공공 서비스를 민영화하거나 해외에 판다는 조건 같은 것을 붙인단 말이지. 해외에 판다는 건 곧 채권자들에게 넘긴다는 말이나 마찬가지고.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서 활동 중인 거대 민간 다국적 기업들에게 어마어마한 금융 특혜를 허가해주라거나, 강제로 채권 국가들의 무기를 구입하여 민간인 군대를 양성하라는 식의 조건이 따라붙기도 하지.
오늘날엔 빚을 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국가 간 거래의 불평등에 있다고 봐야 한단다. 채무 국가들은 상당수가 원자재, 특히 면화나 커피, 사탕수수, 땅콩, 카카오 같은 농산품을 생산하는 나라들이지. 그리고 이들은 공산품, 가령 기계며 트럭, 의약품, 시멘트 같은 물품들을 수입해야 하는 입장이야. 그런데 세계 시장에서 지난 수십 년 사이에 공업 제품의 가격은 거의 6배나 뛰어오른 반면 농업 원자재 가격은 끊임없이 하락을 거듭했어. 커피나 사탕수수 같은 일부 생산물의 가격은 완전히 폭락했다고 봐야지. 이렇게 되니까 파산을 막기 위해서 채무 국가들은 또다시 빚을 얻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거란다.
그 나라들 가운데 더러는 정기적으로 채무 변제 불가능 국가가 된단다. 채권자인 대형 은행들에게 원리금 상환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는 말이지. 그럴 경우 파산 상태의 나라가 “나는 더 이상 지불할 능력이 없으니 내 빚을 줄여줄 협상을 합시다”라고 말하지. 그러면 경우에 따라서 채권 은행이 이를 수락할 수도 있어. 돈을 빌려준 은행 입장에서는 전혀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30~40퍼센트 정도라도 돌려받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렇게 되면 채무 국가는 채권이라고 하는 증서를 새로이 작성하는 거야. 처음에 비해서 60~70퍼센트 정도 내려간 액수의 채권이 만들어지게 돼.
그런데 예전 채권도 여전히 시중에 돌아다닌다는 것이 문제란다. 바하마, 퀴라소Curaçao, 저지 Jersey 섬 같은 조세 천국에 주소를 둔 투자기금들이 이 예전 채권들을 헐값에 사들인 다음, 뉴욕이나 런던 같은 도시의 법원에 가서 채권에 적힌 원래 액수 그대로 지급해줄 것을 요청하는 거지. 이 경우 일반적으로 원고 승소 판결이 나는 편이고! 이런 투자기금들을 관용적으로 ‘벌처펀드’라고 부르는데, 죽은 혹은 죽어가는 동물들의 고기를 양식으로 삼는 독수리 부류의 행태에 빗댄 표현이란다.
채권 은행들은 침묵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 대다수가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거든. 벌처펀드가 얻어낸 이익이 누가 봐도 눈이 돌아갈 만큼 막대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 대형 은행들이 바로 그 같은 벌처펀드의 대주주들이란다.
빚을 줄이는 협상이 시작되면 채권자인 대형 은행의 수장들은 빚 때문에 허덕이는 채무국의 재무부에 마련된 협상 테이블에 그 나라 관계 부서 장관들과 마주 보고 앉게 되지. 협상이 끝나면 뉴욕이나 파리, 런던, 프랑크푸르트, 취리히 등지의 에어컨 잘 들어오는 자기들 집무실로 돌아가서, 벌처펀드에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대출을 허가해주는 거야.

8/ 무제한적인 이익을 향한 광기
10년 남짓한 기간인 1992년부터 2002년 사이에 세계 총생산은 2배가 되었고, 세계 무역량은 3배로 증가했어. 그런데 그와 동시에 남반구의 많은 나라에서는 빈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단다. 세계 시장의 자유화는 더 빨리, 더 멀리 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빈곤이 사라진 건 아니라는 말이지.
다시 말하자면 세계 시장이 더 빠르게 자유화됨으로써 발생한 이익은 거의 전적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소수 자본주의자들에게만 돌아간 거란다.

9/ 유토피아는 실현 가능한가
자본주의를 개혁하기란 불가능해. 완전히 파괴해야 해. 전적으로, 과격하게. 그래야 새로운 세계 사회경제 질서가 창조될 수 있을 테니까.
유토피아는 아주 멋진 역사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어. 유토피아는 물론 꿈을 가리키지만, 그 꿈은 우리 안에서 깨어 있는 꿈이고, 우리의 의식에 깃들어 있는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야. 새로운 세계, 행복하고 보다 더 정의로운 세계를 우리가 요구하는 거라고.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은 첫째도 둘째도 이익이지. 그러니 모든 개인들과 민족들 사이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만 있을 뿐이야. 자본의 원리는 대결에, 전쟁에, 약자를 짓밟아버리는 데 있어. 때문에 자본주의는 전쟁으로부터 마르지 않는 이익을 퍼 올린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구나. 파괴하고, 재건하고, 무기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이 발생하는 거지.
조라야, 다시 한번 거듭 말하거니와 자본주의 체제는 서서히, 점진적으로, 평화로운 가운데 개혁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소수 부자들의 양팔을 부러뜨려야만 한다고.
봉기의 힘은 우리 각자가 ‘이런 세상을 언제까지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이성적으로 거부하는 데 있어. 절망과 기근, 비참함, 고통, 절대다수가 당하는 착취 등이 소수, 즉 일반적으로 백인이며 자신이 누리는 혜택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는 자들의 복지를 위한 자양분이 되는 세상 말이다.
1억 2,000만 명에 이르는 소작인, 소농, 일용직 농업 노동자들의 조직인 비아 캄파 시나 La Via Campesina, 성차별과 폭력에 맞서서 싸우는 여성운동 모임, 자연과 생물 다양성에 가해지는 위협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그린피스, 투기 자본으로 인한 폐해를 제한하려는 아탁 Attac, 최소한의 인권 존중을 위해 싸우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그 외에도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수천수만의 크고 작은 사회적, 반자본주의적 운동들이 활동하고 있어. 이들이 모두 한데 모이면 신비한 형제애가 형성되고, 이러한 연대감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강력한 힘이 되어 자본주의라는 야만에 맞서 투쟁하게 되는 게지. 현재 지구상에는 이렇듯 각성한 사람들이 수억 명에 이른단다.
20세기에 공산주의를 통해서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어. 약간의 성과는 얻었지. 인류의 해방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마련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곧 역부족임이 드러났고, 그렇기 때문에 격렬하게 공격받았어. 자본주의가 승리한 거지. 오늘날 중국을 보렴.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공산주의 정부라면서도 자본주의 시장을 토대로 경제를 꾸려가잖니. 미래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투쟁에 참가하는 전사 각각이 자기 안에 확신을 가지고 있을 필요도 있어. 그걸 다른 말로는 가치관이라고 하지.
프랑스 대혁명은 세계 역사를 뒤엎었지. 봉건제도를 무너뜨렸고, 지구에 살던 수억 명의 인간들을 해방시켰어. 그 혁명이 계획한 프로그램, 만들고자 의도한 제도, 전략은 뭐였을까? 그건 인간 속에 깃들어 있던 자유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해방을 맞으면서 태어나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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