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이 책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병이 몸을 괴롭히는 중에도, 행복한 게 사는 것에 집중하는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의 생각이 존경스럽다(유튜브에서 인터뷰 영상도 찾아볼 수 있다).
파킨슨병이라는 주어진 환경에서 병을 원망하며 절망 속에 살 것인지, 그 속에서도 행복하기로 결심하고 행복을 찾을 것인지…. 환자가 아닌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입장을 모르는 말이라고 했을 수도 있겠다.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남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사지 멀쩡한 나를 더욱 반성케 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실화 기반의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도 한 번 시청해보길 바란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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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파킨슨병은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고, 몸이 굳는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그래서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심지어 글씨를 쓰고 얼굴 표정을 짓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보통 파킨슨병에 걸리고 15년이 지나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치매와 우울증, 사고력 저하 등을 동반하는데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그저 약으로 병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불치병이라는 소리다.
그렇다고 24시간 내내 아픈 건 아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반드시 덜 아픈 시간이 있고, 약을 먹어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도 있다.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고통을 견뎌 낸다. 그래서 그 시간이 되면 운동을 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딸을 위한 떡볶이도 만들면서 내 일상을 즐긴다. 아마도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나기도 하고 더 큰일을 당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나는 그대로인데,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내 미래가 불확실하고 현재가 조금 불편해진 것밖에 없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내가 왜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망치고 있는 거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도파민 작용제는 보통 치료 효과가 3년 가는데 나는 그 약으로 12년을 버텼다.
레보도파 약효의 지속 시간이 세 시간밖에 안 되어 하루의 반 정도는 누워서 약 먹을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려야 했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 하룻밤에도 옷을 세 번 정도 갈아입어야 했다. 게다가 약 기운이 떨어지면 자율신경계가 깨져서 심박동수가 120을 넘고,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돌아눕기도 힘들고, 이불이 무겁게 느껴져서 발로 차 내려고 해도 다리가 뻣뻣해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다리를 1센티미터 옆으로 옮기는 것조차 내 맘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파킨슨병 환자들의 경우 소변이 금방 마려워 화장실에 자주 가는데 밤에도 예외는 아니다. 겨우 눈을 붙였는데 소변이 마려워 잠을 깨고 화장실에 갔다 오면 한두 시간 잠들었다가 다시 화장실에 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본 뒤에는 어쩔 수 없이 약을 미리 먹었다. 하루 세 번 정량을 지키지 않고 더 먹으면 부작용이 따르지만 그날은 방법이 없었다.
한 발짝 떼는 것으로도 안 되어 기어 다녀야 할 때, 혹은 기어 다닐 수도 없어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할 때 그 고통을 견디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특히나 가족들이 모두 잠든 후 새벽녘에 아파서 자지도 못한 채 그 고통을 참아야 할 때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 조금은 덜 아픈 시간이 분명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고통이 조금 수그러드는 시간을 기다리고, 약을 먹어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픔이 덜해 움직일 수 있거나 약 기운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는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래서 나에게 기다림은 언젠가부터 희망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되고 싶다. 이대로 포기해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인생이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나기도 하고 더 큰일을 당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만약 대학 병원에 남았다면 주어진 길에 내가 맞춰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대학 병원에서 떨어진 게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나는 최선이 아닌 차선의 길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했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는데 원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니 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영화 ‘슈퍼맨’에서 주인공을 맡은 크리스토퍼 리브는 당시 신인 배우였지만 영화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그런데 마흔두 살에 그는 자신의 애마를 타고 장애물 넘기를 하다 그만 말에서 떨어지면서 목뼈를 다쳤다. 경추 2번을 다친 그는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지만 사지 마비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수술을 받고 재활 치료에 들어가서는 발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휠체어에 몸을 꽁꽁 묶고 발가락으로 휠체어를 조절하면서 왕성한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휠체어에 앉은 채 영화감독을 하기도 했고 1998년 영화 ‘이창’에 출연하여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 연기를 해 내기도 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삶을 헤쳐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며,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겁니다. 내 경우엔 운 좋게도 뇌를 다치지 않아서 여전히 머리를 쓸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만약 내가 파킨슨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의 말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병에 걸리고 난 뒤 나는 그의 말을 계속 곱씹게 되었다.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도 나는 가진 게 많다. 그래서 감사한 일도 너무나 많다. 어쩌면 이 복잡한 세상에서 내가 별 사고 없이 살아온 것 자체가 감사하고 다행한 일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기적이 별 게 아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기적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환자들이 나보고 그랬다. 달라졌다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한결 편안해 보이고 표정도 부드러워졌는데 도대체 그 비결이 뭐냐고. 그러면 나는 웃으며 말한다. “제 병이 제 스승이지요.” 파킨슨병을 앓으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힘이 조금은 커진 것 같다.
사람들이 나의 병에 대해 알고 나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먼저 웃으며 그런다. “제가요. 옛날에는 가진 거라곤 돈하고 미모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나이가 드니까 병하고 빚밖에 안 남았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을 풀고 나를 대하는 걸 불편해하지 않는다. 내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나는 병자다’라며 늘 우울하게 살기는 싫다. 나는 여전히 농담을 즐기고, 사람들과 웃으며 살고 싶다.
유머를 던지고 나면 내 병이 가볍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아진다. 유머가 병의 무게를 줄여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가족 중의 한 명이 병에 걸려 내가 돌봐야 할 상황이라면 어떨까.
만일 그가 남은 가족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스스로 생을 정리해 버린다면 나는 그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한편, 남은 가족에 대한 배려 없이 극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을 한 그를 두고두고 원망할 것이다. 또 고통을 이겨 낼 자신감을 상실하고 고통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즉 가족을 위한다는 결정이 가족들에게 무기력감과 죄책감 그리고 분노와 같은 무거운 짐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을 편하게 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은 실은 혼자서만 고통을 피하려는 이기적인 선택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나는 가족들에게 유쾌한 짐이 되자.’
무엇보다 내가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만 빠져 있으면 내가 불행한 것은 물론이요, 지켜보는 가족들도 불행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내 병을 한탄하는 대신 꿋꿋하게 병을 이겨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리고 아이들에게 너희가 옆에 있어 줘서 내가 참 행복하고 내 병을 더 잘 이겨 나갈 수 있다고 알려 준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내딛는다는 것
어떤 것을 이루는 과정에는 견디고 버텨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버티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일의 의미와 절박성을 깨닫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하며 결국은 살아남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러므로 버티어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60점 이상이면 통과인데, 하나도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과 ‘60점만 넘으면 되지 뭐’ 하는 사람의 준비 과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60점만 넘으면 똑같이 필기시험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된다며 불안에 떨면서 시험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준비해도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다.
인생은 때로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때론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도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시 인생의 키를 잡고 노력을 하다 보면 그 결과물을 받게 되는 때가 반드시 온다. 비록 그것이 내가 애초에 바라던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세상에는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참 많다. 회사에 갈 때 즐겁고 재미있으면 입장료를 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입장료를 내는 대신 오히려 월급을 받는다. 그 대가로 우리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가족들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 회사에 다니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면 일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일에 질질 끌려다니는 피해자가 되고 만다. 하지만 ‘내가 해 주는 거다’라고 마음먹고 하기 싫은 일을 빨리 해치우면 나머지 시간에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원하는 여행을 갈 수 있고, 원하는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다.

변했지만 몰랐던 것들에서부터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어릴 적 상처까지, 쌓인 이야기는 많았고 서로에게 하고픈 이야기도 많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사랑하니까 저 사람은 분명 내가 얘기 안 해도 알 거야’라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아무리 사랑해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나에 대해 자꾸 알려 주어야 한다.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이 차가운 지구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된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 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손잡아 주면 비록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더라도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정신 치료에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No comment is better than any comment.” 굳이 풀자면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들어 주는 것이 그 어떤 말을 해 주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그 어떤 순간에도 삶을 즐겨라. ‘~해야 한다’는 말을 줄이고,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 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못 당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꿈을 꾸고, 꿈을 수정해 또 다른 꿈을 꾸던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천체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고 싶었던 내 꿈은 밤하늘을 사랑하게 만들었고, 후세에 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내 꿈은 전공의를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해 주었으며, 세상을 물감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던 꿈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그림을 그려 그것을 문자로 보내는 취미를 갖게 해 주었다. 그렇게 꿈은 내 인생을 지루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고, 난 지치지 않는 호기심으로 세상을 기웃거리며 수많은 발견과 만남으로 내 인생을 장식했다.

나는 의사와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30여 년 동안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 남들에게는 건강과 휴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해 왔지만 정작 나는 늘 너무 바빴고 시간은 부족했다. 그래서 돌봄이 필요한 몸을 노예 부리듯 혹사시켰다. 일하느라 밥을 거르기 일쑤였고 때로는 잠까지 줄였다. 몸을 마치 뇌를 쓰고 활동하기 위한 도구처럼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쉬지 않고 계속 무리하면서도 나는 끄떡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몸이 상하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과거의 나처럼 ˝바쁘다˝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면 왠지 더 안타깝다. 몸도 기계처럼 과하게 쓰면 고장이 나니까 몸을 아껴 쓰라고 해 봐야 그들은 말을 안 들을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몸도 뇌도 때론 쉬어야 한다. 잠시 멈추어 선 시간에 우리는 그동안 경험한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해야 할 일들 가운데 못 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는데 그래도 괜찮다.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잡지에 들어갈 원고를 쓸 테고, 다른 사람이 나 대신 강의를 할 것이다. 꼭 내가 안 해도 되는 것들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생은 흘러가게 되어 있어요. 당신이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당신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시각 말고,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것부터 결정하세요.”
살다 보면 남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럴 때 독립적인 사람은 당당하게 도움을 청한다. 또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도움을 준다. 타인의 도움은 잠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자신의 일을 주관하는 사람은 자기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와 달라고 했다가 자칫 인생의 주도권마저 타인에게 내줘야 할까 봐 두려워하는 이는 선뜻 타인에게 도와 달라고 하지 못한다. 그럴 경우 그것은 독립이 아니라 고립이 되어 버린다.

신경 쓸 사람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이 그냥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되니까 재미있었다. ‘이래서 혼자 여행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저녁 무렵 어느 성의 망루에 올라 석양을 보고 있을 때였다. 아름답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 “아 참 좋다! 그치?” 했는데 그에 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맞다, 내가 혼자 온 거지.’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그 순간 너무나 외롭고 쓸쓸했다.
모든 이별은 마치 처음 맞이하는 이별처럼 낯설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어린 새색시가 갓난아기를 안고 쩔쩔매듯이 매번 이별을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몰라 쩔쩔매게 된다.


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편지
“좋은 치료자 백 명보다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만나는 게 낫다.” 정신과 의사들끼리 자주 하는 말이다. 우스갯소리냐고? 결코 그렇지 않아.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훨씬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단다. 감추고만 싶던 나의 약점과 단점을 알고도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고 받아들여 준다고 생각해 보렴.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긍정적인 확신을 갖게 되지 않겠니.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무엇이든 시도해 보려고 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적응해야 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적응은 곧 성장하고 발달해 나간다는 의미다. 그러니 아들아, 딸아. 너희에게 찾아온 성장의 기회를 차 버리지 말아라. 훗날 적응하려고 애쓴 노력이 너희 삶의 레퍼토리를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음을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딸아, 좋아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아끼고 쓰다듬지 않고 멋대로 던지면, 그릇처럼 다 깨져 버리니까. 그리고 한 번 깨어진 그릇은 다시 붙이기도 어렵단다.
많은 부부들이 익숙하다는 이유로, 다 안다는 이유로 서로를 함부로 대한다. 그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운 뒤에 뒤돌아 자 버리거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상대의 욕구를 무시하는 거야. 하지만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못하던 비밀스러운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것이 무시당했을 때 그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이렇게 쌓인 분노는 섹스의 거부로 이어지기 쉽고, 부부 갈등의 골은 매우 깊어지고 말지.
섹스란 두 사람이 나누는 신체적 대화다. 이것은 말로는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환상과 욕망을 나누는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대화다. 그리고 이 대화를 통해 부부는 서로의 몸뿐 아니라 영혼에 더욱 밀접해진단다. 그러므로 섹스를 포기한다는 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기쁨을 포기하는 것이자 부부만이 나눌 수 있는 강력한 유대감을 내팽개치는 일이야. 그러니 딸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 들어가면서 불꽃같던 열정이 사그라지는 것 같은 날엔 엄마의 말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섹스는 인간에게 주어진 그리고 인간이 즐겨야 할 귀중한 생의 선물이란 것을.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를 가진 사람은 있지. 그러므로 결혼을 결심할 때 그 사람의 문제를 고쳐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그 문제를 네가 받아들이고 용납할 수 있는지부터 먼저 생각해 보렴.


삶과 연애하라
나이 든다는 것은 상실의 연속이다. 건강을 잃고, 직업을 잃고, 경제적인 능력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과정이다. 여러 가지 상실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아마도 자존감의 상실일 것이다. 사회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고, 더 이상 맡아야 할 역할이 없어진다는 것은 노인들에게 큰 상처를 준다. 그런데 이러한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되찾고자 욕심을 부리게 된다. 조그만 일에도 무시당하는 것 같아 버럭 화를 내고, 버릇없다며 아랫사람들을 야단치기 일쑤고, 세상이 노인을 우습게 알고 공경할 줄 모른다고 불평이 많아진다. 그렇게 스스로를 젊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기에 더 어려운 사람으로 만들고 만다.
노인은 젊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젊음을 그 안에 간직하고 있다. 노인은 그가 살아왔던 길과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을 온몸으로 보여 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경험하고 그 풍경들을 기억하고 있으면서, 그 기억들이 몸으로 배어 나와 사계가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이것은 나이 든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공부는 하면 할수록 너무도 흥미로웠다. “와, 재미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동안 그렇게 답답하고 화가 났던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었고 그 해답은 공부에 있었다. 공부를 통해 종잡을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알게 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니,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 나가고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도 좀 더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몰라서 저지르는 실수들은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당신도 한 번쯤은 공부에 미쳐 보았으면 좋겠다.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닌 내면의 호기심이 발동된 공부의 즐거움을 느껴 보았으면 한다.
중국의 현자가 물었다. “학문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렇게 답했다. “사람을 아는 일이다.”
또다시 질문했다. “선(善)은 무엇입니까?” 현자가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삶이 힘들고 어렵고 좀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어느 때나 즐길 거리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즐길 거리가 다양한 사람일수록 불가피한 불운과 불행 또한 잘 버틸 수 있다.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삶을 살아 보면, 연애하는 마음으로 기대와 설렘을 가진다면, 세상은 당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또한 당신이 그 세상을 보고 감탄한다면 무의미한 오늘이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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